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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즘 매일 매스컴에 오르는 신조 경제용어 시리즈 4 R2
Recomposed by k o kim 2021 07 28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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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에스지/ 글루탐산나트륨 (MSG-MonoSodium Glutamate). : {향미증진제}
* 엠에스지1 (MSG1-Mannerable sex greedy1): {매너있게 감칠맛 사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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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날씨인 1983년 6월 29일 소인 K O 는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안의 이민국 카운터 에서 애틋한 시간을 남기고 있었다. 가려거든 약혼식이라도 해야 하지 않냐? 는 공항 근무자인 여심(女心)을 두고서 홍콩을 거쳐서 싱가포르 거쳐서 자카르타를 거쳐서 페칸바루 공항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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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열대의 석양길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이 적도를 지나는 동남아 아열대의 바람이 얼굴에 닿으니 숨이 막히고 후덥지근한 습기가 몸을 감싼다. 냄새 또한 그리 좋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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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칸바루 pekanbaru는 인도네시아의 큰 섬 5개+ 발리섬 중 하나인 수마트라 섬의 동서로 230km 남북으로 2100km의 중앙에 있다. 공항 세관대 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와서 흥정 하고 탄 택시가 좀 거시기 했다. 이 택시 몇 년 된 거요? 1965년 생산된 미국의 제무시 회사의 시바루 (Chevrolet, General Motors) 택시란다. 한국도 이런 과정이 있었는데 한 20여년 된 낡은 차다.
아이구! 이 사람아 천천히 좀 갑시다!. 안돼요! 천천히 가면 밥벌이가 안 돼요! 빨리 가서 올 때 다른 손님 태워 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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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그 당시 K O 는 [롤러코스트] 라는 놀이기구 용어를 배우기도 전에 인도네시아의 페칸바루 공항에서부터 두마이(Dumai– 싱가포르와 가까운) 항구 까지 가는 200 여 Km 길에서 3시간 동안 흔들림 멀미에 시달렸다. 2~3차선 정도의 이 아스팔트 도로는 산과 산 사이의 높은 곳 산정상과 낮은 곳 골짜기의 깊이가 아마 100여 미터가 되는 길을 20여 차례 깔딱거리며 넘는 길이다. 차에 에어컨이 있다 했는데 선풍기 기능마저 안 되니 뜨거운 바람이 얼굴과 전신을 때린다. 손으로 창문을 여니 이번에는 퀴퀴하게 타는 냄새가 난다. 멀리에서 연기가 매우 피어오름이 보인다. 세상에! 밀림에 불을 놓고서 번지는 것을 방지하고 소화하는 공무원의 직업도 있다니?. 인도네시아는 산유국이다. 석유 송유관을 길옆에 설치하였다. 밀림의 나무와 풀을 베어야 송유관이 노출 되어 사고와 도난을 막는단다. 1년 내내 주~욱 길 따라 가면서 풀도 깍으며 태운단다. 정글에 불이나면 아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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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밀림 옆을 달린다. 동네를 지나다보니 구멍가게 마다 무엇이 걸려 있고 쇠말뚝 위에도 간판이 가끔 보인다. 하나는 분명히 아는 간판인데 (Ajinomoto- 아지노모토), 하나는 무엇인가 (MiWon- 미원)? 쉴 겸 기사 주스 한잔 사주면서 자세히 보니, 한국의 신설로표가 있는 미원 상표인데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로 씌어 있다. 반가운데 의문이 많이 남는다. 언제 어떻게 진출 하여 일본의 아지노모토와 경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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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삼성 창업자이신 고이병철 회장님께서 하신 어록 중에 [해도 안 되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하나가 자식문제요, 하나가 골프요, 하나가 미원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 하였다 한다. 미풍과 다시다 상표로 경쟁을 하던 것이 미원 제품인데, 미원 주식회사의 고 임대홍 회장님의 결정으로 미원의 주원료가 사탕무, 해조, 사탕수수 등의 단백질이기에 원료 확보차원과 인구 많은 동남아를 겨냥하여 인도네시아에 1973년 11월 현지 회사 및 공장을 세웠다 한다. 2021년 요즘은 한국의 미원 40%, 대만의 사사 30%, 일본의 아지노모토 25% 정도의 인니 시장의 점유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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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2020~21년은 먹방(먹는 것을 소재로 방송) 이 대세다. 요즘 매일 방송인 들이 사용 하여 들리는 말이 엠에스지 [MSG] 이다. 한국은 2018년 법률로 [화학조미료]라는 단어를 못 쓰게 하고 {향미증진제} 라고 법적으로 부른란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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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SG (글루탐산소다(monosodium glutamate) : {향미증진제}
신. 단. 짠. 쓴. 떫 맛 외에 제6의 맛인 [감칠맛]을 낸다는 조미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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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적도 밑 두마이의 여름은 지루했다. 밤10시 업무가 끝나면 의례히 직속 대장인 최기순님 하고 죽이 맞아서 바다낚시를 하곤 했다. 피곤해도 그저 낚시를 하면 조금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어린 상어도 잡히고 노란 조기도 잡히고 말썽쟁이 복어도 많이 잡히는데 낚싯줄을 마구 끊어 먹는다. 꾀를 내었다. 신주(쭈)대를 물지게 모양 달고 밑에 O링 걸고 그 밑에 두 개의 쇠줄을 달고 낚시를 각각 달아서 사용하니 복어가 쇠줄은 못 끊었다. 어느 날은 한 사람이 살살 다가오더니 보아하니 한국사람(Orang Korea)인데 무슨 낚시(반찡)를 시도 때도 없이 와서 하느냐고 하면서 조수표(Water tide table)를 주었다. 즉 바닷물이 나가고 들어올 때 서너 시간 동안만 고기(이깐)가 잘 잡힌단다, 물이 나가면서 물을 뒤집어 놔서 먹거리가 많았나 보다. 워디서 근무 하슈? 항구의 세관에서 근무 하면서 당신들을 2개월여 넘게 보았노라고 했다. 히야! 재미 있는 공무원 이네……. 아! 그래도 그동안 몇 개월 현지 언어를 부리나케 사무실 커피 담당 아가씨들과 숙소 담당자들과 소통 하느라고 배워둔 인니어 덕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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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어는 말레이어와 단어가 70% 정도 비슷하단다. 물론 필리핀 언어도 10여 %정도 비슷한 단어도 있다. 남녀가 쓰는 단어가 조금 다르단다. 1986년도에는 발령을 받아서 말레이를 갔더니 인니 여자에게 말을 배웠냐고 금방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었다. 비짜라bicara 인도네시아(인니어), 짜깝cakap 말랴유(말레이어) 라고 구분 하나 네덜란드 통치시의 언어도 섞여 있다. 글자 표기는 영어 알파벳을 사용 한다. 재작년 2019년 문대통령이 말레이 방문할 때 인니말로 인사 했다 해서 의전문제가 토픽이 되었었다. 참모가 거기 까지 알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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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두마이, 어느 날 오피스 걸이 뛰어왔다. 미스터 케 오 써 (Mr. k o sir)! 누가 무선전화로 호출한단다. 통신실에 있는 위성전화 호출이란다. 누가? 어디서? 가보니, 자카르타 주재 한국 대사관 방문객인 친형님이 K O 를 찾고 있었다. 대사관과 소통 후, 지금은 작고하신 김국(金國) 대장님의 허락과 촌지를 듬뿍 받았다. 휴일 포함 특별 외출 과 업무출장 명을 겸해 받았다. 두마이에서 부터 롤러코스트 길을 다시 타고서 페칸바루로 나가서 자카르타행 경비행기를 1000km 4시간여 타고 갔다. 기름이 샌다는 기장의 방송, 그러나 불안해 하지 말라 고 했으나, 죽는 줄 알고 불안해하던 사람들, 다 와서 다시 바다쪽으로 가더니 기름을 쏟고서 착륙했었다. 자르타에 도착 후 서울에서 대학생 20여명을 이끌고 온 김기준(金基準) 친형님과 YMCA 청년단장 차광선 박사와 3일 동안 일정을 같이 소화 했었다. 현지 말을 더듬하며 차질없이 안내를 해주니 신기한 사람으로 보였는지 총각에게 메시지를 남겨준 여대생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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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떻게 자카르타와 두마이간에 무선전화로 통할까?. 대사관이나 군대 통신은 비상시를 대비하여 CW(모르스 부호 무전, 전보)를 사용 하고, 또 HF 주파수와 장비를 사용 한다. 무선의 발달로 TTY(tele text 송수신장비)를 사용한다. TTY 타이프 키보드에는 한글이 없다. 아직 한글사용 무선개발이 안 되어 영문한글 혼용 타이프를 이용 [김치]를 보내려면 글쇠판의 ㄱR, ㅣL, ㅁA을 차례로 치면. 즉 [김]을 치면 [RLA]로 타이핑 된다. 외국이든 국내든 군대든 수신자는 3겹 먹지가 낀 롤 페이퍼에 타이핑 된 글을 보고서 다시 타이프 글쇠판을 보고서 다시 한글로 바꾼다. 이렇게 해서 1970년도부터 1990년 내지 2000년도까지 간추린 국내뉴스를 텔렉스로 전달 받았었다. 신문은 인편으로는 3일, DHL 내지 항공편으로는 10일 정도 뒤에야 뉴스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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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땅덩어리가 얼마나 넓고 긴가? 대한항공의 기내잡지 모닝캄 (Morning Calm) 을 보니 조금씩 의아심이 풀렸다. 인도양 쪽 수마트라섬 끝에서 파푸아 섬의 뉴기니아 국경 [이리얀 자야] 까지의 동서東西 거리 (5,200KM)가 서울에서 자카르타까지의 거리 (5,100KM)와 거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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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넓고 길어서, 언어가 달라서, 시차가 있어서, 행정 통치가 불가능해서 조금 못사는 나라인데도, 그리 과학과 경제가 발달 하지 않았는데도, 1965년부터 1983년 현재 위성을 쏘아 올려서 6000여개의 유인도有人島 섬나라의 행정을 통치한다 했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온 [하비비 항공학 박사]가 추진하여 경비행기를 양산하여 이용했다. 섬에서 섬으로 운송 역할을 하기에 섬마다 경비행장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한국과 인도네시아 환율이 1대1 정도 였으나, 2021년 현재는 11루피아 대 1원 으로 한국이 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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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비 박사는 반둥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해 1960년 아헨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73년 귀국하여 1978년부터 20년 동안이나 과학기술부 장관직을 역임 후, 1998년 5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1대 스카르노 와 2대 수하르토 다음 인도네시아의 3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2019년 10월11일(현지시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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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라 한국의 선사先史는 물론 역사歷史도 잘 모르는데, 남의 나라 역사 논해서 무엇하랴? 마는, 인니(印尼)의 역사 또한 복잡하다. 징기스칸이 유럽의 헝가리 까지 진출 후 망해가니, 이제는 중동에서 출발한 사라센 제국(the Saracenic Empire)의 후예들이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를 경유하여 바다 건너서 스페인을 점령 한 후 동남아까지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인도를 거쳐서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과 자바 섬을 점령 하였다. 인도네시아는 1602년부터 347년간 즉 1948년까지 통치 당했다 한다. 중간에 811년 영국의 통치 잠간, 다시 1942년~1945년 일본의 통치잠간, 다시 1945년~1948년 네덜란드의 통치잠간 등등의 슬픈 역사였다. 그런데 종교적으로 보면 인도와의 교역으로 힌두교와 불교 전파 후 다시 이슬람교가 성행 하여 밀려난 힌두교인 들이 발리 섬으로 와서 대거정착 하여 발리에는 이슬람 교인이 거의 없다는 통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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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어느 날 대장 이명진님 과 소인 K O 와 6명 일행은 몇 개월 동안의 특별 임무를 마치고서, 힌두교 휴일을 틈타서 11인승 승합차를 전세 내어서 자카르타를 출발하여 수마트라 섬으로 올라가서 7년 전 추억이 있는 페칸바루를 다시 거쳐서 유명하다는 토바섬(Lake Toba) 의 호수를 보트로 건너서 1인교사가 교장인 큰섬 안의 섬의 옛 왕궁 터를 감상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이들과의 사진을 남겼다. 다시 자바 섬을 남서로 내려오면서 [브로모 휴화산]을 오르기 위해 밤11시에 출발 하여 칠흑 같은 어둠속 새벽4시에 근처 주차장 까지 가서 당나귀 등에 올라 정상에 오르니 황Sulfur 냄새에 눈코 정신 못 차리던 상황을 찍은 사진도 있다. 유 선생이 가져온 컵라면을 새벽에 먹었다. 인도네시아 지역을 일주 하면서 자주 마주친 나무와 빨간 열매가 있었는데 그것이 [커피나무] 인지 한국인 모두 무슨 나무인지를 아무도 모르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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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굽이굽이 산길을 날아다니던 운전기사 겸 안내자의 말을 빌리면 면面단위는 물론 이지만 조금 사람이 많은 리(里) 단위의 시골 촌의 논 가운데 혹은 언덕에도 조금 누추한 단독 건물들이 있단다. 가끔 보였다. 방이 대여섯 개 된단다. 조그마한 거실이 있어서 맥주를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했다. 빌어먹을……. 이슬람교 제도 교리는 아니지만 80%가 이슬람교도인 인도네시아 머스마들 즉 남편이 아무 말 없이 5일 정도 집을 비우면 여자를 버린 것으로 알아야 한단다. 즉 이혼 이란다. 해서 더러는 20살~30살 미만 정도의 여인들이 애들 세 명 두 명을 허리에 두르고 다니면서 거두어 먹여야 한단다. 능력이 안 되면 동네 그 건물로 들어와서 영업(prostitution) 한단다. 라면 값 혹은 필요한 돈 정도가 생기면 자기 집으로 다시 들어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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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소인 K O는 신조어를 하나 만들어야 하겠다.
MSG1 (Mannerable sex greedy 1) : {거시기를 이용한 감칠맛 매너 있게 사용 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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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가 창조한 일 중, 수명이 긴 우주의 별 들의 생사여탈 빼고는, 또 하나의 위대함은 모든 생물에게 수명을 주고 뺏고를 반복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든 간에 성년이 되면 모두에게 감칠맛(MSG1)을 주어서 그 후유증 side effect 으로 종족번식을 하게 하였다. 특히 인간은 이 MSG1(절정 絶頂 Orgasm) 사용이 과하거나 법에 어긋나면 불행해 지도록 한다. 과부가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면서 수절 하여 열녀비의 대상이 되려면 남녀 모두 MSG1을 잘 컨트롤 해야 하던 시절도 있었고, 아니면, 지금도 패가망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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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두마이 근무 중 너무 더우니 매일 식사후 샤워를 해야 하는데, 총각의 샤워부스에 뛰어 들어와서 낄낄 대는 천진한 여인들을 피해야만 했다. [수신제가] 로 대한민국의 명예를 지켜야 했다. 불명예로 서울로 돌아가서는 아니 된다……. 낚시걸이 에 넘어 가서는 안 되느니라 총각! 수도승이 되어야 했다. 방안 청소를 한다고들 들어와서 얼굴 로숀은 내꺼란다. [기부 미 초코렛] 시절의 6.25 후의 한국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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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수라바야 항구 (한국의 부산 같은 제2도시 )로 가서 카페리로 바다를 건너 발리 섬의 어느 항구로 가서 하선 후 다시 같은 승합차로 달려서 호텔로 가서 짐을 풀었다. 다음날 마침 발리 섬의 힌두교의 큰 행사 로 많은 200 여명 여인들이 전통 고유 복장을 하고서 머리에 시주 공물을 이고서 길거리 행진을 하는데 아주 장관 이어서 신성 하게 지켜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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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발리의 호텔은 고층이 없었다. 1.2층 혹은 3층 정도의 목조 와 콘크리트 혼합 건물로 긴 복도에 비가 들이 치는 개방식 이어서 외부에서 2,3층 복도를 오가는 투숙객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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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O는 동료들과의 저녁식사 후 휴식을 취하느라고 눈을 부치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동료인가? 호텔 직원인가? 궁금해 하면서 문을 여는 순간 누구세요? 할 사이도 없이 웬 처녀 하나가 훅 방안으로 들어 왔다. 좀 모자라는 듯 한 표정을 보니 호텔 직원은 아닌 듯해서 누구세요? 어디서 왔나요? 하니 쭈뼛쭈뼛 하면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추어를 쓴다. 영어 할 줄 알아요? 모르는 듯 대답이 없다. 현지인이구나. 천천히 조금씩 대강 이야기를 들어 준 후, 나가시라! 하니 호텔 측에도 이야기 하지 말라고 읍소 하면서.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못 나간단다. 그래도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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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복도라서 호텔 근무자들의 제지를 받지 않고 2층으로 올라 온 것이다. 혹시! 누구랑 같이 왔어요? 하고 물으니 {싸야 뿐야 수아미!} 에이 무슨 소리야? 친구(쁘람뿌완)도 아니고? 네 남편 하고 같이 왔다고? 그렇다는 것이다. 혹시 까만 오토바이 타고 온 까만 옷 입은 작은 친구 아녜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하며 놀랜다. 실은 아까 이 여인이 밀고 들어 올 때 문을 닫으면서 밖을 보니 1층 바닥에서 나의 객실을 쳐다보던 남자가 있었다. 여하튼 가세요. 피곤해서 쉬어야 합니다. 호텔에 전화 하려하니 내려간단다. 나간 후 잠시 후에 문을 열고서 이 남정네가 혹시 해코지는 안 하려는지 잠간 쳐다보는데 여인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감사(떼리마카시 빤약!) 하단다. 무엇이? 저녁 먹을 돈(나시고렝-볶음밥 2인분 먹으라고 돈을 쥐어 보냈더니)을 주어서……. 그것도 크게 소리를 지르니 남들이 다 듣겠다. 누가 들으면 MSG1 후의 대가를 지불 한지 알고 오해 하겠다. 손을 흔들어서 보낸 후, K O 총각 수도승은 깊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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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에서는 시아버지가 문지기를 해준다는 서양인들 여행담이 있던데, 발리는 남편이 에스코트를... 문명과 문화의 차이이다. 쇼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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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종교 책자에서 각종교마다 인용하는 내용이 하나 있다. 같은 내용이나 각색 해본다. 성직자 3명과 여인 한명이 사망 후 35일째 염라대왕(Yama) 앞에 왔다. 이승의 업적業績에 따라서 심판 받아서 천국인지 지옥인지를 배당 받는 날이었다. 그런데 염라께서 각자 분리 개별심사를 하지 아니하고 종합심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저 여인은 지옥에 가야 한다!]고 3명의 성직자가 생각하고 있고, 여인은 저야 당연히 지옥엘 갈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업경대業鏡臺를 다 보지도 않고 염라가 판결했다. “우선 극락에 갈 사람은 저 여인 뿐이다!”. 너희 3명은 집행유예다. 다시 환생 하여 갚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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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성직자들은 벙벙했다. 내용인즉슨 여인이 성당, 사찰, 교회 앞에서 몸을 팔아 식구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그걸 가끔 보는 신부는 항상 끌끌 혀를 차면서 저런 짓을 왜? 하느냐?고 드나드는 남정네 숫자만 세다가 이승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목사는 매번 오가면서 마귀를 탓하면서 십자가만 들이 대며 보여 주다가 이승으로 왔다. 스님은 마음으로 몸이 묶여 있어서 몸 보시 하나 못함을 탓하며 목탁만 두드리다 올라온 경우였다. 즉 아무도 땡전 한 푼 보시 하거나 헌금 하지 못하고 자기 종교제도에 충실 한채 남 탓만 했지만 여인은 몸 살라 가족을 봉양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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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두마이는 면단위 항구도시인데도 아주 작은 동네라서 전화국 겸 우체국에는 국제해외 통화를 할 수 있는 유선 전화 선로가 4대 뿐이란다. 스페인, 일본, 한국 등 외국인들만 줄을 서도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그때는 국제전화요금도 비싸고 사적인 사유로 사무실 위성전화를 쓸 수 없는 환경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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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9일 전두환 정권은 버마 랭군에서 북한소행으로 많은 각료와 동행인을 잃었다. K O 도 12월 29일에 서울로 귀국하여 여심과 상면했으나 미소가 없었다. 김포공항 여심을 잃었다. 무소식은 여인에게 서운함을 안겨 주었나 보다. 실은 K O의 예지몽이 현실이 된 점을 감춘채 그저 차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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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인도네시아에 주거하는 한국 여인들 사이에서는 인니를 천국이라 부른다. 1990년도 기준, 한국 돈 2~5만원 이면 가사도우미 혹은 운전기사를 고용하고 먹을 것 풍부한 나라에서 현지인들의 우대를 받으면서 수영장 딸린 월세 주택에서 살 때였다. 지금도 천국으로 유효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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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7월 17일 K O는 자카르타 소재 크리스나 대학의 강의장에 초청강사로 서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소개자이자 연상의 친구인 중국계 호주국적의 미스터 왕박사(Mr. Frans) 와 티타임을 갖는데 학장님이 두 사람을 보자고 하신다 하여 가보니, 왕 박사! 는 왜? 내게 알리지도 않고 이런 시간을 갖었느냐? 고 하기에 무엇이 잘 못 된 줄 알았더니, 직접 K O 보고 감사 합니다! 하며 또 시간을 내줄 수 있냐? 고 묻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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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박사님과 K O 는 동시에 휴 한숨을 뱉어 내었다. 강의 후 학생 몇 명이 우연히 학장을 만나 보고를 했는데 재미가 있었노라고 유익했노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강의 중 완전히 언어적으로는 코미디 교실 같았다. 왕박사는 중국어 영어 인니어, K O는 영어 한국어 반쪽인니어, 학생들은 인니어 외 는 일부만 영어를 알기만 했어도, 꽤 재미있는 호응 좋은 두어 시간 이었다. 학생들은 땀 한 방울 안 흘렸지만, 열어 제낀 유리 창문 때문에 K O 와 왕박사님만 더운 바람 온도에 연신 손수건에 땀을 받았어야 했다. 그리고 같이 동행해준 현지 업체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국여인은 지루한 듯 했지만 뿌듯하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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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K O 는 왕박사님의 초청강의 제안을 받고서 엄두를 못 내어 대답을 안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일도 잘 마무리 되어 가는 경우라서 결정하고 호텔에서 강의 주제를 잡고 내용을 매일 보충 하여 일주일 만에 왕박사님의 내용 감수를 받아 강의 에 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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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목은
[6.25 한국동란 후 폐허에서 부흥하는 한국과 교육열(치맛바람) 과 인도네시아 발전] 이었다.
Lecturer 초청강사 : K O KIM(Ki Ouk) from Seoul Korea.
Subject 강의제목 : Development of Korea and Indonesia
With : Drs, Frans Angkasa; BBA; P.GRAD. Dip.Bus; M.BUS
At : Strategic business Grade. Economic Faculty ;
“ Krisna Dwipayana University. Jakarta.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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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들어준 30여명의 남녀 학생들이 서명한 사인지를 보면, 2021년 현재 이들도 이미 50여 살이 넘은 중년으로 살고 있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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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랑하나 메고 30여 개국을 돌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보일러 공으로 수리해 주고 품삯 받으면서 생계를 꾸리다가, 명성이 나서 하버드 대학원 가서 법문을 하며 수제자 (현각玄覺스님- 서울 수유리 화계사 선원장 하며 득도하여 미국 독일 사찰 주지역임) 들을 많이 만들어서 이름을 내시고 한국으로 돌아 오셔서 원적(돌아가신) 하신 숭산崇山스님이 생각 이 났다, 이 스님이 사용한 미국영어 언어는 하버드는 물론이고, 동네에서도 모자라는 영어 실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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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바름, 순수는 창조력을 지닌다! 라고 여겨진다.
성경한줄, 불경한줄 몰라도 순수하면 극락 천국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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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識이 넘치면 잡음이 된다.
지식은 아집我執. 고집을 수반한다.
물잔이 비워 질수록 잡음이 적다.
지혜智惠로움을 내잔에 담아서 남에게 건네야 한다.
100세까지 살라하니. 작복作福, 이타利他를 준비하며 행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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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6일 금요일 저녁 에 K 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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