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26,건국대4)씨는 작년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2개월 동안 했다. 히브리중동학을 전공한 그는 키부츠가 사회주의의 공동생산, 공동소유를 표방하며 1910년에 생긴 마을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 보니 실제 키부츠는 책 속의 키부츠와는 달랐다. 공동소유가 아닌 개인 재산 소유가 인정됐고, 공동 주택보다는 개인 주택을 구입해 사는 키부츠 주민들이 많았다. 공동체(community)라는 뜻의 키부츠가 새로운 모습을 변하고 있던 것이다.
“속옷까지 공동으로 사용하던 시절이 키부츠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공동식당에서조차 음식 마다 가격을 매겨요. 정량보다 많이 먹으면 돈을 추가로 내기도 하고, 끼니를 거르면 안먹은 만큼 돈을 받기도 해요. 개인의 사정과 기호를 반영하려는 것이겠죠.” 김두식씨는 “북적거리는 키부츠 관광객들을 보고 한번 더 놀랐다”고 했다.
◆실속 차리는 키부츠 마을
올해로 형성된 지 100년이 된 이스라엘 키부츠는 사회주의구조에서 사유화를 인정하고 효율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에 가까워 지고 있다. 수익창출구조도 농업에서 관광산업으로 돌아섰다. 돈이 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건국대 히브리중동학과 최영철 교수는 “노동 의욕을 고취시키지 못하는 노동 구조와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위주의 경제구조로 인해 수많은 키부츠 마을들이 파산 신청을 냈다”며 “경제난에 허덕이던 대부분의 키부츠가 사라졌다”고 했다. 전성기던 1970년 키부츠 마을은 260여개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30여개 밖에 남지 않았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키부츠는 2007년을 기점으로 공동체에서 사유화를 인정하고 개인의 적성에 맞는 전문직을 인정하는 등 본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키부츠 주민들을 특정한 일자리에서 영구적으로 근무하지 않고 농장, 공장, 양육원 등의 여러 근무직을 돌아가며 일해왔다. 공동체 생활이라는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면서 경제적 효율성을 올리는데 기존의 틀을 깨고 있는 것이다.
키부츠는 이스라엘 전역에 마을 형태로 분포돼 있다. 갈릴리 호수, 사막, 지중해 등 관광지로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관광업으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스라엘 주요 일간지 하레츠에 따르면 키부츠 운영위원회에서는 다른 지역과 교류없이 외딴 섬과 같았던 키부츠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싶어하는 지역으로 재탄생시키고자 외부적으로도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실제로도 이스라엘 주요 명절인 유월절 때에 키부츠 마을 호텔들은 일찌감치 예약 만료가 된다.
최교수는 “현재 30여개 키부츠 사이에서 부자 키부츠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부의 차이가 생기고 있는 것은 공동소유와 생산을 강조하던 키부츠가 얼마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한국 학생들에게 키부츠는 어학 연수 코스
“요즘은 많은 학생들이 경제적인 비용으로 해외 경험과 어학 공부 목적으로 키부츠 봉사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키부츠 봉사 정원이 많이 줄었는데도, 지원수는 오히려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키부츠 코리아 대표 김덕(45)이사는 “작년에 100여명이 봉사활동을 갔는데 대학 재학생이 60%였고 나머지 30%가 미취업자였는데 해외경험 및 어학연수가 주목적이었다”고 했다. 6~8시간정도 일을 하면 숙식이 제공되고 20여개국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키부츠 봉사활동 전후로 영어권 국가에서 연수를 받는 패키지 상품이 덩달아 생겼다.
키부츠 자원 봉사 프로그램은 1998년 우리나라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학생, 미취업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없이 해외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인기를 끌었다.
키부츠에 2개월 봉사활동을 했던 김두식씨는 “키부츠에서 순수한 자원 봉사의 의미보다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해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 ▲ 키부츠의 자원 봉사자들의 모습. /김두식씨 제공
사회주의적 공동사회를 고수하던 키부츠가 경제 이익 창출과 공동체 운영에 효율성을 꾀하며 변하듯 학생들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바를 기대하며 키부츠 자원 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키부츠란?
키부츠는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1910년 이스라엘 갈리리 호수 남부 지역에 처음으로 세워진 공동체를 말한다. 시온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되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공동 생산, 공동 분배를 추구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했다. 이 후 계속된 증가로 1970년대에는 이스라엘 전역에 약 257개의 키부츠 마을이 형성 됐다.
키부츠 공동체 체험 및 자원 봉사 프로그램은 1960년대 중반 시작됐다.초반에는 이스라엘 공동체와 시온주의 등에 관심있는 유럽 젊은이들이 많이 찾았다. 이후 세계 각 지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키부츠에 모여 들었다. 하지만 2000년 ‘인티파타’라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무력 충동 사태이 발생하자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키부츠를 빠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IMF외환위기가 떠졌을 때 대학생과 미취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루 6~8시간 일을 하면 숙식 및 생활 경비가 제공됐기 때문이다. 이 후 온라인 동호회나 유학 센터를 통해 봉사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