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하는 말이지만 여행의 묘미는 절묘한 해후(邂逅-오랜만에 만남)와
기막히게 맞닥뜨리는 조우(遭遇-우연히 만남)에 있다.
두메산골 푸서릿길을 걷다가 문득 고개 숙여 눈에 들어온 작은 풀꽃 하나,
바닷가 작은 방파제에서 만난 일흔도 넘은 해녀 할머니의 눈물겨운 사연 하나,
처음 가는 국도 변에서 찾아낸 손뼉을 칠만큼 절묘한 맛집 하나,
이러한 감칠 맛 나는 조우가 없다면 여행은 그저 노동에 불과하다.
여느 재래 시장이 그러하겠지만 부산 서면의 부전시장은 참으로 재미 있는 곳이다.
말도 많고 사람도 많지만 없는 것 또한 없는 게 부전시장이다.
무릇 시장은 항상 사람을 시장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장기를 해결 할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다.
오늘은 부산의 서면, 부전 시장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별미를 만난다.
부산에 사는 새조개는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두 손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한손으로,
꾸욱~!
부전시장은 신기한 곳이다.
부산의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서면의 요지에서
엄청나게 방대한 면적으로 그토록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재래시장이기에...
이 곳에 주상 복합을 올리면 그 값어치는 수십 수백 배로 수직 상승을 할텐데.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다 나름의 곡절이 있을 터.
어쨌건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현명한 나그네의 몫이 아니다.
최근, 부전 시장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투명 유리로 하늘을 가려 비맞음을 방지했다는.
하지만 상인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단다.
투명유리로 인해 여름에 사우나 못지 않는 찜통이 되는 탓에...
이 넓은 시장을 눈으로 하는 구경은 끝났다.
이젠 입과 허기진 내장을 위해 본격적으로 발품을 팔아야 할 시간.
눈동자의 흔들림이 하이에나처럼 바빠졌다.
너무나 먹고싶은 식재료가 많아서 차라리 괴로운 시간.
뭐니뭐니해도 부산은 해산물의 천국이다.
요즘 대풍이라는 멍게(우렁쉥이의 경상도 사투리였는데 이제는 당당히 표준말로 자리바꿈했다.
위대한 부산시민들의 우직한 힘 덕분이다).
메인 요리에 앞서 마중요리로 아주 조금(5,000원어치) 구매하기로 결정.
할머니의 노련한 손놀림에 의해서 즉석에서 껍질 해체후
언제든지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세팅 완료.
집나간 식욕을 불러내는 오묘한 때깔,
그리고 은은한 멍게 고유의 향내, 바다 냄새가 코끝에서 출렁인다.
아니, 그런데 네가 여기 웬일이니~?
여수 앞바다에나 있어야할 귀하디 귀한 네가 이곳 부산에 있다니...
반갑고도 놀라워라~!
조개의 귀족, 이름하여 귀족조개.
달리 불러 황금조개라 불리는 너는
새조개!
식감이 좋고 맛이 월등하여 일본인들이 목을 늘어뜨리고 환장한다는,
그래서 잡히는 대로 일본에 수출하는 바람에 한국인들은 감히 맛도 볼 수 없었다는,
남해 바다나 여수 가막만이나 여자만에 있어야 할 네가
여기 부산에~?
여기 부전 시장은 아는만큼 재미를 더할 수 있다.
고향을 버린 나 대신에 꾸역꾸역 부산을 지키고 있는 내 친구는
부전 시장의 활용법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오늘은 전권을 맡겼다.
부전시장을 즐기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
첫째는 식재료를 구매하여 집에 가서 만들어 먹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여기에는 직접 식재료를 손질하는 불편함과 설거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두번 째는 시장의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맛집을 급습하여 먹는 방법으로
단점은 각기 정량들이 있기에 여러 종류를 맛볼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이게 여기 부전시장의 숨은 맛의 비결이다.
즉, 신선하고 계절성 있는 식재료를 마음껏 적당량을 구매하여
시장의 골목마다 숨어 있는 이른바 양념식당에 들고 가는 것이다.
가서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끓이든지 굽든지 삶던지 볶던지,
혹은 맵게, 혹은 달게, 혹은 싱겁게 기호대로 요구해서 먹는 것.
이 경우,
식당에는 양념값(1인당2,000원)과 음료수(물론, 소주포함)값만 지불하면 된다.
해서....
우리는 욕심스럽게도 새조개를 3인분에 무려 15,000원어치,
그리고 시금치 반단(500원), 미나리1/3단(500원)을 사서
친구의 우렁찬 구호에 따라 발까지 맞춰가며
인근에 있는 양념 식당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바로 직행.
새조개 15,000원어치가 이런 접시로 무려 세 접시나 된다.
50마리가 넘는다.
나의 경험으로 이건 거의 복권 당첨에 가까운 가격이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이만한 양을 구매했으니...
세 사람이 실컷 먹고도 결국은 남았다.
단언컨대, 산지(産地)에서는 이 가격으로 절대 이만큼 못먹는다.
노량진 수산 시장이, 여기 부전 시장이
생산 현지보다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항상 갈 때마다 수수께끼이다.
새조개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가 식당에 주문한 내용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맹물 육수에 미나리와 시금치만 넣고 충분히 끓고나면,
(새조개 자체의 향취를 음미하기 위해서 멸치등의 육수는 금물)
바로 새조개를 넣고 6~10초만 데쳐서 건져낸 후...
(오래 삶으면 육질이 질겨서 식감이 현저하게 떨어짐)
매콤새콤달콤한 초고추장 듬뿍 묻히고...
같이 끓인 시금치나 미나리를 곁들인 후에....
필히 부산 소주 한 잔, 닭이 물 먹듯이 하늘보고 깔끔하게 원샷을 하면서...
소주가 식도를 타고 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로 입으로 직행~!
입에 넣는 순간,
씹는 맛은 상큼상큼, 혓바닥에서는 달큰달큰, 넘어가는 소리는 매끈매끈...
캬아~~~!
세상에 이런 맛이~!
갓 부화된 털 없는 새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새조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조개류는 하늘과 바로 호흡하는 개펄에서 채취하지만
새조개만은 수심 10~30m의 꽤 깊은 바다에서 산다.
그래서 형망어선(얼레빗처럼 생긴 갈고리를 달고 진흙층을 긁어서 잡는 어업법)으로
채취하고 대체로 겨울에 채취하며
산란을 하는 봄부터는 잡지도 않고 맛이 없어 먹지도 않는다고.
성패(成貝)가 되면 직경이 9~10cm정도이며,
필수 아미노산과 칼슘, 철분이 풍부하고 열량이 적고 지방이 적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새조개는 특히 메티오닌이라는 성분이 많아서
모발의 노화를 방지하고 윤기 촬촬넘치는 머릿결을 만드는데 혁혁한 효험을 지녔다나.
에그~! 여러모로 예쁜 것.
올해에는 7년 만에 대풍으로 일본에 수출을 하고도 남아서
이렇듯 머나먼 부산의 재래 시장에까지 어렵게 납시게 되었단다.
아직도 양식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서 어디에서 먹어도 순수 자연산.
특히 여수의 가막만과 여자만에서 잡은 새조개가 맛이 유별나다고.
맛좋고 예쁘기까지한 새조개는
조리법도 간단하다.
새조개는 껍질을 까서 뒷 부분의 내장만 제거하고(손으로 살짝 누르면 쉽게 빠져나옴)
데치거나 해서 초무침으로 먹어도 좋고 샤브샤브를 해서 먹어도 좋다.
새조개는 껍질이 많이 약해서 서로가 살짝만 부딪혀도 쉽게 깨어지므로
멀리 이동시에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원래 미인과 귀중품은 소중하니까요~!)
근데 넌 누구니~?
작고하신 새조개 옆에 눈에 보일동 말동한 쬐끄만 너는~?
에그머니나~
게~?
새조개가 삼킨 아기 게였던 것~?
소화도 시키기 전에 나포된 탓에 이렇듯~?
에궁~! 미안해서 어떡하니~?
항상 정갈한 마트와 에스컬레이트로 오르내리는 백화점의 찬란한 조명 아래에서
시장바구니를 채우는 도시인들에게 바닥에 마구 나열된 상품은 많이 낯설다.
고개를 굳이 숙이지 않고 허리 높이에서 손쉽게 구매하던 습관에서
허리를 굽혀가며 흥정을 하는 게 때론 요통(腰痛)을 유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추도 배추도 노지 시금치도 토란도 모두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땅에서 난다.
때때로 그 옛날의 우리 부모들이 그렇게 엎드려서 흙을 만져왔듯
우리 또한 허리 숙여 흙에서 나는 그들을 건져 올려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여기도 엄연히 정찰제다.
단지 다소의 차이가 있다면...
허리를 조금만 더 숙이면 덤이라는 깨알 같은 흐뭇함이 따라오고,
입가에 미소를 조금만 더 보태면 에누리라는 통쾌함이 줄을 잇는다는
자그마하지만 귀여운 차이가 있을 뿐.
감자 한소쿠리에 천원, 흙 묻은 국산 당근 세개에 천원, 파프리카 세개에 천원,
정구지(부추의 경상도말)도, 방풍나물도, 상추도, 배추도, 노지 시금치도 천원....
이처럼 저렴해서 좋은걸까.
소비자 가격이 저정도면 생산 농가에는 얼마나 돌아갈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비싸면 비싼대로 불편하고 저렴하면 저렴한대로 불편하다.
우산 장수와 소금장수를 같이 둔 부모같은 마음이 소비자 마음이라더니...
언제나 재래시장에 오면 입과 눈은 즐겁다.
맹렬히 호객하는 상인들을 보면 나태해지는 나를 편달하기도 한다.
더불어 생각도 많아진다.
그런데...
새조개를 다 먹고 난 지금은...
배불러 죽겠다~
첫댓글 "상큼상큼", "달큰달큰", "매끈매끈" 김작가님은 여행작가답게 언어를 맛깔나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의 현란한 언어구사는 역시 작가임을 실감케 하는군요. 새조개도 새조개이지만 오늘은
김작가님의 유려한 말솜씨에 아침부터 감탄을 하고 있는 덕무조아입니다. 감탄 좀 하고 나니 시장기가 몰려 오는
군요.^^부산엔 보물들이 참 많은 것 같지요. 곳곳에 볼거리, 먹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 말이죠.
아니지. 김작가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D-1 좋은 날이요!!!
덕무조아님의 칭찬에 기분이 하늘을 뚫습니다.ㅎㅎ
제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부산은 정말 숨은 매력이 많은 도시랍니다~♥
부전 시장 근처에 시신들이 많답니다.
새조개 먹고 배터져 즉은 고인들...ㅎ
그나저나 생일밥에 배불러 죽을 뻔 하지는 않으셨는지...
쇤네와 양력 생일이 똑 같으신 분~!
아. 해리슨로드님도 생신이셨군요. 하루 지났지만 축하드립니당.^^
저는 산 채로 송장될 뻔 했습니다. 생일빵에 배불러 죽는 줄 알았거든요.ㅋ
언젠가 작가님께서 양파와 삼겹살이던가? 불판에 이리저리 배모양도 만들고 하며 잼난 이야기 만들었던
그 글이 떠오릅니다..ㅎㅎ 새조개와 막~부화된 어린게...
하! 어쩌다 잡혀가지고 작가님의 배를 그리 불러놓게 하였는지~
술하곤 거리가 먼 저이건만 새조개 초장에 푹~찍어 두어잔 술 마시고 싶네요. 쩝쩝쩝!!
와우! 기억력도 좋으셔라.
변산반도에 있는 삼겹살집이었지요.^^
저에게 늘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시는 목마와숙녀님께 새조개 초장에 푹 찍어 술한잔 따라드리고 싶어랑~♥
재미있는 여행기에서 의미까지 느끼고 갑니다.
새조개요리법은 덤으로 챙기구요. ^^
재미, 의미, 요리법까지 모두 담아가신다면,
일석 삼조?? ㅎㅎㅎ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부산사람이라도 자갈치시장보다 부전시장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싱싱한 해물이 먹음직스럽습니다.
제 생각에도 자갈치시장보다도 부전시장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전시장과 자갈치시장을 과감히 비교하시는 걸 보면,
옐로미키님도 부산분??
새처럼 생긴 새조개 맛있어 보여요..쩝 ㅎ
재래시장 가격과 양이 참 착한게 언능 다녀와얄거 같아요 ^^
그쵸? 재래시장의 참맛을 알면, 대형마트는 안 가게 될 것 같아요.
이런 재래시장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 얼마나 부러운지...ㅎㅎㅎ
해산물이 푸짐하고 싱싱하고.....입에 침이 고이는걸요
푸짐하고 싱싱하고 저렴하기까지 하지요. ^^
맛도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