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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용암동 1380번지. 개성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한 이곳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공간이 있다. 초롱이네 도서관. 자그마한 앞마당과 예쁜 숲 사이에 위치한 통나무집이다. 숲 속 산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곳은 벌써 10년 넘게 동네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도심 속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을 지난 6일 찾았다.
◆아파트 서재에서 출발… 2년 만에 3층짜리 통나무 건물로
초롱이네 도서관은 청주 원봉초등학교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주택가에 있지만 통나무집이 흔하지 않은 덕분에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대문 옆 작은 간판도 이 공간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다.
도서관이 문을 연 건 지난 1988년 겨울이었다. 시작은 오혜자 관장의 아파트 마루였다. “딸을 위해 마루에 서재를 만들었어요. 동네 아이들과 책을 돌려 보면 좋겠다 싶어 낮에 서재를 개방했죠. 방문자 수가 점점 늘고 책도 많아지면서 도서관의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어요.”
도서관 명칭은 오 관장의 딸 윤초롱 양(18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오 관장은 “(도서관의) 출발이 딸의 서재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초롱이’란 이름이 또래 어린이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말했다.
초롱이네 도서관은 문 연 지 얼마 안 돼 주변의 입소문을 탔다. 이웃들의 기증 도서도 늘어났다. 1년쯤 지난 후엔 체계를 갖춘 도서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문고(현재의 ‘작은 도서관’) 등록을 마쳤다. 도서관 등록의 법적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1000권 이상의 책을 갖춰야 한다. 지난 2000년엔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늘려야겠다는 고민 끝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초롱이네 도서관은 3층으로 구성돼 있다. 층별 면적은 약 99㎡(30평). 1층은 어린이 열람실, 2층은 학부모를 위한 공간, 3층은 오혜자 관장의 집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보유하고 있는 책은 8500권이나 된다. 등록 회원은 약 1300명. 웬만한 공공도서관 부럽잖을 정도다. 오혜자 관장은 “장서량(藏書量·보관 중인 책의 양)을 1만권까지 늘릴 수 있지만 책이 필요한 복지관이나 공부방, 다(多)자녀 가정 등에 정기적으로 기증해오는 분량이 있어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처럼 편안한 도서관… 매년 가을 ‘동화 책잔치’도 열어
초롱이네 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은 ‘집처럼 편안한 도서관’이란 점이다. 따뜻한 온돌마루, 벽면에 걸린 아기자기한 사진과 캐릭터 인형 등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어린이 관람객에게 인기 있는 공간은 복층 서가(書架·책을 꽂아두도록 만든 선반). 숨겨진 구석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배려해 계단 아래 공간에도 책을 놓고 조명을 설치했다. 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들여온 책이 놓이는 곳도 여기다.
이날 도서관에서 만난 홍예찬 군(충북 청주 용성초 4년)은 “동생과 함께 올 때마다 매번 계단 아래쪽부터 찾는다”고 말했다. 동생 홍예준 군(충북 청주 용성초 2년)은 “좋아하는 위인전이 계단 아래 책꽂이에 특히 많아 여기에 자주 온다”고 했다. 1층엔 책 읽다가 잠시 쉴 수 있는 어린이 카페와 커다란 탁자도 마련돼 있다. 어린이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층계마다 붙여놓은 미끄럼 방지 테이프에선 오 관장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2층에선 주로 학부모들의 모둠 활동이 이뤄진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이 책 읽는 재미를 느끼도록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곳이다. 대부분 도서관 초창기 때부터 활동해온 이들은 ‘책문화활동가’로 불린다. 물론 전원 자원봉사자다. 이들의 노력은 다양한 형태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복지관·공부방 등 도서관 혜택을 받기 힘든 어린이들을 찾아가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은 벌써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초롱이네 도서관 소속 책문화활동가는 20~25명. 요즘도 매주 세 명씩 팀을 나눠 지역 내 6개 복지관과 공부방을 방문한다. 오혜자 관장은 “도서관을 가까이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독서를 단순히 ‘글 읽기’로 생각한다”며 “책을 읽는 방법이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게 방문 봉사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초롱이네 도서관이 매년 가을 청주 상당공원에서 열고 있는 ‘동화 책잔치’도 새로운 독서법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잔칫날이 되면 어린이들은 각자 감명 깊게 읽은 동화 속 캐릭터 분장을 하고 등장해 역할 놀이를 즐긴다. 오 관장은 이런 행사가 어린이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깨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책은 무조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거란 생각은 독서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동화 역할놀이와 같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책과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진짜 독서교육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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