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혁은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정희를 뚱한 눈으로 쳐다보며 묻는다. "너가 여긴 왠일이고?" "오빠 조금전에 조직회합하는거 내가 다 봤거든.....멋지던데? 암튼.... 내가 애인하나는 잘 골랐단말야....ㅋㅋㅋ" "누가 니 애인이란말이고?~~ 씰데없는 소리말고 어여 집에가 발딱고 자라 가스나야..... 그러잖아도 맴이 심란스럽구마는....." "허긴~~그러시겠지....졸지에 실업자가 되버렸으니....강수혁!! 따라와...." 정희는 수혁의 시큰둥한 반응에 아랑곳없이 앞장서서 인근의 커피숍으로 향하고 수혁은 그런 정희를 멍하니 지켜보다 아무말없이 정희를 뒤따른다.
"니 와 자꾸 촐랑촐랑 따라댕기노?...." "실업자된 수혁오빠 취직시켜줄려고 그런다 왜....." "까아분다~~너가 무신수로 날 취직시킨다 말이가?" "당분간 울 아빠좀 도와줘....울아빠 특허로 제작에 들어간 기계가 얼마전에 완성됐거든.... 그런데....울 아빠가 발명만 할줄알았지 세상물정을 모르시잖아..... 기계의 장점과 편리성을 널리 홍보를해야 뭐가되도 될텐데...뭘 어떻게해야하는지 그런걸 전혀 모르시니까 답답하신가봐~~그러니까 오빠가 울아빠좀 도와줘...응??" "술묵고 쌈질만 할줄아는 내라꼬 뭔 뾰족한수가 있겠나?" "아냐!! 수혁오빠는 할수있어....난 수혁오빠를 믿어!"
"그건 글코....그거하면 월급은 주는기가?" "월급은 기대하지않는게 좋을거야! 결과가 좋으면 받는거고...그렇잖으면 땡전한푼 없어" "닌 내가 바보로 보이나....그런 얼토당토않은 취직을 내가 뭣허러할끼고..." "오빠 바보아냐? 바보 맞잖아...죽을고비까지 치르며 오른 오야붕자리를 스스로 물러나는 바보... 그런 바보니까 내가 좋아하는거고....암튼 여러소리말고 내일부터 일해!! 알았어?" "이 가스나가~~깡패 때려쳤더니.... 인자 니가 깡패가 될라카나?" '그래~!! 깡패될련다 ....바보 강수혁을 사랑하는 깡패....왜...뜰버? 호호호홋~~!!" "치아라~!! 가스나야....낼부터 막노동일이라도 찾아나설란다." "강수혁!! 그랬단 봐~~주우거!!" 정희는 고양이방울만한 주먹을 수혁의 눈앞에 바짝 들이대며 위협을 가한다.
그런 정희의 위협이 먹혀들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막노동일이라도 찾아나서겠다던 수혁은 자신의 말과는 달리 며칠뒤에 정희의 부친 권씨와 함께 햇빛이 쨍쨍 내려쬐는 서울역 광장에 나가서 서있었다. 곁에는 커다란 자판기한대....그리고 자판기의 특성을 설명하는 카다로그를 가져다놓고 내려쬐는 한여름더위에 생수로 연신 목을 축여가며 서로 티격대고있었다. "선생님께서 설명하이소....내는 아직 기계특성을 잘 모른다 아입니꺼...." "허~참....어제 밤새도록 가르칠때 뭐 들었수?" "지 대가리가 돌대가린거는 세상천지가 다 압니더...." "암튼....수혁군이 말해...난 아직 여러사람앞에 나서본 경험이없어서...." "누구는예?....사실 지는 지금 쪽팔려 죽겠심더~제가 젤루 싫은기 쪽팔리는긴데....." "어쨌든 한다고했으니까 수혁군이 알아서 해...."
권씨가 제작한 자판기를 직접 홍보하기위해 서울역 광장에 나오긴했으나 막상 여러사람앞에서 설명을 하려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않아 서로에게 미루는중이었다. 마침내 버티다못한 수혁이 더듬더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어험~~어허험....여러분들~~여기좀 봐 주이소....이 자판기로 말씀드릴라카믄.... 컵라면이랑...김밥이랑...또...선생님....또 뭐라켓지예?" "어이구~~!! 속터져....자네 돌대가리 맞나보구만...." "그러게 지가 뭐라켔심꺼~~ 지 안할람니더....선생님 혼자 하이소...." 수혁이 삐쳐서 성큼성큼 걸어서 저만큼 달아나자 권씨가 당황스레 달려가 붙잡는다. "어허~~수혁군....그러지말고 이리와봐....돌대가리에다 속까지 좁으면 쓰나....!!" "뭐라꾸예??" 권씨와 수혁은 한낮의 뜨거운 햇볕아래서 이렇게 생쑈를 연출하고있었고 무슨일인가 싶은 호기심으로 주위에 모여들었던 얼마안되는 관객들은 두사람의 한심한 액션을 지켜보며 어이없다는듯 낄낄대고있었다. 왕년의 조폭오야붕 수혁과 세상물정모르는 발명가 권씨의 환상적인 결합이 빚어낸 웃지못할 촌극이 아닐수없었다.
그때 멀찌기서 권씨와 수혁의 한판 희극을 지켜보고있는 역전파 조직원들이있었다. 하필 그곳이 역전파의 나와바리였기에..... "야~~!!야~~!!저기 광장에 서서 쑈하는사람 수혁오야붕 아냐?" "어디?? 맞는거 같은데....맞아!! 틀림없는 수혁오야붕이야!!" "지금 길거리에서 뭐하시는거지? 길거리에서 물건파는 잡상인으로 나서신건가?" "그러게.....우리가 나서서 도와드려야하는거 아냐?" "수혁오야붕이 떠나면서 당부하셨잖아....길거리에서 만나도 아는척하지말라고... 수혁오야붕 성격 몰라서 그래? 한번 내뱉은 말은 칼같이 지킨다는거...." "그래도....왕년의 오야붕이 저런 일을 하실줄은....." "그러게말야.....참 알수없는 분이라니까...."
하야간....그날 뜨거운 땡볕과 관객들의 비웃음속에서 쪽을 있는대로 다 팔리면서 하루종일 헛탕을 친 수혁과 권씨는 맥이풀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권씨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조직을 떠나면서 짝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머물던 한강변 아파트까지 굳이 조직에 반납한 수혁이 권씨의 일을 거드는동안 권씨의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기로했기때문이었다. 두사람은 아파트 거실에서 볼이 퉁퉁 부어 또다시 티격태격 입씨름을 시작한다. "이래가지고 뭐가 되겠어예? 지는 오늘 쪽팔려 죽을뻔했심더~!!" "그러게 내가 갈쳐줄때 잘듣지않구서....사람들앞에서 입도 못떼고 더듬더듬....에휴~~!!"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상님은 안하시고 와 지만 탓합니꺼?...." "나는 발명가잖아...발명을 머리로 하지 입으로 하나?" "하여튼 낼은 선상님이 혼자 하이소....내는 막노동이나하러 나갈낍니더"
그때였다. 작은방에서 두사람간의 대화를 엿들은 정희가 거실로 뛰쳐나온것은... "야~~!! 강수혁....왕년에 오야붕했던 배짱과 깡다구는 다 어따 팽개쳤냐?.... 까아불지말고 낼 나가....남자가 그깟일 하루하고나서 힘들다고 슬그머니 발을빼? 주우글려구~~!!" "내는 힘든건 얼마든지 참을수있어도 쪽팔린건 몬참는다 아이가!!" "그러게 세상살이가 쉬운게 없는 법이라네....이 사람아....지금부터 세상살이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꾹소리말고 일해...한번만 더 구더덩거렸단 봐라~~!!" 참으로....대책없는 말광량이 정희에게 걸려도 오지게 걸린 수혁이 아닐수없었다. 막강한 조폭의 오야붕자리를 스스로 내던지고 거리로 나선 수혁의 인생 2라운드는 이렇듯 정희의 막가파식 짝사랑에 사로잡힌채 힘겨운 질곡의 고빗길을 넘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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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ㅡ고향길잘다녀 오세요 ^^
즐감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