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마애불/박경임-
삼국시대부터
바위 속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부처님
아직도 나오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 뒤쪽은 못 나왔는데
그래도 좋은지
웃고 있다
<감상>
몇 년 전부터 ‘올해의 일’을 정해 일 년 동안 같이 살아 본다. 지지난해에는 ‘음악이 될 때까지’, 지난해에는 ‘외우기 쉽
고 외우고 싶은’이란 말과 살았다. 올해는 ‘천천히 오는 기쁨’으로 산다. 영영 안 오는 게 아니라 다만 천천히, 아주 천천
히 오고 있다는 생각은 묘한 위안을 준다. 니체의 말처럼, 중심은 어디에나 있고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 있으니.
이 작품을 신춘문예 심사 자리에서 만났을 때 무척 유쾌했다. 같이 심사한 송찬호 시인과 킥킥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서산마애불」은 대상이 지닌 수많은 속성 중 하나를 절묘하게 훔쳐낸 작품이다. 시와 다른 동시만의 적정 규모, 형식
과 내용을 재어 보기에도 맞춤하다. 동시는 시가 되어서가 아니라 “동시가 됨으로써 시가 되는 것”(이오덕)이니까.
-이 안(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