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가 웃는다.
「소비자피해 경보제」의 탄생
- 정말로 중요한 제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농업관련 광고를 모니터하며 많은 광고의 내용과 문구를 시정토록 하는데, 어떤 작목광고 하나가 이에 불응하고 과장광고를 계속하였다.
「타조」(駝鳥, ostrich, 학명 Struthio camelus)였다.
「타조를 아십니까? 강건한 체질, 우수한 생장, 버릴 것 없는 쓰임새, 최고의 소득작목」이라며 일간신문과 농업 전문지에 광고를 하였다.
그리고 각 방송의 이벤트 프로에 매주 1~2회 타조농장, 타조 요리, 타조알 공예, 타조 경주, 타조 타기, 타조 깃털 패션, 타조 가죽제품, 타조 퀴즈, 타조 성공사례, 타조 사육기술 등을 방영했다.
특히 타조고기, 타조 관광, 타조 깃털, 타조 알, 알 껍질 공예, 타조가죽, 타조 병아리 분양 등, 모든 부분이 다 수입원이고, 사료로는 농가주변의 잡초, 목초, 농업 부산물에 약간의 배합사료로 충분하며, 질병도 거의 없고 분뇨마저 거름이 되는 최상의 작목이라 선전하여 많은 농가가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은퇴한 공직자, 명퇴자, 신규 창업자들이 타조농장 성공을 꿈꾸며 교육비를 내면서까지 교육장에 몰리고, 관람료를 내면서 견학과 농장방문 대열을 이루는 등 전국적인 타조열풍이 일어났다.
나아가 타조 분양업자들은 「타조 축산 협동조합」을 만들겠다며 발기인을 모집하고 농협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한편, 그 사실을 다시 언론에 광고하여 그 열풍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이에 필자는 타조열풍의 진실, 사양기술, 경제성 등에 대한 조사와 검토를 한 결과 문제점이 다수 발견되었다.
첫째,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증식, 분양되는 타조는 그 계통이 불분명하고, 형질이 열등하며 반복된 근친교배로 번식력과 내병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세대가 경과할수록 유전적으로 더욱 열등한 집단으로 내려앉고 있는 점이었다.
둘째, 타조의 사양과 번식에 대한 기술이 정립되지 않아 이곳저곳에서 문헌을 발췌하고 대충 긁어모은 자료에 최근 수년의 사양경험으로 기술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향후 전염병이나 생리장해, 번식장해, 유전적 문제, 기형이나 이형체 발생시 대책이 전혀 없음은 물론, 대처할 실력이나 대응체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셋째, 시장성과 경제성이 거의 없는 점이었다.
△ 타조관광은 이미 선진국에서 「동물학대」로 지목되어 대부분 금지되었고,
△ 타조고기는 10~12개월 령에 한해 식용으로 쓰이는데, 가격이 소시지원료로 쓰이는 최하급 육 토끼고기 수준인 점,
△ 타조깃털이 패션에 쓰인 것은 19세기였고, 지금은 전혀 쓰이지 않으며, 앞으로 쓰일 전망이 전혀 없는 흘러 가 버린 유행인 점,
△ 타조 가죽은 특별한 시설, 기술에 충분한 물량이 있어야 가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 타조 알을 식용으로 즐기는 수요층이 없고 마땅한 요리법도 없는 점,
△ 알 껍질 공예는 개인의 취미일 뿐 시장과 판로가 전혀 없는 점,
△ 타조 병아리 분양은 지금의 타조열기가 지속될 때만 수익이 있는 점 등
수익성, 시장성 각 부문마다 모두 심각한 문제점이 나타난 것이다.
또,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외국에서도 한 때 타조열풍이 불었으나 타조를 입식한 농장 중에 수익을 낸 사례가 거의 없고 대부분 적자로 사업을 접었고, 극소수 수익실현 사례는 병아리분양 뿐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타조열풍은 「분양업자에 의한, 분양업자를 위한, 분양업자의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분양업자를 불러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반론이나 추가자료를 요청한 다음, 광고자제와 사업의 신중한 추진을 당부했다.
그런데, 업자들은 반론이 없이 광고의 내용만 일부 변경, 순화시켜 농협의 주목을 피할 뿐, 사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기미가 없었다.
또, 추진하던 「타조 축산 협동조합」을 「타조 협회」로 바꾸어 농협과 확실히 갈라서는 모양새를 갖추더니, 도시의 은퇴자, 귀농희망자, 퇴직자들을 표적으로 사업의 열기를 더욱 거세게 몰아갔다.
마침 그 때 IMF사태의 여파로 구조조정이 성행, 명예퇴직자와 실직자, 구직자가 홍수를 이루고 있어 타조농장의 열기는 더욱 높아 갔다.
더불어 농가와 희망자를 대상으로 「타조, 21세기형 벤처축산」이라는 문구를 앞세워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 광고의 의미에 대해 문의했더니 ‘21세기형’이라는 말은 「새천년」과 같이 희망찬 미래를 기원하는 상징일 뿐이고, ‘벤처’라는 말은 벤처 기업의 성공률이 1~3%에 그치므로 듣기만 그럴 싸 할 뿐, ‘과장광고가 아닌 진실한 광고’라고 변명했다.
당시의 시대조건과 상황을 절묘하게 활용한, 참으로 기발한 표현이며, 기가 막힌 광고, 광고 대상자들에게는 희망과 비전을 주지만, 법률의 잣대로 통제나 처벌을 할 수 없는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그 광고로 인한 축산농가의 피해, 귀농자와 은퇴자, 창업자의 피해가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 사법권이나 행정명령권이 없는 농협으로서는 이 사태를 통제하거나 견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도 허위 과장광고라는 판정을 할 수 없어 어떤 제재나 행정조치도 하기 어려운 교묘한 재주를 부린 것이다.
그래서, 그 동안의 조사결과와 검토의견을 문서로 만들어 전국 계통사무소에 시달, 우리 조합원과 고객의 피해를 막아 주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런데, 그 문서를 본 어떤 사무소는 아예 무시했고, 어떤 사무소는 오히려 반론을 제기하고, 심지어 중앙회가 축산업의 새로운 돌파구에 찬물을 끼얹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비난하는 임직원도 있었다.
반론과 이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관련자료와 조사결과를 모두 보내 주었지만 이쪽의 뜻과 우려가 모두 다 전달되기는 어렵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은 한 번 세뇌가 되거나 고정관념에 휩싸이면 다른 의견은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단계로 조사결과를 농민신문에 제공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자 농민신문에서는 이미 확보한 정보를 더하여 기획기사로 크게 다루어 문제화 했다.
더불어 농림부에도 이 문제에 대한 조치를 건의했다.
농림부는 농협의 건의와 농민신문 보도를 계기로 타조열풍에 대한 자체조사와 검토를 한 다음, 전국에 「타조 주의보」를 발령, 농가와 타조입식 희망자, 타조사육 대기자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었다.
또, 한국소비자보호원에도 이를 건의한 결과, 소보원에서도 「소비자 피해 주의보」를 발령해 타조열기를 식히는 데 힘을 보태 주었다.
곧 이어 농림부에서 2차, 3차 「타조주의보」를 발령하였고, 농민신문에서 다양한 후속보도로 문제점을 일깨워 주어 전국의 타조 열기는 서서히 가라앉고, 냉정을 되찾아 농가의 피해는 그리 많지 않은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한 번 열기에 빠진 몇 사람은 이런 정부의 조치와 농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타조를 입식, 고집스럽게 기르다가 판로를 찾지 못해 결국은 큰 손해를 입었다.
타조에 매료되었던 한 농가는 ‘농민신문에서도, 정부 발표에서도「타조 입식을 주의하라」는 말이 있었고 그 기사를 직접 읽기도 했으나,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이는 어떤 일에 깊이 빠지면 신문보도나 TV방송, 정부의 경보문을 손에 쥐어 주고 눈앞에 보여 주어도 눈이 멀고 귀가 먹은 듯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어서, 조합원과 직접 접촉하는 일선 계통사무소의 역할과 현장의 지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말해준다.
지금도 타조를 사육하는 농가가 극소수 있지만, 그들의 경영형편이나 사업내용을 볼 때, 그 때 타조열기를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전국의 수십만 농가와 창업자 수십만 명이 타조를 입식하였을 것이고, 그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커져 경제파탄 농가와 사업실패사례, 피해규모가 엄청났을 것이다.
그리고, 이일을 계기로 농림부는 작목이나 영농자재, 농산물의 수급과 관련한 「조기 경보제」를 마련하여 문제나 피해가 예상될 때마다 미리 발령, 농가와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등 시의 적절히 활용하고 있고, 한국 소비자보호원에서는 「소비자 피해 경보제」를 채택, 활용하고 있다.
또, 그 후부터 「금융위기 조기 경보제」「개인신용 조기 경보제」「식품 위해 발생 경보제」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기경보시스템이 개발, 시행되어 「조기경보제의 토착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농협의 창의적이고 선진적인 노력, 농업인의 피해를 막아 주려는 충정이 결실을 맺어 정부의 정책 선진화와 국민편의 증진에까지 크게 기여한 사례이다.
농협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지도사업을 통해서만 농업인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시책에 참여하고 지원하고 선도하여 더 큰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