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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을 아느냐
이 홍사
-하여, 올해를 서광의 해로 정했습니다.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해외사업의 애로사항에 대한 얘기였었다. 식탁위에는 한우의 등심이 철판 위에서 육즙을 내며 노릇하게 굽히고 있었다. 올해로 해외사업이 십 년이 넘었다. 몽골에서 칠 년을 했고 미얀마로 건너간 지가 또 삼 년이 넘었다. 자칭, 늙은 시인. 오리할배께선 소주잔을 들다가 그 말에 멈칫했다. 그리고 술상너머로 그윽한 눈길로 건너다보고 되물었다.
-서광? 서광을 한문으로 쓸 줄 아느냐?
질문의 의도보다 오리할배의 입가에 묻은 미소를 나는 먼저 보았다. 그 난데없는 질문에 이번엔 내가 또 멈칫했다. 내가 알기로는 서광이라는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다. 불교에서 말하는 서광은 서방정토의 빛이고,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나 조짐이라는 뜻에서의 서광이 있고 또 상서로운 빛이라는 의미도 있다. 대충 아는데 꼭 집어 물으니 어느 서광을 말했는지 나조차도 잠시 헷갈렸다.
-서광을 한문으로 쓰면 여러 가지죠. 쓰기에 따라 뜻은 다르지만 저는 상서로울 서자를 쓰서, 서광이여! 나를 비추어라. 뭐 그런 뜻이죠.
-올해를 서광의 해로 정했다니 어지간히 어려웠던 모양이구나. 짐작이 간다. 서광이라........
-한문으로 어느 걸 쓰던 나쁜 말은 없잖아요. 서광, 서광? 서광!
-그건 그렇구나. 자! 서광을 위하여!
오리할배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하고는 들고 있던 소주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새해 첫날이었다.
수시로 안부전화만 했지 만난 지가 거의 이 년이 넘었지 싶다. 안부전화를 할 적마다 조만간에 만나서 소주 한잔하자는 공약을 서로가 남발했었다. 그 조만간이라는 애매모호한 기간이 이 년이 넘도록 유예되었다. 구미와 대구는 지척이지만 오리할배가 구미를 떠난 이후로는 만나기가 힘들었다. 또 내가 해외에 나가있는 시간이 많으니 더 힘들었다.
오늘도 새해 안부전화를 하다가 느닷없이 약속을 한 것이다.
탑리시인과 함께하자는 약속을 하고 탑리시인의 시간을 물어보고 오리할배의 시간이 어떤지 다시 물어보고 전화를 대여섯 번이나 하여 시간을 조정하고 잡은 약속이다. 탑리시인은 약속장소가 어디인지 물었다. 오리할배를 먼저 만나 식당을 잡아서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고 집에서 출발했다. 소주를 한잔하자는 약속이었으므로 차를 가져올 수가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었으니 약속시간조차도 정확히 정할 수가 없었다. 지금 출발하겠다는 말만 했었다. 새해 첫날 휴일이라 교통은 복잡했었다. 집에서 택시를 타고 구미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서 내려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오리할배가 말한 아양교역에서 내려서 오리할배에게 전화를 했다. 동구청 정문 앞에 기다릴 터이니 동구청을 찾아오라고 했다. 역무원에게 동구청을 몇 번 출구로 나가야 되느냐고 물어 지하를 빠져나와 동구청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오래할배와의 인연을 생각했었다.
오리할배와는 삼십대 시절에 문학 불모지라는 공단도시에 교사로 부임 받은 젊은 시인과 문청으로 만났으니 삼십년 지기가 넘는다. 또 해를 넘겼으니 세월은 어지간히 빠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겨울이지만 날씨는 포근하고 하늘은 청명하고 드높게 보이는 새해 첫날이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천천히 걸어서 동구청 정문 앞에 가니 빛바랜 외투를 걸친 오리할배는 돋보기를 끼고 구부정하게 서서 월간으로 나오는 시전문지에 눈을 박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오리할배인지 단박에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무슨 시인지, 얼마나 심취해서 보고 있는지 사람이 옆에 가도 모르고 있었다. 방해하기가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보고 있는 잡지는 현대시학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오리할배가 삼십년 넘게 정기구독하고 있는 시전문지다. 정년퇴임하기 전에 오리할배가 근무하는 교장실에 가면 늘 들고 있던 잡지다. 지나다니는 행인은 뜸했지만 한참을 서 있어도 오리할배는 모르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오리할배에게서 느껴지던 후줄근한 홀아비 냄새나 어딘가 모르게 외로움 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진 품새가 깔끔하게 사라졌다는 점이다.
-누구 시인데 그렇게 빠져 있슴꽈?
-어? 왔구나. 그래.
책에서 눈을 뗀 늙은 시인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반가움이 진하게 묻은 대답이다. 악수를 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볍게 포옹을 했다. 오리할배는 보지 못한 이년 사이에 주름살이 좀 늘었는지 더 연륜이 들어보였다. 육십 중반에 들어선 서정시인의 얼굴을 보고 이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참! 오랜만이네요. 그 말을 하려다가 목젖 아래로 꿀꺽 삼켰다. 그 말을 하면 그동안 조만간, 조만간하며 이년이나 유예시킨 내가 더 죄인처럼 여겨질 것 같았다. 하여 말을 바꾸었다. 잠시 못 본 사람처럼, 별일 없죠? 하고 인사치레로 물었다.
나야 늘 그렇지, 하고 대답했지만 별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오리할배는 시골중학교 교장을 할 적에 사모님을 여의고 궁색하게 홀아비로 살다가 주위 지인의 끝도 없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얼마 전에 오리할매를 맞이했다. 나 역시 그 동안 엄청나게 오리할매를 구하라고 종용했었고, 혼자 사는 게 항상 안쓰럽게 생각하던 참에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 내가 전화하면 멘트는 바뀌었다.
조만간, 오리할매 모시고 나와 오리백숙이나 한 그릇 하죠?
오리백숙? 좋지! 그래 언제 그러자구나.
전화말미에는 늘 그 말이 오갔다. 오늘도 전화말미에 그 말을 분명히 했었는데 오리할배 혼자였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오리할매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오리할매는 어쩌고 혼자 나오셨어요?
-부끄러워서 못 나오겠단다. 숫기가 없거든.
-저는 오리할배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오리할매에게 인사하러 왔거든요.
-새해 인사?
-그게 아니라 구제불능인 오리할배를 구제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죠.
그 말에 오리할배는 손에 들고 있던 책으로 내 등짝을 툭 치며 말했다.
-가자. 그 사람, 사람들 여럿 모이는 걸 싫어하거든.
둘은 천천히 걸어서 동구청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섰다.
오리할배!
시건방진 어느 놈이 지어올린 별명이 아니다. 아마 십년은 되었지 싶다. 지역에서 문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인터넷 가상공간에 카페를 만들었다. 지역 시인들 중심이었는데 나중에 소문이 나니 전국구로 확대되었다. 신작시가 올라오고 예리한 비평의 칼날이 난무하는 거기에는 희한하게 오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빨간오리, 털 빠진 오리, 청둥오리, 왕오리, 가창오리, 미운 오리 새끼, 오리 엉덩이, 심지어 오리 대가리까지 있는 그 카페에 어느 날 어험! 하고 나타난 오리가 바로 오리할배였다. 오리할배라는 닉네임으로 카페에 가입한 것이다. 지금은 시들했지만 그 카페가 왕성하게 움직일 적에는 어느 오리가 글을 올리면 조회가 하루 만에 삼백여 회를 훌쩍 넘어섰고 댓글이 촘촘히 달리던 참신한 지역 문학카페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 카페가 지역문학에 미친 영향도 만만치 않다. 암튼, 그곳에 오리할배로 나타나서 그 해에 상재한 시집이 ‘나는 오리 할아버지’ 라는 시를 표제작으로 한 시집이라 꼼짝없이 오리할배가 되고 말았다.
당시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교장선생님 대신에 오리할배로 통했던 모양이다. 교장실을 오리둥지라고 불렀다는 후문도 있는데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정년 퇴임식을 할 때는 어땠는가? 나도 오리할배 정년퇴임식에 내빈의 자격으로 참석했다. 다른 교장의 퇴임식과는 달랐다. 정년퇴임은 강당에서 했는데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이 종이박스를 오려서 만들어준 오리모양의 커다란 종이박스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 박스에는 학생들이 오리할배를 보내며 한마디씩 적은 글들이 앞뒤로 빼곡했다. 그 오리모양의 종이박스 목걸이를 걸고 강당에서 하는 퇴임사에서 첫마디가 학생여러분! 오리할배는 이제 오리집으로 간다. 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 말에 학생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한쪽에선 울지 마! 울지 마! 하는 구호가 함성으로 터져 나왔다. 정년퇴임식이 아니라 무슨 운동회의 응원 같았다. 오리할배는 그 오리모양의 종이박스를 퇴임식이 끝나고 내빈들과 함께하는 구내식당에서의 늦은 점심을 먹을 때도 목에 걸고 소주병을 들고 돌아다니며 술을 권했다. 아마도 그 오리모양의 큼직한 종이박스는 오리할배 서재에 아직도 보관하고 있지 싶다. 학생들의 애틋한 글이 적혀있기에 성격상 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오리할매한테 전화 한번 해보시죠? 저녁이나 같이 하게. 무엇이 부끄러워, 어떤 분인지 무척이나 궁금한데.
동구청 옆 골목으로 들어서서 마땅한 식당을 찾으며 건넨 말이다. 사실이지 오리할매가 어떤 분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어떤 나이 먹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오리할배를 후줄근한 홀아비에서 구제해주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냐? 식당부터 잡고 전화를 해보자.
동구청의 공무원과 민원인을 고객으로 겨냥하여 영업하는 골목인 모양인데 휴일이라 그런지 골목은 한산했고 식당들 더러는 문을 닫고 있었고 우리가 들어선 집은 한우전문점이었다. 술 마시고 저녁을 먹기에 어중간한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도 한산했다. 자리를 잡고 탑리시인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전화를 해서 오리할배를 바꾸어주었다. 오리할배가 위치를 설명하자 이십 분이면 도착하겠다고 했다. 통화내용을 옆에서 들어보니 외출준비를 하고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어느 메뉴가 소주 마시기에 적당한 것인지 물어보고 아주머니가 연하다며 권하는 한우등심과 소주를 시켰다.
오리할배는 먼저 해외사업에 대한 근황을 물었다.
일은 이제 틀이 잡혀 제대로 풀려나가고 있다. 짖고 있던 빌라는 준공검사를 하고 있다. 공사 막바지다. 허나 환율에 문제가 있다. 애초에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투자초기에 미얀마 환율이 1달러에 천 짯 미만이었다. 그러나 달러 가격이 슬금슬금 올라 지금은 1,350짯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투자할 적에는 천 짯 미만이었던 달러가 분양시점에서 그렇게 오르니 가만히 앉아서 35%를 손해보고 들어가는 셈이다. 설상가상, 미얀마의 군사정권이 종지부를 찍고 마구잡이 하가를 내어주어 주택의 과잉공급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아내조차도 모르고 있는 부분이다. 오리할배가 궁금해 하시니 솔직하게 설명했다. 그걸 설명하고 나니 가슴이 아리다.
-짖고 있는 주택이 총 몇 세대나 되냐?
-다섯 군데 현장에 총 서른여섯 세대입니다.
-장난이 아니구나. 한 세대에 일억씩 잡아도 돈이 얼마야? 완전히 기업이구나.
-미얀마 식으로 지으면 그 정도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누드로 팔거든요.
-누드? 집도 누드가 있냐?
-미얀마 스타일이죠. 내부 인테리어를 하나도 해주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주방에 싱크대도 없고 심지어 전등조차도 달아주지 않습니다. 집을 사서 들어오는 사람이 자기 취향대로 꾸미는 거죠.
-하! 희한한 시스템이구나. 들어보니 많이 힘들겠구나. 새해를 서광의 해로 정한 이유를 알겠다. 그건 그렇고 준이는 제대했냐?
-예. 지난달에 제대하고 지금 포클레인 조수로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왜 조수야? 군에서 포클레인을 주특기로 했다며?
-군하고 사회하고 같습니까? 군에서 이년을 했더라고 나오면 다시 일머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 그 녀석 중장비 기술자로 키워서 네가 하고 있던 한국 사업을 물려주면 되겠네?
-그럴 생각입니다만, 잘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기를 구우면서 시작한 사업 이야기에서 가족 얘기로 넘어갔다. 그 동안 소주 한 병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오리할배는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를 부르고는 빈 소주병을 들고 흔들어보였다.
구미를 거점으로 교사 생활을 하던 오리할배는 도교육청의 장학사로 오 년을 갔다가 다시 구미를 거점으로 교장생활을 시작했다. 구미에서 근 팔십 리나 떨어진 면소재지의, 전교생이 고작 팔십 명 남짓한 시골 중학교 교장을 거쳐 구미로 나와서 부임한 학교가 공교롭게도 준이 녀석이 갓 들어간 집 앞의 중학교였다. 사무실과 함께 쓰는 집이 교장 사택으로 쓰는 아파트와 가까운 관계로 퇴근하면서 가끔 사무실에 들렀다. 사무실에 들르면 누구 시가 좋더라, 누가 세 번 째 시집을 냈다, 네 소설 어느 부분은 시에 인용하면 좋겠더라, 는 둥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저녁을 같이 먹고 소주 한잔하고 쓸쓸하게 교장사택으로 들어가곤 했다. 학부형과 교장의 만남이 아니라 문학인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런 서정시인과 만남은 녀석이 이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성격이 살짝 변질되었다.
정식으로 학부형과 교장의 만남은 준이 녀석이 이학년이 되면서 부터다.
오리할배는 거의 매일 우리 사무실로 퇴근을 했다. 준이 녀석의 동향 보고 때문이었다. 태권도 삼단에 또래들보다 덩치가 컸던 녀석은 학교에서 노는 놈으로 분류되었던 모양이다. 이학년이 되면서부터 내가 예상하지 못한 갖가지 사고를 치고 수업 받으러 학교에 가는 날자보다 체벌로 사회봉사를 나가는 날이 많을 정도였다. 요즘은 정학이라는 체벌이 없어졌다. 무조건 사회봉사로 때운다는 걸 준이 녀석 중학을 보내고 알았다. 학교에 담배를 사가지고 가서 아이들에게 강매를 하다가 걸리고, 수업을 빼먹고 울타리를 넘어가 PC방에 있다가 걸리고, 같이 어울려 노는 놈과 다투고 홧김에 화장실 문을 부수다가 걸리고, 이학년짜리가 잔소리한다는 이유로 삼학년을 패다가 걸리고, 여교사에게 멱살이 잡혀 교무실로 끌려가다가 연약한 여교사의 손목을 비틀어 인대가 늘어나게 하고, 녀석이 친 사고의 종류와 유형은 다 열거할 수 없고 녀석은 교장실에 수도 없이 불려가 특별 훈육을 받은 모양이다.
그때부터 아내는 바빠졌다. 녀석이 걸어서 가는 학교가 아닌 사회봉사로 시간을 때워야 할 시립 요양병원으로, 시청 청소과로, 빨래거리가 쌓인 보육원으로 실어다 나르기에 바빴다.
오리할배는 그때부터 거의 매일 우리 사무실로 퇴근을 했다. 오리할배가 사무실로 오는 날이면 삼층에 있던 아내가 사무실로 내려와 준이 녀석의 학교생활 근황을 듣곤 했다.
어쩌면 좋아요?
오리할배를 보면 아내가 초조해 하며 늘 하는 말이다.
어쩌긴 뭘 어째? 오리할배에게 당신 젖을 한번 만지라고 해. 오리할배 여자냄새 맡은 지 오래 되었어. 당신 젖을 한번 만지면 특별교육을 시킬 거야. 우리가 촌지나 뇌물을 줄 게 뭐 있어. 그것밖에 없잖아. 오리할배도 절실할 거고.
아내의 말끝에 내가 늘 하는 농이다. 그 말에 오리할배는 싱긋이 웃으며 시간이 가고 철이 들면 그런 놈이 사회생활을 더 잘한다고 아내를 달래곤 했다.
내가 출타하고 없는 날도 사무실로 찾아와 아내와 아이가 친 사고에 대해 얘기하고 징계위원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거라는 얘기를 하고 아이의 장래에 대해 상의를 하고 아내를 달래고 간 날도 많은 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런 걸 다 알면 내가 설 자리가 없을뿐더러 없는 자궁이 답답할 지경이라 애써 외면했다. 나는 생각했다. 오리할배가 발령 잘못 받아와서 아이만 훈육시키는 게 아니라 학부형까지 달래야하는 고생을 녀석이 졸업할 때까지 이년이나 했다고.
다른 학교로 발령을 받으시지 왜 하필 여기로 와서 개고생을 하십니까?
녀석이 사고를 칠 때마다 내가 오리할배에게 할 수 있는 말을 그뿐이었다.
다른 학교에 가도 이런 놈이 꼭 있어.
오리할배는 웃으며 대꾸하곤 했다. 준이 녀석은 오리할배의 특별 훈육덕분인지 잘리지 않고 겨우 졸업은 했다. 중학생활을 그 모양으로 했으니 녀석은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원서만 내면 들어가는, 집에서 오십 리나 떨어진 읍 소재지의 고등학교로 들어가서 스쿨버스로 통학을 했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아내는 오리할배를 한번 부르라고 했다. 아내의 말은 진지했으므로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한번 모셔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엊그제 저녁때도 오셨다 가셨는데?
그렇게 오시는 것 말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
아내에게 알았다고 하고 바로 오리할배에게 전화를 때렸다. 헌데 그날은 시내 교장단체 회의가 있어서 거기서 저녁을 먹는다고 했고 그 다음날로 미루어 약속을 했다. 그 다음날 오리할배는 퇴근하시면서 바로 사무실로 들리셨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집 한권을 손에 들고 오신 것이다. 아내의 요구로 자주 가던 집 앞의 곱창집이나 감자탕이 아닌 시내 변두리의 마당이 넓은 한우전문점으로 우리는 모셔졌다. 오리할배와 나는 술을 마셔야 했으므로 아내가 운전대를 잡은 차를 탔을 뿐인데 정원수가 잘 가꾸어진 마당 넓은 식당으로 모셔진 것이다. 차에서 내리면서 이년간 아이 때문에 고생을 했으니 그렇게 한번 모시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짐작은 보기 좋게 허방을 짚었다.
육질 좋은 고기가 굽히고 술이 한 순배 돌자 아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내의 말 요지는 우리가 다니는 절에 가끔 오는, 대학병원 수간호사를 하고 있는 마흔이 넘은 노처녀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결국 오리할매를 천거하는 자리였다. 나도 그녀를 몇 번 보았는데, 말로만 오리할매를 구하라고 했지 그녀를 오리할매로 굳히겠다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내의 말에 나도 그녀를 아는데 참, 조신하고 참하다고 거들었다.
아내는 스님을 통해서 이미 그쪽에 운을 띄워놓았다고 했다. 돌아가는 사태를 들은 오리할배는 들고 있던 소주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고 안주 집을 생각도 없이 한참 있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이 오메! 그 여자가 혹시 한글을 모릅니까?
평소에 대하던 오리할배의 목소리가가 아니었다. 한글을 모르는 여자라니? 아내가 어안이 벙벙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오리할배의 목소리가 워낙 진지했으므로 장난으로 받아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아내야, 어안이 벙벙해 무슨 죄인인양 입을 다물었지만 나는 안다, 그 말의 의미를.
아내가 놀라서 입을 다물자 오리할배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글을 모르는 여자라면 한번 만나겠다는 것이었다.
한글을 알아도 교회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처녀입니다. 절에 다닌다잖아요?
내가 중재에 나서서 어색한 분위기를 와해시키려 했다.
준이 오메! 마음은 알겠는데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깔끔한 하 부인이 있잖아요?
오리할배가 말하는 하 부인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교장사택에서 가까운 하나로 마트를 얘기하는 것이라는 걸 아내도 알고 있었었다. 오리할배의 심정을 파악한 아내는 굳어있던 인상을 풀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오리할배는 사대독자다.
손이 귀한 집안의 사대독자로 태어났으니 모셔야할 제사가 많은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사모님은 살아계실 적에 교회의 집사였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사모님은 교회 일을 위해서, 권사가 되기 위해 교직을 명퇴할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오리할배는 제삿날만 되면 종교적 갈등을 집에서 느껴야 했다. 제사를 모시지 않겠다는 사모님과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오리할배의 의견에 잦은 충돌이 일어난 모양이다. 후문에는 제삿날이 되면 사모님은 도망치듯 교회로 나가고 오리할배 혼자서 직접 제수를 장만하고 제사를 모셨다는 말도 있다. 오리할배가 한글을 모르는 여자를 구한다는 말도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여자를 구한다는 말고 다름 아니다. 오리할배는 집안의 골이 깊은 종교적 갈등이 뼈에 사무쳤던 모양이다. 그날 고기를 먹으며 요즘은 제사를 어떻게 모시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의과대학원을 다니는 아들, 오대독자인 상원이가 인터넷을 보고 제수를 장만하고 인터넷보고 지방을 쓰고 인터넷에서 일러주는 순서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하면서 아내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농을 했다.
준이 오메! 한글 모르는 여자가 있으면 다른 사람 소개 시켜주지 말고 꼭 나부터 선을 보게 해주셈.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어 치마만 둘렀고 한글만 모르면 돼.
그 말에 한바탕 웃었고 유쾌한 기분으로 된장과 밥을 시켰다.
오리할매를 구했다는 소문을 듣고 내가 전화를 해서 한 첫마디가 축하한다는 말 대신 이제는 팬티를 일주일씩 입지 말고 매일 갈아입으라는 농담과 함께 오리할매는 정말 한글을 모르느냐고 물었다.
한글은 조금 아는데 성경은 전혀 읽을 줄 몰라.
진지함으로 가장한 능청스런 대답에 내가 먼저 웃어버렸다.
-탑리시인이 늦네?
오리할배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두 번째 소주병이 다 비어갈 무렵이었다.
-탑리시인보다 오리할매에게 전화를 해보시죠.
-그럴까? 그래 해보자. 워낙 숫기가 없어서.......
오리할배는 휴대폰을 꺼내 단축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했다. 꼭 봐야할 사람이고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라 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은 없고 탑리시인이 오기로 했다고 하며 간단히 차려입고 나오라고 종용하는 투였다. 통화내용으로 미루어 탑리시인은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휴대폰 저쪽에서 위치를 물었는지 동구청 옆 골목 당신이 자주 가는 세탁소 아래 한우집이라고 설명했다.
-아따, 여자가 고집이 세요.
전화를 끊은 오리할배의 말이었다.
술이 어지간했는지 담배가 당겼다. 막간을 이용해 한 대 피우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둘은 식당의 슬리퍼를 끌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앞에 자리한 유료주차장 지붕 위에 상현달이 참으로 곱게 떠있었다.
-대구의 달은 참 참하네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내가 말했다.
-탑리시인 듣는 데는 그 말을 하지마라. 천 원에 사야 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탑리시인이 오리할배 등 뒤에서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인사대신 내가 먼저 소리쳤다.
-저기 참한 달을 한번 봤는데 천 원내야 합니까? 딱 한번 봤는데?
-아니야, 오늘은 안내도 돼! 오랜만에 만났고 새해 첫날이라 내가 선물로 걸어둔 거야.
-감솨함돠.
천연덕스럽게 뱉는 탑리시인의 대답에 그 말을 하며 서로 손을 잡았다.
-미얀마에 나가면 한국 전화를 로밍하지 않냐?
셋이 다시 탁자 앞에 둘러앉자 탑리시인이 물었다. 어딘가 모르게 불만이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자동 로밍이 되는데 그렇게 하면 전화비가 만만찮아 그쪽에서 가입한 전화를 쓰고 있다며 카톡도 되고 보이스톡도 된다면서 사무실로 전화를 하면 바로 연결이 된다고 하며 어느 참신한 과부가 있기에 이 카사노바를 그리 급하게 찾았느냐고 물었다.
-과부가 아니라 브라질에서 재단이사장이 들어와서 얘기를 했더니 학교를 팔 생각이 있더라구, 그래서 가격 흥정하려고 찾았었지.
그랬었구나. 탑리시인이 이사로 있는 시골 여중을 사겠다고 한 적이 있다. 곧 문을 닫고 없어질 그 학교를 사서 문예창작 전문고등학교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문학에 뜻과 소질이 있는 학생을 골라 소수정례화 시켜, 감수성이 예민한 그 나이에 수학을 가르치지 않고 문학 쪽으로 길을 틔워주고 싶었던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말을 꺼낸 게 삼년 전이었다. 그때는 절실한 심정으로 했던 말이다.
-어쩌죠? 지금 미얀마를 향해 다 쏟아 붓고 총알이 떨어졌는데? 이년만 유예시켜주시면 안돼요?
-지금 재단이사장이 브리질 나갔으니 다시 들어오려면 한 이년은 걸리겠지.
-제가 그 사이에 총알을 회수해서 들어올 게요.
학교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오리할배가 관심을 보였다. 오리할배가 탑리시인에게 학교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전교생이 고작 스무 명 남짓이고 교직원이 열댓 명이 되는, 배보다 배꼽이 큰 사립 여중이다. 오리할배도 그 시골 여중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오갈 때 기다리던 오리할매가 식당에 들어섰다. 어! 저기 오는구나, 오리할배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들어선 여인은 몸피가 가냘픈 사십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눈매가 선명했다. 얼른 보아도 오리할배가 한눈에 반할 그런 스타일이었다. 나는 후딱 일어서서 두 손을 무릎에 모으고 구십 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했다.
-오리할매! 반갑고 고맙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리할배가 제 얘기도 하시던가요?
탑리시인이 일어나서 방석을 깔아주며 오리할배 옆자리를 권했다.
오리할매는 오리할배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오리할배가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를 불러 고기와 소주를 더 시켰다. 오리할매는 오리할배의 옆구리를 찌르며 집에서 입맛을 다시고 왔다며 고기를 조금 시키라고 했다. 오리할배는 그 말에 등심 삼 인분에서 이 인분으로 축소 주문을 했다. 나는 마주보고 앉았지만 오리할매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지 못했다. 오리할배의 권유로 나에게 따라주는 술잔을 받으며 오리할매를 보았는데 그 얼굴에 돌아가신 사모님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었다. 왜 뵌 지 십년이 넘어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그 얼굴이 느닷없이 떠올라 오리할매의 얼굴에 겹쳐지는지. 순간적인 변화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게 내 고질병이지만 그 잊어진 줄 알았던 얼굴이 저 얼굴에 겹쳐질 줄이야. 오리할매의 얼굴을 보기가 곤혹스러웠다.
돌아가신 사모님의 얼굴이 보이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정의 조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오리할매를 만나면 어느 별에서 기다렸다가 내려온 천사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은 목젖 아래서 맴돌고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앉은 자리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어색해지면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는 게 나의 또 다른 고질병이다.
오리할배와 탑리시인은 학교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그 대화를 건성으로 들으며 나는 소주를 홀짝거리면서 한눈으로는 오리할매의 청순한 얼굴을 흘깃거렸다. 내 눈길을 의식하지 못한 오리할매는 해맑은 얼굴로 고기를 뒤적이고 있었다. 멀쩡하다가 가끔씩 그 사모님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취기 때문인가? 많이 마시진 않았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았다. 이 무슨, 괴이한 현상이야?
-재단이사장은 브라질에서 무슨 사업을 하지?
-듣기로는 축산 유통업인 모양이야.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재킷에 든 담배를 찾아 쥐고 슬그머니 식당 밖으로 나왔다. 담배가 당겨서가 아니라 불편한 자리를 잠시라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보니 상현달은 유료주차장 지붕 뒤로 숨고 없었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이름 모를 한숨까지 내뱉었다. 내가 왜 골 깊은 한숨을 쉬지? 의문이 들었다. 찬찬히 짚어보니 이상한 건 그 분위기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내가 상상한 수더분한 중년아줌마가 아니라 내 기대를 초월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 즉, 사유의 적재정량을 초과한 청순과 가련함을 지닌 노처녀라 말을 붙이기가 조심스러운 거라고 정의를 내리고 담배를 끄고 자리로 돌아갔다. 미처 자리에 앉기 전에 오리할배의 질문이 날아왔다.
-야! 이 작가, 미얀마로 쏟아 부운 총알 이년 안에 회수되지?
오리할매를 의식해서인지 내 호칭이 늘 부르던 이름에서 이 작가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예! 이년 후면 그 정도 여력이 될 겁니다.
-그러면 무조건 접수해라.
-그러죠. 오래 눈독들인 건데,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
-지금 교장은 임기가 끝나면 오리할배가 교장을 맡아 학교를 살려준다는 조건하에서 접수하겠습니다.
-그래! 그게 맞아. 순서가 그래야 해!
탑리시인이 맞장구를 쳤다. 탑리시인께서 다음에 재단이사장이 들어오면 흥정하는 걸로 입을 모으고 학교에 대한 얘기는 그 정도에서 일단락되었고 다음은 탑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탑리시인의 말에 의하면 문화재청의 보수공사로 이년에 걸친 탑 수리가 이제야 끝났다고 했다. 단순히 탑을 해체했다가 복원하는데 꼬박 이년이 걸린 것이다. 나는 언젠가 가서 천막안의 탑의 잔재인 돌덩이만 보고 온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으니 불현 듯 탑이 보고 싶었다. 탑리석탑은 균형미, 즉 안정감과 상승미의 조화가 완벽한 국보다. 석탑에 반해서 탑리에 눌러앉은 시인에겐 그 보다 큰 소식이 없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탑리시인에게 내밀었다. 그 탑의 신음소리를 듣느라 고생했다는 말이다. 탑리시인은 무슨 뜻인지 냉큼 알아차리고 천 원을 접수했다.
언제 짬을 내서 탑을 보러 가자고 뜻을 모았고 자리는 일찍 파해졌다.
탑리시인이 차를 가져온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았고 오리할배와 둘이 마신 소주가 네 병이었다.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오리할배는 나를 보고 더 마시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자주 만나서 조금씩 마시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양교역을 향해서 셋이 나란히 걸어오면서도 오리할매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탑리시인은 식당 앞에서 헤어져 차를 세워둔 쪽으로 올라가고 셋이서 나란히 아양교역을 향해 걷다가 오리할배가 불쑥 물었다.
-우리 다정한 부부처럼 보이냐?
-아니요.
-그럼. 어떻게 보이냐?
-잘 어울리는 오리 한 쌍 같구먼요.
그 오리들의 둥지는 아양교역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단지라고 했다. 아양교역에 닿아 지하도 입구에서 인사를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만간 다시보자는 말을 하고 지하도 서너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와 오리할매를 불렀다. 길이 한산했음으로 내 목소리에 오리들이 앙상한 가로수 밑에 멈춰서 돌아보았다. 그쪽으로 다가가서 말없이 주머니에 든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두 손으로 오리할매에게 내밀었다. 오리할매는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받아! 받는 거야. 받아서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는 거야.
오리할배가 무슨 뜻인지를 알고 받으라고 독촉하자 오리할매는 영문도 모르고 수줍은 얼굴로 마지못해 받는 걸 보고 고개만 까딱하고 돌아서 종종걸음으로 지하도 계단을 내려섰다.
우리들끼리만 통하는 천 원에 숨겨진 미학, 천 원의 의미에 대해서는 오리할배에게 듣겠지.
돌아오는 길은 밀린 숙제를 마친 것처럼 기분이 깔끔했다.
오리할배에게서 애프터서비스가 날아온 건 내가 기차를 타고 왜관역을 지날 즈음이었다. 좌석은 예상대로 매진이었고 입석이었다. 남의 좌석 모퉁이에 눈치껏 등을 기대고 돌아서서 차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새해의 나이와 나이에 걸맞은 언어와 처세, 그리고 정체성, 뭐 그런 다짐과 감회에 뒤죽박죽 젖어 있을 때 재킷주머니에 넣어둔 전화벨이 울린 것이다. 발신인이 오리할배였다. 만남 뒤에 꼭 애프터서비스로 안부를 묻는 오리할배였기에 번호만 보고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예! 조심해서 잘 올라가고 있습니다.
낮지만 선명한 목소리로 오리할배께서 할 말을 먼저해버렸다.
-잘 올라가는 거야 당연하고, 너 정말 서광을 아느냐?
느닷없는, 기습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차창에는 대답을 못하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쩔쩔매는 중년 사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오늘 만남이 서광의 서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래! 올해는 꼭 서광의 한해가 되도록 해라.
서광이라 서광........
그 말이 입에 맴돌고 있었고 기차는 왜관역에 다시 출발하려는지 기적소리를 서~광~이라며 길게 내뿜고 있는데 차창에 비치는, 냉큼 대답을 못하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쩔쩔매는 중년사내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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