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의 직장생활 중에 30년을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하였고.그 중 23년을 한 회사에서 만 일했다
처음 홍콩 대만 일본 미국영국 가는곳 마다 " Im from Korea" 라 할때마다 후진국 사람이라 멸시도 당하고
무시도 당햇다는 느낌은 속일수 없었다
여러 수모속에 세월이 흘러 이제 선진 대열에서 30년이 지나 정년 퇴임을 하고 과거를 돌아보니
무엇인가 뜻 있는 봉사활동을 후진국에서 할것을 마음 먹었다.
퇴직하면 가족과 여행이나 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 하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몽골 의료봉사 할동을 선택했다
의료활동은 안과 .소아과. 내과. 진찰과 안과 백내장 수술으로 현지 선교단체의 안내로 통역이 12명
의사 3명 간호원 16명 현지 인 4명 총 36명으로 3팀으로 나눠서 구성되었다
내정년의 마지막 근무일이 6월 30일 이지만 6월 30일 일요일에 떠나는 몽골행 비행기를 타려고 간
인천공항에서 6시간이나 출발이 지연 되었다.
밤 11 반에 UB도착후 중요 의료장비 통관 문제로 3시간을 씨름하고 나니 새벽 2시반,,,
2시간을 마루바닥에서 눈 붙이고 새벽4시에 기상하여 9 시간을 버스로 산길을 달려야 겨우 300km거리이다..
...
첫날 선발대가 있는 에르뜨네트 시립병원에 가니 말을 타고 하루반을 왔다는 50세 가량의 남자의 백내장 수술광경을
지켜 보았다...이 지방방송에서 한국의 우수한 의료진이 지역 주민을 위하여 무료진찰과 수술을 한다고 방송을 탄 탓에
몰려온 사람들로 붐벼서 매일 새벽 3~4시에야 업무가 끝났고 아침 8시에는 어김없이 출근....
볼강 보건소에서는 소아과 내과 안과 1차 진료팀이 수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있었다.
환자 상태에따라서 45인승 버스로 두 시간을 달려 시립병원까지 후송도 하였다.
몽골에서는 수술을 하는 의사가 별로 없고. 잘 나가는 의사는 모두 도심에 해외에 취업하여 국민들이 가난하여
돈벌이가 안된다는 이유와 국민은 어마 어마한 수술비는 엄두도 못낸다 한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오거나 아이들이 부모를 모시고 오기도 하였다.
난 그 아이들을 춤추게 했다.그리고 선교 활동에서 나이 50대의 부부에게 면사포를 못써본 부부에게 혼인식을 올려주며
전야제에는 모두를 얼러대며 키스를 하도록 졸라댔다 처음에는 쑥 쓰러러 하더니 그 다음 부터는 시원하게 열열한 키스를 내앞에서 하며 연출을 잘 해주었다 카메라 셔터에 불이 나도록 찍어 주엇다.다음날은 결혼식을 올리고 기념 사진을 찍어 주는 이벤트로 쉽게 이어 졌다
웨딩 드ㅡ레스를 9벌을 준비하여 서로 바꿔입으며 주례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들에게 키스를 주문하면 입술이 뒤집어 지도록 강렬한 키스로 화답을 하였다...
결혼식에서 사용할 음악을 고만하던 단장님을 단번에 웃게 하였다
마침 내 MP3에 1000곡 중에는 한 여름밤의 꿈 중에서 "결혼 행진곡"과 헝가리무곡 5번과 삐가로의 결혼은 정말
안성맞춤이였다, 즉석에서 찍은 결혼사진을 액자에 넣어 준것은 최고의 선물이자 히트였다...
우리 사진팀은 마치 영화 촬영장 같은 분위기에서 11쌍의 부부 사진을 작품처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과 강남 스타일을 틀어주고 춤 추게 하고 여자 아이들은 카라의 음악에 춤을 추게 하였더니
나만 따라 다녔다
ㅎㅎㅎ...
나는 7일 동안 정말 힘든 줄 몰랐다.
병원에서 수술중에 정전으로 의료장비가 멈춰서 비상사태에는 급한 환자 두명을 버스로 2시간을 달려와
우리숙소2층에 업고 올라와 간호를 도운 일은 눈물겨운 광경이였다
..
밤잠을 3~4시간 이상 잘수가 없었다. 샤워도 거의 못하고 의자에 앉아 식사 해본 일도 없었다..
잠시 30-40분 정도 짬이 나면 양떼 사진을 찍고 뒷산에 올라가 야생화를 찍었다..
휴~~~
100% 개인부담 비용과 비자도 본인이 받고 모두 스스로 받았지만 특별한 기분이였다.
봉사 간 사람이 좋은 호텔에서 자거나 좋은 음식을 먹는것은 상상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 나라 남자들은 러시아 식민지에서 풍습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칭기스칸의 후예들이다,
여자들만 교육을 시켜서 대부분의 영어는 남자 보다 여자들이 잘 알아듣고 있었다.
한부부의 암 환자를 만난 자리에서 암 극복 과정을 질문하여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한없이 울고 울었다
나도 울고 그들도 모두 우느라고 한동안 말을 이어 가지 못햇다..
그러나 내가 할 것은 말로만 하는 희망과 자신, 그리고 용기를 불어 넣어 주며 흘린 눈물 뿐이였다.
그리고 만난 기념 사진과 가족사진을 찍어 준것이 전부이다
떠나는 시간이 되어 몇명이 내 Email adress를 달라고 하였다
오늘에서 그 들에게 일일이 그 들과 찍은 사진과 인사말을 보냈다...
몇일동안 부족한 잠을 이틀이나 자고 일어나니 피로가 풀린것 같다..
일생에 한번으로 부족한 봉사할동...
7일 동안 우리의 손을 거처간 환자가 680명 수술환자가 48명 선교할동 포함하여 총 1060명을 3팀이 나눠서 만났다
우리나라 1980년 대 처럼 아직 어수선 한 나라....
지금의 몽골은 끝없는 초원위에 목동들이 오토바이나 자동차로 염소를 몰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목동은 말을 타고
양떼를 몰고 있다. 물없는 계곡에서도 산등성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이는 예쁜 야생화는 예쁘게도 피어 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UB로 가는 280Km를 밤 열차로 12시간을 달려서 인천행에 몸을 실었다..
처음으로 한푼의 돈을 쓸 시간 없는 활동덕분에 바꿔간 달러 300불과 함께 고스란히 돌아 왔다 ..
...
다음에 또ㅡ또 가야할 것만 같다....
첫댓글 정말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하셨네요.
박수를 보냅니다.
넘 멋진일들을 하고 오셨네요.
사진도 넘 넘 넘 멋지네요.
얼레지님 정말 감동적인 퇴직기념을 보내셨군요.
너무 힘드셨을것 같은데 건강 잘 지키세요.
고생많아씁니다
가슴꽈~ㄱ 차오르네요....
정말로 멋지고 아름답고 보람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오셨네요.
하얀얼레지님의 인생에 길이 남을 멋진 획을 그으셨읍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짝짝짝~
정년을 멋지게 마무리 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쉽지 않은 일을 하셨군요.
천군천사님들의 행적을 보노라치면 절로 고개가 숙이진답니다. 멋진 삶을 사시고 계신들에게 끝없는 축복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샬롬!정년 퇴직을 보람있게 좋은일 하시고 오셨군요 ?
잠못자고 고생은 하셨지만
하나님은 얼레지님의 마음을 아시기에
건강도 책임져 주실겁니다 ...부럽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얼레지님 봉사체험에서 많은것을 한꺼번에
알게되는군요.
남을 돕는 빛된 발걸음으로 님의 삶이 더
풍요로우시리 믿습니다.
부럽습니다. ^^ 언젠가는 저도 제게 맞는일로 꿈꾸고 있는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