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로마 14:21. 1세기 로마 회중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모세 율법이 폐지되면서 그들은 특정 음식을 먹지 말라는 규정들을 더는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가 7:19) 그 이후로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음식이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회중에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논쟁이 개개인과 회중 전체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칠 수 있는지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로마 14:19, 20) 또한 다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행동 방식을 기꺼이 바꾸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9:19-22) 우리도 개인의 기호와 관련된 문제에서 논쟁하는 일을 피함으로 다른 사람을 세워 주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파22.08」 22면 7항 |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로마 14:21. It is good neither to eat flesh, nor to drink wine, nor any thing whereby thy brother stumbleth, or is offended, or is made weak. Barnes' Notes on the Bible It is good - It is right; or it is better. This verse is an explanation or enlarged specification of the meaning of the former. To eat flesh - That is, such flesh as the "Jewish" convert regarded as unclean; Romans 14:2. Nor to drink wine - Wine was a common drink among the Jews, and usually esteemed lawful. But the Nazarites were not allowed to drink it Numbers 6:3, and the Rechabites Jeremiah 35 drank no wine, and it is possible that some of the early converts regarded it as unlawful for Christians to drink it. Wine was moreover used in libations in pagan worship, and perhaps the Jewish coverts might be scrupulous about its use from this cause. The caution here shows us what should be done "now" in regard to the use of wine. It may not be possible to prove that wine is absolutely unlawful, but still many friends of "temperance" regard it as such, and are grieved at its use. They esteem the habit of using it as tending to intemperance, and as encouraging those who cannot afford expensive liquors. Besides, the wines which are now used are different from those which were common among the ancients. That was the pure juice of the grape. That which is now in common use is mingled with alcohol, and with other intoxicating ingredients. Little or none of the wine which comes to this country is pure. And in this state of the case, does not the command of the apostle here require the friends of temperance to abstain even from the use of wine? Nor anything - Any article of food or drink, or any course of conduct. So valuable is peace, and so desirable is it not to offend a brother, that we should rather deny ourselves to any extent, than to be the occasion of offences and scandals in the church. Stumbleth - For the difference between this word and the word "offended," see the note at Romans 11:11. It means here that by eating, a Jewish convert might be led to eat also, contrary to his own conviction of what was right, and thus be led into sin. Or is made weak - That is, shaken, or rendered "less stable" in his opinion or conduct. By being led to imitate the Gentile convert, he would become less firm and established; he would violate his own conscience; his course would be attended with regrets and with doubts about its propriety, and thus he would be made "weak." In this verse we have an eminent instance of the charity of the apostle, and of his spirit of concession and kindness. If this were regarded by all Christians, it would save no small amount of strife, and heart-burnings, and contention. Let a man begin to act on the principle that peace is to be promoted, that other Christians are not to be offended, and what a change would it at once produce in the churches, and what an influence would it exert over the life! 반스의 성경 노트 좋다 - 옳다; 또는 더 좋다. 이 구절은 전자의 의미에 대한 설명 또는 확대된 설명입니다. 고기를 먹는 것 - 즉, “유대인” 개종자가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고기를 말합니다(로마서 14:2). 포도주를 마시지 않음 - 포도주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흔히 마시는 음료였으며 일반적으로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실인은 민수기 6:3에서 포도주를 마실 수 없었고, 레갑 사람 예레미야 35장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초기 개종자 중 일부는 기독교인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와인은 이교도 예배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러한 이유로 와인 사용에 대해 신중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사항은 포도주 사용과 관련하여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와인이 절대적으로 불법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많은 '절제'의 친구들은 와인을 그렇게 여기고 그 사용에 대해 슬퍼합니다. 그들은 와인을 사용하는 습관을 절제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값비싼 술을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게다가 현재 사용되는 와인은 고대인들이 흔히 마셨던 와인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포도의 순수한 주스였습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와인은 알코올과 다른 중독성 성분이 섞여 있습니다. 이 나라에 들어오는 포도주 중 순수한 포도주는 거의 또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의 명령은 절제의 친구들에게 포도주 사용조차 삼가라고 요구하지 않습니까? 어떤 것도 - 음식이나 음료 또는 어떤 행동도 금지합니다. 화평은 매우 귀중하며 형제를 불쾌하게 하지 않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므로, 교회에서 범죄와 스캔들의 원인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부인해야 합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 이 단어와 “불쾌하게 하다”라는 단어의 차이점은 로마서 11:11의 주석을 참조하세요. 여기서 이 단어는 유대인 개종자가 음식을 먹음으로써 옳다는 자신의 확신에 반하는 음식을 먹게 되어 죄에 빠지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는 약해지다 - 즉, 그의 의견이나 행동이 흔들리거나 “덜 안정적”이 됩니다. 이방인 개종자를 본받도록 이끌림으로써 그는 덜 확고하고 확고해지며, 자신의 양심을 어기게 되고, 후회와 그 타당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고, 따라서 “약하게” 될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사도의 자선과 양보와 친절의 정신에 대한 저명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점을 고려한다면 분쟁과 가슴앓이, 다툼이 적지 않게 줄어들 것입니다. 평화를 증진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교회에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키고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까요! |
사도는 우리가 무엇이나 할 자유가 있으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인이라 말합니다. 앞의 '자유'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말하며, 후자의 '자유인'은 감정적 경향에서 벗어난 이성적이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를 얻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유란 결코 감정의 경향대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감정은 수동적입니다. 즉, 수동적이라는 것은 정확한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 행동하게 됩니다. 정확한 지식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끌려 다니는 것이며 그것을 수동적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경우에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성에 의한 인식이 아닐 때, 그 감정의 원인과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성에 의한 결정이나 행동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먹을 권리가 있다고 해서 여전히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은 사랑의 행동이 아닐 것입니다. 음식에 관한 모세의 율법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확실히 이해할 때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경과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그들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잘못된 관습을 급격하게 의도적으로 개혁하려 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이해하여 고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사도는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옳은 것을 사랑하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식문화가 옳지 않다는 인식이 서게 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더는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완전한 율법'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그 '완전한 율법'이란, 성경의 언어로 말하자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며, 사상가들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성에 따르는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마음에 옳고, 선하고, 유익을 주는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한 기록ㅡ이를테면 성서나 세상의 법ㅡ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 곧 양심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양심은 성경의 기록이나 우리가 속한 사회의 법을 존중하여 참고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이나, 법들은 어떤 의미에서 '죽은 문자'들입니다. 그것이 문자적 기록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진리'를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는 이성에 의한 인식과 하느님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그것이 '완전한 율법'인 것입니다. |
질문:
1. 그리스도인 자기의 권리를 양보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자유를 주는 '완전한 율법'이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