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 바람, 새로운 풍경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잠깐이나마 따분한 일상에서 해방될 수 있다.
또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떠나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예전에 알고 있었던 반가운 자신의 모습을....
그래서 홀로 떠나는 여행을 택했다. 하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환경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고도원의 아침편지 2008. 몽골에서 말타기'
몇 년동안 부러워만 하던 아침편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말타기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대초원만 생각해도 느낌이 풍성해진다.
여행안내문의
'여행도 디자인하기에 따라서 예술이 된다' 는 말에
예술가가 되어서 마음의 영토를 넓히고,
꿈의 땅을 밟고 초원을 달리고 싶어하는 내 안의 불덩이를 삭이고 싶어하는 열망앞에
열흘을 투자하기로 작정하면서 사연을 보냈고 동참의 기회를 얻었다.
몽골은 '용감한 자의 나라'라는 뜻이다.
중국사람들은 중화사상을 내세워 주변국들을 모두 폄하했고
몽골도 무지몽매하다는 뜻을 지닌 몽고라고 불렀는데 우리도 따라서 몽고라 불렀다.
몽골은 한때 이 지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대단한 민족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푸른 초원에 가축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나라지만
현재 몽골도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가로운 초원풍경>
첫째날과 둘째날(8/2-3)
창원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한두번을 깨다자다를 반복하니 공항이다.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짬짬이 사전설명회때 나누어주었던 자료들을 읽었다.
특히 말 탈때 기본적인 명령어는 꼭 필요하기에 나른한 기억력으로 낯설은 발음과 씨름했다.
102명의 참가자와 스탭7명은 '8월의 전설'이라는 팀명으로 대규모였으며 7월에도 이런 규모로 진행되었다.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2시간 30여분 후에 도착한 몽골수도 울란바트로
우리나라의 80년대 모습을 보는 정도로 느껴졌다. 내일부터는 물이 귀한 곳이니 호텔에서 잘 때 싫컷 씻으란다.
다음날 아침부터 서둘렀다. 우리팀을 태워갈 20여대의 푸르공이 대가하고 있었다.
러시아제 7인승 승합차인데 달리고 서는 단순한 기능만 가진 차였다. 승차감이나 에어컨은 언강생심이다.
그러나 비포장도로를 몇시간 먼지를 날리면서 달리는데도 별로 고장이 없고, 고장이 나도 기사들이 금방 고친다.
온천지가 휴식처지만 어디 한곳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초원이라 남자는 말보고 여자는 꽃딴다고 표현하는 배설행위가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11시간의 여정끝에 도착한 징기스칸 탄생지 헨티는 천둥번개와 폭우가 우리를 반겼는데 언제 그랬냐는듯이 곧 맑은 하늘이다. 이런 날씨가 많단다.
저녁에는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한사람에게 1분씩 주어진 자기소개시간, 102가지의 이야기가 아라비안나이트같이 전개되어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유머가 많아 보이던 어떤 여자분은 선물로 애마부인 브로마이드를 촬영할 생각인데 감독과 촬영기사 스폰스를 받는다는 애교넘치는 재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매일 한가지씩 아침에 전달되던 수칙,
이날은 '웬만하면 웃자, 웬만하면 참자, 유쾌한 주파수를 보내자'였다. 참 많이 참아야했던 하루였다.
<꽃따는 장면...천기누설> <6일동안 묵었던 헨티의 숙소>
셋째날(8/4)
장작불타는 소리와 진한 나무향에 새벽잠을 깼다. 기온이 우리나라의 가을날씨 정도로 조석으로 좀 싸늘하게 느껴진다.
일행중 누군가가 부는 대초원에 울려 퍼지는 섹소폰소리, 감회에 젖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음일지 모른다. 캠프에는 여행온 일본인도 몇몇 보인다. 달관한 모습같다. 아침 달리기 후 둥글게 서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를 전하고 외친다.
'땀이 나는 몸이 건강하다. 땀이 나는 몸이 아름답다. 땀이 나는 몸이 큰 꿈을 이룬다.' 서로를 포옹하면서 아침운동을 마친다.
드디어 말과 처음 만나는 날
고도원님의 아침편지가 직접 육성으로 전달된다. 단아한 몸에서 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한때는 못생긴 남자로 불리면서 이조사(이주일과 조영남의 사이)라는 별명으로, 길박사(길용우와 박상원의 사이)에서, 대통령연설담당 비서관에서,
이제는 꿈박사로 거듭나서 매일 아침 200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침편지를 전하는 꿈전도사이다.
오늘의 수칙 '하나에서 열까지 조심하자, 처음부터 끝까지 조심하자'
사람이나 말이 처음 만나는 날이라 흥분되고, 긴장되어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 조심하자는 경구다.
오전과 오후 두차례에 걸쳐 5시간 이상 말을 탔다.
이곳 기수들은 두마리의 말을 몰고와서
한마리는 우리에게, 한마리는 기수가 앞서서 몰고 고삐로 길을 안내하면서 걸음마부터 가르친다.
짜박짜박 걷다가, 빠른 속도로 걷다가, 오후에는 다가닥 다가닥 달리기가 가능한 수준으로 되었다.
<6일동안 같이 했던 처녀기수 자라즈마와 함께>
넷째날(8/5)
육성으로 전하는 아침편지, 조병화님의 시 '너는 내 생각속에 산다' 전하는 분이 만저 울컥한다.
***'너의 집은 하늘에 있고/ 나의 집은 풀 밑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생각 속에 산다
너는 먼 별 창 안에 밤을 재우고/나는 풀벌레 곁에 밤을 빌린다 해도/너는 내 생각 속에 잔다
하략****
징기스칸 탄생지로 말을 몰았다. 이제는 말등이 두렵지만은 않다.
다만 몸에 익숙하지 않은 안장으로 인해 엉덩이가 수난이다.
대부분 몽골말타기팀원들이 겪는 아름다운 고통이다. 단기속성(?)으로 배우는 어설픈 과정때문일까?
무릎과 허리등도 뻐근하지만 시간만 나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서인지 견딜만 하다.
벌써 말위에서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전말타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츄츄~~'하면서 달리는 모습이 멋있다.
2시간 가량 걸려서 도착한 징기스칸 유적지
몽골유목민의 기록문화가 아쉽다. 역사야 정착민에 의해서 기술되고 전해지는 것은 당연하다지만
이들은 정사가 없어 대부분 야사에 의존해서 추정할 뿐이고,
정작 고유한 글을 잊어서 지금은 러시아어를 차용하여 몽골식으로 뜻을 전달한다.
삼국시대 우리의 이두같이.... 슬픈 현실이다.
그러니 러시아사람들이 몽골에 오면 자기네 글자는 읽으면서도 정작 몽골사람들이 전하는 내용은 모른단다.
오후에는 징기스칸이 오논강을 바라보며 세계정복을 구상했던 언덕에 올라 가진 명상시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이제 용서하십시오"
징이 울리고 생각이 강물처럼 흐른다. 내 마음의 짐은? 나도 이 순간을 위해 여기에 왔는지 모른다.
<밀타기 행렬>
다섯째날(8/6)
우리가 이장이라고 불렀던 아침지기 안실장의 특유한 방송이 시작된다.
"자~~~~기상시간입니다" 또는 "오늘 아침 식사는 몽골식 수프입니다" 문득 아련한 시골풍경이 떠오른다.
오늘은 원시림과 야생화가 지천인 수목지대로 이동해서 숲속달리기를 하는 날이다.
아침지기가 전하는 수칙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그래 오늘 한 번 잘 놀아보고 싶다.
초원미니마라톤, 젖먹던 힘까지 내서 달렸다.
언젠가 오래달리기에서의 가슴 아픈 추억을 잊고 싶었다.
열손가락 안에 드는 쾌거!!!
그러나 알고보니 대부분이 참가가가 유유자적하게 초원과 숲속길, 야생화와 함께 느긋하게 달린 모양이다.
오랫만에 접하는 몽골전통음식 '호르헉' 양고기를 우리 입맛에 맞게 염소로 바뀌었지만 기름이 빠진 살코기가 담백하다.
하지만 내리쬐는 태양이 편안한 오찬을 방해한다. 먹는 것보다 그늘에서 오수를 즐기는게 몸이 바라는 바일 것 같다.
숙소에서는 물이 귀했다. 빨래도 샤워도....그러나 건조기후는 땀을 곧 증발시키니 다행히 살만하다.
몇걸음 옮기면 접하는 오논강!!! 가끔은 선녀탕, 나무꾼탕이 되어 우리들을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낭만도 주었다.
<초원미니마라톤>
여섯째날(8/7)
오늘은 산을 두개 넘어 제법 먼곳으로 간다.
오늘의 수칙 '산너머를 바라보며 달리자'
안장에 오를 때는 엉덩이 생채기 때문에 약간의 고통이 따르지만 얼마간 달리다보면 면역이 된다.
초원은 달리면 길이고 앉으면 휴식처다. 초원에 섰을 때 내 자신이 더 잘 보였다.
잠깐 동안의 음악명상이 몇시간을 잔 것 같은 안락함과 마음의 평화를 준다. 초원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다.
저녁에 가진 장기자랑시간,
기상천외의 테마로 멋진 공연을 펼친다. 페러디, 뮤지컬, 발레, 난타, 연극, 무용, 노래 등...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자리고 부럽다. 어릴적 무경험과 무능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초원을 건너온 바람결과 함께 울려퍼지는 마두금 연주!!!! 절창의 음색이 초원의 바람을 품어 비장하다.
<초원의 석양>
일곱째날(8/8)
달리기와 걷기 명상으로 아침을 연다.
건조한 기후에도 풀과 벌레가 살아가는 것은 이슬이라는 축복때문이다. 이슬이 숨구멍이다.
오늘은 말타기 마지막 날,
30km대장정이다. 초원을 마음껏 달리는 날이다. 지금까지는 오늘을 위한 워밍업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200여기가 넘는 말들이 초원을 달리면 같이 나온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달린다. 개도 달리고 오토바이도 달린다.
이들이 달리는 곳이 곧 길이다. 하이웨이다.
어제 저녁에 초원에 바람이 많이 불어 바람난 말들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고 많은 기수들이 말을 바꾸어 왔다.
내가 타는 말도 바뀌었다. 곧잘 달린다. 그래 달려라 마음껏 달려라.
내가 바라던 초원의 질주가 너와 함께 하리니.....
즐거워서 달렸고 원없이 질주했다. 꿈너머 꿈을 향해 초원의 바람속도로.
징기스칸 탄생지에서 오늘의 수칙을 생각해 보았다.
'마음(꿈)의 영토를 넓히자' 그래 우리도 한때는 대륙을 호령한 적도 있었지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언덕을 오르고 숲속을 지나고......
점심후 오침시간 혼자 몽골의 산을 올랐다. 외국에 원정도 가는데 오롯이 주어진 이 기회를 놓치기는 아깝지.
이국 평원에 우뚝 솟은 산에서 만나는 초원의 바람,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뻥 뚫린다.
오늘저녁이 헨티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게르에서의 잠과도 이별해야 한다.
끝없는 지평선, 무수한 별들, 끝간데 없이 울어대던 풀벌레, 초원의 경영자 바람과도 이별이다.
<초원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고>
여덟째날(8/9)
또다시 울란바트로로 이동하는 날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이어서 갈때보다는 덜 지루했다.
덜컹거리며 흔들릴 때마다 신음소리가 났지만 이제는 지평선이 보이고 초원이 새롭게 보이고 마을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는 말보기 꽃따기가 자연스럽다. 아무도 쑥스러워하지 않고 개의치 않는다. 사람은 이렇게 적응되어가는가 보다.
이곳에도 아스팔트가 깔리고, 개발의 손길이 서서히 미치는 곳이 많아 보였고 관광에도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저녁으로 먹은 매콤한 김치찌개가 향수를 달래준다. 호텔에서 오랫만에 마음껏 물과 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대몽골제국건설 800주년 기념 징기스칸 동상>
아홉째날과 열흘(8/10-11)
올란바트로 시내관광이다. 유목민의 역사란 볼품이 없다.
그들은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 민족이기에 정작 남겨진 유물이 없다.
궁전, 역사박물관, 전승기념관등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전통음악이나 춤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몽골인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란다. 그런데 유흥문화가 스며들면서 점점 부정적으로 바뀌어 간다니 걱정이다.
고급문화가 아닌 저급문화가 먼저 전해지는 까닭이다.
나는 문득 인간이란 누구나 이 세상에서 힘들고 고된 여행을 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긴긴 인생여정에서 이번 여행은 내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선물이었고, 이를 통해 오래전의 꿈을 실현해 보았다.
초원에서 그려본 얼굴들, 바람결에 전해들은 말들, 가없이 넓은 밤하늘을 향해 뇌까렸던 약속들, 수많은 야생화에 속삭이고 온 사연들,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나는 이제 현실앞에 서 있다.
진정한 여행자는 떠나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했는데 나는 떠남으로 인해 행복했다. 대초원을 생각하면.......
첫댓글 산행에도 소홀했고 카페에도 자주 들러지 못해 미안해서 정리한 글입니다. 죄송~~~~~~~~~~
저 넓은 초원에서 6일 동안 생활하셨다니, 그저 부럽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파란 초원의 품에 안기면 나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질것 같습니다. 멋집니다요...
이국적인 풍경에 넋을잃고 쳐다봤네요 올 여름은 기억이 남는 여행을 하셧네요 더불어 산행기를 통해서집에 앉아서 간접경험을 하네요 수고하셧습니다
아..부럽습니다..중국에 있을 때 한번 가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건강하게 돌아오셨으니 기쁘고 다음에 기회되면 육성으로 한번 이야기 보따리 한번 풀어주십시용~~~
말도 타고 초원을 한없이 느꼈을것 같습니다. 좋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