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살이의 기본을 의식주(衣-食-住)에서 찾는다.
입는게 우선이고 먹고 자는 것은 그 다음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일단은 굶어 죽어도 잘 입어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서양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식의주(食-衣-住)로 정렬시킨다.
홀라당 벗고 다리밑에서 살아도 양질의 먹거리를 입안 가득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살아온 문화와 역사에 현격한 차이가 있으니 누구의 선택이 옳은지는 일단 논외로 하고.
잘 산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화두이다.
언젠가부터 웰빙(Well-being;참살이)이 광풍처럼 세상을 온통 들쑤시고 다니면서
이전에 살아오신 선조들을 헛살이(Wrong-being)로 매장 시키더니
어느 한 순간부터는 힐링(Healing)이 대세가 되어
역시 그 이전의 인생들을 죄다 중환자실에 몰아 넣고 환자복을 입혀버렸다.
그러더니 언제부터는 웰다잉(Well-dying)을 슬며시 끌어내어
온갖 백화점의 상품맡에다 불편한 장송곡을 깔기도 하더니
이제는 그 역시도 정체 모호한 행복시대란다.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행복시대를 살아가는 참으로 행복한 우리,
행복을 의미하는 영어(Happiness)는 원래 "행운"을 의미했다.
18세기 말, 영국학자 제레미 벤담이 설파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즉 공리주의를 일본에서 번역하면서 최초로 "행복"이라는 어휘가 생겼단다.
우리는 일본에서 창조한 행복의 의미를 지금까지 여과없이 내것인양 사용하고 있는 중이고.
그러니까 우리에게 행복의 역사는 불과 200여년 밖에 안된다.
행복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고 굳이 엮는다면
오늘만큼은 그 둘을 한통속으로 봐도 큰 차이가 없을 듯 하다.
정말 우연히 길을 걷다 발견한 간이 술집,
볼품은 없지만 그렇게 행운으로 행복한 술집을 만났다.
이름하여 인삼하우스!
그 행복에 취하기 전에
일단 꾸욱~
어머님의 생신을 맞이하여 귀향한 내 고향 부산.
잠시 짬을 내어 친구 손을 잡고 찾은 서면의 부전시장!
단언컨대 이곳은 국내 최대의 상설 재래 시장이라고 자부할만하다.
주전부리며 농산물이며 그야말로 지름신을 총동원하여 봉다리 봉다리 즉흥구매를 해도
서울의 백화점에 비하면 반의 반값도 미치지 못하는 진정 착한 시장!
해도 지고 시장 곳곳에서 스며나오는 먹거리들의 향내에
뱃속의 각종 내장들이 천둥 소리를 내며 주리를 틀고 있을 무렵,
좌우를 두리번 거리던 친구가 소리쳤다.
"우리 웰빙에다 힐링을 얹고 정신줄 사알짝만 들었다 놓을만큼 행복해지지 않을래~?"
단어 하나 하나를 곱씹지 않아도 안다.
이럴 땐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삼 두 뿌리를 넣은 인삼막걸리?
넣어주는 인삼은 지나치게 작은 크기일거야.
요즘 인삼 가격이 얼만데...
쓸만한 수삼인 경우 수삼만 해도 6,000원에 두 뿌리를 못 사잖아.
어쨌건 아무리 작은 사이즈라고 해도 두뿌리나 갈아 넣어 준다는데 완전 땡큐지~
"여기 인삼 막걸리 한 통에 인삼 튀김 세개요~!
우리 너무 허기지고 영양 많이 떨어져서 인삼고파요오~!"
친구의 주문에 마침표가 떨어지기 전에 기본 세팅 끝~
이 날 마늘잎 초무침은 무려 네 번이나 리필하여 먹었다는...ㅋ
주방과 홀은 거의 한 공간이다.
크지 않은 4인용 테이블 4개,
손님 10여명만 들어와도 서로 살을 붙여야되는 그야말로 미니 주막!
쪼르르 주방앞으로 달려갔다. 인삼 크기 확인하러...
막 칼을 들이대는 순간, 잠깐만요~ 인삼 자태 한 판 찍고 가실게요~!
그런데...
결코 작지 않은 크기다.
"인삼을 자주 구매해서 먹는 관계로 시세를 조금 아는데,
이 가격에 이게 가능해요~?"
돌아온 주인 아주머니의 대답은,
"저희 형부가 금산에서 인삼 농장을 하세요.
그래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연중 수시로 수삼을 공급해주는 조건으로 이 가게를 열었으니
이 가격에 이게 가능하답니다~^^"
인삼을 금방 갈아서 나온 막걸리는 그 비주얼이
마치 "카푸치노 커피"를 연상케 하는데...
거품 위에 시나몬 가루를 팍팍 뿌리고픈 유혹을 간신히 참아냈다.
일단 한모금 벌컥벌컥 마셔봤는데~
캬아~! 이 맛이야~!
이게 바로 그 감동~!
인삼막걸리가 왜 세계화되지 않았는지 내겐 여전히 불가사의이다.
우리나라 인삼은 일찌기 세계 일류화의 반열에 섰다.
지금은 조금 내리막을 타고 있지만 막걸리도 한류의 대열에 있고.
그렇다면 그 둘을 절묘하게 한 방에 넣어 몸을 섞으면 그 시너지가 엄청날텐데...
만일 이 맛을 영어로 작명한다면 나는 사포닌 와인으로 하고 싶다.
인삼의 사포닌이 만들어 내는 저 포말의 향연,
자태와 때깔, 그리고 향기와 부드러움,
그 끝에서 품을 벌리는 상큼한 맛의 절묘함
그 뒤를 메아리처럼 조용히 뒤따르는 목넘김....
이건 결코 술이 아니다.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웰빙이, 힐링이 멀리 있는게 아니다.
막걸리 한 병에 작디 작은 수삼 고작 한 뿌리 넣은 것은 제법 맛봤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그와는 맛의 품격이 다르다.
그리고 한 뿌리 2,000원 짜리 인삼 튀김 또한 감동이다.
하루에 정확히 한 번씩 튀김 기름을 갈아 주기에 이런 색깔이 가능하단다.
연초록 애기 살처럼 고운 색깔,
그야말로 입에서 솜사탕처럼 살살 부서진다.
인삼 튀김을 찍어 먹는 이 소스는 간장이 아니다.
처음에는 간장인줄 알고 고춧가루를 달라고 했더니,
세상에...홍삼 발효액이란다.
"아주머니 여기서 장사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달 조금 넘었어요~!"
"계속 이렇게 초심대로 하실 자신 있으세요?"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이런데는 멍청한 고집이 많거든요~!"
이 가게가 위치한 곳은 불행히도 주군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목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처럼 우연히 길섶에서 얻어 걸려 엎어진 김에 들어온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오랜 세월을 엮어서 단골을 확보해야만 꾸준한 영업이 가능한 그런 소외된 지역이라는 말이다.
주인 아주머니도 뒤늦게야 그런 사실을 알았단다.
어쩌면 보다 나은 입지를 새로이 선택하여
조만간 가게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우리는 신신당부했다.
부득이 가게를 옮기더라도,
이런 초심을 부디 잃지 않으시길...
행복의 기준은 없다.
패스트 푸드를 지양하고 슬로 푸드를 찾는 것도,
자연으로 완전 회귀는 못하더라도 슬로시티를 지향하는 것도,
나아가서 부르조아의 풍요와 보헤미안의 자유를 목표로하는 보보스(Bobos)족도,
화려한 도회의 문화적인 삶을 버리고 전원생활을 추구하는 다운시프트(Downshifs)족도,
단지 그들만의 기준안에서 정리하고 행동할 뿐이다.
막걸리 한잔, 거기다 실체 규명된 약재 뿌리 하나만 들어도 내겐 작은 행복이다.
더우기 그게 정말 우연히 마주한 행운과 같이 한다면 그 행복은 배가된다.
이 날 밤 생신을 지낸 어머니와 아버지의 술상에도 별도로
튀김과 더불어 막걸리를 진상했으며,
두 분이 충만해 하셨던 그날의 만족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첫댓글 김작가님께서는 酒黨에 오랜기간 몸을 담으시다 보니 길을 걷다가도 우연히 행운의 술집이 발뿌리에 걷어 채이고
말콤 글래드웰의 '1만시간의 법칙'처럼 酒類에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酒神의 경지에 오른 듯 보입니다.
때깔, 맛과 향기 그리고 목넘김의 내밀한 주당계의 원리를 터득한 걸 보면 이미 범부의 신분은 벗어난 게지요.
약재 두 뿌리 들어간 막걸리를 받아들고 저리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李白의 화신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이지요.
하하하.
주당, 주신, 이백의 화신,
애주가로서 들을 수 있는 찬사는 다 나온듯 하네요.ㅎㅎ
유홍준 교수는 아는만큼 보인다 했지만 거기에 저는 한마디 더 붙이고 싶네요.
"관심있는 만큼 보인다!"
언니~~ 저두 부산 여러번 다녀봤지만.. 어디서 알고 이런 신통방통한 곳을 찾아다니시는건가요?ㅎㅎ 제주도 63첩반상 흑돼지 집에 이어 이 곳도 찜!!해놨어요^^
63첩도, 인삼막걸리도 다 너무 멀리 있어서 안타깝네요.ㅎㅎ
꿀이는 아직?
@김작가 꿀이는 아직..ㅋㅋ 낼이 디데인데... 나오겠단 소식이 없네요ㅋㅋ
@한나예요^^ 화이트데이가 꿀이 생일이면 좋을텐데...^^
와우 침이 꿀꺽 넘어가네요...꼬오옥 마셔보고 싶어지는 인삼막걸리...
꼬오옥 마셔보시어요.^^
꼭 부전시장이 아니더라고 김작가 가는 길 그곳이 어디든 다 행복이 배가되리라 믿싸옵니다...아멘...
김작가교 신도이신지요? ㅋㅋ
인천분님 말쌈에 저도 한~표 던집니다..ㅎ
@목마와숙녀 ㅎㅎ 신도 두명 확보~♥
@김작가 또 다른 은총을 내려주소서...
행복의 역사(번역의 역사)에 기분이 다운되었는데 사포닌 와인으로 다시금 업되었습니다...^^
술만 즐기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친구들과 행복을 몰고 다니시네요.
먹기 전에도 행복했고, 먹을 때에도 행복했고, 먹고 난 후에도 행복했을까 의문이지만...
삼박자가 다 맞았으니..술에 대한, 행복에 대한, 삶에 대한 예찬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먹고 난 후 제일 행복했답니다.ㅎㅎ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지만 왠지 건강해진 느낌! ^^
이젠 부전시장까지 소문난 주당 김작가님이 이렇게 농락한다면...
힘없고 가냘픈 부산의 쇤네는 어디로 가야할꼬~!
저런 곳은 슬며시 쪽지로 기별만 해주시고 좀 숨겨둘 것을...ㅉ
에이 설마 인삼막걸리집 하나 소개했다고 해리슨로드님이 갈곳 없으실까.ㅎㅎ 해리슨로드님의 단골집은 "건드리지말것" 하고 문패 붙여놓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