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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무예 여행 스크랩 고수를 찾아서 <15> 대한공수도연맹 정도모 회장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304 13.08.31 11: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수를 찾아서 <15> 대한공수도연맹 정도모 회장
"목숨을 걸고 싸울 때는 반드시 일격필살"
목표 3㎝ 앞에서 멈추는 타격 연습으로 실제 파괴력 극대화, "공수도는 오래된 道… 학문과 마찬가지로 수련엔 끝이 없어"



유구한 역사를 가졌지만 값어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술이 있었다. 사람들은 일본 무술이라며 이상한 눈으로 흘겨봤다. 무도계의 기득권 세력은 철저하게 이 무술을 따돌렸다. 실전성이 없는 몸놀림에 불과하다는 수군거림이 늘 뒤따라 다녔다. 배타성이 강한 이 땅에서 이런 악평은 치명적이었다. '태권도=대한민국 국기'라는 탄탄한 공식은 좀처럼 이 무술이 설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배우려는 이들도 적었다. 어찌어찌 해 입문을 하더라도 앞길이 보이지 않아 중도에 그만두기 일쑤였다. 아시안게임의 정식 종목이 된 지 오래였지만 국제대회 참가는 언감생심이었다. 대한체육회는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자비를 들여서라도 참가하겠다는 요청도 묵살됐다.

 
  정도모 대한공수도연맹회장이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방을 제압하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올해 초 이 무술은 마침내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로 등록한다. 지난 1962년 부산에서 처음 도장을 연 이래 45년, 대한체육회의 문을 두드린 지 30여 년 만이었다. 공수도. 일명 가라테.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서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무술. 그 공수도가 이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빠른 시간 내에 세계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참으로 힘든 고통의 세월을 이겨낸 정도모(64) 대한공수도연맹 회장. 공수도 9단인그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공수도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부산 동래구 안락교차로 인근, 대한공수도연맹 총본부.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하다. 알고본즉 9일부터 11일까지 제주에서 열리는 제3회 코리아오픈 국제공수도선수권대회 준비 때문.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한 눈에 정 회장을 찾을 수 있었다. 크지 않은 체구지만 차돌같은 인상을 주는 단단한 체구. 정권에 박힌 굳은 살이 그의 내공을 설명해준다.

아무래도 궁금한 건 공수도가 어떤 무술인가 하는 점. 일본에서 온 것이니 배우지 말아야 한다는 게 대다수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공수도에 대한 생각이 아니던가.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지난 2002, 2006년 부산 및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아랍에미리트의 공주가 공수도 선수로 참가해 화제를 모았다는 사실 정도를 기억할 따름이다.

"그거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부 기득권 세력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 결과죠. 공수도는 고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과 우리나라에 들어온 오래된 무술입니다. 애초에는 당나라에서 전해졌다고 '당수(唐手)'라 불렀는데 오키나와에서 일본 본토로 건너가면서 당자를 빼고 공(空)자를 넣은 겁니다. 당수나 공수나 모두 가라테라는 발음은 같습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어서 안된다고 한다면 유도나 검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공수도 형(形)을 시연하고 있는 모습. 나지막한 목소리. 그렇지만 정 회장의 발언은 단호하다. 그건 그가 공수도를 수련해 오면서 사회로부터 받은 푸대접에서 비롯됐을 법 하다.

정 회장이 처음 당수도에 입문한 것은 아홉 살 때이던 1953년. 지금의 코모도 호텔 자리에 있던 미군부대 근처에서였다. 일흔 살 쯤으로 보이는 한 중국 노인이 철조망 옆에서 동작을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다. 3~4년 가량 새벽마다 기술을 전수받았던 정 회장은 노인이 다른 곳으로 떠난 뒤 당수도장을 다니며 수련에 몰두했다. 첫 도장은 1962년 부곡동 기찰에서 열었다.

정 회장이 시련을 겪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 대한태수도협회를 거쳐 대한태권도협회가 발족하면서 당수도를 연마하던 대다수의 무술인들이 태권도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당수나 공수를 붙인 도장은 발붙이기가 힘들어졌다. 게다가 일부 무술인들은 태권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당수 및 공수도를 폄훼하는 데 몰두했다. 이 때문에 공수도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좋지 않자 정 회장은 한동안 권격도라는 이름으로 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사실 해방 뒤 우리나라에는 당수도장이 주류를 이뤘다. 일본에서 무술을 배운 사람들이 귀국해 당수 및 공수도 등의 이름으로 도장문화를 발전시킨 까닭이다. 따라서 이 시기 태권도를 연마한 사람치고 당수나 공수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경우는 없다는 것이 무술계의 시각. 이런 이유에서 보면 정 회장은 무술계의 세력싸움에서 피해를 본 사례에 해당할 수도 있다.

"혼자서 공수도를 지켜왔다고 봐야죠. 그동안 고충이 아주 많았습니다. 오직 무도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로비 같은 것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뿐 아니라 제자들도 대우를 제대로 못 받았지요. 제자들의 앞길을 열어주지 못한 것도 가슴 아픕니다. 공수도를 배워서는 사회에 나가 써먹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장래가 보장되는 곳으로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

정 회장은 1992년 기존의 대한가라데도협회를 대한가라데도연합으로 개칭한 뒤 대한체육회에 가맹신청을 한다. 그해 열리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부터 공수도가 정식종목이 됐기 때문.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승인을 받지 못했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과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는 국가대표를 보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공수도인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것은 2002년 부산대회서부터. 정식가맹이 아닌 대한체육회의 인정단체 신분에서였다.

"공수도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무예입니다. 일본을 주축으로 공수도가 세계에 보급되면서 일본 용어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지금은 일본의 영향력이 거의 없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이란과 쿠웨이트 등이 오히려 일본보다 강합니다. 현재의 세계공수도연맹 회장도 일본인이 아닌 스페인 사람입니다."

일격필살의 공수도

정 회장이 도복으로 갈아입고 도장으로 나왔다. 행정적인 일을 하느라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다지만 '썩어도 준치'란 말이 있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몸을 푸는 정 회장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대련에서는 검은띠를 맨 상대방이 정 회장의 동작 하나에 나가 떨어진다. 50여 년 무술인생은 말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오랜만에 정 회장이 관원들의 지도에 나섰다. 동작 하나하나에 힘이 넘친다. 오히려 젊은 관원들이 몸놀림이 더 서툴러 보인다.

텔레비젼등에서 공수도 시합을 보면 선수들은 글러브를 낀다. 또 상대를 직접 타격하지 않는다. 가격 순간에 동작을 멈추는 것이 공수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때문에 실전무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눈에 공수도는 강렬함이 없는 뭔가 나약한 무술로 인식되어 왔다.

"그것도 공수도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지요. 공수도는 일격필살입니다. 한 번 손과 발을 쓴다면 반드시 한 방에 상대방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생명을 걸고 싸울 때는 파괴력이 있어야 합니다. 공수도는 직접 타격을 하지는 않지만 다른 무술을 능가하는 실제 파괴력을 키웁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는 샌드백이나 정권단련기구를 마구 두드리면서 파괴력을 길러야 한다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 아닌가.

정 회장이 주먹을 들어 직접 시연을 보인다. 쭉 뻗는 주먹이 상당한 속도가 실려 있다. 그러면서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목표 앞에서 멈춘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이는 목표를 가격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기술이다. 작정하고 내민 주먹을 쭉 뻗은 상태에서 정확하게 멈출 수 있다는 것이.

"파괴력은 정확한 자세와 속도 그리고 거리측정에서 나옵니다. 공수도는 시합 때 상대방의 3㎝ 앞에서 멈춰야만 득점이 인정됩니다. 여기서 작정하고 주먹을 조금 더 내밀면 일격필살이 되는 겁니다. 이런 훈련이 실제 타격보다는 파괴력을 키우는 데는 더 효과적입니다. 움직이는 상대를 향해 거리를 재고 조정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도(道)입니다."

공수도는 실전과 거리가 멀다는 선입견에 대해서도 정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지금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K-1과 같은 격투기 시합을 정 회장은 이미 1980년대에 부산 구덕체육관 등에서 국제 권격도라는 이름으로 열었다. 제자들을 데리고 해외의 여러 이종격투기 시합에 참가하기도 했다. 공수도가 실전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남2녀를 둔 정 회장은 공수가족이다. 작은 아들은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이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큰 아들은 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 큰 딸 역시 국가대표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가족들이 공수도에 입문한 계기도 재미있다. 공수도를 배우는 사람이 없어 자식들을 가르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공수도 대회에 나갈 선수를 찾다보니 자식이라도 데려가야 했던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공수도는 오래된 도(道)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울 게 아주 많지요. 학문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습니다. 연습을 할수록 더 빠져듭니다. 싸움요? 싸우는 사람은 무도인이 아닙니다. 파괴력이 엄청난 공수도를 배운 사람이 함부로 싸워서는 안되죠. 공수도는 자신의 정신수양과 인내, 예의를 가장 중요시합니다. 기술이전에 사람이 돼야죠."

대한공수도연맹이 대한체육회의 가맹단체가 되고 부터 정 회장은 더욱 바빠졌다. 우선 공수도의 저변을 확대해야 하고 우수 선수도 길러야 한다. 또 유단자들이 대학진학이나 경찰 등 무술을 필요로 하는 각종 공무원 시험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래야만 초·중·고에 공수도팀이 생기고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현재에는 일부 대학에 공수도 동아리가 만들어져 있는 정도다.

"공수도는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가량이 수련하는 세계적인 무술입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그동안 우리나라 공수도는 낙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제 형편이 좀 나아졌으니 넉넉잡고 10년이면 세계 3위권 안에 들 것으로 봅니다."


◇ 공수도란

- 세계 170개국에서 수련하는 맨몸 무술

공수도는 치고 차고 꺾고 던지는 온몸 무예다.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화가 이뤄져 아시아공수도연맹 37개국, 유럽공수도연맹 49개국, 오세아니아공수도연맹 9개국, 아메리카공수도연맹 36개국, 아프리카공수도연맹 39개국 등 세계공수도연맹에 170개국이 가입해 있다.

공수도의 원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일본에서 활성화된 무술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변방이라 할만한 오키나와에서 체계화돼 일본 본토에 전해진 까닭에 본토인 가운데는 공수도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던 오키나와는 일본에 합병된 뒤 무기소지가 금지되자 자연적으로 맨몸을 사용하는 공수도를 일격필살의 무술로 만들었다.

공수도세계선수권대회는 2년마다 열린다. 내년에는 도쿄에서 18년 만에 대회가 개최된다. 시합은 카다(형·품새)와 쿠미테(대련) 등 두 가지다. 쿠미테의 경우 남자는 3분, 여자는 2분 동안 경기가 진행된다.

대한공수도연맹은 부산에 총본부가 있으나 최근 서울에도 사무국을 개설했다. 이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는 서울에 본부를 둬야 한다는 내부 규정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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