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정의 (눅 6:9-15)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시간에는 “기도의 정의”라는 제목입니다. 기도의 정의가 무엇일까요? 마7:7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하신 것은 기도의 약속이지 기도의 정의는 아닙니다. 기도란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도 포함되지만 그 이상입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그 정의가 오늘 본문인 마6:9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도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1.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9절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부름 속에 하나님을 향한 애정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1:9에도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했고, 요일1:3절에서도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고 사귀시는 방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캐나다 리전트칼리지의 명예교수인 제임스 휴스턴은 “기도란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말했습니다. 휴스턴 교수는 자신이 신학교교수이면서도 기도를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초대교회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인 클레멘트가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유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읽고 그 이후부터 그는 하나님께 논리적이고 말 잘하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그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도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기도와는 아주 다른 부분입니다. 이방인의 기도는 무엇을 구하는 것 그 이상은 없습니다. 목적을 성취하면 더 이상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사랑하는 연인처럼 혹은 아버지와 자녀들처럼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아름다운 만남이고 행복한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항상 만남과 만남의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가 그랬습니다. 마6:9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렇게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이 땅을 떠나시기 전 요 17장의 예수님의 기도에도 시종일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와의 깊은 관계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간입니다.
2.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잠15:8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 구절로 볼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기쁨이요,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시는 것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잘 할 수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요 공경이요 효성인 줄 알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기도란 그 자체가 작은 예배입니다. 좋으신 아버지를 믿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믿음이요 영광이요 감사요 응답입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에게 가 봐라. 맛있는 것 주실 것이다.” 아이가 할머니에게 갔습니다. 맛있는 것만 주실까요? 육신의 할머니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다 주시는데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눅11:11-13에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이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빌4:6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만 관철시키려고 하지 말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하고 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기껏 구하는 것이 아버지 나라의 품꾼이지만 아버지께서는 영광스런 아들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좋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게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기도 그 자체가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어린이 동요와 같이 하나님께 구하러 왔다가 감사 감사만 실컷 돌리고 돌아가도 그 기도가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기도요 응답 받는 기도입니다.
3. 기도는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마26:39에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기도는 내 뜻을 위해서 비는 것이지만 우리의 기도는 다릅니다. 기도의 과정에서 내 뜻이 나타나지만 결론은 언제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해야 합니다. 사55:9에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 뜻이 가장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진짜 기도란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앞두시고 40일 금식하시면서,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기도란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내 뜻은 사라지고 아버지의 뜻을 구합니다. 그래서 불가능할 것만 같을지라도 기도하면 죽으면 죽으리라 아골 골짝 빈들에라도 복음 들고 사랑 들고 갈 수 있게 됩니다. 즉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도입니다. 나아가 기도하면 한없이 강해집니다. 환난 날이 온다 해도 기도하는 사람은 이깁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집니다.
불평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던 한 간호사가 그 불행을 극복한 기도가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 기도법’입니다. 다섯 손가락을 보면서 차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먼저 엄지는 가장 가까운 손가락입니다. 그러므로 가족과 친구, 연인,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검지는 상대방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문제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나 믿음 없는 사람이나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중지는 가장 긴 손가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크게 생각해야 할 위정자들과 영적 지도자, 교역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약지는 손가락 중에서 힘이 가장 약한 손가락입니다. 그걸 생각하면서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새끼손가락을 보며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셨다는 감사와 아울러 언제나 겸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난 모세의 얼굴이 밝게 빛난 것처럼 기도하는 우리 자신들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믿고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말씀을 깨달아 순종하는 가장 복된 기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