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 순간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저께 업무상
목포에 가서의 행각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더부룩해지고 머리가
어질 한 느낌이 든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우정 타 보고 싶어서 목포까지 차를 몰고
갔다. 평일이라 뻥 뚫린 고속도로는 고속도로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했다. 매스컴에서 보았던 서해대교의 위용은
휴게소에서 올려다 볼 때에야 실감할 수 있었다.
목포에서의 일을 간단히 끝내고 우리는 비하인드 워크에 들어
가기 위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 일은 서울, 인천, 부산에서
각각 2명씩 파견된 합동작전.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는
군사 관련이나 정보기관의 일은 결코 아니며, 일반 사업도
아니다. 그렇다고 불법을 범하기 위한 범죄행위는 더더구나 아니다.
목포는 익히 알듯이 먹을 것이 많은 곳. 그래서 우리는 목포의
명물을 먹을 것이라는 희망을 모두가 염원하고 있었다.
숙소를 정하기 위해 하당 방면으로 차를 몰다가 해양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우리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걸신들린 사람이 아닌 바에야
문화 탐방으로 정신적 만족을 우선시한다는 자기 최면을 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해양박물관은 해양 동식물 표본을 전시한 곳이지만 남농의 작품과
수석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그 외에 각국 화폐 등 많을 것을 전시
해 놓았지만 아무래도 눈길은 남농을 중심으로 한 운림산방의
작품들에 많이 갔다. 운림산방이란 남종화의 거두 소치 허련이
진도에 만들었던 화실을 그 손자인 남농이 재건한 것. 4대에 이르는
집안에서 그러한 화풍을 이어오고 발전시킨 역사는 가히 국보적
이지만 우리는 고호나 고갱을 더 많이 배운 어리석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 감상도 배가 불러야 하는 법. 우리는 화폐
전시실이나 해양생물 전시실은 건성으로 보고 서둘러 나왔다.
폐관시간이 임박하여 관리인이 따라 나오면서 문을 잠그는 탓도
있었기 때문이다.
목포의 명물은 무었일까? 일행은 의논을 했다. 목포 세발낙지,
민어회, 홍탁 어느 것을 먹을 것인가 하고.... 나는 단연코
민어회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세발낙지와 홍탁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어 타지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지만 민어회만큼은 목포가
아니면 먹기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숙소를 잡는 동안에
부산에서 온 심형이 민어회집을 알선받기 위해 목포해양대학에
교수로 있는 친우에게 부탁하였다.
그러나 애당초 타겟으로 하였던 민어횟집-크지는 않지만
민어회의 진수를 알수 있는 곳이라 함. 민어회만 시키면 술은
얼마든지 공짜-이 어찌된 영문인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하여
직접 찾아와 다른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지금부터가 우리의 행각기이다. 민어회는
국내산 선어회로 먹는다. 일반적으로 회라면 활어, 즉 살아있는
고기를 썰어 먹어야 싱싱하고 맛있는 것으로 알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회는 활어보다 선어가
훨씬 맛있다. 소고기도 잡아서 하루 정도 숙성을 시켜야 맛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회도 마찬가지. 그래서 민어회가 맛있다는 것이다.
선어기 때문이다.
민어는 채반에 가지런히 썰어 나온다. 길쭉길쭉하게 썬 민어는
그 살색깔에 그만 반해 버린다. 여늬 회와는 달리 살 색깔은
영락없이 빨간 도화빛이다. 아니 진달래 색깔이라고 하면 더
실감이 날까? 이런 환상적인 색깔을 띤 길게 썬 민어회를 한점
집어들고 입에 넣으면 다음에는 그 씹는 맛에 뿅 가버리게 된다.
기본적으로 쫀득하면서도 약간 질긴 맛이 있기 때문에 씹힘성이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얼마 씹다보면 뭉그러지는 여늬 회와는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을 지속할수가 있다.
민어회가 나오자 마자 술이 따라 나왔다. 고형은 목포에 온
바에야 술은 잎새주로 하자고 했다. 아, 잎새주. 기존의 소주보다
한잔 가량 작지만 그 술병의 모양은 너무나 세련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잎새주 한잔에 민어회 한점. 일행 7명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민어회와 잎새주를 비워 나갔다. 채반에 수북히
썰어 놓은 민어회는 먹어도 먹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잎새주병은 쌓여만 가고 민어회가 거의 바닥을 보일
무렵 술병은 길게 줄을 지어 방구석에 도열해 있었다.
이날 밤 마신 잎새주가 14병.
거나해진 일행은 2차로 홍탁집을 순례하기로 하였다. 일행은
택시를 타고 유명한 홍탁집으로 향했다. 당연 안내는 고교수.
목포에서 유명한 인동주 홍탁주집이다. 인동주란 인동초와 섞어
만든 홍탁용 막걸리이다. 방안에는 인동초 사진과 남농의 그림
한점이 다소곳이 걸려 있었다. 막걸리는 분위기에 맞게 커다란
항아리에 담겨져 왔다. 잔도 큼직한 뚝배기 잔. 드디어 홍어회가
나온다. 홍어는 모두 알다시피 그 쏴아한 쏘는 맛에 맛의 진미가
있는 법. 우리는 인동주를 높이 들었다. 서울, 부산, 인천,
목포의 대표주자들이 모였다고... 그리고는 목포삼합을 만들기
시작했다. 목포삼합이란 홍어, 돼지수육, 묵은 신김치를 함께
먹는 것. 그리고 인동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것. 홍어, 돼지수육,
묵은 신 김치를 한 세트로 입에 넣으면 우선 입안이 꽉 찬다.
그것을 우걱우걱 씹으면 혀의 움직임에 따라 한순간 홍어의
코를 쏘는 맛이 감돌고 또한번 혀를 돌리면 이번에는
돼지수육의 구수한 맛이, 또 한번 혀를 돌리면 이번에는 시큼한
김치 맛이 입안에 남는다. 삼합을 다 씹으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는데 나중에는 세 가지 맛이 버무려져 독특한 맛을 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목포삼합의 진미이다. 목포삼합을 삼키고
나면 인동주를 다시 한 모금 마셔 입안을 헹구면 정말 무엇을
먹은 것같은 포만감을 몸으로 느낄수가 있다. 이렇게 한잔하고
또 한잔하고, 인동주 항아리는 주방으로 쉴새없이 들낙거렸다.
그리고 목포 삼합을 먹을 수록 그 쏘는 맛도 우리 몸에
동화되어 순화되어 갈 즈음 우리들의 의식도 점점 엷어져만
갔다. 마치 남농의 수묵화에서 섬세한 운무 속으로 빠져
들듯이 우리의 의식도, 웃음소리도 점점 희미해져
가기 시작하였다.
이튿날 눈을 뜬 것은 호텔 방 한가운데. 우리는 어느 누구할
것 없이 목포 삼합에 인동주를 마시면서 자연과 동화되어
유달산의 신선이 되어 노닐다가 다시 지상으로, 현실세계로
되돌아 온 것이다. 호주머니에서 계산서가 집혀져 나온다.
인동주 6단지를 마셨다. 잎새주 14병에 인동주 6단지.
우리는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뿔뿔히 각지로 흩어져 갔다.
나는 도저히 목포를 그냥 떠날수 없었다. 지독한 숙취가
내 발을 묶었기 때문이다. 찬 바람을 쏘이기 위해 유달산으로
향했다. 유선각까지 간신히 올라간 다음 목포를 내려다
보았다. 삼학도, 갓바위, 목포시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
그래. 이것이 목포다. 이난영의 노래비가 고즈넉히 양지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지독한 숙취로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속이 메스껍지만 민어회와 목포삼합을 먹고
남농을 보고 이난영의 목소리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목포는
분명 우리 삶의 차원을 높여 줄수 있는 고장이다. 우리가 비록
수준높은 문화적 지식은 없을지라도 일상 속에서 먹고 마시고
보고 즐길 수 있다면, 거기에 덧붙여 우정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살만하지 않는가? 나이들어간다고
한탄할 것은 없다. 더욱 풍성한 감성으로 우리 삶의 차원을
높여 갈 수 있는 것이다.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젊은
아베크족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1박2일의 겨울여정이었지만
몽롱한 머리 속 만큼이나 삶의 한자락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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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後記
아! 목포 그리고 잎새주
싸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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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0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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