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25/지난 신문 읽기]‘신문의 꽃’은 문화면文化面
달포치 지나간 신문을 이틀에 걸쳐 한꺼번에 읽었다. 신문을 구독까지 해 읽고 싶은 생각은 귀향하면서 애시당초 없었다. 하지만 어디서든 신문을 보기만 하면 여전히 반갑다. ‘잃어버린 세계’가 나에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만큼 신문은 내 일상의 ‘앙꼬 찐빵’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26살부터 45살까지 신문과 ‘한몸’이 되어 살았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청춘을 종이신문에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게다가 신문사 이후의 직장이 ‘홍보弘報’였다. 기자가 갑甲이라면 홍보맨은 을乙이라 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갑에서 을로 위치가 전락轉落된 기분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그런데도 나는 아주 무난히 잘 적응하여 유능한 홍보맨이 되기도 했다. 정치도 마찬가지지만, 언론이 언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선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엔 ‘기레기’ 운운하는 말에 귀를 닫고 싶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자고로 기자가 배가 부르면 안된다는 말이 ‘진리’여서일까?
그건 모르겠고, 어쩌다 자동차 수리건으로 임실읍 입구 카센터를 찾으니 지나간 한겨레신문이 몽땅 쌓여 있다. 가져가도 되겠냐니까 오케이다.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안락의자에 앉아 지나간 신문 들추기에 딱이다. 정치, 사회,경제면 등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나는 무조건 뒤에서부터 읽는데, 칼럼도 대부분 외면하고 ‘사람들’면과 ‘문화면’만 집중탐구한다. 꼭 알아야 하는데 모르고 지난 뉴스들을 만나면 반갑다. 이를테면, 젊어서 나의 ‘우상’같은 인물들의 소식 말이다. 물론 공중파에서 거의 커버는 한다해도 ‘비하인드 스토리’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어제 발견한 3가지 소식은 이렇다. 첫 번째, 김지하시인 추모문화제가 있었나보다. 시인과 52년의 우정을 쌓았다는 일본 문예평론가 미야타 마리에(86. 중앙공론 전편집장) 여사의 추모사(원고지 40장분량)를 소개한 인터뷰기사를 자칫 놓칠 뻔했다. 이 기사를 통해 몰랐던 사실들을 아는 것은 작은 기쁨이었다.
두 번째, 이어령 박사의 육필 유고집 <눈물 한 방울>이 출간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암하고 ‘친구’가 되면서 2019년부터 별세 한 달 전인 2022년 1월 23일까지 대학노트에 쓴 직접 쓰고 그린 명상록이랄까, 시같은 글들. 박사는 어머니 영정을 바라보며 왜 통곡을 했고, 무엇을 남기려 고통 속에 글을 썼을까?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보야겠다. 세 번째 106세 최고령 현역화가 김병기화백의 별세소식이다. 한국 현대미술사를 한눈에 보는 듯했던 그분의 연재글을 재밌게 읽었던 게 수년 전이다. 1916년생, 106세라니? 별세 한 달 전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해방이전 이중섭화가하고도 친구였다. 아, 이렇게 한 명, 두 명, 이 시대 ‘거물’‘거목’ ‘거인’들이 돌아가는구나 싶다.
아무튼, 나는 ‘신문의 꽃’은 문화면文化面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면을 보고나면 나는 신문을 던져버린다. 정치는 식상을 넘어 구역질이 나서 못읽겠고, 경제는 완전 문외한, 사회는 왜 이리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켜 시원스레 풀리는 일이 없는지 모르겠다. 문화는 다른 말로 하면 문학까지 포함한 예술이 아닌가. 그리고 사람사는 사회인만큼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제나 나의 흥미를 끈다. 사람을 좋아하기에 그만큼 ‘마음의 상처’도 많이 입는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아니, 그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스토리가 없는 삶은 도무지 밋밋하다. 너무 단조롭다. 스토리가 없으면 무슨 재민겨? 라고 생각하는 습성이 있다. 그 스토리에 울고 웃는 게 우리의 삶이 아닐까. 송대관의 <네 박자> 노랫말이 시사하는 게 크다. 신문의 사람들면과 문화면에는 그런 사람들의 애환哀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기완, 이어령, 김지하, 김병기, 송해 등등등등. 달포치 일간신문을 한꺼번에 읽은 나의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