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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리 제98문답 기도란 무엇인가
제98문: 기도란 무엇입니까?
What is prayer?
답: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올려 드리는 것으로,1)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들을 위해,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3)
우리의 죄에 대한 고백과 함께,4)
그의 자비로우심을 감사히 인정하는 것입니다.5)
Prayer is an offering up of our desires unto God,
for things agreeable to his will,
in the name of Christ,
with confession of our sins,
and thankful acknowledgment of his mercies.
1) 시 62: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 (셀라)
2)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3) 요 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4) 시 32:5-6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단 9: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기도는 종교 본연의 의무a duty of natural religion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에게 구속의 은혜들benefits of redemption을 전달하는 주요한 수단들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이다. 위의 본문은 이처럼 중요한 의무인 기도를 명령한다. 본문 속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확인한다.
1. 의무 자체
“기도하되” 늘 굳게 서고 영적 원수들에게 멸망당하지 않도록 기도를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명령한다.
2.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한 부연진술amplification; 주의notice에서
첫째, 기도하는 시간: “항상” 곧 모든 시기에 기도하라고 명령한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는 태도를 갖고, 하나님이 기도를 요구하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모든 기도 시간에 기도해야 한다.
둘째, 기도의 종류: “모든 기도...를 하되” 말하자면 공적 기도나 사적 기도나 은밀한 기도나 통상적 기도나 특수한 기도나, 여기서 엄밀한 의미에서 기도로 불리는 기도 곧 선한 일을 위해 간청하는 기도나, 여기서 간구로 불리는 기도 곧 악을 물리치는 것을 탄원하는 기도나 종류를 가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한다.
셋째, 기도의 방법:
①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입술, 혀, 기억으로만 기도해서는 안 되고, 마음 곧 내적 인간과 함께, 아니 사실은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해야 한다.
② “깨어” 기도해야 한다. 마음이 방황하지 않도록 영혼이 기도를 위해, 그리고 기도할 때 전투적인 태세를 갖고 기도해야 한다.
③ “항상 인내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를 낙심하게 만드는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계속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
넷째, 기도해 주어야 할 자: “여러(모든) 성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다른 사람,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위의 본문은 다음과 같은 교리를 가르쳐 준다.
교리. “기도는 항상 필수적인 의무이며, 기도의 여러 종류에 따라, 그리고 올바른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소요리문답에서 기도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내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올려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고백과 함께, 그의 자비로우심을 감사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일반적 요소들과 특별한 요소들을 살펴보겠다.
Ⅰ. 기도에 대한 일반적 요소
일반적인 면에서 기도를 고려했을 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1. 간청petition
간청은 엄밀히 기도 자체이고, 본래 기도로 불리는 기도의 요소이다. 우리는 간청을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도록 아뢰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선을 구하며, 악을 저지르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탄원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
2. 죄의 자복confession of sin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긍휼을 구하는 죄인이 죄를 자복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죄인의 기도에서 극히 필수적인 한 요소이다. 그래서 기도가 죄를 자복하는 것으로 불리기도 한다.“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느 9:3) 죄에 대해 더욱 깊이 자복할수록 더욱 잘 기도를 드릴 수 있다.
3. 은총에 대한 감사thanksgiving for mercies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자신의 은택을 베푸신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하러 나오기 전에 이미 우리는 큰 빚을 진 자이다. 그러므로 감사가 우리의 기도 안에 포함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아울러 감사가 “기도”로 지칭되기도 한다.
Ⅱ.기도에 대한 특별한 요소
특별한 면에서 기도의 요소들을 살펴보겠다.
첫째, 간청이라고도 불리는 기도
둘째, 우리의 죄에 대한 자복
셋째, 은총에 대한 감사
1. 간청이라고도 불리는 기도
간청이라고도 불리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겠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설명하겠다.
1) 기도의 형식적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2)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가?
3)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4) 합당한 기도는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가?
5)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6)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7) 우리가 올바르고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8) 이런 식으로 기도하면 모든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되는가?
1) 기도의 형식적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기도의 형식적 본질은 엄밀히 우리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에 있다. 기도는 이를테면 우리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시도록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위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고, 따라서 여호와 앞에 우리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고,“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시 62:8)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우러러보는 것이며“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시 25:1) 간청자로 여호와에게 간구하는 것이다.“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단 9:18)
우리는 아랫사람에게는 명령하고 동료에게는 요청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무를 부과할 수 있고,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돕도록 다른 사람, 심지어는 윗사람의 성향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하나님께는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받으려고, 경건하고 복종적인 자세로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 말고 무엇이 남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첫째, 말이 없어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기도이고, 이것이 진실로 및 본래 기도로 불리는 것이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출 14:15) 기도의 본질로 보면 말은 필수적이지 않고, 우리 자신 때문에 말은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몸과 영혼으로 하나님을 존귀하게 해야 한다.
둘째,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께 향하지 않으면, 본래 기도로 불리는 기도가 있을 수 없다. 유대인은 마음 없는 기도는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말한다. 아무리 화려한 말로 꾸며도 그 말에 적당한 감정이 따라가지 않으면 주님 앞에서 기도가 아니고, 영혼과 생명이 없는 기도의 시체에 불과하다.
2) 우리는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까?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오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따라서 성도나 천사에게 기도해서도 안 되고,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 기도해서도 안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도는 종교적 예배religious worship의 중대한 요소이기 때문이다.“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2)
종교적 예배는 오직 하나님에게 행해져야 한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 거룩한 천사도 경배 받는 것을 거부한다.“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계 22:8, 9) 베드로의 경우와 같이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행 10:25, 26)
둘째, 기도의 대상과 믿음의 대상이 똑같기 때문이다.“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롬 10:14)
기도의 대상과 믿음의 대상이 똑같은 이유는 기도의 근거가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조물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므로 하나님께만 기도해야 한다. 주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셋째, 하나님만이 기도를 들으실 자격이 있기(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서 마음을 살피고 마음을 아신다.“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왕상 8:39) 오직 하나님이 편재하셔서 어디서든 들으신다.“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시 65:2) 오직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 백성의 소원을 이룰 수 있으시다.“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시 145:18, 19)
3)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성도든 천사든 다른 어느 누구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요 14:13). 우리는 어떤 사자의 이름이 아니라“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골 2:18) 유일한 중보자이신 아들의 이름으로“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아버지에게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숙고하라. (1)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2) 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1)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① 소극적으로natively.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믿음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겨우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우리의 기도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고전 1:1) 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종종 성령의 검이 그 안에 없는 동안에는 칼집scabbard만 만들어 낸다. 말은 하지만 믿음이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② 적극적으로positively.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a.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 16:24).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 하지만 그것은 명령으로 그치지 않는다. 중보자로서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속한 자를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달라고 구하도록 자기 아버지에게 보내시고, 어떤 사람이 가난한 자를 친구에게 추천하는 것과 같이 자기가 그들을 보내신 것을 아버지에게 말하도록 허락하신다.(요 16:24) 따라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가난한 자의 친구이신 분에게 보냄을 받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음 사실을 함축한다.
ⓐ 영혼은 먼저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올바르게 기도하는 자는 먼저 왕의 신하인 블라스도를 자기 친구로 삼고, 그런 다음 왕의 수행자가 되는 것처럼 해야 한다.“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행 12:20)
ⓑ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할 용기를 얻어야 한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하늘에 있는 보좌에 나아가는 길은 우리의 죄 때문에 막혀 있다. 따라서 죄인들은 주님에게 구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으며, 효과적인 부르심을 통해 죄인들을 자기에게 모으셨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갖고 계시므로, 죄인들에게 아버지에게 나아가 자기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명하신다. 바로 거기서 곧 말씀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약속에서 죄인들은 용기를 얻는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에게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입증하는 보증을 주시고, 이 보증을 아버지가 인정하시며, 이 보증은 곧 그리스도 자신의 영이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27).
b.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게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나아감, 받아주심, 은혜로운 응답을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나아감을 그리스도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을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도 없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자는 문전박대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보자를 붙잡고, 천국의 서기secretary of heaven이신 그리스도의 등 뒤를 따라 들어가게 되어 있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심을 그리스도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엡 1:6) 우리 주 그리스도는 우리의 은사를 성결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제단이다. 누가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받아 주시는 것의 근거를 자기의 체질frame, 재주(꾀)enlargement, 부드러움tenderness 등에 둔다면, 그의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하신 그리스도께서만 우리의 인격이나 행위를 받아들이는 무게를 감당하실 수 있으시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은혜로운 응답을 그리스도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어떤 기도도 중보자로 말미암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거나 응답받지 못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간청을 드리더라도,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만 하나님은 그 간청을 들으신다.
(2) 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사실에서 취할 수 있다.
① 죄인인 피조물은 중보자 없이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졌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문이 닫혔으며, 그 문은 우리의 힘이나 어떤 피조물의 힘으로도 우리에게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나아갈 수 있는 합당한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을 피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부정한 피조물을 피한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고, 따라서 죄인이 하나님에게 직접 나아가는 길은 없다.
② 그리스도 외에 이 일을 행하도록 지정된 자는 아무도 없고, 또 이 일에 합당한 자도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시다.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우리의 죄에 대한 공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리스도는 구속에 대해 유일한 중보자이신 것처럼 중보에 대해서도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그리스도의 공로의 감미로운 향기만이 본질상 향기롭지 못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받아들일 수 있으시게 만든다.“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3, 4)
4) 합당한 기도는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가?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기도는 두 종류가 있다.
(1) 지식과 구변의 은사에 따라 행해지는 기도가 있다.
많은 버림받은 자가 이런 기도를 한다. 이 은사는 다른 사람이나 교회에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식의 기도는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리스도도 받아들여 달라고 아버지 앞에 내놓지 않으신다.
(2)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들 속에서 행해지는 기도가 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슥 12:10). 이것이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유일한 기도이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헬 ἐνεργέω) 힘이 큼이니라”(약 5:16) 올바른 기도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이다. 올바른 기도는 하늘에서 부는 강풍 곧 성령이 성도 안에서 일으키는 바람으로, 이 바람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하나님의 보좌까지 미치는 기도를 하게 된다. 이때 성령은 다음과 같이 성도의 기도를 돕는다.
① 성령은 가르치고 교훈하는 영으로, 우리에게 기도의 적절한 내용을 제공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려 주심으로써 성도의 기도를 돕는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랄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은 지성(知性)을 조명해 우리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심으로써 우리의 기도를 돕는다. 우리가 이 일들을 기억하게 하심으로써, 또 기도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약속들과 함께 말씀에 따라 우리에게 이 일들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를 돕는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8). 따라서 성도는 때때로 이전에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또 이전에 염두에 두었던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기도하게 된다.
② 성령은 소생시키고 분발케 하는 영으로,“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우리 영혼에 기도하는 은혜와 감정을 심고, 기도하는 자 속에 욕구needs, 믿음, 열정, 겸비함 등을 역사하심으로써 성도의 기도를 돕는다.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시 10:17). 사람은 기도할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지만. 그때 성령의 역사로 도움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성령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성령이 우리를 가르치고 소생시키시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자세를 갖추게 된다. 말하자면 중보자가 제시하는 대로 우리의 간청을 내놓는다.
이렇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하는 것은 성도에게만 독특한 것이다.“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그러나 성도는 모든 시간에 또는 항상 똑같은 정도로 성령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때때로 성령님을 노하게 하고 근심케 하므로 시들고 메마른 상태에 놓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무를 이행해야 할 때, 성령의 역사와 탄식을 바라보아야 할 큰 필요가 있다. 강풍(强風)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낙담한 체 노를 잡아당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능숙하고 유창한 표현으로 기도하는 것을 항상 성령의 도우심의 결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기도할 때 말을 더듬지 않도록 베풀어 주신 은사의 산물이자 성령의 일반 역사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이 기도하도록 도우시는 동안 분명히 기도하는 자는 말하는 대신 탄식할 수도 있다.“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또 기도할 때 모든 감정의 홍수에 빠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도 아니다. 기도가 사람을 밀어 올리기는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 결과가 그의 삶을 더 거룩하게 하거나 부드럽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겸손하게 하면서 동시에 거룩하게 한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바울도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도다)...”(빌 3:3) 라고 말한다.
5)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1) 부정적 관점에서 설명하겠다.
① 우리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된다. 다윗은 자녀가 죽은 후에는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사 잡수시니 이 일일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삼하 12:21-23)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헛되고 무의미하다. 나무가 쓰러지면 그대로 놔두어야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죽은 자에 대해 기도하라는 명령이나 약속을 받지 않는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서 잘못된 연옥 관념이 나왔다. 그러나 죽은 자는 바꿀 수 없는 상태 속에 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②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으로 알려진 자를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된다.“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그렇다 해도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경솔하게 이런 문제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2) 긍정적 관점에서 설명하겠다.
① 일반적으로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 2:1,2) 그리스도인, 유대인, 이슬람교인, 이교도 및 고관이든 천민이든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되었든 모든 개개인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요일 5:16).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과 반대로, 모든 인간에게 복을 베풀고 모든 인간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근거 없는 간청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주님이 그렇게 기도하신 것처럼, 이후에 살아갈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② 특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야곱이 자신의 형 에서의 손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한 것처럼 말이다.“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창 32:11) 하지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위의 본문 (엡 6:18)은 “항상 힘쓰며 여러(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는 것을 제한하지 않은 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기도의 교제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의 모든 지체가 특별히 우리의 기도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로, 우리와 그들 간의 차이는 그것이 무엇이든 작은 차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의 한 몸의 지체들 사이의 교감을 위해 기도가 요구된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슬픈 표지이다.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암 6:6)
ⓑ 국가 위정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 2:2).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이후로 3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국가 위정자가 그리스도인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전에 벌써 국가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한다. 국민과 나라의 안정과 평화가 국가 위정자의 통치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국가 위정자가 불신앙을 갖고 있거나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다 해서, 국가 위정자의 정당한 법적 권세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 위정자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 위정자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국가 위정자의 영향력은 막대하고 그들의 업무는 막중하다. 따라서 국가 위정자가 받는 유혹도 매우 크다. 국가 위정자가 악하다면 하나님에게 그들을 위해 더 간절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님이 얼마나 시의 적절하게 개신교인인 왕을 보내셨는지, 그리고 우리 기도가 왕의 안전과 왕의 가족의 안전을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지 기억하고, 개신교인 왕이 왕좌에 앉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 목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목사는 긴밀한 관계 속에 있다. 목사는 막중한 임무를 감당하고 있으므로 목사가 잘못하면 그들 자신뿐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손해가 돌아간다. 교인들은 목사를 너무 괴롭혀 자기들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골 4:3) 목사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더라도 교인들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살전 5:25) 여기에 다음 구절도 추가하겠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롬 15:30).
ⓓ 우리가 아는 다른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서로 기도하라”(약 5:16) 기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인의 우정과 친분에서 나오는 특별한 유익이다. 은혜의 보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인의 기도에서 유익을 얻는 것은 결코 작은 복이나 격려 정도가 아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 우리가 지체를 구성하는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던 지역을 위해 기도했다.“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 29:7) 그렇다면 우리가 지체를 구성하는 교회를 위해서는 얼마나 더 많이 기도해야 하겠는가? 교회가 더 좋아질수록 여러분에게 그만큼 더 좋을 테니 말이다.
ⓕ 가족과 친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와 더 가까운 사람일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은혜의 보좌에서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욥이 자기 가족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라.“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 1:5) 주인이 자기 종을 위해“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7), 종이 자기 주인을 위해“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창 24:12) 기도하는 것을 보라.
ⓖ 마지막으로,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사람들이 감당하기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과 본보기가 있다.“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24) 주님의 본보기를 따라 스데반도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60) 그뿐 아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으려면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우리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는 이기심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원수에 대한 자비로운 관심은 우리를 하나님과 같이 만든다.“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6)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합당한 것, 오직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우리는 불법적인 소원을 하나님 앞에 내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욕심을 위해 간청해서도 안 된다.“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이런 기도는 당연히 가증한 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는 것이다. 사실 악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우리의 말로 전해졌을 때 그만큼 더 악해진다.
우리의 기도 내용은 하나님 말씀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속에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제시하셨다.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부여되는 하나님 뜻과 선한 기쁨의 취지와 우리의 기도는 범주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이 명령이나 약속의 범주 안에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우리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든 하나님의 영광,“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교회의 행복,“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시 122:6) 현세적이든 영적이든 영원한 것이든 우리 자신의 유익과“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관련되어야 한다.
7) 우리가 올바르고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1) 기도하는 것을 이해하도록 알아들을 수 있게 기도해야 한다.“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기도하고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고전 14:15-16) 그러므로 알려진 언어로 기도해야 한다.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중언부언하는 것은 사실 기도가 될 수 없다.
(2) 공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한다.“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전 5:1-2) 우리는 기도할 때 표현, 음성, 몸짓에 있어 외적 공손함을 유지해야 한다. 기도할 때 우리는 크신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앞에 있는 하나님의 위엄에 대해 두려운 감정을 갖고 내적 공손함을 유지해야 한다.“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시 89:7)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8)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에게 어울리는 태도는 두려움과 떨림이고, 죄를 지은 피조물은 훨씬 더 그렇다. 하나님에게 두려움 없이 주제넘게 아뢰는 것은 완고한 마음의 결과이다.
(3) 겸손하게 기도해야 한다.“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시 10:17)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우리의 영의 악함을 깊이 의식하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요구하지 말고 간절히 부탁해야 하므로 우리의 무가치함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창 32:10) 은혜가 클수록 우리 자신의 눈에 우리의 무가치함도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창 18:27)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 우리는 세리와 같이“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3-14) 내면의 눈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의 죄악에 돌려야 한다.
(4) 감정을 담아 기도해야 하다. 우리는 탕자와 같이“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 15:17-19) 궁핍 의식을 갖고 깊은 감정에 사로잡혀 기도해야 한다. 따라서 슬프게도 무감각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영적 갈급함이 없이 주의 식탁에 앉아 있는 것, 우리 자신의 자만 속에서 부유하게 많은 물건을 갖고 주의 문 앞에 나아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경우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기도하러 가기 전에 우리의 필요를 살펴보는 것이 기도에 대한 매우 필수적인 준비의 한 단계이다.
(5)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그러므로 불신자는 응답받는 기도를 할 수 없다.“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롬 10:14) 따라서 거듭나지 않은 자의 기도에는 은혜로운 응답이 전혀 없다. 나아가 신자는 기도할 때 믿음으로 해야 하고 기도에 믿음을 결합시켜야 한다.
우리는 기도 응답을, 특별히 확신하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이런 확신이 없으면 응답받는 기도도 있을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6). 구하는 것에 대해 아무 기대감이 없이 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이 없이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을 크게 욕되게 하는 것이다.
(6) 진실하게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 145:18). 기도할 때 마음이 입술과 함께 가지 않아 나타나는 위선과 가식은 기도의 응답을 방해한다. 기도하면서 감정이 말과 일치하지 않을 때 거짓 입술이 된다.“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시 17:1) 죄를 자복하지만 마음이 그 아래에서 겸손하지 않을 때 거짓 입술이 된다. 간청이 드려지더라도 구하는 것을 진실하게 바라는 마음이 없을 때 거짓 입술이 된다. 예레미먀 29:13을 보라.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7)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냉랭하고 활력 없는 형식적 기도는 올바른 인이 찍혀 있지 않다. 우리는 매우 중대한 문제로 기도할 때처럼 항상 뜨겁게 기도해야 한다.“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하나님은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는 길게 늘어놓는 말에 있지 않고,“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기도가 열납되길 바라는 거룩한 간절함이 담긴 마음에 있다.“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시 143:7) 간절한 열망을 가진 사람은 주님과 변론하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다.“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욥 23:3-5) 하나님의 제단에서 나온 활활 타오르는 불로 따스해진 마음이 간절한 기도를 낳는다.
(8) 깨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위의 본문(엡 6:18)에서처럼 깨어 구해야 한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이 산만하지 않게 주의하자. 기도할 때 잡념이 있으면 기도가 크게 방해받는다. 잡념은 새가 시체에 달려드는 것처럼 임하고, 쫓아내지 않으면 금방 먹어 치울 것이다. 마음의 육체적 성향이 잡념의 어머니이고, 잡념을 도와 심령이 경솔하게 하나님에게 불쑥 뛰어들도록 만든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담을 세우는 자가 한 손에는 삽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일에 집중하는 것처럼, 단호하게 잡념을 거부하고 잡념이 마음에 숨어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잡념을, 겸손해질 새로운 기회와 은혜의 보좌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갈 절호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 원수에게 포격을 가하라. 이 원수는 저항에 부딪히면 여러분의 기도 응답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저항하지 못하면 기도 응답을 방해받을 것이다.
(9)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위의 본문에서처럼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써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간청할 때 뒤로 물러서지 말고 계속 끈덕지게 간구해야 한다.“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 18:1) 응답받을 때까지 다른 청원은 제쳐두고 한 청원, 한 기도를 끝까지 고수하라.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10) 마지막으로,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겸손하게 복종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고 응답을 고대해야 한다.“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미 7:7) 우리는 기다리며 의지하는 태도를 갖고 기도해야 한다. 당연히 이런 기도는 응답을 바라지 않거나 응답에 관심이 없는 기도로 여겨지지 않는다.
8) 이런 식으로 기도하면 모든 기도가 받아들여지고 들려지고 응답되는가?
(1) 거듭나지 않은 자는 이런 식으로 기도할 수 없고, 거듭나지 않은 자의 기도는 언제든 응답받지 못한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잠 15:8).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요 9:31).
(2)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항상 이런 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의 모든 기도가 응답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3) 그러나 성도들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창출하는 이 모든 기도는 중보자를 통해 아버지에게 드려지고, 그러면 아버지는 이 기도를 받아들이고 듣고 응답하신다. 다만 당장은 응답받지 못할 수 있다.“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 22:2) 대신 적절한 때가 되면, 바라던 그대로 받거나,“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5) 다른 어떤 선한 것으로 받거나 간에“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 17:18-19)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 12:8-9) 응답받을 것이다.
2. 우리의 죄의 자복
기도의 두 번째 요소는 우리의 죄의 자복이다. 이에 대해 다음 사실을 살펴보겠다.
우리가 자복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
2. 우리의 죄의 자복의 필수적 성격
3. 우리는 죄를 어떻게 자복해야 하는가?
우리가 자복해야 할 죄는 원죄와 본죄, 작위와 부작위의 죄, 마음과 입술과 생활의 죄이다.“내가 주께만 범되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4,5) 한마디로 우리가 할 수 있다면(“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시 19:2) 우리의 모든 죄를 자복해야 한다. 특히 양심을 크게 다치게 한 죄와 그 죄의 악화를 각별히 자복해야 한다.
우리의 죄의 자복의 필수적 성격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우리가 죄를 자복해야 주의 공의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2) 자비로운 용서를 받으려면 본질상 죄의 자복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3) 우리가 죄를 어떻게 자복해야 할까?
(1) 충분히, 조금도 숨기지 말고 자복해야 한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잠 28:13).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우리 죄의 모든 상황을 아신다. 따라서 죄의 자복을 미루는 것은 헛되고, 그것은 마음이 적절히 겸비해지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2)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자복하되. 마음을 물같이 쏟아 놓아야 하고 단순히 억지로 고백해서는 안 된다. 은혜가 마음에 임하면 마음은 자유롭게 죄를 자복할 것이다.
(3) 진실하게 죄에 대한 수치, 슬픔, 미움을 갖고 자복하고 개혁에 대한 진정한 의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 고백에 불과하다.
3. 받은 복에 대한 감사
기도의 세 번째 요소는 복에 대한 감사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사실을 간단히 살펴보겠다.
1. 감사할 복의 내용은 무엇인가?
2. 복에 대한 감사의 필수적 성격
3. 우리는 어떻게 복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가?
1) 감사할 복의 내용은 무엇인가?
(1) 신령한 복“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신령한 복은 우리 영혼에 베풀어진 복으로 영원한 행복을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령한 복을 극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신령한 복을 받은 모든 자는 이 복에 대해 매우 절실하게 감사하는 자극을 받아야 한다.
(2) 모태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받은 온갖 현세적 복“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이 복에 대해서는 날마다 크게 감사할 것이 요구된다. 우리는 이런 복으로 매일 아침이 새롭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 특히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 베풀어진 복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한다. 바울은 빌레몬에 대해 그렇게 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몬 4절)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빌 1:3)
2) 복에 대한 감사의 필수적 성격을 살펴보겠다.
(1) 우리가 받은 유익이나 혜택에 대해 하나님에게 돌릴 수 있는 것은 감사, 즉 빚진 것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전부이다.“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호 14:2) 사람들 사이에도 배은망덕은 큰 죄와 추문으로 간주되고 사람에게 싫은 감정을 심어준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복에 대해 하나님에게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에 합당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죄와 추문인가? 이런 배은망덕은 이방인의 특성이다.“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배은망덕이 그리스도인의 특성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2) 감사는 더 많이 얻는 길이다. 감사하지 않으면 신적 소통이 방해를 받는다. 그러나 감사하면 신적 소통의 길이 열린다.“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사람들 사이에서 배은망덕하면 아무리 관대한 사람이라도 그와 인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배은망덕은 모든 선의 수여자이신 거룩하신 하나님도 화나게 만들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은혜 베푸는 손길을 자제하신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감사보다 요구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리스도에게 고질병을 고침받은 열 명의 요구자(나병환자) 가운데 한 명만 감사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복음의 역사에서 특별히 알려졌다(눅 17:11-19). 우리는 이전에 받은 모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지 못하면서 주님에게 복을 구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감사는 더 많이 얻는 준비된 길이다.
(3) 우리는 복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과분하게 베풀어진 선에 대해 감격하는 넓은 마음을 갖고, 이런 비천하고 무가치한 피조물에게 복이 주어진 것에 대해 크게 겸손한 자세를 취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높이겠다고 충심으로 결단하며, 자애로운 은인이신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은헤를 더 받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품고 감사해야 한다.
Ⅲ. 결론
몇 가지 결론을 맺고 마치겠다.
1. 기도 없는 인생은 경건하지 못하고 은혜롭지 못한 인생이다. 이런 삶은 짐승의 삶보다 나은 것이 없고, 사람의 합리적인 본질에도 알맞지 않고, 사람의 창조의 의도 및 목적에도 반하며, 불멸성의 후보자인 사람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삶은 죄인을, 하나님의 공의를 매우 심하게 공격하는 자로 만든다. 이런 삶을 고집하는 자는 결국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기도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항상 기도하며 살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2.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 기도하는 데 기인하므로 우리 자신의 잘못이다. 우리가 항상 믿음으로, 그리고 이전에 지켰던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했다면 실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올바른 방법으로 기도해야 하고, 특히 주님이 우리 기도를 은혜로 받아 주시고 호의적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기다려야 한다.
3. 하늘과의 소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리고 확보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중보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간청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항상 들으시기 때문이다.
4. 올바르게 기도하려면 기도의 영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과 성령의 역사를 끊임없이 갈망해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은 마음을 소생시키고 얼어붙은 감정을 따스하게 녹이기 위해, 성령의 살리시는 역사를 고대해야 하고, 그래야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보내고 우리 소원을 하늘로 날려 보낼 수 있다.
5. 온갖 종류의 기도를 사용해 기도하라는 권고를 받아들이라. 다윗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라.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 119:164). 이것은 하루에 고작 두 번 기도하는 것으로 그치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얼마나 부끄럽게 만드는가? 이것은 주님 앞에서 기도를 억제하는 모든 사람을 얼마나 정죄하는가? 오, 우리는 이 중요하고 즐거운 의무를 양심적으로 이행하도록 자극을 받아야 한다.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하는 짐승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 감사를 모르는 무뢰한과 똑같아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과 함께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침과 저녁에, 그리고 편리한 모든 시간에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갖고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때마다 간절하고 강렬하게 간구하라. 기도하는 시간을 빼먹지 말고 일상 업무를 감당할 때도 기도를 빼먹지 말라. 그래야 여러분은 하늘로 경건한 생각을 올려 보내고, 일상사를 감당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나는 임시 기도와 정규 기도, 공적 기도와 개인 기도와 은밀한 기도, 통상 기도와 특별 기도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도에 대한 설명을 내려놓고, 다음 장에서 은밀한 기도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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