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강남 예배당에는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현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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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목사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힘을 쏟는 동시에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를 지속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초창기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는 자신들을 또 다른 '교회'로 정체화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 '예배'라는 말을 쓰지 않고 '마당 기도회'라는 말을 그대로 썼다. '분리 예배'를 처벌하는 교단법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 사랑의교회 교인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담임목사에 대한 입장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김근수 집사나 김성만 집사의 생각처럼,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가 진짜 사랑의교회 정신을 잇고 있다는 '본류 의식'이 있다.
운영 차원에서 봐도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는 특이했다. 사랑의교회가 서초 예배당으로 이전한 2013년 11월부터 8년 넘게 매주 다른 설교자를 초청해 마당 기도회를 해 왔다. 8년 넘게 매주 다른 사람을 설교자로 섭외한다는 것은 그만한 조직력과 실행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어떤 분쟁 교회도 이렇게 하지는 못했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는 복음주의적 신앙·신학을 견지하면서도 교회 개혁에 동의·동참하는 목회자 및 교수를 많이 초청했다. 반대로 말하면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 설교하러 온다는 사실 자체가 그 목사·교수의 성향을 보여 주는 일이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목회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모든 목회자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교인들은 오히려 마당 기도회에 설교하러 와 주는 이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 설교하러 오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랑의교회와 같은 초대형 교회는 한국교회 전반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친다. 가뜩이나 학연·지연이 많이 작용하는 목회자 사회에서 사랑의교회와 척지는 일은 좋을 게 없다. 사랑의교회가 속한 예장합동 교단 목회자라면 징계도 각오해야 했다. 실제로 예장합동 소속으로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서 설교했던 이남정·정준경·진화용 목사 등은 사랑의교회가 속한 동서울노회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섭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주 다른 목회자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큰 혜택이었다. 오 목사 설교와의 수준 차이는 둘째 치더라도, 강남 대형 교회만 다녀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다양한 설교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예장합동 소속 교회에서는 잘 들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치와 사회문제 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설교자들이 있었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가 이어져 온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대통령이 탄핵됐으며,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었고, 이태원 참사라는 또 다른 인재를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신앙 따로, 정치와 사회문제 따로 생각할 수가 없다. 미덕이 되지 않는다며 말하지 않는 것보다 건전한 성경적 시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의교회는 제자 훈련으로 유명했을 때도 '부자 교회'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옥한흠 목사도 이를 고민한 바 있다. 물론 모든 교인이 부유한 것은 아니었으나, 지리적 특성과 규모를 봤을 때 소득과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은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이 곧 기득권이다.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 중 하나인 예장합동 소속에다, 서울 강남이라는 지리적 특성, 출석 교인 3만 명이 넘었던 '메가 처치'에 다니는 사람들이 정치적·사회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지 않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는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 속한 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갈등이 터져 나올 때도 있었다. 간혹 설교자들이 설교 내용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보수 정치권의 정책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예배당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일생을 목회와 복음주의 사회 선교에 헌신해 온 강경민 목사가 설교 시 보수 정권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을 때,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교인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예배가 끝난 후 강경민 목사 면전에서 그를 대놓고 훈계했다. 설교 내용을 두고 교인들 사이에 말이 많아지자, 설교자 섭외를 맡은 팀에서 교인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를 돕기 위해 온 설교자에게는 상당히 모욕적인 일이었다. 강경민 목사는 2016년 7월 이렇게 썼다.
"내가 갱신위에 대해 오해했던 것은 그분들이 참으로 '신학적 회심'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는 점이다. 선입견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분들의 대다수를 반오 그룹이라고 말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오 목사의 행태가 너무나 실망스럽기 때문에 반오의 편에 서기만 해도 일정하게 개혁 그룹이 된다는 것은 슬픈 진실임에 틀림없다. 그런 정신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여전히 응원하고 싶다. (중략)
사랑의교회갱신위에 속한 교인들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리고 싶다. 당신들은 반오 정신 때문에 그 고통스럽고 지난한 싸움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옥한흠 목사님이 가르친 제자 훈련의 정신을 살려 보자는 신앙적 몸부림 아닌가! 옥 목사님의 제자 훈련은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회복하자는 거다. 문제는 삶이다. 예수의 삶을 위해 제자 훈련이 필요한 것이지 제자 훈련을 위해 예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세월호 참사도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원하는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정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정치와 관련한 일이었다. 그리고 진실 규명에 적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외면하려 했던 정권들은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일부 교인은 보수 정권을 비판하는 것에 공공연하게 불편함을 드러냈다. 급기야는 몇몇 설교자가 달고 온,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배지' 자체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에서조차 세월호가 금기어처럼 돼 버린 현실에 대해, <뉴스앤조이> 김종희 전 대표는 2016년 4월 이렇게 쓴 바 있다.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은 어쩌면 다행이다. 몇 년째 좋은 설교자들을 돌아가면서 초청해서 듣는다. 분쟁을 겪는 교회가 장기간 이렇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도 뭐가 옳은지 모른 채 탐욕에 지배당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소름이 돋을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지금이 더 감사한 상황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고만 있을 것인가. 슬픔과 분노에만 잠겨 있을 것인가. 매주 좋은 설교만 듣고 있을 것인가. 소송전만 벌이고 있을 것인가. 절대로 멈추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품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손이라도 잡아 보았는지 궁금하다. 안산에 가서 그분들을 안아 보았는지, 단원고 교실에 가서 눈물을 쏟아 보았는지, 광화문에 가서 촛불 예배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아마 그분들을 만나고 나면 '지금 내가 당하는 이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억울하게 종북, 좌빨, 빨갱이로 매도되고 있는가.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 교인들도 그런 매도를 당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은 억울하면서, 세월호 가족, 위안부 할머니, 밀양 할머니,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처참히 짓밟히는 것에 무감하다면, 그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내막도 모르면서 단정적으로 썼을지 모르겠다.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희망이 있다. 사랑의교회의 진정한 개혁의 완성은 나쁜 놈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가족으로 상징되는 이 땅의 수많은 을들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것이다.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제자 훈련'은 그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긴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그로부터 7년이 지났지만,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설교 시간에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민감한 일이다. 외부 설교자에게 여전히 "정치적·사회적 이야기는 삼가 주시길" 부탁한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괜한 내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한 인간의 삶에 전인격적 영향을 미치는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삶과 분명한 영향을 주고받는 정치와 사회문제를 억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 또한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신앙이 정치에 뒤지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김성만 집사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는 보수적인 이야기든 진보적인 이야기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강단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왜 신성한 강단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는데, 사실 본인이 그 순간 정치적으로 반응하는 거거든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럴 땐 그냥 설교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고, 그래도 공동체 내에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절차를 밟아서 공론화하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사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일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갈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 또한 이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아니 어찌 보면 교회 안에서 더욱 갈등이 첨예하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지점이다. 이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교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교회에서도 복음이 아니라 정치 논리가 우선시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갈등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는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뿐 아니라 모든 교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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