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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19. 04. 06(토)
□ 곳 :「양고살재」~「벽오봉」~활공장[억새봉]~「고창고개」~「방장산」~「봉수대」~「쓰리봉」~「장성갈재」
□ 벚꽃산악회
□ 참여 : 모두 23명(?) - 앵강, 한길
□ 날씨 : 햇볕+(미세 먼지 아주 적음)
□ 길 : 흙길, 일부 돌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19. 04. 06(토) 10:14~15:07(4시간 53분, 쉰 시간 포함)
□ 일러두기
1. 홀로이름씨[홀이름씨, 고유명사]는 되도록「」안에 넣었다.
2. ( ) 표시는 괄호 밖 말이나 괄호 안 말이 같음을 나타냄
가. 보기 1) 산등성(이)⇒‘산등성’이나 ‘산등성이’는 같은 말임을 나타냄.
※ 단, ① 길 푯말( )을 나타낼 때는 ( )안은 방향 표시와 어느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의 거리를 나타내고,
② 산 이름 뒤에 ( )는 산 높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위 보기 1) 경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냄.
3. [ ] 표시는 [ ] 앞에 있는 말은 쉬운 말, 또는 흔히 쓰는 말이 경우가 많다. [ ] 안에 있는 말은 같은 뜻을 가진 또 다른 토박이말이거나 드물게 쓰는 말, 한자말, 어려운 말. 또는 들온말[외래어]인 경우도 있다.
※ 보기 1) : 산길[임도(林道)]→쉬운 말로 ‘산길’, 한자 말로는 ‘임도(林道)’를 뜻하는 말로, ‘임도(林道)’라는 말은 행정관청에서 더러 쓰는 말이다.
4. 나온 데[출처]
○ 「한국 400산행기 등산길 안내」 김형수 지음, 깊은솔 펴냄⇒‘김형수’ 로 적음
○ 「진혁진의 백두대간 산행정보」⇒‘「진혁진」’으로 적음
○ 다른 지도⇒‘다른 지도’ 로 적음
○ 푯말에 적힌 산 높이⇒‘푯말’로 적음
□ 간추린 발자취
○ 10:14 대원 23명(?) 「양고살재」 나섬
○ 10:40 별봉(572m-‘김형수’ ․ ‘진혁진’), 579m(-‘다른 지도’)]
○ 10:46 「문너머재」, 아주 평평한 잘루목
○ 10:51~10:53 조끼 벗음
○ 10:56-20 산길[임도], 시멘트 길
○ 11:00~11:05 「벽오봉」(640m-‘푯말’, 640.4m-‘김형수’), 머묾
○ 11:06 활공장
○ 11:07~11:11 「억새봉」(636m-‘푯말’, 625m-‘김형수’), 머묾
○ 11:17 「신선봉」 갈림길
○ 11:23 624m 봉우리(-‘김형수’ ․ ‘진혁진’), 턱
○ 11:28 송전탑
○ 11:32~11:35 「신선봉」(?), 머묾, ※ 푯돌 없음.
○ 11:37 (다시) 송전탑
○ 11:38~11:42 지팡이 꺼냄
○ 11:56 「고창고개」
○ 12:01 송전탑
○ 12:18~12:21 나무 널빤지 전망대, 머묾.
○ 12:24~12:28 방장산(方丈山, 743m-‘푯말’, 744.1m-‘김형수’), 삼각점(담양 21, 1999 재설), 삼각점 푯말, 머묾.
○ 12:37~13:05 「봉수대」(715m-‘푯말’, 725m-‘김형수’), 작은 헬기장, 점심밥
○ 14:01~14:12 「쓰리봉」(734m-‘푯말’, 733.6m-‘김형수’), 머묾
○ 14:14 |― 「변산지맥」 갈림길, 여기서 바로 나아감.
○ 14:15~14:22 바위 전망대, 머묾.
○ 14:22-20 ―| (다시) 「변산지맥」 갈림길, 여기서 왼쪽으로, 완만한 내리막○ 14:47 성터 자국
○ 14:49 515m(‘김형수’), 뭉툭한 작은 봉우리
○ 14:55~14:58 밀감, 머묾
○ 15:07 「장성갈재」, 산행 마침, ※ 작은 공원, 「조국 통일 기원비」 푯돌
□ 줄거리
※ 내 시계는 3분쯤 빠르다. 여기서 적는 시간은 내 시계를 기준으로 했다.
2019. 04. 06(토) 06:30 △△△ 앞을 떠난 버스는 세 시간 삼십오 분쯤 뒤 「양고살재」에 닿았다.(10:07)
「양고살재」에는 조그만 ‘관광 안내소’가 있었고, 차량용 길 푯말을 넣으면[포함하면] 푯말이 모두 다섯 개나 있었다.
길 나설 채비를 한 다음 대원 스물세(?) 명이 「양고살재」를 나섰다.(10:14)
「양고살재」에서 20분쯤 뒤 산등성(이)에 올라섰고(10:35), 여기서 길은 왼쪽으로 굽어졌다. 「양고살재」에서 15분쯤 뒤 「별봉」(572m-‘김형수’)[572m 봉우리(‘진혁진’)][579m 봉우리(‘다른 지도’)에 닿았다.(10:40) 「별봉」은 작은 봉우리로 푯말이나 푯돌이 없었고, 길 푯말(↑수월 가는 길, ↓일공사, →정상 가는 길)이 있었다. 이 봉우리는 다른 지도에는 이름조차 없는데, 「별봉」으로 표기해 놓은 기록이 있다.(‘김형수’)
「별봉」에서 6분쯤 뒤 아주 평평한 잘루목인 「문너머재」에 닿았다.(10:46) 이 재는 ―| 갈림길로, 길 푯말(←산림욕장 1.0km, ←공설운동장 3.0km, ←영춘봉 1.0km, ←석정 힐파크시티 2.1km, ↑억새봉 1.0km, ↑방장산 3.0km, ↓방장사 1.0km, ↓양고살재 1.7km)이 있었다.
「문너머재」에서 5분쯤 가다가 입었던 조끼를 벗고(10:51), 2분쯤 뒤 길을 나섰다.(10:53) 길을 나서 3분쯤 뒤 /| 산악자전거 길 만나는 곳에 닿았다.(10:56) 길 왼쪽이 산악자전거 길로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길이 제법 넓어 보여 처음에는 활공장으로 통하는 찻길인 줄 잘못 알았다. 방장산 아래 어느 마을에 터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인 듯 보이는 어느 나그네가 「벽오봉」쪽에서 내려오면서 우리에게 “바로 올라가면-오른쪽으로 가면- 안 되고 왼쪽으로 올라가세요. 오른쪽에는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칠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하필 그 순간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내려올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곧 바로 시멘트 길인 산길[임도]에 닿았다.(10:56-20) 산길[임도]에서 두 갈래 길이 있어 조금 전 그 나그네 말대로 왼쪽으로 접어들었더니 이내 「벽오봉」쪽에서 산악자전거를 탄 젊은이 네댓 명이 쏜살같이 자전거에 몸을 싣고 아래로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아까 나그네 말을 따르지 않았다면 자칫 사고라도 날 뻔한 일이었다.
산길[임도]에서 3분쯤 뒤 「벽오봉」(640m-‘푯말’, 640.4m-‘김형수’)에 닿았다.(11:00)
5분쯤 머문 뒤 「벽오봉」을 나서 바로 활공장에 닿았다.(11:06) 활공장에서는 서북쪽으로 「신림저수지」, 동동북쪽으로 「방장산」,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넓은 들과 마을들이 잘 보였다. 그곳에서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들판과 마을들을 바라보는 재미는 아주 쏠쏠할 것 같았다. 그날은 패러글라이더를 타는 사람들은 없었다. 활공장 한 켠에는 「억새봉」(636m-‘푯말’)과 「방장산가비(方丈山歌碑)」와 「방장산 시산제 제단」이 있었다. 「억새봉」 높이를 625m(‘김형수’)로 써 놓은 기록도 있다.
4분쯤 머문 뒤 「억새봉」을 나서(11:11) 6분쯤 뒤 「신선봉」 갈림길에 닿았다.(11:17) 여기서 오른쪽 방장산 쪽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500m쯤 떨어져 있다는 「신선봉」으로 향했다.「신선봉」 갈림길에서 6분쯤 뒤 624m 봉우리(‘김형수’, ‘진혁진’)에 닿았고(11:23), 이 봉우리에서 5분쯤 뒤 송전탑에 닿았다.(11:28) 송전탑에서 4분쯤 뒤 「신선봉」으로 추정되는 작은 봉우리에 닿았다.(11:32) 그 봉우리에는 푯말이나 푯돌은 없었다. 조금 실망(?)을 하고 사진을 찍고 나서 3분쯤 뒤 「신선봉」(?)을 되돌아 나와(11:35) 2분쯤 뒤 다시 송전탑에 닿았다.(11:37) 바로 \| 갈림길이 나왔고(11:37-20), 여기서 624m 봉우리 쪽으로 되돌아가지 않았고, 왼쪽으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오솔길이 있더니 나중에는 길이 흐릿해졌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리막이라 지팡이를 꺼냈다. 갈림길에서 12분쯤 뒤 둥글게 다듬은 나무 기둥+밧줄이 있는 작은 울타리(?)를 넘었다.(11:54),
ㅜ 갈림길에서 왼쪽-용추폭포 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 「고창고개」쪽으로 올라갔다. 울타리에서 채 2분이 되지 않아 「고창고개」에 닿았다.(11:56) 「고창고개」에는 길 푯말(←방장산 정상 1.5km, ←쓰리봉 4.5km, ↓용추폭포 2.5km, →방장산 휴양림 1.5km, →패러글라이딩장 0.9km)이 있었고, ㅜ 갈림길에서 왼쪽 방장산 쪽으로 향했다.
「고창고개」에서 5분쯤 뒤 송전탑에 닿았고(12:01), 여기서 17분쯤 뒤 나무 널빤지 전망대에 닿았다.(12:18) 3분쯤 머문 뒤 나무 널빤지 전망대를 나서(12:21) 3분쯤 뒤 「방장산」(743m-‘푯말’, 725m-‘김형수’)에 닿았다.(12:37), 방장산에는 삼각점(담양 21, 1999년 재설)과 삼각점 푯말(담양 21, 씨도[위도] 35° 27′ 20.34″, 날도[경도] 126° 45′ 15.73″)이 있었다. 가야 할 「봉수대」, 「쓰리봉」과 지나온 「벽오봉」과 활공장을 돌아보았다. 제법 멀리 내장산과 백암산 따위가 잘 보였다.
날씨가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무등산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긴가민가했다.
4분쯤 머문 뒤 방장산을 나서(12:28), 9분쯤 뒤 작은 헬기장이 있는 「봉수대」에 닿아(12:37), 점심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내장산과 백암산을 뒤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가야할 「쓰리봉」도 잘 보였다. 이곳에서도 무등산을 찾으려 했지만 짐작되는 산은 있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점심밥을 먹고 길을 나서(13:05) 55분쯤 뒤 「쓰리봉」(734m-‘푯말’, 733.6m-‘김형수’)에 닿았다.(14:01) 「쓰리봉」이란 이름을 얻은 까닭[연유(緣由)]을 알 수가 없다. 봉우리가 세 개라서 영어에서 따온 이름일까? “겨울 낚시에서 잉어 따위의 고기를 낚기 위하여 얼음을 끄는 쇠꼬챙이”(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를 뜻하는 ‘쓰리’에서 따온 이름일까? 봉우리 형상이 쇠꼬챙이를 닮지는 않은 것 같았다.....
11분쯤 머문 뒤 「쓰리봉」을 나서(14:12) 2분쯤 뒤 |― 「변산지맥」 갈림길에 닿아(14:14), 앞에 보이는 바위에 오르기 위해 여기서 바로 나아갔다. 갈림길에서 1분쯤 뒤 전망대로서는 다른 곳에 뒤지지 않을 바위에 올라(14:15), 7분쯤 머물며 내장산, 백암산 따위를 둘러보았다.
7분쯤 머문 뒤 바위를 되돌아 나와(14:22) 바로 ―| 「변산지맥」 갈림길에 닿아(14:22-20) 왼쪽 「장성갈재」 쪽으로 내려섰다. 이 갈림길에서 26분쯤 뒤 515m 봉우리(‘김형수’)에 닿았다. 뭉툭한 이 봉우리는 별다른 특색이 없었다. 봉우리에 닿기 2분 전 쯤에 성터 자국이 있는 곳을 지났다.
515m 봉우리에서 6분쯤 뒤 남은 밀감을 꺼내 먹었다.(14:55) 3분쯤 뒤 길을 나서(14:58)9분쯤 뒤-515m 봉우리에서는 15분쯤 뒤-「장성갈재」에 닿아 산행을 마쳤다. 「장성갈재」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고, 이곳에 「조국통일 기원비」가 있었다. 아주 맑은 날씨는 아니었으나 예상보다는 날씨가 좋아 둘레 구경을 잘 할 수 있었다.
방장산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에는 나무로 된 푯말만 있었고, 푯돌은 한 곳에도 없었다.
이번 구간은 영산기맥(내장산 분기봉-538m 봉우리~목포 유달산 지나 서산초등학교 근처까지) 구간에 속한다.
산악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진일 기사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제공했다. 대원이 적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산악회에 고마움을 전한다.
양고살재
양고살재
양고살재
양고살재
양고살재
양고살재
양고살재
고깔제비꽃(?)
금창초
길마가지나무
572m 봉우리('진혁진')[579m 봉우리('다른 지도')]
문너머재
문너머재
고깔제비꽃-잎이 둥글다
쇠스랑개비[양지꽃]
벽오봉
가야 할 방장산
활공장[패러글라이딩장]
방등산가비
활공장[패러글라이딩장]
624m 봉우리('권혁진')
그 왼쪽 뒤가 신선봉으로 짐작된다
방장산이 보인다
산자고
신선봉 갈림길
새앙나무[아구사리, 단향매, 생강나무]
방장산 쪽
신선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
현호색
고창고개
나무 널빤지 전망대
뒤돌아본 벽오봉 쪽
쓰리봉이 보인다
뒤로 내장산이 보인다
뒤로 내장산이 보인다
백암산 가인봉-가운데-
뒤로 강천산, 추월산으로 추정되는 봉우리가 보인다
봉수대-왼쪽
뒤로 백암산이 보인다
쓰리봉 뒤로 내장산이 보인다
백암산 산등성(이)
쓰리봉과 내장산
뒤로 방장산이 보인다
내장산을 뒤에 두고...
지나온 방장산
가야 할 쓰리봉
뒤돌아 본 방장산
뒤로 백암산 가인봉이 보인다
쓰리봉-오른쪽
당겨본 백암산 가인봉
당겨본 내장산 서래봉
뒤돌아 본 방장산
뒤로 백암산 산등성(이)과 가인봉
뒤로 백암산
백암산 산등성(이)과 가인봉
가인봉 - 가운데
뒤돌아 본 방장산
뒤로 추월산으로 추정되는 봉우리
백암산과 가인봉
백암산
백암산과 가인봉
내장산과 백암산
개비자나무
개별꽃
꿩의밥
장성갈재
젖빛 목련이 아름답다
□ 그밖에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
○ 가래나뭇과 갈래 : 굴피나무[구종나무]
○ 개비자나뭇과 갈래 : 개비자나무
○ 낙우송과 갈래 : 삼나무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감태나무, 비목나무,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느릅나뭇과 갈래 : 느티나무[괴목(槐木), 귀목나무(櫷木--)], 팽나무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때죽나뭇과 갈래 : 때죽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 쥐똥나무
○ 백합과 갈래 : 청가시덩굴, 청미래덩굴
○ 볏과 갈래 : 대[대나무], 조릿대, ※ 조릿대 밭
○ 소나뭇과 갈래 : 곰솔[왕솔나무, 해송, 흑송], 리기다소나무[미국삼엽송, 아메리카소나무], 소나무, 일본잎갈나무, 잣나무(>)
○ 운향과 갈래 : 초피나무[제피나무]]
○ 인동과 갈래 : 길마가지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서어나무, 소사나무(?)
○ 장미과 갈래 : 국수나무, 벚나무, 산딸기나무[산딸기], 수리딸기, 찔레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진달래, 철쭉
○ 참나뭇과 갈래 : 갈[갈나무, 갈잎나무, 도토리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도토리나무(?), 신갈나무, 참나무
○ 측백나뭇과 갈래 : 편백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골풀과 갈래 : 꿩의밥
○ 국화과 갈래 : 쑥
○ 꿀풀과 갈래 : 금창초
○ 백합과 갈래 : 산자고[까치무릇]
○ 석죽과 갈래 : 개별꽃(?)
○ 양치식물 고사릿과 갈래 : 고사리
○ 장미과 갈래 : 쇠스랑개비[양지꽃]
○ 제비꽃과 갈래 : 고깔제비꽃(?), 남산제비꽃, 둥근털제비꽃(?), 흰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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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적당한 높이에 훤하게 트이는 조망으로,더운날이었지만 시원한 산행을 한 방장산이었어요
여러 명산들을 바라볼수있기도 하군요
내장산 백암산이 가까이 있고요
숙제를 못풀어 기다리고있는데 단풍구경가야될듯합니다 ㅎ
봉우리마다 푯말로만 되어있다는 세심함에 역시! ㅎ
예사로 여겼거든요
아무래도 초원의 빛으로 있을때 더 멋진 산인거같아요
한여름이어도 청량함을 주는산
올더위의 하루는 방장산에서 보내고싶은 계획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넓은 들판이 있고, 여기저기 저수지가 있음은 우리네 삶이 오랜 세월 농경사회였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그 한 귀퉁이에 사람들이 터를 짓고, 그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그것이 발전하여 도회가 되고...옹기종기 모인 집과 들판 뒤로 주욱 이어지는 산등성(이)은 한 폭 동양화가 됩니다. 때로는 비단을 펼쳐놓은 듯 때로는 힘줄이 불끈불끈 솟은 사내 팔뚝 같이도 보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그 물결 속에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솟구쳐서 우리 눈을 즐겁게 합니다. 멀리서 보는 봉우리들은 나를 부르고, 나는 그 봉우리들을 그립니다. 이제 봄꽃이 여기저기 수줍은 모습을 내밀더군요. 고밥습니다.
대장님 사진 감사합니다..
그날은 많이 더웠는데
지금은 꽃샘추위로 좀 쌀쌀하네요
감기조심하시구예
다음산행때 뵙겠습니다...
봄은 그 변덕스러움이 특색이고, 그 번덕스러움으로 우리를 긴장시킵니다. 그런 변화가 이제 봉우리를 내미는 꽃들이 더 단단해지도록 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니 자연이 보여주는 오묘함을 느낍니다. 바늘과 실처럼 이어가는 두 분 모습, 늘 조용하고 사색에 깊이 빠진 듯한 모습이 정겹습니다. 미세 먼지를 걱정했는데, 예상보다는 심하지 않아 좋았던 방장산 날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방장산을 오르는 동안 잠시
신선지경에 이르고 싶은 마음에
코스 이탈하여 신선봉에 올랐다가
푯돌도 없는 봉우리에서 사진 한장
찍고 내려오다 산행코스를 이탈하는
사고 날뻔 하였습니다 ㅋ
광활하게 이어지는 야산들, 그리고
이웃의 명산들, 또 시원하게 펼쳐진
서해바다가 가슴을 탁 터이게는
하였지만 언제나 그놈의 미세먼지로
마음이 뻥 뚤리는 전경을 볼수없어
언제나 아쉬움을 남깁니다
어린시절 산등에서 소풀 먹이며
잔디위에 누워 바라보던 그 맑은 파란
하늘은 이제 볼수 없을까요?
우리가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망친것같아
내 후손들에 미안하기만 합니다
산을 다니면서 여러가지의 생각에
잠깁니다 ㅋ
수고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마을 뒷산에 나무하러 가거나 꼴을 베러 갔을 때 고함을 치면 내가 내지른 소리가 메아리 되어 골골이 울려 퍼지고, 그 때는 모자라는 것이 많았지요. 그러나 땔감으로 나무를 많이 베어내 산은 헐벗었지만 아름다운 풀과 꽃이 많았습니다. 그 시절,아침 일찍 산에 오르면 희부연 구름 띠 같은 것이 산을 휘감고 있었지요. 그 때는 그것이 구름이거나, 안개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것이 미세 먼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름철에는 그것을 보고 하루 날씨가 매우 더울 것이라 생각했지요.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날아온 미세 먼지까지 우리를 괴롭히니, 세상은 더불어 협력하면서 살 수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사진 아래 자세한 설명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작은 야생화 이름표까지 ‥
사진들 멋집니다^^
미세 먼지가 조금 끼었고, 사진 찍는 솜씨가 모자라 별로 마음에 들이 않는 사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