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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10분 출발. 날씨가 무척 찌푸린 날씨였습니다. ‘세월호’침몰 사고로 나라가 온통 침울한 상황에서 날씨도 흐리니 마음도 싱숭생숭한 느낌. 그 황량한 마음을 뒤로하고 강진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정일모 선생님의 제의로 잠시 ‘세월호’사고를 위한 묵념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유미숙 회장님 인사말씀 “30분들의 참여 예정이었지만 14분들 만이 가게 되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점심제공을 약속해 주신 신남춘 선생님과 기타 다과, 음식을 후원회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음을 모아 아름다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정읍IC를 통과하여 정읍으로 들어와, 고창으로 향하다 고창으로 들어서고 선운사IC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로 나왔습니다. 중간에 고인돌 휴게소에서 유나영 선생님께서 사주신 커피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갖었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 차창을 지나는 논과 밭, 산과 나무들의 봄의 풍경을 보다 또한 담소를 나누다 보니 월출산 부근을 지나 어느새 강진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산유물기념관 도착, 다산(茶山)에 대한 해설을 듣다. 11:00경.
다산(茶山)은 유배지 강진 등에서 총 600여권의 책을 저술. 목민심서(행정,정치), 흠흠신서(형법), 경세유표(경제)는 대표저서. 형법을 다룬 흠흠신서는 ‘99도둑을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쓰셨다 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임금은 임금이 아니다. 갈아치워야 한다는 사상도 가졌다 하십니다. 저서 마과회통으로서 의학에도 매우 조예가 깊으셨고, 다산초당(茶山艸堂)이라는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서 집자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중용 해설을 가장 잘 하는 당대 선비여서 정조에게 중용 강의했고, 과거시험에는 남인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네번?) 낙방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집안관련 어르신 이신 채재공이 입각(入閣)하면서 비로소 (차별 없이) 28세 급제하여 관직에 등용.
조선 선조시대에 이미 들어와 있던 천주교에 입교 활동하다 형님인 정약종은 책을 옮기다 발각이 되어 참형을 당하는 참변를 당하고, 황서영 백서사건인 일만사천자가 백지에 적힌글이 물에 담그면 보이는 글이었고, 중국을 거쳐 로마 바티칸까지 전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로마에 보관되어 있고 천주교 탄압을 완화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합니다. 수원화성은 다산이 설계하였고 다산이 고안해낸 거중기, 서울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겨오면서 수원화성을 정조는 축조했다 합니다. 성을 쌓을 때는 노역자에게 노임을 지불했으며 세계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됐고, 인삼판매의 허용층을 넓히고, 농사시범을 보이는 등 세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정조는 주었다 하였습니다.
황서영 백서사건으로 결국 강진으로 유배간 다산. 처음엔 사의재라는 곳에서 3~4년을 머물렀다 합니다. ‘천명을 죽이는 것보다 이 한사람을 죽이는 것이 낫다’라는 당시 고을 원님의 명에 따라 일체 음식, 의복을 스스로 해결하게 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주위 뜻이 있는 분들이 다산께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도록 배려하였다 했고, ‘남여(男女)가 다른가’라는 물음에서 인근 마을 주막의 주모에게서도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깨우침을 얻었다 하십니다. 다산초당은 원래 초가집 이어서 초가집으로 유지복원하려던 것을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의 의견으로 “그 뜻이 중요하지 건물에 있지 않다”하여 지금의 기와집으로 복원하게 되었다 합니다. 당시 고을의 양반자제를 가르쳐 18제자를 두었다 하였습니다.
다산사경(四景). 정석바위, 약천(藥泉, 뒤편 작은 옹달샘), 다조(茶竈, 마당의 크고 넓적한 바위),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초당옆 작은 연못). 정석(丁石)은 해배를 앞두고 다산이 바위에 색인 글, 도잠(도연명)의 귀거래사, 부여잠과 우임금처럼 중국에 헌신하듯 나라에 헌신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산이 배를 이용하여 도강하는 방책을 설계한 그림에서 배의 한쪽귀와 다른 한쪽귀를 반대로 놓는 다산의 섬세한 안목과 관찰에 대하여, 아내가 보낸 6폭 치마에 딸을 위해 그림(화조도)과 글을 적어주었던 유물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해설을 마쳐 주셨습니다.
11시34분경. 해설 해 주신 분과 사진을 한 컷 찍고, 걸어서 다산초당으로 향하였습니다, 꼬불꼬불 모과 꽃이 피어있기도 하고 약간 따분하게 느껴지는 빨강 황토 흙으로 나있는 내리막길을 지나기도 하다가, 前 강진군수님도 길목에서 잠시 만났습니다. 다산(茶山)의 저서에 군수님의 해설을 더하여 당신께서 저술한 책을 방문객에게 판매를 하고 계시는군요.
다시 울퉁불퉁 나무의 뿌리가 땅에 박혀있는 특이한 ‘뿌리의 길’을 지나, 12시 08분경 다산초당에 도착. 처음 와본 곳이라 신비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잠시 다산(茶山)의 생각에 취해 있다가 사진도 한 컷 찍고 백련사로 향하였습니다, 12시 15분경.
차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차나무 산길을 지나, 4월이라 봄꽃이 너무 아름답게 피어있어 그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흠뻑 젖고 잠시 눈과 마음이 호사를 누린 것 같습니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에 도착하였습니다, 12시 44분경.
해설사께서 미리 와 계셨는데, 이곳 동백나무숲은 7천 그루로 되어있고, 여수 오동도와는 달리 춘백이 핀다는 것이 차이가 있다. 동백, 춘백까지 피어있는 3월~4월 초순(?)이면 위에 핀 꽃과 땅에 떨어져 있는 꽃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무가 어떤 것은 울퉁불퉁한데 옛날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고 그 당시 화재로 인해 나무가 그 꼴이 되었다 합니다. 아픈 흔적. 오후에 가게 될 영랑생가에 있는 곱게 자란 동백나무와는 확연히 다를 거라 합니다.
13시 06분. 인상적인 부도탑이 있는 동백나무 숲을 떠나 백련사에 도착. 백련사는 옛 고려시대 때에 백년결사가 이루어진 곳이며 그 기념비가 여기 서 있는데 아래 귀부(龜部)는 고려시대에 위의 글씨는 조선시대에 다시 제작된 것이다. ‘귀부’가 보물의 가치가 있는데 부리무리한 눈, 귀, 굳게 물고 있는 이(齒牙), 힘차게 느껴지는 수염과 말린 꼬리. 옆의 고상하게 여의주를 물고 있는 귀부상과는 대조적이라 하십니다. 세종대왕의 형님이 되시는 효령대군은 이곳에서 8년을 머물며 불심수행을 하셨다 하십니다. 당시 이곳의 행호스님과 함께. 옛날 현판은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언제까지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음)라 하였으나 지금은 떼어 버리고 대웅보전 법당 안에 걸어 보관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대웅전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이란 글씨는 조선의 명필 이광사가 쓴 것이라 하고 이분의 글에는 물(水)이 들어있어 건물에 화재가 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하였습니다. 대웅보전의 설명을 끝으로 해설을 마쳐주셨습니다. 잠시 건물도 더 둘러보고 앞 바닷가도 바라보다, 점심식사장소로 향하였습니다, 13시 38분.
신남춘 선생님의 퀴즈. 부안 당산마루의 ‘웃고삽시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하하(下下), 허허(虛虛, 비우자), 호호(好好,좋아하자), 후후(厚厚), 헤헤(헤헤?, 놀자), 희희(喜喜, 즐겁다)에서 후후의 뜻은? ...
정답 - 도탑자.
13시 51분, 점심식사 장소에 도착. 강진만 한정식. 신남춘 선생님께서 점심을 내주셔서 식사를 맛있게 하였습니다. 바닷가라서 회가 한 접시 나왔고, 생선이나 바닷가 음식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강진청자박물관으로 출발 14시 50분 경,
15시 16분경, 강진청자박물관에 도착. 경매를 관람하였습니다. 전문경매사가 나와 이런 고가물품을 경매하는 자리는 처음이고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행욱, 정일모 선생님께서 멋진 모양의 청자(甁)를 얻어내셨고 저도 용기를 내어서 조그만 청자단지(壺)를 하나 얻어냈습니다. 청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표음불, 돋금불, 녹힘불, 피움불, 마감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과 명칭은 재기, 기법, 문향, 형태, 특색의 순으로 이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삼감기법은 빈 바탕에 음각을 새겨서 백색, 적색으로 채워 넣는 기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청자박물관을 나와 마량항으로, 16시 05분경.
16시 18분 경 마량항에 도착. 마량(馬梁 또는 馬良)이라는 명칭은 옛날 제주에서 말을 육지로 가져올 때 그 다리 역할을 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 이태리는 안 가봤지만 그곳 만큼 아름다운 미항이라 합니다. 프랑카드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당초 갖기로 했던 시낭송 등 행사는 ‘세월호’ 가고로 모두 취소되었답니다. 마량항에서 바라보이는 고금도는 옛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 이후 수군진영을 구축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16시 52분 김영랑 문학관으로 출발.
17시 20분 김영랑 문학관에 도착. 마침 모란이 피는 시기여서 모란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였습니다. 백련사 해설가님께서 말씀하신 김영랑 생가의 반듯한 동백꽃도 보고. 생가 옆에는 전주의 ‘전북문학관’과 같은 시설로 보이는 ‘시문학파 기념관’이라는 시설이 있었습니다. 영랑은 북(北)의 소월과 함께 남(南)의 민요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고 노래한 영랑의 마음을 생가 대청마루에 앉아 느껴보았습니다. 17시 41분 전주로 출발.
돌아오는 길. 소감도 듣고, 시낭송도하고 ‘만남’이라는 노래도 같이 열창해보며 ‘문학기행’을 마쳐야 한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19시 50분경 전주종합경기장에 도착. 캄캄한 저녁. 당초 예정보다는 1시간 20분 가량이 늦어진 시각이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나라와 백성을 근심하며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학문에 몰두했던 다산(茶山)과 만나고, 백련사 앞 마당을 거닐며 구도의 깊은 고뇌의 나날을 보냈셨을 효령대군, 청자의 아름다움과 예술혼, 마량항의 부흥과 문전성시(門前成市)의 영화(榮華), 따가운 햇빛 비추는 날 마루에 앉아 모란을 응시하며 ‘모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상상했던 영랑. 옛 선현(先賢)들의 이상과 꿈에 대한 불꽃 같은 열정은 영원히 불멸(不滅)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산초당 오르는 길에 있었던 '뿌리의 길'(정호승)의 시(詩)로 2014 문학기행 후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뿌리의 길
정 호 승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 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닦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 할
길이 되어 눕는다
이상, 끝.
첫댓글 행사에 부득히 불참했지만, 훌륭한 후기가 있어서 한참 후에라도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가능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