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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생 고모(그손자가 나의 고교 15년 선배 有名人), 1926년생 부친, 1931년생 모친, 고종사촌형 1928년생등 안동에서 버스로
휴가를 가는데. 기억. 거의 비내리는 비포장 절벽길을 가는 데, 영덕에 내려서 여관에 잠시들려 밥을 먹고, 동생들은 아직 없거나 너무 어리니, 거기서 백00 같은 반(엄밀히 말해 당시는 1학년도 남녀 따로 반편성, 남녀칠세부동석)아이는 안동갑부 딸, 봤지만 모른채. 어린이는 위함하다고 뭐 허가된지 얼마 안되었단 말도 들어, 1963년 인가 첫 동굴 입장 허용. 신발은 장화로 갈아신고 기억. 그리고 고모와 그아들들 친척 할머니등과 해수욕장(망양?)에. 돛단배 타고 나가는 데, 한복의 금복주 스타일 영감님 불콰해서 작은 돛단배로 바람타고 나가니 순식간에 멀어지는 해변 엄미는 빨리 가지고 하고, 아버지는 애써 색안경을 끼고 말이 없지만 입끝이 떨리고 난 뭐 겁은 났지만, 아무생각 없고, 그 사공영감은 ‘잘하면 을릉도 까지 간다고 허풍..’ 기억! 그리고 해수욕 구명 부유물은 박의 속을 비워서, 바가지 두 개 붙인 스타일.
아 성류굴에서 석순을 떼서 암매하는 사람이 와서 아버지에게 사라고 하여 싱갱이 하는 장면
사지는 않은 모양. 기념 사진첩은 손바닥 만한 흑백, 20원인가? 기억 없다.
아! 60년의 세월은 ... 그 당시 고모 겨우 환갑 넘긴 나이..나보다도 한참 어린 지금의 나 보다..흐.. 세월은 이리도 무심하다~~~
聖留窟2 성류굴 유감 20230915 진허 吟
再訪聖留 回甲區 . 계묘년, 60년만에 다시 찾은 성류굴에서 느낌이란
外變內存 不改俱 . 외부는 많이 변하였고 내부는 대체로 같아보이누나
當賣石筍 幾千圓 . 당시에는 귀한 석순을 몇 천원에 팔고 있었어다니
時買紀念 黑白圖 . 흑백사진의 조잡한 그림의 석류굴 사진첩을 샀었고
茫洋葉舟 家族恐 . 망망대해 돛단배에 온 가족이 탓200다가 공포애 떨고
海浴葫浮 救命壺 . 해수욕장,속빈 박으로 만든 물허벅에 목숨을 구해
老片索看 七褪人 . 오래된 사진을 찾아보니 일곱명의 빛 바랜 얼굴들
比我皆靑 殘只吾 . 지금 나보다 다 어린 나이들 남은 것은 나하나 뿐!
이 문구는 다시 방문한 성류굴에서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과 해설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再訪聖留 回甲區" : "성류굴을 다시 방문한 것, 가장자리 지구로 돌아가다."
저자가 성류굴을 다시 방문하면서 성류굴의 변화와 다시 찾게 된 경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外變內存 不改俱" : "외부가 변했지만 내면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성류굴의 외부 환경이 변화했지만 내부 구조나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當賣石筍 幾千圓" : "그때 석순을 몇 천원에 팔고 있었다."
저자가 성류굴에서 석순을 사서 얼마나 비싸게 샀는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時買紀念 黑白圖" : "그때 흑백 사진첩을 사고."
저자가 성류굴의 흑백 사진첩을 구매한 경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茫洋葉舟 家族恐" : "바다의 망망대해에 가족과 함께 떠나 공포에 떨면서."
저자가 가족과 함께 바다에서 보낸 경험 중에 무서움을 느끼는 순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海浴葫浮 救命壺" : "해수욕장에서 만든 구명조끼로 목숨을 구하는."
바다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목숨을 구한 경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老片索看 八褪人" : "오래된 사진을 찾아보니 여덟 얼굴이 바랬다."
성류굴과 관련된 오래된 사진을 찾아보면 여덟 얼굴이 흐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比我皆青 殘只吾" :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아직 어리다. 나만 남았다!"
저자는 성류굴과 관련된 경험 중에서 남은 것은 자신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어리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문구는 성류굴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담고 있으며, 저자의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석:
"성류굴2 - 성류굴 유감 - 20230915 진허 吟
다시 성류굴을 찾아왔다. 60년이 지나서야 성류굴을 다시 찾았다.
외부는 많이 변했지만 내부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당시에는 몇 천 원에 귀한 석순을 팔고 있었다.
흑백 사진첩을 사서 성류굴을 기념했다.
넓은 바다에서 가족들과 함께 돛단배를 타면서 두려움을 느꼈다.
해변에서 만든 공포에 떨리는 구명통으로 목숨을 구했다.
오래된 사진을 보면 얼굴이 빛 바랜 여덟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리게 보이고 나만 나이가 드러난다."
해설:
이 시는 60년 만에 다시 찾은 성류굴에서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성류굴은 외부에서는 많이 변했지만 내부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몇 천 원에 귀한 석순을 팔고 있었고, 흑백 사진첩을 구매하여 성류굴을 기념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넓은 바다에서 돛단배를 타면서 두려움을 느꼈으며, 해변에서 만든 구명통으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오래된 사진을 보면 얼굴이 빛 바랐던 여덟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어리게 보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성류굴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나이에 관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鍊武石室 花郞徒
운하천중 석불
탑실석종 삼일운
용신벽지
지옥동 청사초롱
만불상 마리아 통일
초련광장 에덴
수례동 법당,동불
여의동 산호,싼타
음향동 오케,미녀
보물 보물섬
선유산(仙遊山) 절벽 밑, 왕피천(王避川)
龍神池 龍神池 마의심연 제5 窟神 寶川태자,
多奇岩 天板巖 片巖 은하천 鬼工神力 500명 몰살 임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