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37편
9천3백 리를 흐르는 양자대강(揚子大江)은 한양강·심양강·양자강 세 강과 만나면서 사천(四川)을 지나 바다에 이르는데, 중간에 많은 곳을 거치므로 만리장강(萬里長江)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吳)와 초(楚)를 갈라놓은 이 강의 가운데에 금산과 초산이라는 두 산이 있다.
금산 위에는 절이 하나 있는데, 산을 두르면서 세워져 있어 사리산(寺裏山)이라 불리고, 초산 위에 있는 절은 산의 움푹한 곳에 숨어 있어 형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산리사(山裏寺)라고 불린다. 이 두 산은 강 가운데 있어 초나라의 꼬리가 되고 오나라의 머리가 되는데, 한쪽은 회수 동쪽의 양주이고 다른 한쪽은 절강 서쪽의 윤주로서 오늘날의 금강이다.
한편, 윤주의 성곽은 방랍 수하의 동청추밀사(東廳樞密使) 여사낭이 강안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원래 흡주의 부호였는데, 방랍에게 많은 돈과 곡식을 바쳐 동청추밀사에 임명된 자였다. 어릴 때부터 병서를 읽었고 한 자루의 장팔사모를 잘 써서 무예도 출중하였다.
여사낭 밑에는 강남십이신(江南十二神)이라 불리는 12명의 통제관이 있었다. 경천신(擎天神) 복주 심강, 유혁신(游弈神) 흡주 반문득, 둔갑신(遁甲神) 목주 응명, 육정신(六丁神) 명주 서통, 벽력신(霹靂神) 월주 장근인, 거령신(巨靈神) 항주 심택, 태백신(太白神) 호주 조의, 태세신(太歲神) 선주 고가립, 조객신(弔客神) 상주 범주, 황번신(黃幡神) 윤주 탁만리, 표미신(豹尾神) 강주 화동, 상문신(喪門神) 소주 심림이었다.
추밀사 여사낭은 남군(南軍) 5만을 거느리고 강안을 점거하고 있었는데, 감로정(甘露亭) 아래에 전선(戰船) 3천여 척을 늘어놓고 있었다. 맞은편 북안에 있는 과주의 나루터는 앞에 흘러가는 강물만 있을 뿐 장애물이 없었다.
한편, 송강이 누가 먼저 가서 길을 정탐하고 강 건너편의 소식을 알아오겠느냐고 묻자, 네 명의 장수가 자원하였다. 소선풍 시진, 낭리백조 장순, 반명삼랑 석수, 활염라 완소칠이었다. 송강이 말했다.
“자네들 네 사람이 두 길로 나누어, 장순과 시진이 같이 가고 완소칠과 석수가 같이 가게. 곧장 금산과 초산으로 가서 머물면서, 윤주의 역적 소굴의 허실을 정탐하고 양주로 돌아와 알려주게.”
네 사람은 송강을 작별하고, 각각 두 명의 졸개를 데리고 나그네로 분장하여 양주를 떠났다. 그때 백성들은 대군이 방랍을 토벌하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가족을 데리고 시골로 몸을 피했다. 석수는 완소칠과 함께 졸개 둘을 데리고 초산으로 갔다.
시진은 장순과 함께 졸개 둘을 데리고 마른 양식을 가지고, 몸에는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손에 박도를 들고서 과주를 향해 갔다. 때는 초봄이어서 날씨가 온화하고 꽃향기가 풍겼다. 양자강변에 당도하여 높은 언덕에 올라가 바라보니, 하얀 파도가 도도하게 굽이치고 물안개가 깔려 경치가 아름다웠다.
멀리 북고산 아래를 살펴보니, 일대가 모두 파란 깃발과 흰 깃발들이 나부끼고 강변에는 수많은 배들이 ‘一’ 자로 늘어서 있는데, 강의 북안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시진이 말했다.
“과주로 오는 길에 보니, 민가에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강 위에는 건너갈 배도 없으니, 어떻게 강 건너편의 소식을 알아낼 수 있겠나?”
장순이 말했다.
“형님은 일단 빈 집에 들어가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건너편 금산 아래로 헤엄쳐 가서 허실을 정탐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네 사람이 강변으로 내려와 근처에 있는 몇몇 초가를 찾아가 보았는데, 모두 빗장을 질러 놓아서 문을 밀어도 열리지 않았다. 장순이 모퉁이를 돌아가 한쪽 담을 허물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백발 노파가 부엌에서 나오고 있었다. 장순이 말했다.
“할머니! 왜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까?”
노파가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겠소. 지금 조정에서 대군을 일으켜 방랍을 치러 온다고 들었소. 여기는 길목이기 때문에, 가족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피하고 이 늙은이만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소.”
“이 집의 남자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가족을 돌보려고 시골로 갔소.”
“우리 네 사람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어디 가면 배를 찾을 수 있습니까?”
“배를 어디서 찾겠소? 근래에 여추밀이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배들을 모두 윤주로 끌고 가 버렸소.”
“우리 네 사람이 양식은 있으니까, 방만 빌려서 이틀 정도 쉬겠습니다. 방세로 은자를 드리고 괴찮게 하지도 않겠습니다.”
“쉬어도 좋지만, 침상이 없어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조만간에 대군이 올 텐데…”
“그땐 알아서 피하겠습니다.”
장순은 문을 열어 시진과 졸개들이 들어오게 하였다. 박도를 벽에 기대놓고 보따리를 풀어 마른 양식과 구운 떡을 꺼내 먹었다. 장순이 다시 강변으로 나가 경치를 살펴보니, 금산사는 강 가운데 있었다. 강변을 한 바퀴 둘러본 장순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윤주의 여추밀이란 놈은 필시 수시로 저 산을 오르내릴 것이다. 내가 오늘밤 가서 소식을 알아봐야겠다.”
장순은 돌아가서 시진과 상의하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배가 한 척도 없으니 강 건너편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오늘 밤 은덩어리 두 개를 옷으로 싸서 머리에 이고 헤엄쳐서 금산사로 가겠습니다. 중들에게 뇌물을 주고 적의 허실을 알아본 다음, 돌아가서 송선봉 형님께 보고합시다. 형님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시진이 말했다.
“얼른 갔다 오게.”
그날 밤은 달이 밝고 바람이 없어 물결도 잔잔하고 강물과 하늘이 같은 색이었다. 황혼이 되자, 장순은 웃옷을 벗고 아래에 흰 잠방이만 입었다. 두건과 옷으로 은덩어리 두 개를 싸서 머리에 이고, 허리에 날카로운 칼을 찼다. 과주에서 물속으로 들어가 강 가운데로 헤엄쳐 갔다. 물이 가슴까지밖에 차오르지 않아 물속에서도 마치 육지를 걷는 것 같았다.
금산 기슭에 당도해 보니, 강변 바위에 작은 배 한 척이 묶여 있었다. 장순은 배로 올라가서 머리에 이고 있던 옷 보따리를 풀고 젖은 옷을 벗고서 마른 옷을 갈아입고 배 안에 앉아 있었다. 그때 윤주에서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장순이 배 안에 엎드려 살펴보고 있는데, 상류 쪽에서 작은 배 한 척이 내려오고 있었다. 장순은 생각했다.
“저 배가 오는 모양이 뭔가 수상쩍어 보인다. 필시 첩자가 탔을 것이다!”
배를 풀어 나아가려고 했는데, 뜻밖에 배는 굵은 쇠사슬에 묶여 있고 노나 삿대도 없었다. 장순은 할 수 없이 다시 웃옷을 벗고 단도를 뽑아 들고서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배 가까이 다가갔는데, 배 위의 두 사람은 노를 저으면서 북안만 바라보느라 남쪽은 보지 않고 있었다.
장순은 물속에서 솟구쳐 올라 뱃전을 잡고 단도를 빼들었다. 노를 젓던 두 사람은 노를 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장순이 배 위로 올라가자, 선창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장순이 단도로 한 사람을 베어 물속으로 빠뜨리자, 다른 한 사람은 깜짝 놀라 도로 선창으로 들어갔다. 장순이 소리쳤다.
“너는 누구며 어디서 오는 배냐? 사실대로 말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호걸께 아뢰겠습니다. 소인은 이곳 양주성 밖의 정포촌에 사는 진장사(陳將士)의 일꾼입니다. 소인은 여추밀께 양식을 바치겠다는 주인의 말씀을 전하러 윤주에 갔는데, 여추밀께서 우후 한 사람을 소인과 함께 보내면서 벼슬을 얻으려면 쌀 5만 석과 배 3백 척을 예물로 바치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 우후는 이름이 무엇이고, 지금 어디 있느냐?”
“우후의 이름은 섭귀인데, 방금 호걸께서 칼로 베어 물속에 빠뜨린 자입니다.”
“너는 이름이 무엇이고, 언제 강을 건너갔으며, 배 안에는 무슨 물건이 있느냐?”
“소인의 이름은 오성이고, 금년 정월 7일에 강을 건너갔습니다. 여추밀은 소인을 소주로 보냈는데, 거기서 황제의 아우 삼대왕(三大王) 방모를 뵙고 깃발 3백 개와 주인 진장사를 양주부윤 및 중명대부에 봉한다는 공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군복 1천 벌과 여추밀에게 보내는 답서도 받았습니다.”
“네 주인의 이름은 무엇이고, 거느리고 있는 인마는 얼마나 되느냐?”
“거느리고 있는 사람은 수천 명이고, 말은 백여 필이 됩니다. 아들이 둘 있는데, 장자는 진익이고 차자는 진태입니다. 주인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