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의 목걸이
/ 곽종분
개울물 흐르는 소리만 졸졸 들리는 산마을 외딴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워리 세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는 워리는 낮잠을 잘 잡니다. 밤이면 호랑이처럼 산마을을 헤맵니다. 가끔 찾아오는 손님은 워리를 탐스러워 합니다. 포동포동 살이 찐 놈이 사람을 봐도 겁을 내지 않습니다.
“무슨 강아지가 사람을 보고 짖을 줄도 모르나?”
짖기는 커녕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손님들의 심부름도 잘 합니다.
“워리야, 할머니 찾아라.”
워리는 곧장 집 뒤 고추밭으로 단숨에 달려가 할머니 치마를 입으로 당기며 손님이 오셨다고 알려 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장작불을 지피고 오리를 잡아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장만 합니다. 손님들은 오리는 커녕 워리를 보고 군침을 흘립니다.
“그놈 잡아 놓으면 먹을 것 있겠다.”
워리는 알아 차린 듯 손님을 힐끔힐끔 보면서 할머니에게 갑니다. 할머니는 워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정시킵니다.
“워리야, 걱정마래이.”
“할미, 할애비가 못살아 이 짓 한대이.”
“이 할미, 할애비가 너를 잡겠나?”
“이 할미 귀에는 그래도 스님의 맑은 목소리가 들린대이.”
「살생중죄 금일 참회….」
워리는 가마솥에 물이 끓어도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을 알기 때문에 겁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튼튼하던 워리가 앓아누웠습니다.
“여보, 영감님.”
“입살이 보살이라더니 우리 워리가 입질에 너무 오르내려 그런지 아파요.”
할아버지도 그렇게 느겼나 봅니다.
“그렇다 마다, 쯧쯧.”
다른 집 개 같으면 벌써 개장에 팔려갔을 나이입니다. 정이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가끔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저 흰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는 형편이 되어도 워리만은 팔지 맙시대이.”
워리는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식처럼 사랑하고 의지 하는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았습니다.
“영감님, 내일은 워리 데리고 병원에 가보이소.”
“그렇게 해야겠소.”
날이 밝았습니다. 할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워리를 세수시켰습니다. 눈꼽을 떼어 주기도 했습니다. 워리는 좀 깨끗해 졌습니다.
“이놈아, 병원에 가는데 좀 또록또록 해야제…….”
할머니는 입맛 없어 못 먹는 워리에게 죽을 끓여 먹였습니다.
“워리야, 기운차리고 병원가야 한데이.”
워리는 할아버지 따라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 수의사님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했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뭐라켔어예?”
“어찌된다고요?”
“안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떨리고 눈이 캄캄했습니다.
“워리야, 여기 좀 쉬었다 가자.”
워리도 힘없이 할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박고 누웠습니다.
“워리야, 너 그라몬 못쓴데이.”
할아버지는 겨우 정신 차려 워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우리 워리가 한 푼 깨묵었지예.”
할아버지는 워리를 안으며 앉았습니다.
“이놈아, 그러는 법이 아이다 안카나.”
할아버지는 그 말만 계속했습니다.
“영감님, 왜 그러십니껴.”
“워리가 안된다 안카나.”
할머니는 그제야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때야 다 알아 차렸습니다.
“이놈아, 할애비, 할미를 두고 어디에 너 혼자 갈라카노.”
할머니는 워리의 털이 다 젖도록 울었습니다.
“이놈아, 니 혼자 가몬 극락간다 카더나?”
하루 이틀 워리의 병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워리야, 이 죽 먹고 정신 차리제이.”
할머니는 매일 죽을 끓여 먹였습니다. 워리의 병은 하루 이틀 점점 더 커가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자고 나니 워리가 없어졌습니다.
“워리야…….”
“영감, 이 일을 우짤끼라예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산이 떠나가도록 불러도 워리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워리를 찾아 산성마을까지 올라갔습니다. 워리는 성터 남문 양지바른 곳에 가서 꿈나라로 가 있었습니다.
“그래, 니 혼자 갔더나.”
“그라모 몬쓴다 안카더나.”
온 산에는 진달래꽃이 빨갛게 피어 봄바람에 방긋방긋 웃으며 한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워리야, 너는 영영 가뿌맀나?”
“꽃 피고 새 울고 물 흐르는 이 좋은 계절, 왜 니 혼자 가뿌리노.”
할아버지는 할멈과 자기가 손에 잡고 다니던 때 묻은 줄을 잡고 더 울었습니다. 장날 마음먹고 산 워리의 쇠목걸이는 워리임을 똑똑히 말해주었습니다.
“이 예쁜 목걸이도 다 버리고 가나.”
“그래, 성문 앞으로 가 묻어 주께.”
“혼이라도 할애비와 소풍 다니제이.”
워리는 할아버지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곳이 성문 앞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쇠목걸이를 자꾸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무리 내가 묵고 사는 기 바빠도 니 묻어줄 날이 없을까 걱정됐나?”
“니는 꼭 여기 묻히고 싶었나?”
“왜 혼자 여기까지 왔노?‘
이 세상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는 사람은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자식도 찾아오지 않고 일가친척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는 워리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사랑했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에는 산에서 나무를 주워 군불을 잔뜩 지핀 날엔 워리도 함께 끼고 잤습니다.
“여보, 우리 워리 춥겠지예?”
“워리 데리고 오까예?”
“우리만 따시니 안됐구먼.”
추운 겨울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봄이 와 손님 없는 날엔 할머니, 할아버지와 꽃구경도 갔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높은 산에도 갔습니다.
여름에는 더 높은 산으로 폭포수 맞으러 갔습니다.
“이놈아, 도시락 떨어질라. 너무 새기새기 걷지 마래이.”
이렇게 폭포수 맞는 날엔 목욕탕 갔다 온 것 같이 온몸이 시원했습니다. 소풍도 가고 목욕도 하고 즐거웠습니다.
워리만을 사랑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켜주던 워리는 이렇게 다른 세상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워리야, 니묻어줄 날이 없을까 걱정했나?”
“왜 니혼자 여기 왔노?”
할아버지는 워리가 말을 잘 듣고 착한 것을 손님들에게 자랑도 했는데 이제 자랑꺼리가 없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할 말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워리야, 이 할애비 자랑꺼리가 없어졌대이.”
할아버지는 싸늘한 워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이 목걸이도 버리고 갔나?”
날이 점점 어두워 오더니 하늘엔 별들이 파랗게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워리의 목걸이를 잡고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워리야, 좋은 세상으로 가거래이-.”
하늘의 별들도 별똥별 눈물을 좍좍 흘렸습니다.
첫댓글 사랑스런 워리의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가슴뭉클합니다.
워리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이 가슴깊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