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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코타키나발루 겨울 요트 항해(제주에서 화련항으로)
2018년 11월2일 아침
동남아 꿈의 세일링 1차때 참가했던 대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벗사마호는 최종목적지인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가기위해
김녕항에서 출항했다.
한달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항해이다.
2010년이었다.
단독세계일주 항해에 도전할때였다.
1년을 목표로 도전한 항해였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나는 남아메리카로 내려가 대서양에서 태평양을 향해
어려운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험한 바다만큼이나 힘든것은 기간이 늘어남으로 해서
점점 바닥을 보이는 항해자금이었다.
그때 이런 사정을 알고 도움의 손길을 준 분이 이번에 항해할
벗사마호 선주 허광음선장이다.
그 이후 우리는 호형호제하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두달전쯤 광음형님이 말레이시아까지 항해에 선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고 나는 흔쾌이 청을 받아 들여
이 항해에 참여하게 된것이다.
하지만 걱정도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여태껏 한번도 내가 주도하지 않은 항해를 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호형호제 하는 사이긴 하지만 선주가 있고
선주의 동생, 또 선주동생의 선배
그리고 나!
이렇게 네명이 항해를 한다고 한다.
멤버는 또 그렇다 치자 일정은 어떤가?
항해만 하는게 아니라 중간에 여러군데를 들려서 간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20군데나!
'출입항 수속만 하다가 말겠는걸!'
'아냐! 하다보면 다 조정이 되고 의논하며서 맞추어 가는게 항해지
암! 그러다 보면 또 한수 배우게 되고!'
여러명이 하는 항해에서는 험한 바다만큼이나 힘든게 하는게
크루사이에 일어나는 분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뭍에서 내가 해야할 일들과
선상에서 내 위치에서 해야할 일들이 전혀 다르고 낫설기
때문일것이다.
아주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것에 그 성품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내부적 갈등마저 일으키는 것이 항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또한 노련한 선원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면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수 있는게
항해가 아닐까?
이야기가 딴길로 빠졌다.
방파제를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오자 북풍에 일렁이는
하얀파도가 육지가까이에 오면서 큰 너울이 되어 벗사마호를
크게 출렁이게 만든다.
북쪽으로 얼마쯤 벗어나 선수를 동쪽으로 돌려 우도수도쪽으로
향한다.
하늘 저 멀리 헬리캠 한대가 이런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헬리캠 카메라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우도수도를 벗어나니 성산일출봉이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존재감을 뽐내고있다.
우리는 너나없이 인증샷을 찍어본다.
처음 항로는 이어도를 거쳐 대만 화련으로 가기로 정했으나
배의 속도와 기상을 참조할때 이어도를 거쳐서 가면 밤에 도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성산앞바다에서 화련까지는 직선항해를 하기로
한다.
목적지를 화련항 앞바다로 정하고 동중국해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어선들을 조금이나마 피해보고자 항로를 10도정도 일본쪽으로
치우치게 하여 나아간다.
북동풍이었던 바람은 주 항로 쪽으로 돌아서자 정확하게 뒷바람이
되어버려 도움이 안되고 되려 성가시게 된다.
뭍에서 거리가 멀어지자 제주도 전체모습을 볼수 있게 된다.
'야! 멋지다!"
파란 바다 저멀리 제주도! 그리고 우뚝 쏫은 한라산!
어디에서 이런 광경을 볼수 있단 말인가?
그때쯤 선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무슨소리지?
누굴부르나?
'형~!' '형~!'
무슨일인가 뛰어 내려가보니 허광훈씨가 선실바닥에 앉아
다리를 움켜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칼이 나뒹굴고 있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다.
'어떻게 된겁니까?'
'요리하다 칼이 떨어졌어!'
'예?'
'그게 칼날부터 떨어지면서 발을 꽂히면서 떨어진거야!'
'어디 한번 봅시다.'
칼은 하필이면 허광훈씨의 복숭아뼈 부분에 떨어지면서
1센티 가량을 찢어놓고 떨어진것이다.
지압을 해도 좀처럼 피가 멈추질 않아 우리는 배를 돌려
병원을 찾이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일로 세시간정도 시간이 늘어지다 보니 도착시간이 애매해진다.
세옹지마라도 속담도 있고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도 있다.
우리는 원래항로에서 서쪽으로 약 50마일쯤 떨어져 있는
이어도를 거쳐서 가기로 한다.
서귀포 남단을 거쳐 얼마나 갔을까 내려놓은 트롤링 낚시줄이
늘어났다.
무게를 보니 고긴 아닌가 싶었지만 끝에 고등어 한마리가 딸려온다.
트롤링으로 잡는 고기치고는 작은 고기다.
'그래 항해는 이런것이지!'
하고 우리는 잠시 호들갑을 떤다.
고기를 잡고 기뻐하고 다듬고 먹고 하는 과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먼 항해길에 대한
숨겨져 있는 걱정을 잠시 위로해주는 사건임에 분명하다.
한시간쯤 지나 저녁이 될 무렵 병어를 닮은 고기를 한마디 더
올렸다.
큰 사이즈의 고기가 아니어서 잡는 족족 회를 쳐서 먹었다.
사방은 소리없이 어두워지고 우린 항해등을 켜고 야간항해를 시작했다.
약간의 백파가 있는 바다였지만 너울방향과 우리의 진행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느낌이 거의 없었다.
깜깜한 밤바다에 우리는 항해등을 켜고 저 어둠너머에 있을
이어도를 향해 나가갔다.
전설속에나 있다는 이어도가 아니던가?
'이어도야 어디있니!'
드문 드문 보이는 낚시배 불빛은 친구가 있다는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피해가야할 장애물이기도 하다.
AIS항법장치를 통해 배들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면서 오토파일럿의
각도를 좌우로 돌려가며 항해에 집중한다.
2018년11월3일
새벽 한시에 견시를 위해 앞 근무자인 광음형님과 교대했다.
바람은 여전히 별 도움이 되질 못한다.
엔진하나로 5.4노트정도이다.
이어도에 날이 새는 시각에 도착하려고 속도를 늦춘것인데
이대로면 10시쯤 도착한다.
엔진을 하나 더켜면 7.5정도 달려 7시쯤 도착할수있다.
달이없는 하늘엔 별들이 더욱 빛난다.
마스트등과 함케 어우러진 무수한별들
이런 바다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우주에 속해있음을 느낄수있다.
제주최남단섬에서부터 상해쪽으로 40마일쯤 내려온지점이다.
이어도까지는 42마일쯤 남았다.
이어도를 보기위해서는 원래의 항로에서 50마일쯤 서쪽으로 치우쳐서 가게된다.
중국쪽으로 그 만큼 더붙게 되는데 별로 기분좋은일은 아니다.
시간상으로도 그만큼지체되는데
늘 가능한 최단거리 최단시간에 길들여진 딜리버리전문가에게
이런 여유로운 항해는 사치로 느껴진다.
일종의 직업병인셈이다
다음 근무자에게 견시임무를 교대하고 선실에 들어와서
쇼파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청했다.
5시쯤 허광훈씨가 선잠에 든 나를 깨운다.
'여긴 내자리야!'
'이기 무슨 소리지?' 잠시 페닉에 빠진다.
요트를 시작하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혹시 뭔일이 생기면 대처하기 쉬운 가장 근접한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 .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나?'
좌현 앞쪽에 위치한 앞방으로 간다.
여기는서 배를조종할수있는곳까지 최소한 10초는 걸린다.
허겁지겁 움직이다 보면 다칠수도 있고 긴박한 상황에 제때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들 잘 할꺼야! 너무 걱정말자구!'
다시 잠들어 얼마쯤 지났을까
데크위로 사람들이 쿵쾅거리고 뛰어다닌다.
직감적으로 그곳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이어도!'
서둘러 밖으로 나와보니 눈앞에 바다 한가운데 덩거러니 철구조물 하나가 보였다.
'저게 말로만 듣던 이어돈가 보다!'
내심 기대는 어마어마한 해양기지 였는데
그런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8시경 이어도해양기지에 가까이 접근했다.
형님이 반가운 마음에 무전을 시도했다.
'이어도해양기지! 이어도 해양기지! 여기는 요트 벗사마호입니다.
감도 있습니까?'
다시한번 시도한다.
'이어도해양기지! 이어도 해양기지! 여기는 벗사마호입니다.
감도 있습니까?'
묵묵부답이었다.
그 대신 해양기지에서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대략이런 내용이었다.
'여기는 대한민국 해양기지입니다. 이 시설물에서 즉시 벗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어로 계속 반복해서 방송했다.
우리는 더 이상 접선시도를 멈추고 방송내용에 순응하여
시설물에서 떨어져나갔다.
이어도 주변에는 수백척의 어선이 ais상에 나타났다
트롤선인지 배들이 계속 돌아다녔다.
아쉬운 마음에 이어도 해양기지 주변을 한바퀴돌고
다시 대만화련으로 선수를 돌렸다.
잠시후 3미터쯤되는 유목을하나 발견하고는 급히 오토시스템을 풀고 수동조타로 피해갔다.
엔진 알피엠을 2200까지 올려 7.8노트로 달린다.
선실안어서 파리한마리가 성가시게 날아다녔다.
허광훈씨가 즉시 따라가 전기충격기로 가격한다.
그 결과 파리는 사망한다.
예전에 혼자 대양을 건널때는 하찮은 파리도 반가워
친구처럼 지낸적이 있었다.
아침을 먹고는 1층 콕핏에 자리를 잡고 누워 휴식을 취한다.
10시반쯤 갑자기 엔진두개가 동시에 멈추었다
잠시후 시동이 살아났지만 신기한 일이다.
11시, 북동풍15노트에 엔진을 끄고 범주를 시작했다.
메인세일1단 축범에 제노아세일을 펼치고 평속 7노트다.
트롤링낚시를 내렸다.
얼마후 70센티쯤 되는 삼치를 한마리 걸었다.
잘 따라오던 삼치가 요트를 보더니 마지막 힘을 다해 몸통틀기 기술을
사용하는가 싶더니 바늘을 뻬고 달아나 버렸다.
점심때는 선배분이 봉글레파스타를 만들었다.
많이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여느 영업점에서 먹었던 파스타보다
맛이 좋았다.
가끔 상선과 조우하고 하는데
그중에 한척과 무전으로 교신하여 기상을 물어보았다.
'파인데이!'
심플한 대답이다.
오후에는 70센티쯤되는 삼치를 걸었다.
이번에는 녀석을 콕핏위로 끌어올릴수 있었다.
삼치는 탈출을 하던 낚시에 잡히던 전혀 손해볼일이 없다.
탈출하면 살아서 좋고 잡히면 사람에게 보시를 하게 되어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날수도(?) 있을 것이다.
삼치머리를 자르고 배를 가른뒤
포를 떠서 회를 를 쳐서 먹었다.
심적인 부담은 별로 없었다.
인간이 죽여서 먹는 것들 중, 생선이나 동물을
살생을 해야할때 그것들의 크기와 비례해서
부담의 크기도 크진다.
작은 물고기야 누구나 별 죄의식없이 죽일수 있지만
덩치가 조금씩 커지면 용기가 필요하다.
보통사람이라면 닭한마리를 죽이기도 힘들다.
하물며 더 덩치가 큰 양이나 소의 목숨을 끊어놓으려면
전문가가 손을 빌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삼치를 먹으면서 예전에 삼치를 먹고 충때문에 일주일간 고생한
얘기를 했다. 그래도 다들 잘 먹었다.
저녁에는 동생분이 삼치초밥과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형님과 선배님은 삼치회를 많이 먹어 입맛이 없단다.
삼치충 얘기를 하는게 아니었다.
두사람이서 저녁식사를 마쳤다
초저녁에는 쉬었다가
밤 11시30분부터 야간근무를 시작했다
어선들이 밤바다를 가득메우고 있다.
화련까지 남은거리는400마일 평속은 8노트로 달린다.
수심은 50미터다. 동중국해에 이토록 어선들이 많은건
낮은 수심이 고기들이 살기좋은 환경을 제공할기 때문일것이다.
초저녁에 살짝 빗방울이 뿌렸지만 지금은 흐리기만하다.
수많은 어선들 사이로 안전한길을 찾아간다.
어선들이야말로 고기만있다면 항로우선권 같은 건 전혀
상관없는 얘기다. 특히나 중국어선들이야 더 말할 나위없다.
11월4일
새벽 2시반쯤 형님과 교대했다.
콧핏에 누워잠을 청했다.
드문드문 잠을 자두었음에도 이내 깊은잠에 빠져들었다.
카타마란 요트 항해경험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모노헐에 체적화된 몸이어서 일까
특이한 꼴랑거림에 아직 적응이 안된 것 같다.
오전8시, 80센티쯤 되는 만세기를 한마리 걸어 올렸다.
순순히 따라오던 녀석은 요트 뒤부분에 이러자 꼬리로
뱃전을 탁 하고 치더니 그 탄력으로 바늘을 뽑고 달아나 버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녀석은 이 속담을 알고 있는게 아닐까?
왼쪽엔진이 멈추었다. 연료문제인것 같아 보였다.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엔진의 뜨거온 온도 때문에
수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망망대해에서 바쁠건 없다.
12시경, 다시 고무줄이 늘어났다
묵직한 기운이다. 힘들게 끌어올리고 보니
60센티급 참치인데 3킬로는 될듯하다.
너나없이 인증샷을 찍고는 손질해서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점심은 선배분이 조리한 짜장면이다.
나는 주로 국과 밥으로 식사를 준비하는데 비해
선배분은 요리를 해 낸다.
정성을 들인 것 만큼 맛이 좋다.
배는적어졌지만 쌍끌이어선, 외끌이 어선들이 우리의 항적을
삐뚤게 만들어놓곤한다.
엔진수리를 시작했다.
연료라인과 연료필터 모두를 점검했는데 엔진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하다하다 1차필터를 경유하지 않고 연료를 바로 엔진에 붙어 있는
2차필터에 직결해서 간신히 엔진을 살려내었다.
오후2시경, 칠십센티 만세기를 한마리 잡았다.
이미 냉동고는 참치로 가득차서 더 이상 공간이 없다.
같이 참치라면 어떻게든 저장해 보겠지만 만세기를 위한
공간은 없다.
잡은 만세기를 살려주었다.
녀석이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이게 뭐야! 드디어 인간에게 잡혀 보시하고
나도 이제 승급하나 했는데! 저것들이 나를 잡고도 버려!'
이렇게 말이다.
만세기가 원망스런 눈초리로 우릴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그니까 참치로 태어 났어야지! 쨔샤!'
만세기는 고개를 획 돌리며 멀어져 간다.
오후3시부터 6시까지 취침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고있던 동생분이 손질해놓은 참치를 버렸단다.
냉장고가 비좁다는 이유에서였다.
'참치덮밥을 만들어 먹으려고 했는데 이 무슨 행포란 말인가?'
'다시는 잡나봐라!'
햇반에 김치찌게를 먹으며 분한 마음을 삭힌다.
11월5일
새벽두시에 동생분과 교대했다
하늘이 더없이 맑아 별이 아래로 쑤욱 내려앉은 것 같다.
상선한척이 왼쪽으로 지나갔다.
오른쪽 저멀리 오징어 잡이 배 불빛이 보이고
선수쪽을 칠흑같이 어두웠다.
앞으로 한시간 정도는 배가 없을 것 같다.
편한만 마음으로 앞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가고 있는데
작은 불빛하나가 앞에서 아른거렸다.
뮈지하고 생각하는데 바로 배전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뒤로돌아보니 어구에 다는듯한 전구 불빛이 떠있었다.
반쯤 물속에 잠긴듯한걸보니 그물이 함께있는건 아닌것같다.
그 이후 서너개쯤 더 같은 불빛을 보았다.
네시 20분쯤 속눈썹같이 가는 달이 떠 올랐다.
달은 점점 작아지고 뜨는 시각은 늦어지고 있다.
5시 형님과 교대했다
8시 식사때까지잤다
식사는 동생분이 준비한 샌드위치, 계란프라이,우유다
한끼를 떼우고 선실에서 선배분의 인생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보낸다.
파도는 높아지고 바람이 20노트까지 올라가기도한다.
센카쿠열도를 20마일쯤 동쪽에 두고가게된다.
일본과 중국이 저 섬을 두고 맨날 싸우니 이참에 우리가
태극기를 슬그머니 꼽아버리고 가면 어떨까 고민해본다.
선실온도가 33도까지 치솟는다.
어느틈에 다들 반팔차림이다
너울파도에 배가 심하게 요동쳐서 형님이 셀프티라인을 설치한다.
동생분이 버렸다던 참치가 되돌아왔다.
'머리만 버렸거든!'
'뭐꼬, 진즉에 말해줬어야지!' 속으로 말한다.
나를 놀려먹으려든 심보임이 분명하다.
아뭏든 돌아온 참치는 반가웠다.
점심은 잘 냉동된 참치를 썰어 참치덮밥을 해 먹었다.
저녁은 동생분이 준비했다. 돼지고기 삼겹살과 홍합미역국이었다.
미역국은 배에서 만들어 먹기 좋은 음식이다.
특히 미역은 저장성이 아주 좋다.
밤에는 선배분 인생얘기에 빠져들고
형님 살아온 관록에 심취해보기도 한다.
동생분도 참 파란만장을 삶을 살아왔다.
지나간 이야기는 현재의 그사람을 제대로 알게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해가 끝났을때 훨씬 더 가까워질수 있고
그 사람의 행동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저녁에 왼쪽엔진이 다시 멈추었다.
탱크에 찌꺼지가 많아 새로 갈아 끼운 연료필터가
막힌 것이다.
다시 갈아끼우지만 얼마나 갈지 모르는 상태다.
11월6일
두시교대하자마자
반가운소식은 인터넷이터진다는거였지만 곧이어
안좋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폭풍에 비바람이 치고 폭우에
번개마저 번쩍거리며 사방이 북새통이 된다.
비미니 천장에서 비가 새서 등짝에 줄줄 흘러 내린다.
의자 좌우에서도 빗물이 흘러 들어와 엉덩이가 축축히 젖는다.
20분쯤 퍼붓던 폭우가 지나고 간간히 비를 뿌릴뿐
바람도 많이 잦아졌다.
그칠줄알았던 비가 계속되어
비옷을 챙겨입었다
휴대폰시간이 한시간늦어졌다
현지시각으로 세시을 넘어 갈때쯤 비가 그치고 시야가 좋아졌다.
대만 동해안의 도시불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5시교대후 형님과 잠시 함께있다가
엔진을 수리했다
연료통에 찌꺼기가 원인이다
1차필터를재거하고 엔진에 붙은 2차필터만으로 겨우 연료를
빨아올려 시동 을 걸었지만 잠시후 다시 엔진이 멈추었다.
이번에는 오염된 탱크를 대신해 말통에 직접 연료호스를 연결해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30분도 안되어 시동이 또 꺼졌다.
디젤엔진의 특성상 공급 된 연료 중에서 사용안한 연료는 다시 탱크로
돌아가기 때문에 연료가 금새 바닥이 난것이다.
이번에는 말통에 연료를 가득채우고 공급호스와 되돌아 나오는 호스를
모두 말통에 꼽고 에어뻬기를 한후 시동을 걸었다.
근무가 끝나고 엔진수리를 시작해 9시반까지 계속되었다.
머리가 멍해져 잠을 정했다.
한시간후 한잠 선잠이 들어 몸이 침상에 늘어붙어 있을때였다.
동생분이 대만국기의 아래위를 인터넷으로 알아보라고 한다.
접안까지 아직 세시간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직접알아보던지 아님 한시간만 더 놓아두지!'
전파도 안잡히는곳에서 잠만 깨고 말았다.
화련항에는 오후2시경에 도착했다.
코스트가드가 와서 외국배에 대한 검문을 실시한다
동생분이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대만국기를 달아 올렸었다.
관청직원들이 다 가고 난뒤 무심결에 발견했는데
대만국기가 달려 있어야 할 자리에 필리핀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게
아닌가?
'이런 낭패가 있나?'
우리는 얼른 국기를 교체했다.
다행히 관청직원들이 모르고 넘어갔다
세시경 대만친구 조가린씨가 와서 함께
출입국사무소에가서 여권에 스템프를받았다.
조가린씨는 세계일주를 할 당시에 사귄 친구다.
배로 돌아와 식수를 채웠고 밀린 빨래를 했다.
저녁에는 조가린씨가 소개하는 야시장을 찾았다.
이름이 동대문 먹자광장이었다.
낮설지 않은 이름이다.
야시장에서 식사를 마치고 조씨가 요트까지 차를 태워주었다.
조씨는 요트에서 차한잔을 함께한 뒤 돌아갔다.
11월7일
9시에 탱크를 청소하기로 한 기사가 찾아왔다.
조가린씨가 소개한 사람으로 요트클럽멤버이기도 하다.
에어콤프와 연료펌프, 대형통 말통3개, 그리고 200리터쯤되는
큰 연료통 하나도 가져왔다.
비용은 1000대만달러 33달러정도이다.
조수도 한명 데려와서 해주었으면 했는데 굳이 혼자
온것이다.
그래서 우리쪽에서 세사람이 붙어 일을 함께
하게되었다.
기사는 조금 서두러는듯했다.
그래서 우리마음도 살짝 바빠졌다.
이 와중에 선배분에게 말통을 옮겨 달라는 등 부탁이 많아졌다.
더운 아침에 모자도 못쓰고 썬크림도 못바르고
여기서 부르고, 저기서 부르는 바람에 선배분 성질이 폭팔해버렸다.
안에서 듣고 있다가 올라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챙겨간 모자도 건네주었다.
다시 정신을 챙기고 연료통 위에 앉아 청소를 도왔다.
수리기사의 마음이 바쁘고 한바탕 소란이 있어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나 보다.
연료펌프를 돌리는 순간 호스가 말통에서 빠져 사방으로 연료가 튄다.
얼른 꼭지를 잡아 말통으로 쑤셔 넣었지만 이미 연료가 사방으로
튀고 난 뒤였다.
사고는 순간적이었지만 수습하는데는 거의 한시간이 걸렸다.
기름을 다 닦아내고도 남아있는 냄새를 재거하기위해
몇일간 연료통이 있는 뒷방을 개방해두어야 했다.
11시쯤 연료통 청소를 마치고 필터를 구하러 갔지만
벗사마호 엔진과 맞는게 없었다.
돌아와서 마스트에 올라가 메인헬려드 시스템을 조금 개조하였다.
마스트꼭대기에 있는 정박등의 전구도 나가버려 교체했다.
내려오면서 국기 게양 라인을 설치했다.
형님이 식수를 만드는 조수기의 수리시작해 옆에서 조수역할을 했다.
저녁에는 조가린씨가 속한 화련요트클럽에서 우리를 초대해
구구반점이라는 음식점에 들렀다.
그곳에서 '허구어'라는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이게 정말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해물에서 육고기 채소까지 신선한 식재료가 한상가득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 58도나 되는 금문고량주를 냅다 들이키다보니
취기가 급상승했다.
우리를 포함해 모두 10명이 어울려 기분좋은 파티였다.
그중에서 선배분의 기분이 제일 좋았는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뽀뽀를 해대는 통해 어떤 사람은
피해달아나고 못달아나는 사람은 뽀보를 당할때 눈이 500원짜리
동전만큼 커졌다.
11월8일
형님은 다른 스케줄이 있어 한국으로 돌아갔다.
동생분과 동생선배분은 주변에 좋은 관광지가 있다며
구경갔다. 같이 가자 했지만 배에서 쉬는게 더 나을 것 같아
남기로 했다.
9시경 첸이라는 사람이 카스테라들고 찾아왔다.
첸은 배를 정박한 마리나의 직원이며 요트클럽의 멤버이기도 하다.
11시에 첸과 연료필터시스템을 구입하러 시내로 갔다.
시내에서 식사를 하고 필터를 구입해 요트로 돌아왔다.
낮에는 너무 더워 에어컨을 틀고 낮잠을 잤다.
3시 수리시작했다.
잠시후 구경갔었던 두사람이 돌아와서 도와주었다.
수리를 마치고 저녁에 올 화련요트클럽사람들을 위해
동생분이 세프가 되어 준비를 했다.
선배분과 나는 옆에서 도왔다.
메뉴는 김치전, 김치, 파김치, 낚지젓,
훈제오리고기, 월남쌈이었다.
한국식에 가까운 메뉴였는데 다들 좋아했다.
식사가 끝날무렵 냉동고에 있는 참치를 쓸어 내어 놓았더니
감탄사를 쏟아내었다.
조가린씨가 올때 가져온 금문고량주는 어제의 과음때문에
얼마 마시지 못했다.
다를 돌아가고 난뒤 세사람이 함께 뒷마무리를 하고
은근히 취한 마음에 집으로 전화해
집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저너머에서 들리는듯한 목소리
'이 사람 또 한잔했구먼!'
11월9일
10에 출항하기로 했는데 그때쯤 코스트가드가 와서 요트점검을 하였다.
조가린씨와 첸씨가 배를 밀어주고 배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봐
주었다.
화련항을 빠져 나가면서 무전기로 화련포트컨트롤에 출항보고를 했다.
체널은 14번이었다.
영어로 하지만 겁넬것은 없다.
세계어느나라에서던 그들이 묻는 것은 간단명료한 것이다.
배의 국적이 어디냐?
마지막 출발항(Iast port)은 어디냐?
다음 목적지(next port)는 어디냐?
출발시간은 언제냐?
도착예정시간은 언제냐?
배에는 몇명의 선원이 탔느냐?
선원들의 국적은 어디냐?
선장의 이름을 말해라?
중학교때 배운 실력으로도 가능한 정도이다.
화련항을 빠져나와 메인세일을 올리고 남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왼쪽엔진이 연료트러블로 엔진이
다시 멈추었다.
'도대체 왜?'
'필터도 갈고 연료탱크도 청소했는데 도대체 왜?'
참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다시 차근 차근 연료라인을 점검했다.
연료통에서 연료필터로 가는 호스안에서 찌꺼기가 조금 나왔다.
1차연료필터에서 2차로 가는 호스도 확인했다.
하나하나 입으로 불면서 찌꺼기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난 다음 에어뻬기를 실시하고 시동을 걸었다.
엔진을 살려내었지만 언제 다시 꺼질지 모르는 상태이다.
80센티쯤 되는 만세기 한마리를 걸어 올렸다.
반은 회를 뜨고 반은 구이를 해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직 잘익은 김치가 있어서 회든 구이든 위에다가
파김치나 배추김치를 얹져서 먹으면 맛이 구수해진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트롤링 낚시의 고무줄이 늘어나서
올려보았더니 70센티급 만세기다.
냉장고에 아직 잡은 고기가 남아있어 방생한다.
참치를 잡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낚시를 걷었다.
낮동안은 날씨가 화창하고 좋다.
밤에는 풍속 20노트이상의 바람이 예보되어 있고 비도 조금
내린다고 한다.
낮동안은 선실온도가 35도까지 치솟았다
저녁은 짜장을 만들어 식은밥에 비벼 먹었다.
20시경 다시 연료배관이 막혀 역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필터유입구에서 찌꺼기를 뻬냈다.
'왜 찌꺼기는 필터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유입구에서 막힐까?'
"찌꺼기 입자가 크서일까?'
아뭏든 트러블이 일어나는 장소를 알아내어서 해결도 빠르다
11월10일
0시20분쯤 야간근무를 위해 교대했다.
taitung시티 부근이다.
속도는 5.7노트 65마일 남았다.
연료가 생각보다는 적게 남아있다.
화련에서 넣고오는게 나았었다.
해류때문에 연료를 많이 쓰게된다.
바람이없어 엔진으로만 가는데
왼쪽은 한칸, 오른쪽은 거의 마지막 눈끔에 게이지가 붙어있다.
게이지가 여유롭게설게 되었기를 바랄뿐이다.
연료가 충분할까 하는 질문를 받았지만
충분하다고 말해주었다. 괜히 다른사람까지 신경쓰게 할 필요는 없다.
01시30분 다시 엔쪽 엔진이 막혔다.
연료호스를 입으로 한모금을 빨아내어 뱉었다.
찌꺼기가 꽤 많이 나왔다.
화련에서 세번이나 탱크안에 에어를 불어넣어 휘젖어 가며
세척을 했건만 기가 찰 노릇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오염된 더러운 기름을 한번넣은것은 아닐까 싶다.
엔진을 살려 내었지만 두시반경 다시 엔진이 멈추었다.
그때쯤부터 예보되었던 바람이 터지기 시작하여
범주를 시작하였다. 6노트이상 달려주었다.
04시10분 컨팅을 40마일쯤 남겨두고 교대했다.
파도로 펀칭이 심했다. 특이한 카타마란 롤링에 익숙해져서
편했다.
06시 날이새었다. 바다는 백파로 가득했다.
바람이 18노트정도로 불었고 배의 속력은 10노트를 오락가락한다.
대만 동해의 찬란한 일출이 시작되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구름없이 해가 뜨는 광경을 보노라면 저절로 애국가 앞소절을
읖조리게 된다.
파도가 높아져서 가끔은 바닷물이 이층조타실까지 튀어 올라온다.
범주로 속도가 잘 나주어서 이제 연료걱정은 사라졌다.
07시30분 대만 최남단의 곶부리로 다가갔다.
강하지만 부드럽게 밀어주는 뒷바람을 타고 컨딩마리나를 향해 다가갔다.
육지 언덕위에는 미사일기지이 돔 안테나가 아침햇살을 받아 빛났다.
곶부리 아래쪽에는 해류나 조류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에비해
파도가 거칠었다.
그곳에 트롤링 낚시를 하는 어선들이 많았다.
낚시배 한척이 황새치를 한마리 걸었는지 뒤에서
2미터 가까이 되는 물고기가 펄쩍 펄쩍 뛰면서 배에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곶부리를 돌아섰다.
바람을 거의 뒤에서 받게 되었다.
여전히 속도가 잘났다.
마리나 입구 바로 오른쪽에 돔형 대형 구조물이 두개보였다.
'저건 원자력 발전소야!'
낚시배가 많아서 자이빙하는데 무척신경이 쓰였다.
배를 조금씩 돌리면서 메인세일에 바람이 반대로 들기를
기다렸다. 번개처럼 메인시트를 조였다 풀어주며
세일을 반대방향으로 넘겼다.
강풍에서는 자이빙하는게 늘 부담스럼다.
붐이 운영폭이 넓으니 그만큼 펀칭도 거칠어 지기 때문이다.
동생분이 대만 낚시배들의 활략상을 지켜보더니
거친바다에 항해를 마쳐야 하는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참치가 간절했던 모양이다.
어느순간 뒤돌아 보니 트롤링 낚시를 내리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기구경을 할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낚시를 잘하기 위해서는 이곳 어부들에게
어구를 만드는 법과 배를 조선하는 기술을 조금 배워야
한다.
컨팅항 입구는 수심이 낮고 암초와 그물이 많아 주의가 필요했다.
좁은 항입구를 지나 조금 들어갔더니 오른 쪽에 코스트가드
부두가 보였다.
그곳에 잠시 접안하여 간단한 수속절차를 밟았다.
다시 배를 떼어내어 오른쪽으로 돌아 계류장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강해서 접안이 쉽지 않아 보였다.
입구쪽에 한국배 한척이 보였다.
카타마란이었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루미호'였다.
루미호는 내가 운영하는 한산요트장에 계류 되어 있다가
6개월전쯤 필리핀으로 간다며 떠난배이다.
처음 한국통영을 떠나 일본 후쿠오카로 갈때 함께
항해했던 배이다.
그 배는 영국배로 일본에서 수입되어 왔다.
처음에는 요트장에서 쓸 요량으로 '한산마리나'
법인명으로 등록했다.
선명을 지을때는 자식이름을 짓는 것 만큼이나 힘들고 어렵다.
고민끝에 '루미호'로 결정했었다.
루미호 새 선주인 전호표씨가 물었다.
'선장님 루미호 선명의 뜻이 뭡니꺼?'
'아 예 별뜻은 없습미더! 그냥 듣기 좋고 부르기 좋타 아입니꺼!'
이제서야 밝히지만 루미는 막내아들 별명이다.
마리나 앞쪽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니
가로로 놓여있는 폰툰으로 들어가서 다시 방향을 돌려
계류하기는 만만해 보이질 않는다.
루미호보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 입구옆에 있는 빈곳에
배를 겨우 밀어넣었다.
9시였다.
사무실에 들러서 계류신청을 했다.
배의 서류를 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한국어로 된 동력기구 등록증밖에
없다. 그걸 내밀면 많이 의아해 한다.
외국항해를 하는 선박이 영문등록증도 없냐는 듯 쳐다본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 요트들 처럼 등록증에 영문도 병기되어 있으면
이런 낭패를 면할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외국 마리나에 가면 등록증, 검사증, 보험증, 검역증등을 요구하는데
검역증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글만으로 되어 있어
출발전에 적당한 양식으로 번역해서 가지고 가면 좋을 것이다.
참 그리고 이 번역된 서류와 여권을 여러부 복사를 해 다니는 것이
좋다. 어떤 곳에는 복사를 직접해와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을
격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식시를 하면서 58도 금문고량주를 한잔씩 틀어넣고
우리 세사람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후 세시경 승합차를 빌려타고 다운타운으로 갔다.
땅에서 불이 나와 팝콘을 만들어 먹을수 있다는 곳을 잠시 들린뒤
예전에 성이었다는 시내한복판으로 갔다.
그곳에서 녹두빙수 한그릇씩 사먹었다.
다들 잘먹는데 나는 낫선음식을 조금 가리는 편이어서
이물질을 삼켜야 하는것처럼 잘 넘어 가질 않는다.
먹다보면 다 적응한다고 은근히 다 먹으라고
압박을 보내왔지만 그러지 못했다.
저녁무렵에는 컨팅의 명소인 야시장음 방문했다.
양쪽으로 수킬로에 이르는 길이 모두 먹자도로였다.
평범한 가게도 있었지만 이동식 리어카에 음식이나 특산품등을
팔려고 나와있었다.
우리는 그중에 한곳을 들렀다.
생선등 해산물을 요리하는 집이었다.
소화불량증세가 나타나 일찍 파티를 접고 배로 돌아왔다.
위장이 돌덩이처럼 단단해져서 걱정했는데
몇시간쯤 웅크려서 누워잤더니 회복되었다.
11월11일
새벽두시 모기때문에 잠이 깨었다.
소화불량 증세는 많이 호전되었다.
혹시나 해서 가져간 모기장을 잘라서 위 창문용 모기네트를
만들었다.
다시 잠들어 6시경 일어났다.
배를 기름 넣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8시쯤 직원이 나왔다.
460리터가 들어갔다. 연료는 리터당 27타이완 달러였다.
연료를 넣고는 루미호 옆에 계류하였다.
이곳 마리나에 한국배 두대가 동시에 정박되어 있었던 일은 있을까?
바야흐로 한국요트의 본격적인 외양항해 시대가 열린거라
생각해서 과언은 아니다
이곳 마리나에서는 전기가무료지만 콘넥트가달르다.
오래 정박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발전기를 잠시 이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점심은 마리나에 있는 식당가로 가서
오징어 요리, 회. 나물, 날치튀김을 먹었다.
맥주도 3병을 마셨는데 한국돈으로 3만원정도 나왔다.
맛도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다.
저녁아홉시경 대만 공무원들이 배로와서 출국수속을 해주었다
11월12일
컨딩을 떠나는 날이다
대만을 떠나 필리핀으로 가는것이다
살짝들뜬마음에 아침 다섯시반에 식사를 했다
8시쯤 사무실로 가서 계류비를 정산했다.
9시30분 계류줄 풀고 나오다 코스트가드 폰툰에서 잠시
점검을 받고 컨팅마리나를 빠져나왔다.
대만 남부 곶부리에 안녕을 고한뒤 옆바람을
알맞게 받으며 배의 선수를 루손섬 서편끝단으로 잡았다
파도는1.5미터다.하늘에는 새털구름이 온통 뒤덥고 있고
물색은 파랗다
루손해협은 해저산들이 많아 수심이 수천에서 불과 수미터까지 다양하다
잠시 속도가 9-10을 넘나들어 좋아했더니 이내 6노트로 떨어졌다
중간중간 해류의영향으로 속도가 떨어진다
낮동안은 보통 편하게 견시근무를 교대로 서다가 저녁이 되면
두시간씩 교대를 했다.
첫 근무에 당첨되어 20시부터 근무를 섰다.
엔진1800알피엠에 옆바람이 17노트로 밀어주는데도
속력은 고작 5노트이다.
수심을 보니 2-3천미터 지역이다.
해류의 영향을 대략 3노트정도 받아 속력이 떨어진게 분명하다.
오른쪽 저 멀리는 낚시배불빛이 드문드문보인다.
10시방향에도 오징어배로보이는 불빛이보인다.
이는 아마 필리핀 어선들일 것이다.
11월13일
02시교대했다.
바람이 앞쪽으로 돌아서 크로스홀드방향이 되었다.
앞 파도가 선체에 부딪히면서 파닷물이 가끔 튀어 올라왔다.
속도는 7노트이다.
하늘에 별들이 얼마나 많은지 마대자루에 별을 부어서 싸리비를
마구마구 흩어놓은 것 같다.
은하수도 확연하게 보인다.
루손해협을 반 정도 지나왔다.
항로여서 인지 상선이 제법많이 보였다.
동이틀무렵 하늘이 어찌나 맑은 지 태양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장엄한 광경이 한동안 정신을 잃었다.
아침에는 바람들은 무우를 채 쓸어서 무우국을 끓여 아침을 먹었다.
정오무렵 이층으로 올라왔더니 필리핀 본토가 보였다
30마일쯤 떨어진 거리다
예보와 같이 15-18노트의 범주에 적당힌 바람이
동쪽에서 끊임없이 불어왔다
어둡기전에 우리는 본토 언저리에 접근하게 된것이다
그곳부터는 육지에 가려 무역풍은 힘을 잃을것이다.
필리핀 북단의 바람세기를 말해주듯 해변에는 풍력발전기가 많다
15시부터 풍속계가 20노트이상으로 치솟는다
배는 파도를 가르고 미친듯이 날아간다. 조금만 더가면 편안해질것이다
육지에 막혀 바람이 약해지는곳으로 들어오니
뒷바람으로 바뀌어서 구름위를
날아가는듯한 느낌이다.
세일을 버터플라이로 바꾸고 꿈꾸듯 나아간다.
저녁무렵 바람이 약해져서 제노아를 감아들리자마자
거짓말처럼 맞바람이 되어버렸다.
11월14일
자정무렵 교대했다.
필리핀해군이 벗사마호를 찾았다.
일상적인 질문 이었지만 필리피노 특유의 돌돌 말리는
발음때문에 무슨말인지 알아채느라 진땀을 흘렸다.
열시경 수심이 낮은 지역에서 떠다니면며낚시를 했다.
낚시 약간의 횟거리 생겨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배를 조금 이동하여 안다섬 입구에 엥커링을 하고 차가워진 회를
맛있게 먹어치웠다.
저녁무렵 외해로 바로 가려다 안다섬안쪽에 엥커를 내리고
하루를 쉬어 가기로 결정한다.
섬과 섬사이의 수로로 들어가면 잔잔한 곳에 엥커를 내릴수 있을 것
같아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입구서부터 양식을 하는 시설물들이
아주 많았다.
그런 양식장을 피해 조심조심 들어갔다.
섬 안쪽까지의 거리가 거의 10마일이 넘어
안쪽에 이르자 해가 넘어가고 살짝 어두워 질 무렵이 되었다.
조금만 더 가서 엥커를 내리려고 했는데
그때 갑자기 앞쪽에 가는 전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선이었고 굵기는 10미리쯤 되어 보였다.
엔진을 전속으로 후진하여 배를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배는 타력을 제때 감속시키지 못하고
오던 방향으로 서서히 밀려갔다.
5미터, 4미터,3미터,2미터,1미터
발끝이 간질간질
가슴이 조마조마
드디어 포스테이와 전선이 닿았다.
'제발! 멈춰!'
그러나 요트는 오던 탄력으로 전선을 2미터쯤 앞쪽으로 밀었다.
순간 오른쪽 작은 섬쪽에서 불꽃이 튄다.
원주민들의 탄성소리도 짧게 들렸다.
단선이 된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배를 돌려 한 1킬로쯤 떨어진곳에 엥커를 내렸다.
잠시후 방카를 탄 마을 사람 세명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몇명의 원주민이 더 왔다.
1시간쯤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번에는 경찰관
4명이 제법 큰 배를 타고 왔다.
전기공사를 하는 사람들도 같이 왔다.
마을 대표와 전기회사직원 그리고 경찰관, 그들과 얘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요트 위에서 밤이라도 샐 기세였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대치상태는 밤 10시가 되어갔다.
그때 경찰관이 말했다.
'배를 지키는 1명만 남고 두사람은 잠시 마을로 나갑시다.'
아무래도 전선 상태를 눈으로 보면서 얘기를 마무리 짓자는
것인것 같아보였다.
'내가 선장이니 나 혼자 가겠소!'
배에 있던 20여명의 사람들과 그들이 준비한 배를 타고
마을 선착장으로 나왔다.
주민들은 각자 갈길로 가고
나는 경찰차에 태워졌고 옆에 경관이 바짝 붙어 앉았다.
수갑만 채워지지 않았지 체포되어 끌려가는 기분이 되었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감을 직감했다.
그들은 수리가 시작되는 아침까지 혹 요트가 도망갈 수
있다고 판단했고 볼모로 잡아 놓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배로 돌아가겠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럼 한사람이 요트위에서 같이 밤을 보내도 좋겠냐고
물어왔다.
당연히 상관없으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비포장길을 30분쯤 달렸다. 주변은 우거진 밀림이었고
드문드문 민가가 보였다. 그러다 집들이 점점 많아지더니
세멘트포장길이 되었다.
그길을 20분쯤 더 달려 경찰서에 도착했다.
경찰서에는 10여명의 경찰들이 근무중이었다.
요트위에 있을때와 요트를 떠났을때
그리고 경찰서에 도착했을때의 나의 입지는 점점 쪼그러 들었다.
경찰들은 요트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어보였고
나또한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사무실 밖에서 그저 처분을 기다릴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한시간쯤 있다가 뒤차로 함께 따라온 전기회사 직원이 아침에
보자며 숙소를 찾아 떠나갔다.
한동안 있으니 경찰관 한명이 입구에 있는 작은 숙직실 같은 곳을 보여주었다.
'원한다면 여기서 잘래요?'
그래도 유치장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유치장에는 이미 2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7-80년대 우리나라 파출소를 보는듯했다.
전혀 경험이 없는 건 아니어서 완전히 낮설게 보이지는 않는다.
통행금지가 있을 당시 밤12시를 넘겨 한 두번정도
철창신세를 진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요! 호텔에서 자도록 하겠어요!'
잠시 의논하더니 그렇게 하라고 한다.
차로 오분거리에 있는 숙소를 소개 받아 그곳에
밤 11시경 도착했다.
일행들이 걱정할것을 생각해 문자를 보냈다.
'여기서 자고 내일 전기회사 직원과 함께 들어갑니다.'
간단히 설명하고 피곤한 몸을 뉘었다.
다음날 7시경 데리러 오겠다는 경찰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빨리 전기회사 직원과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 손해배상을 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숙소 관리직원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7시 30분쯤 경찰관 한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함께
경찰관서로 돌아갔다.
아침을 먹고 돈을 바꾸고 아무리 시간을 떼워도 도대체
갈 생각이 없다.
'배로 돌아가고 싶어요, 갑시다.'
'잠시만 기다리시요, 코스트 가드가 오고 있어요!'
아침이면 배로 돌아갈줄 알았는데 해안경비대에 보고가 된
모양이다.
기다리던 코스트가드는 10시가 넘어서야 위장복을 입고 도착했다.
코스트가드와 경찰관이 함께 입회하여 1시간쯤 조사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코스트 가드의 인상이 좋았다.
돈을 요구하거나 할 그런 사람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끝이 나고 이제 가는 가 했는데 이번에는 검역을 해야된다고
한다.
다행히 검역소에서는 전화로만 진행했고 수빅에 가서
받으라고 한다.
10여명의 경찰관과 5명정도의 보조직원 그리고 4명의 코스트가드
그리고 나
20평 남짓한 경찰관서 안은 사람으로 가득이다.
'세관과 출입국직원이 오고 있어요!'
언제 가냐고 묻는 나에게 경찰관이 대답했다.
12시가 다 되어었어야 세관직원과 이민국에서 각각 한명씩
직원이 왔다.
한눈에도 우리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얼굴에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세관직원은 50대 중반,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40대 후반정도였다.
세관직원은 말만 하지 않으면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우리랑 비슷하게 생겼다.
한시간쯤 사건경위를 설명했다.
최대한 비상상황에서 한 결과였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세관직원은 의도적으로 사전연락없이 연안으로 접근했을때는
어마어마한 벌금을 문다고 겁을 주었다.
'잘 알고 있어요,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먼저 코스트가드에게
무전으로 연락했을거예요, 그냥 섬사이를 지나가려 했던 겁니다.'
'왜 전선을 보지 못했나요?'
'그때가 막 어두워 질때라 10미리 밖에 안되는 가는 전선이어서
가까이 가서야 발견할수 있었어요, 후진을 넣고 엔진출력을
최대한 올렸지만 부딪히고 말았어요!'
그들은 수빅으로 가려면 그냥 외해로 바로 갔어야지 연안에 접근한
이유를 계속 캐물었다.
국제법을 대강은 아는 상태여서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의도된 행위인가 또는 비상상황이었나 하는 것이다.
잘못 설명하게 되면 범법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최대한 머리를
굴려가며 설명한다.
1시쯤 되어 조사가 끝이 났다.
그들은 식사를 하러 가고 나도 보조직원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나는 혼자서는 나갈수 없는 상태였다.
식사가 끝나고 이제는 배로 돌아가나 했는데 수색견이 와야 한다고 한다.
지루한 기다림은 오후 4시까지 계속되었다.
드디어 배로 출발이다.
차량행렬은 무려 5대나 되었다.
경찰호송차에 4명의 경찰관과 나
그뒤로 세관직원
그뒤에 행정직원(동사무소 직원같은)
전기회사 직원등
차량이 뜸한 비포장길을 5대의 차량은 먼지를 가득 일으키며 간다.
이건 흡사 작전을 수행하러 가는 것 같다.
길가에 사람들이 놀라서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의 행렬이
다 지나갈때까지 쳐다본다.
40분쯤 달려 선착장에 도착했다.
2킬로 쯤 떨어진 곳에 여전히 요트는 엥커에 잘 잡혀 있었다.
그래도 요트를 보니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된다.
마을에서 준비한배에 파출소에서 함께 간사람들과
마을주민을 합쳐 20여명의 사람들이 탔다.
요트로 가서 세관과 이민국의 조사가 또 진행되었다.
어두워질무렵까지 심문과 실내수색을 계속했다.
이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해서 화도 났지만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자자 다 되어 간다. 이제 끝난다.'
결국 세관과 이민국직원은 돈을 요구하였다.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경찰관(정직해보이는)이 늘 함께 있으니 돈을 받기도
쉬운일은 아니다.
잠시 경찰관이 자리를 비우자 그들은 돈을 챙겼다.
각각 100달러씩이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증명서를 각각 한장씩 받았다.
이미 주변이 어둡기 시작했다.
낮에도 양식장이 너무 많아 길을 찾기가 어려운데 서서히
밤이 시작된다.
마음은 바쁘지만 44피트 카타마란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20여명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단조로운 마을에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냥 즐기고 있는듯 해 보인다.
'자 이제 갑니다.'
사람들을 보내고 시동을 걸려고 했더니 아직 한가지가 남았단다.
'dog!'
다시 20여분을 더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배위에 있으니 여긴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그걸 아는지 그 사람들은최대한 선수쪽에 가서 있긴 하지만
세관 경찰등 관리들은 배 안쪽에 들어와 있고
일부는 콕핏에 있기도 한다.
최대한 조사에 협조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감시 아닌 감시를
해야했다.
옆에 나란히 붙어있던 지역민의 배가 선착장에 와있던 마약견을
데려왔다.
'이거 뭐야! 너 마약견 맞아?'
공항에서 보아왔던 그런 개는 아니었다.
치와와보다 조금 큰 조그마한 개였다.
잠시만 하면 끝날줄 알았던 마약 탐지견의 수색은 구석구석
침대위 화장실 그리고 우리가 소지한 가방 하나 하나까지
뒤지고 냄새를 맡았다.
'와~ 진짜 철저하네!'
얼마전에 신문에 한국과 관련한 마약조직에 관한 기사를 접한적이
있는 나는 최대한 마음을 누르고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며
협조하고 있는데 밖에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 팀원! 성질이 폭팔해버렸다.
아는 영어를 죄다 끌어넣고 한국말을 썩어가며 퍼붇는 동시에
가방을 집어 던졌다.
어차피 주변도 어두워졌고 하룻밤 더 있다 가도 이제는
뭐가 문젠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저러다가 괜히 문제만 키우는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행히 자기들도 좀 미안한지 서둘러 수색을 끝내주었다.
마약검색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모두 이 일련의 사건에서
해방이라도 된양 표정들이 확 풀어졌다.
웃으며 농담까지 주고 받는다.
완전히 주변이 어두워졌기때문에 양식장이 가득한 좁은 수로를
빠져나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동네 사람들에게 앞서서 길을 안내해줄것을 부탁했다.
'금방 올께요! 염려말아요!'
바글 바글하던 사람들이 모두 요트에서 지역민배로 옮겨타고
선착장으로 돌아갔다.
참! 전선을 복구하는데 든 비용은 한화로 130만원 정도였다.
기분에는 섬쪽의 전선만 당겨 연결하면 될것 같은데
견적서에는 요목조목 비용이 많았다.
마을에 하룻동안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데 대한 배상금도
들어가 있었다.
좀 많지 않나 싶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들이 가고 우리를 안내해줄 방카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20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우리는 들어올때 항적을 그대로 찾아 나가보기로 했다.
엥커를 끌어올리고 서서히 배를 움직였다.
선수 양편에 렌턴을 들고 두사람이 주위에 양식장을 살피면서
위치를 알려준다.
지피에스플로터를 보면서 왔던길의 항로를 그대로 밟으며
가려고 하지만 쉬운일을 아니다.
정확히 맞추기도 힘들뿐아니라 주변의 양식장이 워낙
빽빽히 포진하고 있어 조금만 엇갈려도 배가 걸릴판이다.
10미터, 5미터,
양식시설물과 간격은 매우 좁았다.
3-4노트의 속도로 겨우겨우 좁은 수로를 빠져나올때쯤
어둠을 뚫고 방카한척이 달려왔다.
방카를 따라 20분쯤 더 나오자 양식장 시설들이 드문드문해졌다.
'이제 곧장 바다로 가시오!'
'고마워요!'
인사를 하고 수로를 계속 빠져 나왔다.
악몽같은 하루였다.
넓은 바다로 나오니 이제야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배에서 하는 일상적인 일마저도 감사한 느낌이 든다.
섬을 크게 돌아서 남쪽을 항로를 잡는다.
21시경 왼쪽엔진이 연료트러블로 멈추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수로에서 멈추었다면 어쩔뻔 했는가!
같은 항로를 타고 내려가는 유조선한척이 있다.
거리는 꽤 떨어져 있지만 항로가 엉키는 건 아닐까
신경이 쓰인다.
속도가 우리와 비슷해서 양보해주기도 쉽지않고 그렇다고
추월해버릴수도 없다.
밤 12시까지 당직을 섰다.
교대하러 올라와야할 다음 당직근무자가 피곤했는지
올라오질 않는다.
하룻동안 시달린것을 생각하면 잠이 쏟아져야 하는데
전혀 졸리지 않았다.
쇼크때문인 모양이다.
11월16일
새벽 두시가 조금 못되어 교대를 하고 내려왔다.
선실에서 레이더 경보지역을 세팅해놓고 잠을 청한다.
앞바람이 조금 부는 상태에서 엔진출력을 1800RPM에 맞춘다.
속도가 8노트나 나온다.
'조류때문인가?'
항로에는 선박이 거의 없어 편했다.
가끔 대형 방카들이 보이긴 했지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침이 되고 우리는 약간 거칠어진 바다를 항해하여
수빅만으로 다가간다.
필리핀은 요트 출입항에 대해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특히 작은 항포구에서는
그러나 어떤 일이 생겼을때는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곤란한 상황이 생길수 있다.
어떤 나라를 방문할때 기본적으로 우리배가 당신들 육지
어느지점에 들어가니 허락해주시요하는 생각에서
행동하면 어려움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느 나라든 넓은 해안선을 다 지킬수는 없으니
쉽게 연안의 마을에 들어갈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밀입국이 되고 밀항이 된다.
큰 문제에 말려들수 있기 때문에 비상시에라도 사전에 연락을 해야하고
만약 그럴수 없었다면 그런 상황를 증빙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수빅만 입구에 다다르자 바람은 정면이 되었다.
세일을 내리고 엔진 알피엠을 올렸다.
마리나 입구에서 무전으로 입항보고를 한다.
14시경 수빅마리나에 무사히 안착하였다.
입국수속을 할때 미리 받았던 서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저 증빙서류일 뿐이었다.
출입국, 세관, 검역, 항만 총 4군데서 각각 50달러씩 받아갔다.
영수증은 없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이나라 공무원은 변한게 없다.
배로 돌아와 전기를 연결하고 물을 받았다.
그런데 물을 채워도 채워도 나오질 않는다.
워터펌프를 확인하고 식수라인을 따라가면 막힌곳이 있나
점검해본다.
2시간 가량 라인을 다시점검하고 모터를 확인하는 일을 반복한다.
도무지 알수가 없다.
선실의자밑을 모두 들어내고 물이 들어와서 양쪽으로 흘러가는
분배기쪽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데 물이 우측선실로 흘러들어간다.
모터도 틀지 않은 상태인데도 말이다.
우측선실로 내려가 바닥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가득하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물이 바닥위로 넘칠뻔했다.
우리 세사람 모두가 달려들어 물을 퍼냈다.
물이 새는 곳은 선실 침대밑에 있는 온수기 쪽이었다.
온수기로 유입되는 청수라인이 뽑혀져 있었다.
뽑혀져 있던 호스 끝은 조금 잘라내고 다시 꼽은 뒤
밴드를 채워주었다.
저녁식사는 육지로 나가서 해결하고 들어왔다.
11월16일
이번 항해는 수빅에서 10일정도 쉬어간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잠시 쉬면서 요트장 일도
좀 하고 와야한다.
차를 대절해서 공항을 향해 아홉시 출발했다.
150킬로쯤 되는 거리였는데 네시간 반이나 걸렸다.
마닐라 입구까지는 빨리 왔지만 시내로 들어오자 길이 꽉 막혀버렸다.
여유있게 나오지 않았다면 비행기를 놓칠뻔했다
마닐라는 오년전과 같이 판자촌이 가득하다.
판자촌의 개선되기 보다는 큰건물이 조금 늘어나 모양세다.
십오일동안 내려갔던 거리를 비행기를 타니 겨우 세시간 반에 나를
부산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게 문명이다.
수빅에서 코론으로
11월25일
9일간 한국에 와 있다 다시 필리핀 수빅 마리나로 돌아간다.
공항에서 조그만 트러블이 있었다.
이때껏 편도여행을 수없이 해왔건만
빌어먹을 필리핀항공은 출국편 항공권이 없으면 탑승을 할수 없다고
한다.
버티다 버티다 필리핀 항공을 대행하는 대한항공 티켓을 구입한다.
편도 항공권으로 65만원 정도이다.
제 가격을 다주고 구입해야만 취소시 환불이 된다.
그러나 발권수수료 3만원을 제하고 나온다고 한다.
소심한 복수는 탑승날짜에 가장 임박하여 취소하여
나름 기스를 내는 것이지만 자칫 잘못되면
통째로 날리는 수가 있다.
26일 자정무렵 도착하여 수빅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흥정했다.
8500페소를 불렀지만 4500페소로 깍아서
수빅마리나로 향한다.
두시간 정도 걸렸다.
아침을 해먹고 마리나 사무실에서 수도, 전기료를 계산한다.
배에 시동을 걸어두었는데 다시 연료가 공급되지 않아
시동이 꺼졌다.
폰툰을 빠져나가다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필터를 교환한다.
마리나 부근에 있는 주유소로 배를 이동시켜 연료를 채웠다.
10시30분경 포트컨트롤에 출항보고를 했다.
넓은 지역으로 나와 배를 풍상으로 돌려 메인세일을 올리고
다시 선수를 돌려 남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수빅만을 빠져나온 바람을 타고 배가 잘 달려나가다
두시간쯤 지나 바람이 약해졌다.
점심식사는 아침에 들렀던 아메리칸식 레스토랑에서
남겨온 베이컨과 계란 빵이다.
같은 종류를 두번 먹으니 속이 거북하다.
수빅마리나 부근에 있는 레스토랑!
가격은 비싸고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다.
트롤링 낚시를 내렸지만 통 소식이 없다.
필리핀해역으로 내려온 후로는 영 소식이 없다.
중간에 수심이 20미터쯤 되는 곳에서 쳐박기 낚시를
시도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해도와는 달리 수심이 너무 깊었다.
저녁식시는 황태배추국으로 까칠한 속을 좀 달랬다.
18시경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주변의 낚시배들이 AIS화면이 나타났다.
유심히 보니 그 배들의 불빛이 보였다.
20시 30분 달이 떠 올랐다.
루방섬을 돌아사브라얀섬 서남쪽에 있는 아포 리프쪽으로
선수로 돌리자 바람이20노트까지 올랐다
엔진없이도 7, 8노트를 넘나돈다
사람이 한명늘어 오늘은 견시근무시간이 여유롭다
두시간씩 보초를 선다.
근무자는 이층에서 ais 와견시를하고
나는 선실에서 레이더 알람을 맟추어놓고 쉬면서 대기한다.
하늘은 맑고 달은 밝다.
민도르섬과 루방섬사이의 해협에서 불서오는 바람이 초속 삼심노트가까이
불어 짚을 줄이고 메인을 이단축범했다
그래도 팔노트를 넘나든다.
11월27일
자정이 넘어서면서 바람이점점 줄어들어
4노트대로 떨어졌다
엔진을 하나걸어 속도를 5노트대로 끌어올린다.
밤사이 달빛으로 인해 바다가 제법 환하다.
별들도 이에 질새라 반짝인다.
매우 깨끗한밤이다
가끔 길이삼미터폭 1.2미터쯤되는 캡슐같은 큰 부이를
지나왔다.
무슨 부이인지 모르지만 조심해야할건 분명하다
다섯시를 넘어가자 동녁하늘부터 차츰 밝아온다.
이를 인정할수 없다는 듯 샛별이 더욱 안간힘을 쓰면서 빛을 발한다
멋진일출이 있고난후 멀리 아포리프의 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8반경에 아포리트 섬 남쪽 엥커부이에
배를 묶었다
수심은 9미터, 바닥이 훤히보였다
요트가 한척 먼저와서 정박중이었다.
출발후 처음으로 딩기보트를 내렸다.
하루종일 스노클링, 낚시를 하면서 보냈다.
저녁무렵 사용한 고무보트를 요트 뒤쪽에 메달다 크루중 한사람이
안경을 바다에 빠뜨렸다.
수심9미터나 되는 곳에 떨어진 안경을 찾느라 30분가량
바닥을 뒤졌지만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였다.
특히 이곳은 조류가 꽤 흘렀기 때문에 더욱 가능성이 적었다.
날마저 저무러 갈때이니 말해 무었하겠는가?
선물받은 안경이어서 더 더욱 찾고 싶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11월28일
크로스컨트리라고 산을 뛰어오르며 달리기를 했는데
숨도 차지않고 지치지도 않았다.
너무 기분이 좋았는데 꿈이었다
엥커줄을 풀고 배를 남으로 향하게 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있었던 카타마란 한척은 벌써떠났는지
정박등이 보이지않았다.
날은 다섯반쯤부터 새기 시작해 여섯시가되니 주변이
완전히 뚜렸해졌다.
밥을하고 된장찌게를 끓여 식사를했다.
코론 동편은 상선의 항로인지 배가 많이 보였다
ais에나온 선박중 두양제주라는 선박에 무전을 했다.
보령을 출발해서 인도네시아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이곳은 호주나 인도네시아동부쪽 가는 항로라고 한다.
잠시후 방카한척이 다가와서 참치를 한마리보여준다.
필리핀해역에 들어서고서는 통 어신을 받아보지 못한터라
기다리던 사건이지만 애써 태연한척 가격을 물어본다
마까노?
따가로그어로 얼마냐이다.
답이 뭐라고 오던 일단 이쪽에서는 마할(비싸다)!
로 나가쥐야 된다.
200페소 퍼킬로!
얼음에 잘 채워진 참치를 보니 벌써 입에 침이고여
대답이 잘안나온다
마할대신에 제일큰거 보자라고 한다.
처음보다 두배는 되어보이는 걸 한마리 들어보였다
마까노?
간단한 따가로그어 정도는 해주어야 적당한가격을
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 있자나 필리핀 물가 대강 알거든!
이런의미가 아닐까
500페소!
급하게 머리를 돌려 한국돈으로 얼마인지를
계산해낸다.
만이삼천원쯤 된다
적당한가걱이다고 판단하고 가는 밧줄하나를
방카로 던져 꽁지를 묶게한다
돈은 페트병어 담아 던져주었다.
요트로 옮겨온 참치는 기념촬영이 있은후
즉시 해체되어 냉동고로 들어갔다.
살점이 제법붙어있는 뼈는 구이용으로 다듬어 냉장실로
직행이다
부수앙가섬을 오른쪽에 끼고 코론섬 북단 해안선을
따라 코론 타운 앞 엥커리지를 찾아간다.
제주와는 다른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우리를 둘러싼다.
파도가없어 강변에 솟아있는 산같다
오른편 부수섬 성모상 코론 펫말이 보인다.
지피에스보며 산호지대를 피해
엥커포인터 찾아 닻을 던졌다.
12시반경이었다.
참치회, 참치구이로 점심식사를 했다.
선외기보트타고 이곳에서 합류하기도 한 선주이신 광음형님을
태우고 왔다.
크루중 세사람은 방카보트를 빌려 코론섬 스노클링을 다녀왔다.
나는 가본적이 있어 배에 남았다.
딩기보트의 연료호스에 문제가 있어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200페소를 들여 시도했지만
완벽한 수리가 되지 않았다.
코론은 작은 배를 위한 수리소가 없는 것같다.
저녁에는 코론 맛집인 라씨에타 레스토랑으로 가서
거나한 저녁을 먹었다.
일인당 만 이천원쯤 먹혔다.
돌아오는 길이 꼬치를 샀다.
배에 와서 보니 엄청난 양이다.
11월29일
딩기보트 시동불량으로 계속 고생이다.
어제 고쳐온 연료호스도 단 한번에 고장이 나버린다.
요트에 식수가 떨어져 불편하다.
조수기로 물을 만들지만 양이 너무 적다.
생명수나 제조할 정도다.
네명은 다시 코론섬을 재 탐험하러 떠났다.
남아서 낮잠을 좀 자고 코론시내로 나가
오토바이를 빌려 드라이브를 했다.
식수를 보충받을 만한 장소도 찾아보았는데
적당한 곳이 없었다.
저녁에는 시장에서 사온 돼지고기로 김치찌게를 해서
식사를 마쳤다.
내일은 이곳 코론을 떠난다.
11월30일
아침 다섯시반에 기상했다. 날이 어슴푸레밝아온다.
일어나 제일먼저 시동을 걸었다.
기상벨이 따로없다.
하나둘씩 일어난다.
딩기보트를 끌어올려 묶는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코론항을 빠져나온다
뒤바람을 타고 엘리도까지 가야할거리는 80마일이다.
8노트정도는 달려주어야 낮 동안 엘리도에 도착할수있다.
아침은 된장국이다.
세시간쯤달려
코끼리섬부근을 통과할 무렵
모타요트 한척과 카타마란 요트한척이 엥커링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 카이트서핑 즐기는사람 발견했다.
날치처럼 날아다니며 다이나믹한 퍼포먼스를 뽐낸다.
풍속 20노트의 백파가득한 바다를 9노트를 넘나들며
남서쪽으로 내려간다.
바람은 북동풍 이다.
광음 형님과 바둑을 두판두었다.
파도가 2미터이상 넘실되는데 바둑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과는 일대일이다.
오후 네시경 엘니도에 도착했다.
여객선터미널이 있어 그곳에 배를 붙였다.
뒤에 병풍같은 산이 있다.
예전에 스프리트오브코리아호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항해할때는
저 병풍같은 산의 남쪽 만에 묘박을 했었다.
부두는 상선과 화물선 작업으로 바빴다.
마닐라에서 오는 여객선도 있다고 한다.
부두에는 기름이나 물을 채우기 위해서만 잠시 접안이 가능하다고 한다.
벗사마호를 다시 부두에서 뽑아내어 적당한 엥커부이를 찾아
배를 묶었다.
선외기 연료공급호스를 손보고 나서는 그런대로 말썽없이 시동이 걸렸다.
1킬로쯤 되는 거리를 두번에 걸쳐 상륙했다.
이곳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식당을 소개받아 갔는데 영업장이 좁아서 이미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주변에 다른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저녁8시경 딩기를 타고 배로 돌아왔다.
너무 더운 나머지 주변에 상어가 어슬렁거리고 있을지 모를
밤바다에 뛰어 들어 몸을 식혔다.
12월1일
샌드위치, 고구마, 바나나로 아침을 먹었다.
미국,한국,필리핀이 짬뽕된 아침식사다.
나를 제외한 네사람은 한국인 가이드를 따라 엘리도 수상관광을 떠났다.
혼자남아서 휴식을 하면서 애써 여유를 느껴본다.
점심때쯤 딩기보트를 타고 타운으로 나갔다.
점심식사를 하고 오토바이를 빌려서 주변을 한바퀴돌았다.
예전에 정박했던 남쪽 마을로 가서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망고쥬스를 주문했다.
정글속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엥커링되어 있는 배들을
보면서 느긋하게 마시는 쥬스한잔!
같은 쥬스한잔을 놓고도 그 느낌이란
이 레스토랑까지 오기전의 여정에 따라 조금은 다를 것이다.
거친바다를 항해해온 사람이 잔잔하고 안전한 만에
미동도 없이 떠 있는 배들을 볼때 가지는 그 느낌은
아마 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닐까?
다시 타운으로 돌아와 로컬이발소에 가서 150페소를 주고 머리를 깍았다.
흰머리가 파머로 산발처럼 한짐이었던 머리칼를 잘라내고 나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친김에 미장원에 가서 염색을 했다.
오후 네시쯤 배로 돌아와서 일행들을 기다렸다.
10년이상 산발퍼머로 살았는데
혹시 못알아보면 어쩌지!
저녁식시는 묵은지 김치찌게와 참치회다.
다행히 산발퍼머시절과 똑같이 나를 대해준다.
12월2일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스쿠버다이빙을 가기로 했다.
일인당 3800페소에 공기탱크 두개씩이라고 한다.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필리핀 가이드를 태우고
나타난 방카보트가 요트로 접안을 시도하다
필리핀 선원 한명이 배사이에 손가락이 껴서
똑 하고 부러졌다.
피가 솟아고 손가락은 휘어졌다.
아픈 표정없이 손가락만 잡고 있다.
고통에 강한 필리피노다.
방카는 다시 타운으로 돌아가 환자를 내리고 새로운
선원을 태우고 돌아왔다.
9시쯤 방카를 타고 다이빙 포인터를 찾아 출발했다.
첫 포인트는 물밑경치가 보통이하였다면
두번째 포인트는 굉장했다.
고기를 따라 다시다보니
수심22미터까지도 내려가게 되었다.
평소 10미터부근을 한계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한계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시야가 맑다보니 두려움도 그만큼 작아졌다.
다이빙을 마치고 나와서 그들이 준비해온 통닭과
밥으로 배를 채우고 파도를 뒤집어쓰면서 배로 돌아왔다.
세사람은 요트에 내리고 나는 그대로 타운으로 갔다.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오징어 아보카도와 맥주두캔을 마셨다.
서쪽에 높은 산이 있어 16시30분쯤 그늘이 진다.
방카를 얻어타고 배로 돌아갔다.
배에서 내리다가 물에 빠졌다.
유연성이 예전같지않다.
손발이 명령대로 실행되지 않는 일이 가끔 가끔 발생한다.
선그라스가 벗겨져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고
나는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는 채로 허우적거린다.
겨우 요트뒤쪽으로 올라타서 휴대폰을 꺼내 닦았다.
그 사이 필리피노 한명이 물로 뛰어 들어 선그라스를 구해냈다.
잠깐사이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부두에서 식수를 받지 못했기때문에
우물물을 사오기로 할 요량으로 다시 육지로 나갔다.
20리터 16통을 통당 15페소에 사서 요트로 날랐다.
육지에서 받은 물을 오토바이로 해변으로 옮겨와
고무보트에 실고 가면 요트에서는 세사람이 받아올려
물탱크에 채우는 작업이었다.
총 인원7명이 동원된 대 공사였다.
일을 마치고 아트카페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내일은 팔라완 섬 중간쯤으로 내려가 반대편에 위치한
포르토 프린세사로 찾아가 출항수속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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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실감나는 글, 같이 항해하는 기분입니다... 잘보았읍니다...
항해기 잘 보았습니다.
같이 항해하는 듯한 생생한 후기입니다 .
항상 이런 저런 트러블이 생기게 마련인데
얼마나 잘 해결할수 있느냐가 장거리 항해의 관건이네요~
다음편 기대됩니다~~
선장님도 색다른 경험이셨군요. 그런데 부럽습니다. 따라 붙었어야 하는건데. ㅠㅠ
감사합니다. 항해기!!
사진이 없는데도 영화같이 등장 인물들의 표정이 그려지네요..ㅎ
잘 읽었습니다^^
마음고생 많이 하셨네요^^
어떤 심정이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선주가 아닌 항해를 잘 모르는,선장보다 연배가 위인 사람들이 크루로 참가했을때 이런 갈등상황을 많이 접했었는데 역시 현명하고 대범하게 잘 해결하셨네요^^
생생한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모으셔서 책으로 한편 발간하시지요~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와우 긴글 잘 읽었습니다. 엄청난 여행기네요^^*
이제 1편 읽었는데 제가 도전하는것 같네요 ㅎ
벗사마호 몇피트인지 궁금합니다.
44피트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