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부동지不動地와 원바라밀>
- 한국불교를 근본부터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부동지와 원바라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를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동지의 「십지품」 내용이 지극히 어렵고, 제가 얘기하려는 내용이 원바라밀과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제 글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 느끼게 될 ‘편치 않은 뒷맛’을 해소시켜
드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풀어내게 되었습니다.
2013년 『생각의 끝에도 머물지 말라』라는 여섯 번째의 불교 해설서를 출간하고 나서 저는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녹내장으로 오른쪽 눈이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악화된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연이은 두 차례의 심장 수술, 암 수술로 병원비조차 부담이 될
지경이었지요. 육체와 경제적인 악화는 물론이고 이때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한국불교의 승가는 물론이고 2001년부터 세존사이트를 통해 혼신을 기울여 정법을 전하는
데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재가 불자들에게도 실망을 했습니다. 결국 불교는 회복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10여 명의 불자들과 공부의 장인 ‘세존아카데미’ 에만 전력했습니다.
세존 사이트에 불자 회원들은 누적 3만 명을 넘었지만 매달 1만원 동참 회원을 포함해 운영비
동참자는 100명이 채 안 되었습니다. 회비는 내지 않으면서 그동안 조금 불교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는 회원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불법을 알리지 못해 안달이었고, 심지어 자기 만의 논리로
운영자인 나를 설득하려는 회원들도 있었습니다. 세존사이트 운영 적자폭이 늘어나서
불자들에게 약간의 보시를 부탁하면, “염치가 없다”며 거절하는 분도 있고, “다른 스님들은
이럴 때 술한 잔 하면서 부탁하는데 스님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보시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스님은 전생에 지은 공덕이 없다는 게
느껴졌다. 보시할 마음이 없어졌다”고 하는 치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때 정말 다른
스님들도 이런 경험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지금도 전국에 몇 개의 사찰을 체인점처럼
운영하시는 스님들은 어떻게 거액의 보시를 받아낼 수 있는지도 정말 궁금합니다.
-절망의 시기에 맺어진 인연, 덕분에 원願을 실천하다
그런 절망의 시기에 제 원願을 실천할 수 있는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2013년 경 한 젊은
불자가 2006년에 민족사에서 출간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을 읽은 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찾아왔습니다. 그 후 불교와 현실에 대해 그 거사(당시에 30대
중반이었음에도 수승해서 거사라 칭함)와 깊이 있는 대화를 자주 나누었습니다. 워낙
선근善根이 깊고 세상에 대한 안목이 출중한 거사라서 어떤 대화도 가능한 점이 무엇보다
제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3년쯤 지난 2015년 초 제 마지막 원願을 버킷 리스트
Bucket list에 비유하며 그 거사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불교는 승가나 재가불자, 어떤 방법으로든 정법으로의 전환이 불가할 정도의 수준임을
확인하고 또 했다. 나는 이제 가시적 성과는 다 포기했다. 한국불교를 근본부터 바꾸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죽기 전의 회향처이고 거사의 원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위와 같은 내용의 하소연을 했지요. 사실 듣는 사람에게 엄청난 부담을 줄 수도 있는 일종의
압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거사는 자신이 힘닿는 대로 불사를 하겠으니 진행해 보라고 ‘별문제’가 안
된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필요한 준비 비용 등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보내왔습니다. 연간 평균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수년간 어김없이 보시를 했으니, 정말 쉽지
않은 일을 30대 중반의 한 불자가 해 냈던 것입니다. 그 거사는 당시에 고소득 연봉을 받긴
했어도 재벌 3세도 아니고 큰 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어서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불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필자, 놀라운 보살행을 보여준 한 불자, 그리고 민족사 윤창화 사장님, 이 세 명이
합심해서 학술서 번역 출판 불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불교학계의 세계적인 석학들(사실상
현대의 불교 최고 논사)이 저술해, 이미 수 없는 피인용 횟수를 기록하고 검증이 끝난 불교
교학의 명저들을 번역해서 출판하는 일입니다. 2015년 준비를 시작해 2018년 봄 1차 번역본
두 권을 세존학술연구원의 세존학술총서로 민족사를 통해 출간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향후
2년간 총 10권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무슨 이력이나 업적을 생색내려는 것이라고 오해하실 지도 모르기에, 이 일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현실적 어려움이 많은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불교학계
역사상 초유의 시도라서, 조언이나 도움을 받을 인적 자원이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점이
번역 불사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제 버킷 리스트이자 이 번역 불사의 원願은 출가 후 40여 년 동안 수행하고 전법하며 얻은
경험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올해 폭발한 조계종단의 ‘적폐’는 20여 년 간
누누이 지적해 온 일인지라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승가뿐만 아닙니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아무리 설득해도 경전 위주의 불교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고집 센
기복 불자들에게 저는 미래 불교의 희망을 걸 수는 없었습니다. 적폐 청산의 기치를 내건
촛불이 횃불이 되어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적 청산이 아주 잘 이루어져 승단 지도부가 다 교체되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안에
담을 불교는 무엇으로 해야 할까요? 출가 수행자다운 도덕성을 지키는 일과 「십지품」 같은
불법을 대중화시키는 능력은 전혀 별개의 일입니다. 출가 수행자뿐만 아니라 재가 불자들의
자질도 문제라고 봅니다. 큰 절, 큰스님, 영험도량에서 보시한 만큼 지극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하고, 주지와 술을 같이 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불자들에게 제대로 된 불법이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참으로 참담합니다. 게다가 일평생 수행을 하고 정법의 실현에 앞장서는
스님들이 숙식 걱정을 하지 않는 분들이 거의 없다는 데 이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생계를
위협받는 스님들의 삶과 함께 골프도 치고 술도 마시는 비즈니스적 승려들에게 보시를 하는
재가 불자들의 삶이 무관한 일일까요? 대부분의 재가 불자들에게 ‘법다움’은 보시의 중요
판단 기준이 아닌 듯해서 암담합니다. 하지만 미래 불교의 재건을 위해 제 나름의 불사를
열심히 해 나갈 것입니다.
-세존학술총서, 현대 최고 논사들의 학술서적 번역 출판으로 미래 불교의 재건을…
각고刻苦 끝에 지난 3월 『송대 선종사 연구』와 『북종과 초기 선불교의 형성』 두 권의
번역서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두 권 중에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교수인 김종명 선생이
번역한 『북종과 초기 선불교의 형성』이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인문학 우수도서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저자인 존 매크래John R. McRae는 2011년 작고한 미국 대학 교수로 중국
선불교 특히 신수에 관한 연구에 탁월한 안목으로, 중국에서까지 존경을 받았던 명저를
남겼는데 그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직결된 내용이 담겨 있어서 주저 없이 번역을 결정했습니다.
내용의 핵심 주제는 혜능 위주의 남종선 전개 이후 신수의 북종선은 어떻게 전개되었나에
대한 것입니다만, 초조 달마에서 6조에 이르는 법맥의 정당성과 남·북종의 분기점인 신수와
혜능의 불법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자료들을 논거로 전설이 아닌 ‘사실’을 입체적으로
전달해 주는 명저입니다. 저자인 매크래 교수의 결론은 신수와 혜능은 5조五祖 홍인弘忍의
문하에 같이 동거한 적이 없고, 『육조단경六祖壇經』 또한 혜능의 저술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후대에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육조단경』의 내용은 당시 세력의 확장에 있던 ‘혜능파’의 주장이지, 당시 중국선 주류의 공용
교과서에는 절대 세력이 미치지 않았었다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한국불교가
어떤 ‘위협’에 처해 있는지 실감하셔야 합니다. 고려 말 보조 국사 이후 혜능의 남종선이
정통선正統禪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성철 스님을 비롯한 근·현대의 모든 선사禪師들은 혜능의
『육조단경』의 정당성에 한국불교의 모든 것을 의심 없이 의지해왔습니다. 만일 이것이 옳다면,
매크래 교수의 주장이 논문 차원의 가설이라고 반박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에 걸맞는 대응
연구와 반론을 주장하는 논문이나 학술서를 종단의 선승들이 주도해서 내 놓아야 합니다.
단순히 ‘그런 주장도 있지만’이라는 상투어로 넘어가기 에는 너무나도 핵심적인 지적
아닙니까? 나도 여러분도 과거에 들었고 지금도 곳곳에서 강의하고 있는 『육조단경』이 당시
중국 정통선의 아류亞流에 불과하다면 이것을 어찌 수습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10종의 번역서를 선정하면서 한국불교가 현재는 물론 상당 기간, 교학적으로
현대 최고 논사들의 해석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영어 원전의 학술서를 1차 선정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출간된 학술서의 간행사에서 밝혔듯이,
불교가 더 추락하고 쇠락할 한두 세대 후의 불교학자들이 한국불교를 연구하며 미래 불교를
재건할 때 도서관에서 구해보길 바랐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길, ‘극도로 문란하고 사상적 정립과 교학적 바탕 없는 간화선의 병폐가 도를
넘었을 시기에, 그래도 정법을 갈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 정설을 연구한 논문과
학술서를 추려내서 후대에 전하려는 불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힘을 얻기를 바라는
원願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학술서 번역불사에만 매진했던 것입니다. 출간 이후의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 우선 불교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대단히 선진적인 사상과 최신 연구를
소개해 교학 불교의 수준이 높아지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선을 연구하고 말하기 위해 1차 출간된 두 권의 선서禪書의 내용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 그간 한국 불교학자들의 논문의 상당수는 ‘논문의 주제 자체가 오류’인 연구를 했다는
기가 막힌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10권의 시리즈는 불교의 핵심 주제들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한국불교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이기에 학계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불사佛事입니다.
그동안 한국불교의 불사는 대부분 불사가 아닌 공사工事였습니다. 자문을 요청한 현직
교수들도 몇 사람이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불자들에게
출간 직전까지 인터넷을 통한 동참 모연을 하지 않은 이유도, 대면해서 설명해도 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런 ‘책출간’을 불사라 귀히 여기는 불자가 별로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출간 후에도 책을 신청한 인터넷 회원은 40여 명, 현재 세존 사이트에 가입한 누적 회원 수를
확인하니 35,636명이었습니다. 이 일만으로도 회원들의 불교 의식 수준을 잘 파악한
셈입니다.
-한국불교의 양극화, 재가불자의 보시행의 양극화
번역 불사는 개인의 일이지만 원바라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이라서 가감 없이 사실대로
밝혔습니다. 내친 김에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술서 번역 불사는 주로 영어본 중
명저를 선택했습니다. 일본과의 교류는 활발한 편이지만 미국, 영국, 유럽의 영어 원전
교류나 번역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입니다. 예상보다 번역비와 시간이 많이 걸려
진행비도 만만치 않게 듭니다. 저작권 확보, 번역 등 출간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은 그
거사님이 기꺼이 감당해 주셨지만, 액수가 3억에 달해 더 부담을 드리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원래 20~30권 출간 계획을 우선 1차분 10권으로 축소했습니다. 앞서 말 씀드렸듯
두 권이 출간되었고, 현재 두 권이 편집 진행 중인데, 올 겨울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학술 명저의 번역 작업은 불교대학의 연구소나 신행단체의 원력, 조계종단의 교육원에서
기획하고 전공 교수들과 함께 숙고한 후 교육부 등 담당기관의 연구 자금을 지원 받아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이건 ‘가능하기는 하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졸속 번역’이 될
공산이 뻔해 보였습니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사업을 통한 국고보조금의 단 맛에 빠져 적폐가
되는 것을 보았는데, 이 번역 불사를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철저하게 내 결정과
판단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앞서 화엄경을 독경한 후 세존사이트를 개설하고 나서 프로그램 제작비, 자료 입력비,
운영체제 구축비 등으로 경제적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학술서 불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번역서의 간행은 세존학술연구원(원장 성법)에서 맡는 것으로 되어 있고,
출간 비용을 책임진 거사는 학술원에 보시하고, 다시 학술원에서 민족사를 통해 번역 비용
등을 지불하는 식으로 보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사를 진행할수록 원장인 저는 힘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진행비와 연구비 등을
불자들의 보시로 충당하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보시에 대한
과거의 모욕감과 수치심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 생각은 금세 접었습니다. 급할 때는 대출을
받고, 지인에게 신세를 지며 진행하고 있는데, 결국 이 방법도 막혀 고금리 이자에 시달리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기복불교를 포기하고 세존 사이트와 해설서를 통한
정법 구현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신도들의 교육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면서도 생산성이 만들어지지 않고 되레 운영비
등을 제가 충당해야 하는 고약한 상황이 거의 20년간 지속되어 왔습니다. 게다가 번역
불사를 하면서부터 부채는 더 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속나이 이미 60이 넘은 제가
무소유의 빈손으로 떠나려면, 몇 억에 달하는 ‘빚 소유’를 청산해야 하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습니다.
현재 한국불교는 양극화 현상이 심각합니다. 재가 불자들의 보시행에도 양극화가 나타납니다.
몇몇 초대형 사찰들에서는 수백 만 원의 보시도 생색이 날 정도의 액수가 아니라 여기고
천도재에 수천 만원씩을 척척 내 놓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은 절에서는 적은 액수를
보시하는 신도도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재벌들에게는 호된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그에
못지않은 대형 사찰의 권승들에겐 매우 관대합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실수’ 혹은 ‘외부인의 악의적 모함’으로
반격하며, 권승들을 옹호하는 상반된 잣대를 보여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행태는 ‘교주’를
무조건 감싸는 사이비 종교 신자들의 의식 수준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제 말이 지나쳐
보인다면, 재가는 물론이고 승가의 일원이라도 용기가 부족해서 이런 비판을 대놓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비판할 건 하고, 고쳐야 할 건 고쳐서 미래 불교를 새롭게 재건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 이 지면은 「십지품」의 보살 수행의 요체인 10바라밀의 내용을 직접 살피고 있는
자리입니다. 현재의 불교보다 미래의 불교를 더 걱정하기에, 여러분이나 나나 피해갈 수없는
문제들은 냉정하게 분석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드러낸 말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바라밀에 해당하기에 이참에 언급할 수밖에 없는 난사難事한 일을
공개하겠습니다.
이 책 첫 장의 불상 사진은 제가 30여 년을 소장하고 있던 불상입니다. 촌부 같은 미소와
절묘한 균형미가 제 어려움을 모두 녹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우연히 불상에 대한 감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불상 연구의 대가이신 모 교수를 모셔 매우 상세한 분석과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공식 비공식으로 네댓 번의 감정 기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대체적인 합일점은 ‘금동여래입상’으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 초기, 늦어도 서기 650년
전에 조성된 신라의 호신용 진품 금동불이라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신라의 불상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어 어느 누구도 진품에 대한 의심을 하는 전문가는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원효와 동시대에 조성된 1,400년이 지난 불상이라는 결론인데
보존상태가 이렇게 좋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어떤 감정인은 수십 년 만에 진품은
처음 본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
제 원願은 이 불상이 이젠 다른 소장자를 찾아 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오래 살기는
어려우니 죽기 전의 불사인 학술서 번역불사를 잘 회향하기 위한 진행비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죽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제가 창건한 용화사가 매매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차라리 절을 매각하지, 1,400년의
시간으로 내게 무한한 영감과 용기를 준 불상을 넘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불자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불사를 하면서도, 그간의 모멸감이 오죽했으면 권선을 하지 않고
불상을 매각하는 결단을 이렇게 마지막 원이라고 밝히겠습니까? 부디 희유稀有한 인연
간절히 원願합니다. 더 산만해지기 전에 「십지품」의 게송으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