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한국 소비자운동의 代母 '소시모' 회장
김재옥
"소비자운동에 투신한 지 30년… 악덕 기업들은 날 저승사자라 하죠"
김윤덕/조선일보 : 2012.08.25.
미국산 발암 자몽으로 유명세 무역보복 협박하는 美 맞서 전국적으로 불매운동 전개 사태 심각하자 美부통령 방한 "위해 농약 안 뿌리겠다" 약속
한 건의 오판·타협도 없었다 항상 과학적 근거로 맞서고 광고 등 어떤 협찬도 거절 "죽고 싶나?" 협박 전화도
약관규제법은 일본에 수출 '소비자에 터무니없이 불리한 약관 조항은 무효' 법안 제정 日, 법대 교수들이 번역해 가
가끔은 박원순이 되고싶다? 콜라서 발암색소 검출됐음에도 식약청은 "문제없다" 되풀이 국민 편인지, 업자 편인지…이럴 땐 정말 시장 출마하고파
기업의 과장 광고는 상술의 일종이지 소비자를 우롱한 일이 아니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두 배로 올려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유해 색소를 넣은 화학 간장, 농약에 오염된 수입 과일이 우리 몸에 얼마나 나쁜지 알 도리가 없었다.
1983년 '소비자시민모임', 일명 '소시모'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처럼 소비자 문제에 눈을 떴다. 과장 광고는 소비자를 우롱한 사기죄였고, 임대료를 멋대로 올리는 집주인을 세입자는 당당히 고발할 수 있게 됐으며, 유해 물질을 넣어 제조한 식품들은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대한민국 소비자운동사의 산증인인 소비자시민모임이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최전선에 김재옥(66) 회장이 있다. 한 번 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별명이 '물귀신'이다. 악덕 기업엔 저승사자로 통한다. "타협이란 게 있을 수 없지요. 소비자, 아니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련된 일인걸요."
21일 서울 정동에 있는 소시모 사무실에서 김재옥 회장을 만났다. 커다란 종이에 빼곡히 그린 표를 들여다보고 있던 그는 "깨알 같은 글씨가 싫어지는 나이"라며 투덜댔다. 쌀, 쇠고기, 자동차, 스마트폰 등 20개국 50개 제품 가격을 비교한 자료라고 했다. "똑같은 호주산 쇠고기, 노르웨이산 유모차라도 우리나라에서 유독 비싸게 팔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인터뷰 중에 '특종'을 얻었다. 고가에 판매되는 외국산 생수들의 품질 불량이다. 생수에 가득 들었다는 미네랄 성분이 표시량의 절반도 안 될뿐더러, 대장균까지 검출됐단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 소비자시민모임이 공개한다.
◇미국산 자몽에 한판승
―소시모의 역사가 소비자운동가 김재옥의 역사다.
"늘 와글와글 시끄럽게 사는 것도 나이 드니 힘들다(웃음). 기업이 최우선이고 '소비자'란 말은 생소하기만 했던 30년 전에 이 일을 시작했다는 게 대견할 뿐이다. 소비자단체라고 하면 막무가내로 떼나 쓰는 압력단체로 여기던 편견을 우리가 씻어냈다. 과학적인 조사, 객관적인 근거, 전문성을 무기로 거대 기업들과 싸웠다. 그것이 자랑스럽다."
―20주년에 인터뷰한 걸 보니 20년간 소시모가 발표한 보도 자료가 1600쪽이 넘는다고 했더라. 30주년엔 얼마나 늘었을까.
"20년을 다 합친 것의 두 배는 될 거다. 그만큼 소비자운동의 범위가 넓어졌다. 과거엔 제품의 안전성이 주된 표적이었다면, 최근엔 서비스, 인터넷 분야까지 확대됐다.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 금융 서비스와 관련된 신종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G20 정상회담에서도 국제 소비자단체들이 앞장서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정책을 각 나라가 내놓도록 압력을 넣었다."
―30년 소시모 활동 중 가장 뿌듯한 것이 있다면.
"소시모 만들자마자 국제소비자기구(CI)에 가입했다. 거기서 유엔이 발간한 책자를 하나 얻었는데, 각국에서 금지하거나 엄격히 규제하는 약품과 농약 원료, 화학 성분 리스트가 나와 있더라. 그중 우리나라 시장에 들어와 있는 원료들을 찾아냈더니 50가지나 됐다. 25개는 발암성과 기형 유발 때문에 금지한 원료였고, 25개는 규제하거나 승인하지 않은 원료인데 그것들이 류머티즘약이나 위장약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리스트를 만들어 정부에 보냈고, 바로 해당 원료의 사용이 금지 또는 규제됐다."
―80년대 중반 미국산 자몽 사건도 떠들썩했다.
"미국산 자몽에서 발암물질 알라가 검출됐다.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자 미국 대사관이 농림부에 압력을 넣어 사실무근으로 발표하라고 했다더라. 우리한테도 전화해 조사한 자료를 보내라며 고자세로 나오길래 못 준다고 했지. 수퍼301조에 의한 무역 보복 조치를 운운하며 우리 정부를 협박하는 미국이 괘씸해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언론들이 우리를 지지해준 덕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미국 부통령까지 와서 '수확 후 위해 농약을 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풀었다."
―농약 잔류 기준도 그 사건 이후 만들어진 것이라고 들었다.
"그때만 해도 수입 과일에 대한 농약 잔류 기준이 없었다. 미국이 한국 배를 수입할 경우엔 실무자가 직접 우리나라에 와서 땅의 질을 살피고 어떤 농약을 치는지 점검한다. 우리는 사전 조사는 물론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수입 업자들이 마구잡이로 들여왔다. 자몽 사건 이후 수입 과일의 농약 잔류 문제가 불거지자 국회의원들이 복지부와 농림부를 다그쳤고, 그 덕에 농약 잔류 기준이 만들어졌다."
―'약관 규제법' 제정도 소시모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던데.
"예전에는 기차표를 샀다가 갑작스레 일이 생겨 못 타게 되면 1원도 돌려받지 못했다. 은행이나 보험사와 계약을 맺을 때도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불리 조항이 많았다. 6개월에 걸쳐 각국 약관을 조사해 약관규제법 초안을 만들었다. 소비자에게 터무니없이 불리한 조항은 무효라는 게 골자다. 경제기획원에 법안을 보냈고, 그게 다시 국회로 넘어가 1986년 통과됐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법을 소비자단체가 만들어 국회를 통과하게 한 최초의 법이다. 일본 법대 교수들이 와서 우리의 약관규제법을 번역해 갔으니, 일본에 '수출'한 법이기도 하다(웃음)."
◇한 건도 '오판'이 없었다
―가장 죄질이 나빴다고 여기는 제품이 있는지.
"화학 조미료다. 국제회의에 갔다가 중국 음식에 쓰이는 화학 조미료 문제의 심각성을 들었다. 우리는 화학 조미료를 얼마나 먹고 있나 조사해봤더니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하루 섭취량보다 6배 이상을 섭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제조 회사들은 소비자가 조미료를 더 많이 사용하게끔 용기 구멍을 더 크게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포상할 정도였다. 설렁탕집에 가보니 이만한 국자에 조미료를 가득 담아 솥에다 쏟아붓더라. 우리가 계량기를 직접 들고 다니면서 집마다 화학 조미료를 얼마나 쓰는지도 조사했다. 그러자 정보부에서 조사를 나왔다. 식품 기업들이 소시모 때문에 수출에 지장이 있다며 청와대에 청원을 했다는 거다. 조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에도 식품 회사 사람들이 몰려와 난장판을 벌였다."
―테러 위협도 받으셨겠다.
"새벽 한두 시에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온 가족이 다 죽고 싶어?' 하면서 협박하더라. 한 건씩 발표하고 나면 해당 업체 직원들의 전화 테러로 사무실이 몸살을 앓았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
―늘 소시모가 옳았나? 억울한 기업은 없었을까.
"30년간 한 건도 오판이 없었다. 우리는 늘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싸웠다. 보도 자료를 내기 직전까지 변호사들이 참여해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리뷰한다."
―대기업들은 자체 연구소를 가지고 있을 텐데 어떻게 일개 소비자단체에 발목을 잡히는 걸까.
"허술한 기업이 수두룩하다. 자사 제품의 품질 테스트를 1년에 한 번도 겨우 한다. 정부 잘못도 크다. 테스트 비용 많이 든다며 기업들이 징징대니 눈감아준다. 판매 수익에 비하면 테스트 비용은 1%도 안 될 만큼 미미한데. 최근 우리가 발표한 것 중에 자외선 차단제가 있었다. 5만원짜리나 8000원짜리나 품질에 별 차이가 없다는 내용인데, 특히 몇몇 해외 브랜드는 품질 불량이기까지 했다. 수입 업자를 불러서 이유를 알아보니 2003년 인체 테스트 결과를 식약청에 낸 뒤 지금까지 한 번도 품질 테스트를 한 적이 없다더라. 그래도 수입이 무사통과였다. 그뿐인가. FTA 이후 수입 과일이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안전성 점검에 소홀하다. 농약 잔류 검사를 정부가 해야지 왜 가난한 소비자단체가 해야 하나. 소비자운동이란 게 없을 때 한국이 세계 시장의 쓰레기통이라는 말이 있었다. 요즘 다시 그런 분위기로 가는 느낌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기업들의 회유, 한 번만 봐달라는 요청도 많이 들어오겠다.
"대우자동차 누비라 리콜 사건이 있었다. CEO가 찾아와 리콜할 테니 제발 공개만 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더라. 삼성 냉장고 리콜 때도 그랬다. 모두 거절했다. 리콜 시행이 기업 이미지를 더 좋게 한다고 설득했다. 어떤 시민단체는 기업 협찬으로 빌딩도 지었다지만, 우리는 기업들과 일절 관계를 맺지 않는다. 어떤 광고도 받지 않는다."
―워킹화, 수입 유모차 등 일개 소비재부터 아파트 분양가, 유류세에 이르기까지 조사 대상이 매우 광범위하다.
"소시모에 소속된 11개 위원회의 힘이다. 식품의약품위원회, 전자상거래위원회, 아파트품질평가위원회, 에너지효율위원회, 석유시장감시단까지 각계 전문가들이 포진한 위원회들이 저마다 시장조사를 하고 국제 동향을 분석하면서 이슈가 되는 아이템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모두 무상 봉사다. 매일 아침 이메일로 날아오는 국제 소비자단체들의 정보도 큰 도움이 된다. 30여 단체가 공동으로 해마다 특정 제품을 선정해 테스트도 한다. 수입 유모차의 부당한 가격도 그렇게 해서 알아냈다."
―콜라에 든 유해 색소 문제로 요즘 식약청과 공방 중이다.
"발암성 물질인 4MI가 한국에서 유통되는 콜라에서 기준치를 30배 넘게 나왔는데도 식약청에선 문제없다 하니 답답할 뿐이다. 업체들이 나서야 일이 빨리 해결될 수 있다는 답변만 한다. 대체 식약청은 국민 편인가, 업자 편인가. 이럴 때마다 나도 박원순씨처럼 시장(市長)이 돼야겠다 하는 유혹에 빠진다. 하하!"
◇저승사자? 작은 등불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김재옥 회장이 소비자운동에 뛰어든 건 은사인 이효재 교수 덕분이라고 했다. 1969년 서울YWCA에 들어간 게 시작이었다. 초창기 그가 접한 소비자 문제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생활용품으로 인한 피해들이었다. 실험 시설이 열악했던 당시, 국산 화장품에 미백 효과를 내는 수은이 피부에 유해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20여개 화장품의 실험 대상이 되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1983년 '소시모'를 결성한 건, 소비자운동이 단순히 고발이 아니라 경제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는 깨달음에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전문가들도 참여시켜 식품위생법, 공산품 관련법, 의약품 법 등에 대해 공부해나갔지요. 어느 누구도 챙겨주지 않았던 소비자 권익 문제를 우리가 시작한 겁니다."
―소비자운동가는 집에서 어떤 걸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이것저것 따지면 먹을 게 별로 없지 않은가.
"많이 안다는 게 피곤하긴 하다(웃음). 가능하면 가공식품은 안 먹고, 전통 식품, C0₂ 덜 발생시키는 신토불이 식품, 친환경 제품 위주로 구매한다. 당장 돈은 더 들지만 나중에 들 치료비를 따지면 훨씬 싼 셈이다."
―고가 제품에 대한 맹신 등 소비자의 잘못도 단호히 지적하시더라.
"고가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정부가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공정한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가 없으니 싼 게 비지떡이란 생각에 비싼 걸 선택한다. 미국·영국·네덜란드·벨기에·호주처럼 소비자들이 정부가 발간한 제품 정보지를 보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소시모의 지적은 제품 질을 높이는 중대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당연하다. 없는 살림에 우리 돈 들여 문제를 찾아줬으니 고마워해야지(웃음). 올해로 16년째 소시모가 주관하는 '에너지 위너상'이 있는데 국무총리실에서도 후원할 만큼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상이 되자 기업들이 기를 쓰고 수상 신청을 해온다. 어느 기업 간부는 소시모가 에너지 효율 경쟁을 붙여준 바람에 우리 제품이 세계적으로도 에너지 효율이 제일 좋은 제품으로 선정됐다고 고마워하더라."
―한명숙·지은희·장하진 등 총리, 장관을 여럿 배출한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이다.
"사회학의 힘, 여성의 힘이다. 우리가 첫길을 개척했다면 후배들은 더 좋은 조건에서 더 큰 뜻을 이뤘으면 좋겠다."
―박원순씨가 서울 시장이 됐다. NGO 활동가들의 정계 진출, 어떻게 보시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건 바람직하다. 문제는 그렇게 들어간 사람들이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하고 소속 정당의 정치 논리에 휩쓸려 다닌다는 거다. 너무 많이 가는 것도 문제다. 다 국회로 가면 누가 입바른 소리를 하나. 여성 단체의 목소리가 죽은 것도 그 때문이다. 대표 선수들이 죄다 국회로 들어갔으니 현장에 인재가 없다."
―궂은 일이다. 고위 공무원(김 회장의 남편은 특허청 차장을 지낸 이원씨다)의 아내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글쎄 말이다. 소비자운동 대신 부동산 투자를 했으면 강남에 집이 몇 채일 텐데, 하하! 사회학을 전공한 죄다. 힘든 길이었지만 작은 등불 같은 소시모의 노력이 정부 정책을 바꾸고, 법을 만들고, 기업을 정신 차리게 했다. 돈은 못 벌었지만 소시모를 통해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