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숯가마에서 녹이는 꽃샘추위 |
차가운 날씨에 따뜻한 열기를 찾아 나서니 발걸음이 가볍다. 강원도 횡성의 ‘강원참숯’을 찾으면 참숯을 구워내고 난 가마에서 몸이 좋아하는 건강 찜질을 즐길 수 있다. 숯과 함께하는 따뜻한 나들이로 안내한다. 기획 | 김종학 |
아직도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하다. 매섭게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호호' 불면 뜨끈뜨끈한 아랫목이 간절히 떠오른다. 장판이 거무스름하게 탈 정도로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지글지글 끓는 방바닥에 몸을 뉘면 언 몸이 사르르 녹아 내리고 추위는 곧 따뜻한 추억으로 남는다.
혹독한 한파에 아랫목처럼 따뜻한 곳으로 몸이 이끌리는 건 당연지사. 벌겋게 달아오른 참숯가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후끈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참나무를 때서 숯을 만들고 난 후 그 가마에서 즐기는 숯가마 찜질은 아랫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최고의 건강 체험이다. 원래 숯을 굽는 가마는 숯을 빼내고 하루 정도 식혀야 다시 숯을 구울 수 있다. 이렇게 가마를 식히는 시간을 이용해 열기가 남아 있는 가마에서 찜질을 즐기는 것이다. 참숯찜질을 하면 황토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적외선이 몸 속 깊숙이 들어와 피로 회복은 물론 각종 질환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평일에도 숯가마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잖다. 참숯가마는 전국에 걸쳐 약 90여 개가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중 강원도 원주와 횡성에만 30여 곳이 몰려 있을 정도로 강원도는 참숯의 주생산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강원도 횡성의 '강원참숯'.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가마일 뿐 아니라 45년 경력의 참숯 장인이 구워낸 숯이라 품질도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참숯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값진 경험이다. 가마에 참나무를 빼곡이 쌓아 불을 지피는 모습과 닷새 동안 1300℃의 온도로 구워낸 시뻘건 참숯을 꺼내어 식히는 광경은 색다른 추억으로 남기에 충분하다.
참숯가마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참숯에 구워 먹는 삼겹살. 긴 삽에 삼겹살을 올려 불덩이 속에 넣어 순간 열기로 익히는 '3초 삼겹살'을 맛보는 것은 다소 힘들지만 숯가마 옆에 바비큐 시설을 마련해 놓아 참숯에 얼마든지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참숯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서너 평 남짓한 가마에 참나무를 빼곡이 채우면 보통 7~8t 가량의 나무가 사용된다. 참나무를 쌓고 나면 벽돌에 진흙을 발라 입구를 막는 '앞수리' 과정을 거친다. 우선 1m 가량 높이로 벽을 쌓고 그 윗부분에 불을 붙여 가마 안에 불을 지핀다. 잡목에 불을 붙이고 대형 선풍기와 풍로로 바람을 불어넣어 서너 시간 불을 피우면 비로소 가마 안 참나무에 골고루 불이 옮겨 붙는다. 좋은 숯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심한 불 조절이 필요하다. 불이 숯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열정이 숯을 만드는 것이다. 강원참숯의 서석구 공장장(69)은 올해로 45년째 숯을 만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숯 전문가. "저기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좀 봐. 처음에는 하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푸른빛이 돌지? 그럼 나무가 거의 다 탔다는 얘기야. 저러다가 이제 연기가 안 나. 그럼 숯을 꺼낼 준비를 하는 거야. 더도 덜도 아니고 딱 5일이야. 불 조절을 제대로 못하면 3일에도 다 타버리는 수가 있어. 제 자식 보듯 관심을 쏟아야 돼." 그는 자식만큼이나 숯을 아끼고 사랑한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듯 좋은 숯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아들인 서정원 씨에게도 평생을 벗 삼아온 숯을 가르치는 것이다. 대를 이은 숯 장인의 열정이야말로 강원참숯을 전국 최고로 만든 비결이다.
서석구 공장장은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불길의 색깔만 보고도 가마 안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한다. 오랜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고희를 앞둔 나이에도 불 조절만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직접 한다. 가마 안의 불 조절은 가마 위쪽의 종주 구멍과 입구 쪽의 조그만 선로 구멍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불구멍을 얼마나 열고 닫느냐에 따라 좋은 숯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다가도 가마가 궁금해 어두운 밤길을 재촉해 뒷짐을 지고 가마로 향한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밤에도 그의 발길은 무거운 법이 없다. 새벽 두세 시에도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마를 살피고 돌아오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장인 정신을 만날 수 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독 짓는 늙은이>의 한 구절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나무를 태운 지 6일째가 되면 가마의 아래쪽 입구를 허물고 숯을 꺼낸다. 이글거리는 불덩이 속에서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야, 잘 탔다. 이건 상탄이다. 요놈은 물건 좀 되겠네." 눈을 똑바로 뜨기도 힘들 정도로 강렬한 열기에 비 오듯 땀을 쏟아내면서도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기자 양반도 한번 해봐. 웬만한 연예인들 여기서 한 번쯤은 이거 안 해본 사람이 없어." 가마 안의 시뻘건 숯은 3~6m 가량 되는 기다란 막대기 부장대로 긁어낸다. 생각보다 무거운 부장대로 가마 안의 숯을 꺼내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저기 안쪽을 봐. 앞 쪽 숯은 빨가면서도 은빛이 나지? 저렇게 붉은빛이 빠진 숯이라야 꺼낼 수 있는 거야. 시뻘겋게 이글대는 놈은 아직 가스가 빠지지 않은 거거든. 저런 건 두 시간쯤 지난 후에 꺼내야 돼." 최근에는 숯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숯을 구입해가는 사람들이 많다. 참숯은 공기정화에서 살균, 해독, 탈취 효과까지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집 안에 두면 공기를 정화해 주고, 냉장고 냄새를 제거하는 등 유용하게 쓰인다. 숯이 적당히 잠길 정도의 물에 담가두면 가습기가 없어도 실내 습도 조절에 도움이 된다. 목초액은 살균 작용이 뛰어나 피부 질환 개선에 효험이 있다.
숯을 꺼내고 나면 다시 나무를 태우기 전에 하루 정도 가마를 식혀야 한다. 강원참숯에는 가마가 많아 매일 빈 가마가 생긴다. 이 가마에 사람들이 들어가 찜질을 하는 것이다. 평일에는 두세 개, 주말에는 대여섯 개의 가마가 사람들로 가득 찰 만큼 인기다. 겨울에는 보통 300명 가량이 이곳을 찾는다. 숯가마는 철근으로 골격을 세우고 안팎으로 황토를 발라 만든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온통 뒤덮은 황토가 숯의 열기와 기운을 내뿜기 때문에 도심에서 즐기는 찜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에 이롭다.
전국의 숯가마 중에서 찜질을 할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10곳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주일을 주기로 빈 가마가 한 곳 생기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업체에서는 매일 찜질할 수 있는 가마를 공급할 수 없는 것이다. 숯을 빼낸 다음 날 아침 숯가마에 들어가면 단 1분도 견디기 힘들다. 숯가마 안의 온도가 무려 200℃에 이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가운데 가마는 조금씩 식어 가지만 그래도 온도가 100℃ 가량은 유지된다. 때문에 숯가마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긴 옷을 입고 수건으로 몸을 이리저리 둘러야 한다. 우선 머리를 감싸고 등을 넓게 덮는다. 그저 동네 찜질방 수준으로 생각했다가는 잠시도 못 견디고 뛰쳐나오게 된다.
"하여튼 개운해요. 뻐근하고 쑤시던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몰라. 어깨 결린 거 있지요? 여기 몇 번만 들어갔다 나오면 싹 풀린다니까요. 달걀을 넣어두면 노른자부터 익어요. 그러니까 사람 뼛속까지 열기가 깊숙이 들어간다는 얘기지. 피부는 또 얼마나 부드러워지는지 몰라. 나 봐요, 얼마나 고와. 나는 서울에 사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온다니까." 숯이 발산하는 원적외선은 피부 속 깊이 스며들어 혈액 순환과 신진대사 촉진, 체내 노폐물을 배출시킨다. 숯가마 안에 있으면 뜨겁기는 하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진 않다. 황토와 숯이 숨을 쉬면서 습기를 빨아들여 쾌적한 공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또 땀에 흠뻑 젖어도 끈적거리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몸 속까지 뜨거운 기운이 스며들어 숯가마 밖에서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찜질의 효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찜질 후엔 바로 샤워하는 것보다 서너 시간 후에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