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견 : ① 할아버지는 어떤 교육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P64)
②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랐다.(P70)
③ 우리는 무슨 일이 있든 공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P72)
④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뉘어져 있었다.(P72)
⑤ 나는 무슨 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P72)
어려서부터 우리는 이런 말을 무수히 들어왔다. 어린 시절 밖에서 뛰어놀고 싶어서 숙제도 안하고 나갔다 오면 부모님들은 언제나 “나중에 거지로 살기 싫으면 공부해라.”라는 말씀을 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물론 자아성취나 지식의 습득을 위해서 공부하기도 한다. 그러지만 대개는 자신이 나중에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가정생활을 생각하면서 공부를 한다. 자아성취나 지식의 습득도 교육에서 주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출세해서 그리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무시할 수 없는 교육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 가운데 하나이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자식들의 공부를 위해서 안 먹고 안 쓰고 그렇게 돈을 모아 이런 저런 공부를 시키며 명문대로 가기를 바라고 어디 가서 떵떵거리며 살기를 바라신다. 이렇게 해서 농사를 많이 짓던 60~80년대에는 대학생자녀를 둔 부모들은 소를 팔아 학비에 대어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예전에는 부르기도 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명문대에 가면 부와 명예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공의 희망이며 이 희망은 교육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나뉘어 있지 않다.(주제의견④) 돈 있는 자와 돈이 없는 자로 나뉘어진 세상이 되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앞으로는 난쏘공으로 지칭) 중 난쏘공 부분에서 큰아들인 영수는 동생인 영호와 영희에게 자신이 생각하기에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판을 돌고 가 몇 벌씩 교정쇄를 내기도 했다.‘는 부분이 있다.(p.73) 이 때 당시 모두들 가난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공부를 했고 주인공 가족도 그 당시의 시대상을 재현하듯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책을 읽고 새로운 지식을 배워나갔다. 그들은 그런 노력의 결과로 고입 검정고시를 거쳐서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그들은 공부를 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옥같은 삶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들의 일상은 본문의 내용 중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라는 부분처럼(P57)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는 것은 교육뿐이라 생각하고 공부에 매달렸고 가식적인 성과도 이룩했지만 있는 자들에게는 그물에 걸린 벌레의 처절한 몸부림과도 같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식이 아니라 돈이 중시되는 사회이다. 그들이 배우고 습득한 지식들은 그들의 집이 철거될 때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내 자신에게 자꾸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어떠한가?
그들의 삶과 다른 것이 있는가?
교육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주고 있는가?
이제 곧 수능시험이 다가온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점수가 알려지면 방송매체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수석합격자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들은 매년 한결같다. 철저히 예습과 복습을 하고 수업시간에 졸지 않으며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방송매체에서는 사교육이 난리다 공교육이 무너진다. 난리를 칠까....
더 이상 우리는 교육에서 희망을 찾을 수가 없다. 배움에서 우리가 바라는 희망들은 이제 높은 벽들이 가로막아서고 있다. 그 벽은 다른 아닌 금전의 벽이다. 그 벽들은 우리가 바라보던 희망들을 송두리째 가리고 있다. 더 이상 쳐다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아직은 바늘구멍 같은 길이 남아있기에 말이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은 아직은 남아있는 그 바늘구멍 같은 길로 가기 위해서 아웅다웅 거리고 있는 자들은 너무도 쉽게 그 길을 간다. 이것은 교육에서 우리가 찾으려는 희망이 아니라 발버둥일 뿐이다.
주제의견③처럼 우리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육의 희망도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교육이 주는 희망을 부와 명예로만 생각한다. 학문의 연구를 통한 지식의 탐구는 더 이상 지금의 대학생에게는 달나라에 토끼가 산다는 얘기처럼교육이 주는 희망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학문의 연구가 진행 되어야할 대학교에서는 지식의 탐구가 아닌 입사시험, 공무원시험 준비에 밤늦게 까지 불이 껴져있고 기본적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중․고등학교에서는 명문대를 가기 위한 입시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것을 보고 반문 할 수 있다. 그것이 교육이 주는 희망이 아닌가라고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최악으로 가지 않기 위한 인간다운 삶이 아닌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지 않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한 발악일 뿐이다. 주제의견①처럼 옛날에는 교육에서 희망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수가 무지했던 시기 그 당시는 교육의 희망은 퇴색되어 있지 않았다. 교육의 기회가 없었을 뿐 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희망은 얼마든지 얻을 수가 있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누구나 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일정한 교육의 질을 무상으로 제공받는 지금의 시기는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
어렸을 때에 꿈은 누구나 과학자, 대통령, 학자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꿈들은 점점 벽에 가로막혀 간다.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 나오는 데에는 그리 긴 세월이 필요하지가 않다. 우리는 이제 교육에서 희망을 찾는 것에 지쳐가고 있다. 난쏘공을 보면서 내 자신이 불쌍해진다. 난 지금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는가? 난 교육이 주는 희망이 아닌 내가 말하는 것 같은 발버둥을 치는데 그치지 않는가. 라는 반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