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임진강(연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세도가와 강줄기, 기암절벽을 그린 ‘우화등선’ ‘웅연계람’ 등 두 점의 그림이 오는 2011년 11월29일 서울 견지동 동산방 화랑에서 개막되는 ‘조선후기 산수화전’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미술사학자 명지대 이태호교수는 이 그림을 보고 해방후 고서화 전시품 가운데 최고의 대어급 명작이라고 극찬했다.
임술(壬戌)년인 1082년 7월과 10월 보름밤 북송시인 소동파(蘇東波1037-1101)는 호북성 황강에서 뱃놀이를 즐겼다. 달은 훤했고 바람은 드믈었고 물결은 잔잔했다 적벽부(赤壁賦)가 탄생한 순간이다.
영조 18년(1742년 壬戌년) 10월 보름날, 경기도관찰사 홍경보는 경기 동부지역을 순시하다가 삭녕에 있던 우화정으로 당시 최고의 화가인 양천현령 겸재 정선과 문장가인 연천현감 신유한을 불러 연강(임진강)에서 뱃놀이를 즐겼다. 660년전 임술년(1082년) 소동파를 흉내내어 연천군 삭녕 우화정에서 웅연까지 40리길을 연강(漣江임진강)에 배를 뛰우고 뱃놀이한 모습을 정직하게‘우화등선(羽化登船 우화정에서 배를 타다)’웅연계람(熊淵繫纜 웅연나루에 정박하다)’ 등 두 점의 그림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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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우화등선(羽化登船 우화정에서 배를 타다) 1742년작 비단에 수묵 담채 35.5 * 96.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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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웅연계람(熊淵繫纜 웅연나루에 정박하다) 1742년작 비단에 수묵 담채 35.5 * 96.8cm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는 사대부들과, 부드러운 강줄기, 부벽준으로 깍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을 담아낸 화폭은 마치 영화 스틸 컷처럼 세세하게 그려졌다. 뱃놀이를 시작하면서 강 한가운데서 즐기고, 어둑어둑해져서 땅거미 질 때 횃불로 마중나온 하인들 움직임까지 담아냈다. 여기에 홍경보의 서문과 신유한의 글이 더해져 1742년 겸재 나이 66세 때 ‘연강임술첩’이란 화첩으로 제작됐다.
이태호교수는 정선이 그림에 집중하여 화화적 성과를 본격적으로 낸 것은 60대 중반이후로 다른 화가로 치면 늦터진 셈이지만 그 화풍과 필격이 청장년기에 해당된다. 우화등선과 웅연계람은 '박연폭포' '금강전도' '인왕제색도'의 뒤를 잇는 걸작으로 겸재 회화 진경산수화 전성기 최고의 명작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웅연계람은 회화적으로 우화등선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시간에 한꺼번에 그린 같은 필치이지만 나루의 암벽을 중심으로 강변의 구성이나 농담구사가 한결 시원하고 자연스럽고 달이 뜨는 저녁 분위기를 실감나게 살려 냈다.
조선일보 & 서울경제신문 참조
첫댓글 수백년전 그림인데도 정교하게 그렸군요..
뱃놀이가 눈에 선합니다 감상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