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6.日. 맑음.
블루 클럽Blue Club에서.
원래 게으르기도 하지만 귀찮기도 해서 한동안 머리를 길었더니 얼마 전부터 아내가 빨리 이발理髮을 하라고 성화를 댄다. 아버님을 그대로 닮아서 곱슬머리인데다 정리정돈을 자주 해주지 않았더니 부세한 형상이 마치 새집을 지어놓은 듯 한대다가 근래 부쩍 늘어난 흰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솟아나 영 볼품이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단정한 머리와 따뜻한 손과 맑은 눈빛이 매력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빛은 탁해지고, 손이 차가워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머리는 단정히 할 수 있지 않으냐는 아내의 이야기인데 말인즉슨 맞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왕이면 산뜻한 주말을 보내고자 동네 블루 클럽Blue Ciub에 가서 이발을 하고 왔다. 블루 클럽이라, 이름이 좋아서 블루 클럽이지 실은 남자들이 가는 저렴한 동네 이발소다. 우리 동네를 한 바퀴 크게 돌아다니면 미용실은 한 이십여 개 되는데 이발소는 딱 한 군데가 있었다. 그런데 이 이발소에서 한 번 이발을 한 뒤로는, 주인 양반이 ’70년대 하이칼라 식으로 머리를 깎아놓아 사람마저 복고풍復古風으로 보이게 함, 머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혼자 들어 다니기가 난감해서 아내를 앞장세우고 미용실을 이용해왔는데 어쩌다 삼사 년 전에 이 블루 클럽이 생겨서 헤어스타일에 관한한 고민을 말끔히 없애주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블루 클럽을 방문해서 대형 거울 앞 회전의자에 앉은 뒤
“스포츠 머리로”
라고 말하고 한 십여 분간 졸고 앉아있다 깨어나 보면 신통하게도 항상 멋진 남자가 거울 속에서 나를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어서이다. 물론 그것도 아마 나하고 아내 두 사람 눈에만 유일하게 멋지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은 왜 헤어스타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질까?
수녀님들이 하얀 두건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다니는 이유는 잘 모르지만 스님들이 삭발削髮을 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삭발에 관해서라면 우리나라 스님들이 아주 모범적이다. 날선 삭도削刀로 배코를 쳐서 하얗게 번들거리는 까까머리는 보기에도 시원할뿐더러 몹시 청결해 보이기까지 하다. 불교가 생겨난 인도에서는 지금은 불교가 쇠퇴하여 승려들을 만나보기 쉽지 않지만 그 주변 나라인 스리랑카나 티베트 승려들은 삭발은 하지만 이처럼 머리털을 박박 밀지는 않고 있다. 삭발의 이유는 교리적敎理的으로 본다면 자라나는 머리털을 번뇌煩惱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고, 현실적으로 본다면 남자들끼리 또는 여자들끼리 대중大衆 생활을 해야 하는 까닭에 청결문제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람들이 온몸 중에서 머리와 얼굴에 들이는 공력이 거의 90%를 차지할 만큼 머리와 얼굴이 호화스럽고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점이 문제라면 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면 사람에게 있어서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얼굴도 삼단 같은 머리칼이나 눈이 부실 듯한 금발의 뒷받침이 없다면 별무소용이라는 점이다. 율부린너가 아닌 다음에야 박박 머리칼을 밀어버린 클레오파트라나 배코를 쳐서 머리통이 하얗게 번들거리는 양귀비를 과연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이유들로 해서 분명 호화롭고 아름다운 머리와 헤어스타일에 들이는 공력과 지대한 관심은 수행자들에게 큰 장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자修行者만이 아니라 군인軍人도 그렇다.
오는 3월7일 월月요일에 입대를 하는 아들 녀석이 입영통지서에 나와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고 소위 군입대軍入隊용 머리를 깎고 왔다. 그런데 아무리 쳐다봐도 내가 보기에는 제대 말년 불량한 장교 헤어스타일처럼 보였다. 본래 해병海兵 헤어스타일이란 도토리처럼 머리꼭지에만 머리칼을 조금 남기고 사방에서 하얗게 바짝 밀어붙여 올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2% 부족하다싶었지만 알아서 하게 그냥 놓아두었다.
“머리를 어디서 깎았니?”
“동네 미용실에서요.”
“미용사가 남자였니, 여자였니?”
“여자였었는데요.”
“그런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구나.”
“평소처럼 하나하나 가위로 다듬기에 가만히 있었죠.”
“호오, 해병海兵 머리를 깎는데 바리깡을 안 쓰고 가위로 하나하나 다듬었다고?”
“예.”
“그래?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해병으로 보이지 않고 두발상태가 불량한 장교처럼 보이는구나.”
간단하지만 입소가방을 꾸리고 난 뒤에 아내가 내게 말을 전해주었다. 선빈이가 내일 포항에 가서 머리를 다시 깎아야 될까봐요. 라고 지나가는 말로 슬쩍 하더라면서 나를 보고 웃으며 눈을 깜짝였다.
(- 블루 클럽Blue Club에서. -)
첫댓글 저도 블루클럽을 이용합니다.. 10번 깎으면 1번은 무료로 깎아 주지요. 오래전 가을녘 논산훈련소 근방의 이발소에서 긴 머리칼이 뚝 뚝 떨어져 나가던 광경이 떠오릅니다..
머리를 깎이는 사람이나, 배웅나온 사람이나 안타까웠던 순간이었지만, 국방부 시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갑니다. 선빈씨!! 그리고 현빈씨 !! 군대 잘 다녀오기 바랍니다..
선빈 갔쑝?~~
요산 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글쎄 내가 군 입대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아들 아이가 어제 포항 해병 교육훈련단에 입소를 했답니다.
선빈 잘 갔쑝~, 그리고 옆에 나란히 서 있던 현빈도 함께 잘 갔쑝~.
현빈 뒤에 서 있는 볼품없어 ^^ 보이던 일반인들 사이에 아드님도 서 있었나요? ㅋ
현빈 입대사진이 하도 여러장 올라와서 이것 저것 보았는데 같이 옆에 나란히 서있던 아이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는데도 어찌나 거시기 하게 보이던지. ㅋㅋ
아드님 사진 올려 주세요. 아버지의 맑은 눈빛을 닮았나 보게요.
오늘은 수요일~ 엊그제 입대를 했군요^^* 대견스럽지요?
선빈이의 건강하고 무탈한 해병 생활을 위하여!!!화이팅을 외쳐 봅니다~~ㅎㅎ
배코 친 여인이 더 미인인 걸 잘 모르시는 군요 ㅎㅎ 예전엔 정말로 여인이 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맡기질 못햇는데 이젠 처제가 미용실을 하니 서울 올라갈 때마다 처제에게 맡깁니다. 선빈이가 건강히 그리고 용감하게 우리 국토를 잘 지켜 줄거라 믿어요 화이팅!
군 입대는 언제나 과거와 함께 오지만
이제 아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래와 함께 옵니다.
저도 요새 흰머리가 많이 보여서 염색을 했더니 분위기가 달라지더군요. 헤어스타일이 주는 인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아드님 머리를 두번 깍았네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병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