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 숨어있던 음식이야기
아버지의 하숙집 밥상
이기숙
아버지는 재관사였다 그리고 용접을 하셨다 용접의 솜씨가 얼마나 좋으신지 기름 탱크는 꼭 아버지 손으로 마무리를 하셨다 철판으로 보일러를 만들고 물탱크도 만들고 철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만들었다 ( 재관만 하청받아 하신다)
내가 여중 3학년 말 쯤에 아버지는 전주 예수병원(예수병원은 독일의 카돌릭 교우들이 보내주는 성금이 대부분 이였다 관리 감독관은 독일분이셨다) 공사를 시작하셨다 한 오년 정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여름 방학 때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엄마에게 졸라 아버지를 뵈러갔다
(내가 아버지를 너무 닮았는지 하숙집 아주머니가 내가 대문에 들어서니“아이구 아저씨! 아저씨 딸 왔어요! 했다
허긴 내 우리 아버지를 많이 닮았지 음식, 색깔, 스타일 등
외국 사람이 봐도 닮았다고 했으니 병원 현장에 한 번 갔더니 독일감독관이 이선생 딸이냐고 물었다 그 감독관 이름이 노보로 스키였다 우리는 그냥 노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마침 점심을 드시러 온 아버지가 너무 반가워 하셨다
아주머니는 큰애기 아직 점심 못 먹었지 하며 아버지 밥상에 내 밥 한 그릇을 놓아주셨다,
처음으로 하숙집 밥상을 받은 나는 깜짝 놀랐다
가정집 밥상이 이렇게나 화려하다니 그리고 반찬 가지 수에 놀랐다.
물김치에는 여름 붉은 무꽃이 동동 떠 있었고 콩나물은 하얗게 가지각색의 고명이 올라가서 너무나 예뻤다 생선찌개도 찜처럼 고명을 얹었고 오이소박이에 겉절이 무엇 하나 손이가지 안은 것이 없었다. 여기 경상도에서 쓰는 그런 고춧가루가 아니었다.
하숙집 밥은 너무나 맛이 있었다.
나도 나중에 내살림을 하고부터는 반찬에 올리는 고명을 좀 중요시했다
다음날은 간주라 해서 월급을 보름 만에 주었다
간주를 주고 나면 하루를 쉰다.
내가 간 날 다음날이 쉬는 날이라 아버지와 전주 시내 구경을 나갔다
이성계가 전쟁에서 이겨 지었다는 오목대와 한벽루등 구경을하고
점심에는 비빔밥을 사주셨다 비빔밥에도 예쁘게 올려진 고명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오모가리라는 매운탕을 사주셨는데 나는 민물에 나는 것은 먹지 않는다 그래도 아버지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꼭 한번 먹어 보라하셨다.
다음날 하숙집 아주머니가 반찬을 하셨다 마른 고추를 물에 불려 커다란 절구에 밥 한술과 고추와 마늘을 넣고 공이로 두룩두룩 갈아서 겉절이도하고 김치도 담았다 그러니 경상도는 고춧가루를 쓰고 전주는 고춧물을 쓰는 느낌 이였다
난 한 일주일을 맛있는 밥과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집으로 오느 길에 예쁜 원피스와 양산도 하나 선물 받았다 협립양산 3단짜리로
나 혼자 생각했다 우리 엄마도 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이런 기분이였을꺼야 그러니 동생의 운동회 때도 그렇게 늦게 왔지
아버지의 입맛은 더욱 미적 이였고 엄마는 아버지와 오빠의 부제로 엄마의 요리솜씨는 날로 퇴화해갔다
결혼 을하고 명절이면 아버지는 나를 제일먼저 부엌으로 보내 신다
“원정이 애미야 부엌에 좀 가봐라 황해도 여자, 서울여자. 전라도여자가 부엌에 들어가더니 이상한 것만 만들어온다” 하신다.
엄마가 황해도 손위 올케가 서울토박이 손아래 올케가 전라도 광양
아버지는 돼지고기 수육에 새콤달콤한 파체를 얹어서 따끈한 정종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파 채는 파를 갈라서 돌돌 말아 채를 썰어서 찬 얼음물에 담가 아린맛과 냄새를 빼서 무쳐야 한다
추석 수육은 야채를 곁들여 겨자 무침을 해도 아주 맛나다
우리 시동생은 형수 수육이 일등이라고 그래서 제사에는 수육을 넉넉히 한다 우리 시동생 싸줄라고
첫댓글 황해도 서울 전라도
모두 경상도 음식보다
훨씬 고급진데요?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은
음식맛을 잘내야지
여자답다고 한답니다
아이고 학창시절 아부지한테 가셔서 호강을하셨구만요
네~~저도 여기에 살지만 경상도 음식이
짜더라 맛띠기가 없습니다
전라도 김치가 정말 맛납니다
울 옆집에 살던 사람이
전라도식 김치를 담는데
늘 마른 고추를 불려서 밥넣고 갈아서 담으면
정말 맛납니다
재미지게 읽고갑니다
어느 지역음식이라도 하시는 사람에 손 맛에 따라 다르지요
아직 황해도 김치를 못 드셔 보셨죠
겨울김치하면 황해도지요
추운지방이라 짜지도 않고 젓갈도 쓰지않고 고춧물도 무물로만 버무리지요
여름김치는 저도 전라도 식으로 자주 담습니다
우리아버지는 황해도 봉산사람입니다
@섬백리향(성주) ㅎㅎ
맞습니다 맞고요
전 경상도 할매라
음식도 잼뱅이라
딴 거도 다 몬합니다
전 청소 빨래는 잘 하는디요 ㅎㅎㅎ
옛일을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고 계시는 섬백리향님이 놀랍습니다.
어린 마음에 문화적 충격이 아주 컸었나 봅니다. ^^
황해도, 전라도, 서울 여자들의 요리잔치 ㅎㅎㅎ
전국의 요리를 섭렵하셨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손으로 하는일에 관심과 소질이 있는것 같습니다
수놓기 뜨게질 요리 등 허나 청소니 빨래니 ㅋㅋ 싫어요
살아온 나날
하나 하나가
추억이 되고
글이 되어
저희들에게 생각하고
돌아보게 하는 선물을
주시네요.
맛난 음식은
함께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탄생되는건
맞습니다.
보기 좋고,먹기 좋은 음식 오늘도
한번 만들어 볼까요?
아울러
부지런한 삶도
버무리며 시작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맛난음식이라도 좋은사람과 먹어야
행복하지요
울 영감님은 식당에서 밥나오는 시간을 못 참습니다
그러나 몇년전 우리 바람재 번개팅을 대전에서 할 때
좋은인연들과 밥을 먹은것을 기억하더군요 좋았다고
재밋게 읽다가 툭 끊어진 느낌!
더 써 주시지.
다음 편 기대합니다.
솜씨 좋으신 섬백리향님 근처에 살면 바느질은 꼭 배우고 싶은데~~ ㅎㅎㅎ
여고에 퀼트 수업을 갔더니 매듭을 못짓는 학생도 있구요
복지관에 젊은 엄마들에게 자수 수업을 갔더니 완성해 오는사람이 드물었어요
ㅋㅋ 요즘누가 집에서하나요 다 사지 이런말 자주 듣습니다
장면장면이 눈에 선히 보이고 음식맛도 느껴집니다.
경상도 요리는 짜고 맵지요.
산골이 많은 경상도이라서 먹거리가 많이 나지 않았다고 하대요.
전라도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키면 주요리 외에도 부요리가 아주
맛깔스럽게 한상 가득 나와서 즐겁습니다.
말씨도 참으로 차지게 정감이 있고요,
볼거리도 많아서 좋고요,
남북통일에 앞서 동서통일이 먼저라던 달희님 글이 생각납니다.
결국은 지리적 조건에 따른 기질이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요리, 참으로 고급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삼시세끼 장만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래도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친지와 나누어 먹는 일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오늘 성주 성밖숲에서 한 달 동안 "와 숲이다 "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무더위숨터도 ㅇㅆ고 책도 빌려주고 맥문동이 피기시작해서 사진도 찍고
저녁이면 영화도 합니다
오늘 여협에서 차봉사하고 왔습니다
참외 쥬스도 만들었지요
섬백리향 님의 눈썰미는 아주 탁월합니다.
고등학생, 요리에 아무생각이 없었을 시기인데도 음식에 올라오는 고명을 기억하고
김치 담는 과정을 세세히 기억한다는건 정말 대단하십니다.
꿈같은 일주일이셨겠어요.
황홀한 밥상에 좋아하는 아빠 독차지,
선물까지 받고요. 얼마나 좋으셨을까~~~~^^**
울엄마는 경상도 여자지만 음식솜씨가 워낙 좋아서
서울 사람, 전라도 사람들 입맛도 다 잡으셨지요.
전 울엄마 김치가 젤 맛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네요.^^*
내 친구 충청도 99칸 대가댁에서 태어나 결혼하기 전 떡만드는것 빼고는 온갖 요리를 다 배워왔는데
결론은 남편이 인스턴트 음식을 제일 좋아라 한다는 이 비극,
덕분에 우리들 만나면 멋진 한 상 차려주곤 했는데
남편의 간편식덕분에 음식을 잘 안하다보니
이젠 그것마저도 안하게 된다네요.
어릴 때 먹고 큰 것이 제일이지만
제 입맛에는 엄마 김치 말고는 별루였어요
아버지는 비린 음식을 안드셔서 멸치니 이런 젖갈을 않먹었지요
근데 우리 영감은 울릉도가 고향이라 많이 애먹었습니다
우린 충청도 내륙지방이라 토속적인 음식외에 이렇다할 음식이 없는것 같아요
시어머님은 전라도분이셨는데 살림에 취미가 없는분이라 새댁인 저에게 맡겨놓으시고 몰라라 하셨지요
그래서 걍 내맘대로 뚝딱 만들어 먹어요 ㅎ
사실 그냥 삼시새끼먹는 밥이야
다 비슷하죠 양념이 조금씩 다를 뿐이죠
그리고 자기 입맛이라는 것이 있어서
요즘은 방송이나 원체 먹는것에 치우치니
각 고장들의 음식이 경계가 무너지는 것같습니다
하숙집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아주 남달랐던가 봅니다.
어떻게 이런 걸 다 기억하시나요?
저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모두 잊어버려서 속이 상하답니다.
내 거기 하숙이 좀 고급졌나봅니다
주로 교수님과 의사샘들 이였어요
우리아버지가 대리고 다니는 일 꾼들은
다른 집에서 하숙이나 자취를 했지요
정말 음식들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저는 은행도 그 때 처음 먹어봤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참 좋은가 봅니다
제가 엄마나 아버지께 기억나는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시곤 하셨지요 아주어릴 땐데 기억이 나느냐구요
맛깔스런 음식을 대하셨군요.
몇해전 전주에 가서 한상차림을 먹었어요.
보기만해도 너무 이뻐서 흐트리기 싫더라구요.
급 전주 여행이 땡깁니다. ㅎㅎ
오-- 비단이 오랜만
꼬까 비단이들도 잘지네지요
저도 전주하면 먹었던 음식들이 더 생각이 납니다
@섬백리향(성주) 요즘 고놈들 재롱 보는 재미로..
4명이 떠들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효도 한답시고 주말마다 와요. ㅎㅎㅎ
참말 탁월한 기억력이시네요. 아주 구체적인 묘사가 압권입니다.
이런 글 쓰게 하시려고 조상신이 감응하사 어릴 때 힘든 삶을 하게 하신 듯...
재밌어요.ㅎㅎㅎ
음식이 목구멍으로 막 넘어가는 거 같습니다.
샘 아무레도 제가 먹는데 엄청 신경을 쓰고 사는가 봅니다
기억속에 처음으로 가 본 중국집에서 먹던 탕수육 잊지 못할 맛이거던요
정말 추억이, 그것도 어린 날 유년기의 추억이 별로 없는 사람은 글쟁이가 될 수 없지요.
섬백리향님의 추억 속 음식 이야기,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 부럽습니다요.
그래서 아버지 보다는 엄마랑 덜 친한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는 보통 엄마들 처럼 한 없이 주는 사람이 아니였지요
@섬백리향(성주) 그런 엄마에 대한 이야기..
섬백리향님과 마주 앉으면 할 말이 많지만 이제 받은 거 좋은 거만 기억하려고 합니다. ^^
@가을하늘 오늘 자서전 쓰기 수업하고 왔습니다
1:1 수업인데 남자 어르신이라 첫 수업은 너무 힘들었지만
오늘은 좀 났네요
이 어르신의 기억도 아버지에게 꾸중 듣던 기억만 난답니다
지금도 아버지 꿈을 꾸면 꾸중을 듣는 꿈을 꾼다네요
좋은 것만 기억 하고 싶다고 되는게 아닌가 봅니다
@섬백리향(성주) 애고...참.
저도 한동안은 누군가 엄마 이야기를 하면 안 좋았던 얘기를 막 하고 있는 거예요.
이제 그거 안 하겠다는...ㅎ
아빠를 독차지하고 신기한 음식과 여행.
선물까지 한아름. 그 행복 최고였겠죠.
저도 막내라고 아버지께서 엄청 사랑해 주셨는데.
18살 많은 큰언니집 놀러 가서, 큰언니의 시아버지
붓글씨 멋있다고 한장 써 달라고 해서 자랑했지요.
나중에 보니 우리아버지 글씨가 더 명필인데
몰라보고 까불어서 아버지께서 조금 서운해 하신듯.
가끔 생각하면 죄송한 생각이 들어요.
다른 사람들은 엄마를 그리워 하지만
저는 아버지에요
아버지는 제가 힘들거나 할 때는 안쓰러운 표정에서
날 사랑하는 표가 나지요
우리 형편에 오빠에게 투자를 많이 한 것을 늘 미안해 하지요
반면 엄마는 나에게 결혼을 혼자 힘으로 하고 생활비를 보테도
수고 했다는 말 한마디를 안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