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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佛 心 이 가득합니다 ⊙
룸비니산악회 2023"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순례산행 !
승선교와 인접하여 선암사의 실질적인 경역이 시작됨을 알리는 팔작지붕 2층 누각인 강선루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다.
강선루 옆 암벽에는 옛선인들의 글귀들이 빼곡하다.
백제 성왕때 초창주 이도화상이 청랑산 해천사란 사찰명으로 창건하였고, 2창주 도선국사가 조계산
선암사라는 사찰명으로 중창을 하였다.
3창주 의천대각국사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였고, 선암사의 절경중의 하나인 승선교
등을 건설하며 호암스님이 중창불사를 마무리 하였다고 한다.
특히 후사가 없던 정조를 위해 눌암스님이 선암사의 원통전에서, 해붕스님이 대각암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순조임금이 태나났다. 순조가 왕위에 올라 人天大福田이라고쓴 편액과,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하였다고 한다.
팔상전
석가여래의 생애를 묘사한 그림인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불조전
정면 3칸의 익공계 팔작집으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는 조선후기의 건물이다. 대들보 밑의 장혀 등의 보조가구재를 채용하여 구조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하였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무우전
무우전 담장을 따라 심어진 선암매가 정말 아름답다
각황전
본래이름은 장육전이었다고 한다.
통일신라때 축조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조선시대 영조때 중건을 했다.
팔작지붕 구조이고 지붕처마를 받치기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규모는 작으나 매우 화려하다
응진당
진영당
원통전
정조가 후사가 없자 눌암대사가 원통전에서 100일 기도를 하여 순조임금을 낳았다는 원통전.
장식이 매우 세련되고 화려하다
경장각
선암사의 보물들
대각암 승탑(보물1185호)
대각암에 있는 고려시대 승려 대각국사 의천의 유골을 봉안한 불탑으로, 선암사 경내에 있는 3기의 고려시대 부도 가운데 가장 웅대하고 규모가 크다
승선교
조선 숙종때 호암대사가 축조한 홍예교(무지개다리)로써, 당초에 자연암반위에 설치하였으나 암반에 절 리가 발생하여 2003년도에 전면 해체하여 자연암반부에 지대석을 보충하여 수리를 하였다.
일주문
조계산 선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은 조계문으로도 불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유일하게 소실을 면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대웅전(보물1311호)
875년 선암사의 창건 당시 축조되었다가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중건되었으나 화재로 재중건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위엄이있고 화려한 조선 후기 건축양식이다.
동·서 3층석탑
통일신라시대때 축조된 석탑으로 대웅전 앞에 동서에 있으며, 2층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탑이다. 규모는 크지않지만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모습을 잘 나타내었다고 한다.
대각암 동종
조선시대에 대원사에서 제작된 동종으로 겉면에 묘사된 문양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었고, 1657년이라는 제작의 절대연대를 알 수있어서 가치가 있다고한다.
대각국사 진영(보물1044호)
선암사 동탑 발견 사리구 (보물955호)
선암사 북부도(보물 1184호)
선암사 동부도9보물 1185호)
선암사 뒷간 (유형문화재 214호)
유홍준교수가 선암사 제1보물이라고 칭할정도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우소로 목조로 된 경관이 빼어나고 독특하다.
선암사에 없는 것
사천왕문
조게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만들지 않았다
주련
기둥이나 벽에 써서 붙이는 글귀를 주련이라고 한다.
開口卽錯(개구즉착;즉 입을 여는 것은 혼란이요, 뒤섞임이니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말이 필요없다)
어간문
대웅전의 정중앙에 있는 문을 어간문 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의 문에도 사람이ㅢ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어간문을 통할수 있다고하여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선암사의 부도
그 밖에 선암사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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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열반하여 그 아래 묻힌 후박나무 ;
오른편 아래로 법정스님이 평소에 일구던 채소밭이 보인다.
법정스님 계신 곳
불(佛), 법(法), 승(僧)은 불교에서 귀하고 값지게 여기는 삼보(三寶)로 이 삼보를 상징하는 삼보사찰이 있는데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그리고 순천 송광사가 그것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는 불보(佛寶)사찰, 팔만대장경 경판을 모시고 있는 해인사는 법보(法寶)사찰, 그리고 한국 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는 송광사는 승보(僧寶)사찰이다.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는다는 것은 송광사가 보조국사를 포함한 16국사를 배출한 수행도량으로 현대에도 효봉, 취봉, 구산, 일각선사, 등 많은 스님들의 수행으로 한국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800년전 보조국사 지눌이 당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고 우리 불교의 전통을 새롭게 하기 위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벌였던 도량(道場)이며 지눌, 진각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외국 승려가 수도하는 국제 선원으로 한국불교문화를 연구하는 도량(道場)이다.
송광사 일주문에는 “大乘禪宗 曹溪山 松廣寺(대승선종 조계산송광사)와 僧寶宗刹 曹溪叢林(승보종찰 조계총림)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총림(叢林)이란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가야총림 해인사, 조계총림 송광사, 영축총림 통도사, 덕숭총림 수덕사, 고불총림 백양사가 5대 총림이다.
송광사 일주문 편액과 일주문 속의 용...
○ 송광사 능허교 와 우화각, 천왕문
일주문을 거쳐 우화각에 이르면 속세와 인연을 끊고 계곡위에 놓여져 있는 아름다운 홍교(능허교)를 지나 불국정토로 향했을 선승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계류를 건너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야 되는 다리인 능허교와 그 위에 지은 건물 우화각, 우화각이 세워져 있는 무지개다리가 참 아름다웠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나타나는 임경당(臨鏡堂)과 우화각(羽化閣)이다. 개천에 기둥을 담그고 선 임경당과 무지개다리위로 자연스레 앉은 우화각의 모습이 물에 비친 그림자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우화각을 지나면 송광사 중심영역으로 들어가는 길...
송광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다리(삼청교)와 그 위에 지은 건물(우화각)이다. 삼청교는 일명 ‘능허교’라고도 한다.
19개의 네모난 돌로 무지개 모양을 만든 후, 양 옆에 다듬은 돌을 쌓아 올려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였다. 무지개 모양의 중심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돌이 나와 있다.
조선 숙종 33년(1707) 다리를 만들었고, 그 뒤 60여년이 지난 영조 50년(1774)에 보수를 거쳤다. 삼청교 위에 지어놓은 우화각은 사람들의 통행을 돕고자 만든 것이다.
들어가는 입구는 옆면에서 볼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와 비슷한 팔작지붕을 올렸고, 나가는 쪽의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올렸다. 이처럼 서로 다른 모양의 지붕을 하고 있는 것은
나가는 쪽의 지붕이 옆 건물과 가까이 닿아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본다. 비록 웅장한 모습은 아니나, 두 유물이 다리역할도 하면서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도 하는 2중효과를 보이고 있다.
전면에서 보면 누각이지만 옆에서 보면 통로이다...
능허교 위의 우화각
천왕문 들어가는 길(우화각)에 사군자의 대가이신 해강선생의 송광사 현판이 보이고 우화각을 건너 사천왕문을 통하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가 평평하고...
송광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득품고 아름다운 자태를 고히 간직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송광사 대웅보전을 건너려면 언제나 멋진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능허교" 와 더불어 그위에 자리한 "우화각" 이 있다.
우화각(羽化閣) 이란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신선이 된다" 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우화각 천정 단청
○천왕문
우화각을 지나 송광사 중심영역으로 들어 가니 가장 먼저 천왕문을 통해 사천왕들이 낯선 방문객을 맞이 하였다.
송광사의 소조사천왕상과 사천왕상 복장유물 일괄이 보물 제 1467호와 보물 제 1468호로 지정되었다.
사천완상은 조형성이 뛰어나고 복장유물은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고 한다.
엄청나게 과장된 것 같으나 질박해서 단순하고, 장난스러운가 하면 한없이 장중하고도 두려우며, 놀랍도록 섬세한 사천왕의 얼굴과 몸과 옷. 그리고 손마다 들고 있는 갖가지 장엄구..
사천왕상은 대개 흙으로 빚은 소조가 아니면 나무로 깎은 목조이다. 그런데 송광사의 사천왕은 목조로 만든 것에 흙을 덧대어 만든 목조토대의 소조 조형이다. 우리가 절들에서 만나는 사천왕상은 옹기로 굽거나 철기나 석기로 만드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의 사천왕상 중 단 한위도 같은 상이 없다고 한다.
임경당 앞 개울을 불일폭포라 이름 붙여진 돌다리도 건너서... 해우소로 이어지는 돌다리와 건물 기초석
송광사옆의 개울은 조계산에서 흘러오는 깨끗한 냇물로서 푸르른 녹음과 함께 청량감을 더해준다..
우화각에 앉아서 바라본 임경당의 모습이다. 우화각과 함께 사천왕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보는 사람들의 눈을 호강시켜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 스님들의 공부방인 침계루(沈溪樓) - '사자루獅子樓
우화각 위쪽 하천가에 축대를 쌓아 2층으로 기둥으로 세워 만든 누각형태의 건물, 개천쪽 현판에는 '沈溪樓', 반대편 현판에는 '사자루獅子樓'라고 표기. 침계루는 '계곡을 베게 삼아 누워 있는 누각'이라는 뜻. 계곡의 물소리에 잠이 솔솔 잘 올것만 같다. 무척이나 운치있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누각을 받고 있는 여러개의 육중한 나무기둥이 너무나 튼튼해 보인다.
침계루의 꽃담은 돌 사이에 있는 꽃잎 부분이 비어 있다. 이 곳은 기왓장으로 만들었으며 환풍 통로로 사용하기 위함인데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조화된 모습이다.
창문을 열어 놓고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법경을 외우면 저절로 공부가 될것 같다...
침계루 반대편 현판은 사자루 - 공부하는 강원으로 사자처럼 용맹스럽게 공부에 정진하라는 뜻인가?
사자루(獅子樓)
천왕문의 남쪽에 위치한 사자루는 전면 7칸, 측면 4칸의 중층 누각건물로서 일명 침계루(枕溪樓)라고도 한다. 1층 전면 툇간을 계류의 바위 위에 누주를 두어 건물을 받치도록 하였다.
누상(樓上)은 기둥 사이를 막아 폐쇄하였으며, 폐쇄된 벽체는 머름드린 판벽에 중앙 창얼굴을 만들고 널빤지로 문짝을 만들어 다는 바라지창을 가설하였다.재(齋)가 있을 때 영혼의 대기장소나 여름철의 학습공간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근래에는 승려들이 이곳에서 목련극(木蓮劇)ㆍ팔상극(八相劇) 등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내부에 금동비로자나불상과 화엄53선지식탱(華嚴53禪知識幀)을 봉안한 강당으로서, 선원의 보조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 이어서 범종루 를 지나니.....
종고루 아래를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불교의 사물四物(범종, 목어, 운판, 법고)이 있는 누각으로 종루가 문루 역활을 하고 있다.
우화각 쪽에서 볼때는 2층 누각이지만 대웅전 마당에서는 단층으로 보인다.
○ 대웅보전(大雄寶殿) - 송광사 사적 제 506호
천왕문을 지나 종루를 지나면 바로 송광사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보전은 1951년 6.25 전란으로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새로 지어졌다고 한다.
소실되었다가 1987년 중창 되었으며 정면에서 보면 7칸, 측면에서 보면 5칸 형태의 독특한 구조가 돋보인다.
앞 마당에는 그 흔한 석탑이나 석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대웅보전 팔작지붕단청과 꽃창살
대웅전의 화려하고 장엄한 공포와 단청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있어 웅장한 기상을 나타내며 각 전마다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소리, 낭랑한 독경,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이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순천 송광사는 우리나라의 삼보사찰로 불리우는 곳이다.
삼보란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세가지 보물 즉 불보 사찰(佛寶寺刹)인 통도사(通度寺), 법보사찰(法寶寺刹)인해인사(海印寺), 승보사찰(僧寶寺刹)인 송광사(松廣寺)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통도사는 중생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석가모니를 귀히 여기는 불보사찰이고 ,해인사는 부처의 깨달음을 가르치는 교법을 중히 여기는 법보사찰이며, 송광사는 그 교법을 수행하는 제자들을 위한 승보사찰이다...
108번뇌를 끓으라는 뜻으로 108평 규모의 대웅보전을 지었다 하며 '아亞'자형의 독특한 건축형태와 단청으로 현대 한국 전통건축의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대웅보전은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전각으로 송광사의 대웅보전은 삼세불인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모시고 있으며 협시불로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 승보전(僧寶殿)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보전 왼쪽에 조금 작은 규모의 승보전이 있다. 승보전은 승보살찰 송광사를 대표하는 건물로 석가모니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및 1,250 비구제자상을 봉안하여 석가모니의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송광사를 잘 나타내는 전각 중의 하나이다. 송광사는 여러 고승들을 많이 배출해 내어 승보사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웅장한 기상을 나타낸다. 송광사에 없다는 '삼무'(세가지 없는것) - 풍경. 탑. 주련
비사리 구시-행사때 승려와 대중이 공양할 밥 저장했던 통이며, 1724년 전북 남원에서 태풍으로 쓰러져 있는 싸리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재질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해보니 느티나무로 밝혀졌다고 한다. 7가마 분량의 밥을 저장할 수 있다. 송광사 3대명물의 하나. 승보전 옆에 놓여 있다.
"능견난사", "쌍향수"와 함께 송광사 3대 명물로 꼽히는 "비사리 구시", 절에서 국재를 모실 때 사찰로 모여든 대중들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목조 용기이다.그 어마어마한 규모가 곧 송광사의 규모를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 지장전
대웅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지장전을 직접 보면 매우 감동한다. 넓은 거물의 안온함, 맞배 지붕의 유려한 곡선미, 기와지붕의 자연색, 특히 아름다운 단청은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연녹색이 이렇게 현란한지는 지장전을 보고서야 알았다. 눈을 땔 수 없었다.
지장보살은 연옥에 빠진 중생을 구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49제를 여기서 올린다고 한다.
○ 성보각
송광사 성보박물관은 1997년에 개관하였는데 현재 국보 (4건)4점, 보물 (19건)135점, 전남유형문화재 (9건)38점, 전남가념물 1점, 천연기념물 1점, 도지정 (10건)39점 등 총 6천여점의 불교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번문 불교박물관이다.
보고도 못만든다’는 의미에서 왕이 친히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능견난사(能見難思)는 송광사에 전해 내려오는 발우세트이다.
약사전과 영산전을 간다.
영산전과 약사전의 뒷모습이다...
사적 제506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이며, 이전에는 대길상사·수선사라고 했다.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꼽힌다.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송광사사적비>에 의하면 신라 말 체징이 길상사라는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거의 폐허화된 것을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인 정혜사를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길상사로 옮긴 후부터 대규모 수도도량으로 발전했다. 이후 조선 초까지 진각·태고·환암·무학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하였다.
화재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 또는 파괴되어 다시 중건되었다.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금동 요령(보물 제176호)·묘법연화경찬술(보물 제206호) 등이 있다.
사적 제506호.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서 이전에는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寺)라고 했다. 한국 선종의 대수도도량으로서 유서깊은 승보사찰(僧寶寺刹)이며,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송광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송광사사적비 松廣寺事蹟碑〉·〈보조국사비명 普照國師碑銘〉·〈승평속지 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말 체징(體澄)이 길상사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인종 이후 거의 폐허화되었는데,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修行結社)인 정혜사(定慧社)를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길상사로 옮긴 다음부터 대규모 수도도량으로 발전했다. 고려 희종은 정혜사의 이전과 때를 같이하여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修禪寺)로 개명하라는 제방(題榜)을 내렸고, 이후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180여 년 간 진각(眞覺)·각엄(覺儼)·태고(太古)·나옹·환암(幻庵)·찬영(燦英)·각운·무학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소위 수선사시대를 열게 되었다. 1395년(태조 4)에 고봉화상(高峰和尙)이 전당을 중건했고, 그의 뒤를 이은 중인(中印)이 1420년(세종 2)에 당우를 증축하는 한편 절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정종의 윤지(綸旨)로 설립된 수륙사(水陸寺)를 폐지하고 선종사찰로 복귀했다. 그후 수선사가 언제 송광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사 직전에 놓인 송광사는 응선(應善)과 부휴(浮休) 등의 노력에 힘입어 명맥을 유지했다. 1842년의 화재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거나 파괴되고 다시 중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6·25전쟁 전의 가람배치는 의상(義湘)의 법계도(法界圖)와 같았다고 하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국사전(國師殿:국보 제56호)·하사당(下舍堂:보물 제263호)·약사전(藥師殿:보물 제302호)·영산전(靈山殿:보물 제303호)·청량각(淸凉閣)·척주각(滌珠閣)·우화각(羽化閣)·천왕문·해탈문·대장전(大藏殿) 등 50여 동이 있어 대가람의 면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송광사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혜심고신제서(惠諶告身制書:국보 제43호)·고려고문서(高麗古文書:보물 제572호)·경패(經牌:보물 제175호)·금동 요령(金銅搖鈴:보물 제176호) 등이 있으며 1093년 간행된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제205호), 1095년에 간행된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제206호)과 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호), 대반열반경소(보물 제90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제204호), 영산전목불좌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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