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내내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다. 목표로 했던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했을 때.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현실이 됐다.
클린스만호가 진군을 멈췄다.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4강에서 0대2로 졌다. 63년간 가지고만 싶었던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는 또 다시 멀어지게 됐다.
#우리가 분노하는 포인트
경기 종료 휘슬 직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끝인가 싶었다. 우선 주말에 있는 토트넘과 브라이턴 경기 취재 신청부터 했다. 그리고 카타르 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비행 스케쥴을 바꿨다. 숙소에 돌아온 후에도 그냥 공허함이 계속 됐다. 역시 이렇게 끝난 것이구나. 그냥 헛헛했다.
자기 직전 분노가 몰려왔다. 공허에서 분노로 바뀌는 시간이 조금 길었다. 차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분노하는가.
우승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결승에 가지 못해서도 아니다. '요르단'에 져서도 아니다. 분노의 포인트는 '역대급 졸전'이었기 때문이다.
요르단은 만만한 팀이 아니다. FIFA 랭킹은 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을 무시할 근거는 아니다. 더욱이 4강까지 올라왔다면 강팀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요르단을 상대로 무기력했다. 골대를 한 차례 때렸을 뿐이다. 유효슈팅은 '0'이었다.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처절한 패배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분노의 대상은 리더십. 감독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지근거리에서 본 결과 '사람은' 좋았다. 대회 기간 내내 사흘에 두 번씩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게 현혹되기도 했다. 현란한 말솜씨. 사람좋아보이는 미소. 슈퍼스타 선수 출신이자 성적을 냈던 감독이라는 배경에 눈이 더 갔다. 원칙론에 입각한 말빨로 기자들의 질문을 요리조리 피해갔다. 클린스마 감독의 말빨에 현장에 있는 취재기자들끼리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스만이 형. 말을 너무 잘해서 빠져들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사이비 교주 혹은 다단계 회사 다이아몬드 등급일 거예요."
4강전 패배. 그것도 역대급 졸전 덕분에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번지르르한 말 뒤에는 초라한 현실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