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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루의 시
-이정환의 시조 미학
이숙경
1966년 전북 익산 출생.
1989년 전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2002년《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
2016년 <이정환 시조 연구>로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시조집 『파두』, 『까막딱따구리』(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으로 펴냄,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로도 선정됨).
시조선집 『흰 비탈』 출간. 시조비평집 『시스루의 시』 출간.
2015년 제18회 대구시조문학상 수상.
대구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전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사무총장.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작가
∥책머리에∥
시조를 창작하고, 시조 관련 논문을 쓰면서 이정환 선생님의 시조 세계를 조명하고 싶어졌습니다. 40년에 가까운 등단 활동을 통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그 울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몹시 저어되기도 하지만『시스루의 시』라는 제목으로 이정환 선생님의 시조 세계를 다룬 책을 펴내게 되어 기쁩니다. ‘선생님의 시조 인생 40년’을 알뜰살뜰 담아 보려고 애썼기 때문입니다.
책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가르침을 주신 진선희 교수님, 고맙습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한 시인이 지치지 않고 창작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을까? 대체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책은 선생님이 그동안 이룩한 문학 세계에 대한 명민한 조명이 못되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시스루의 시』가 앞으로‘이정환의 시조 세계’를 살피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은 밑거름 구실은 하리라 생각합니다.
표사로 책을 빛내주신 이태수 선생님과 유성호 교수님, 출판을 기꺼이 맡아주신 작가 출판사 손정순 대표님의 배려를 오래도록 새기겠습니다.
2016년 가을에
이숙경
∥차례∥
Ⅰ. 프롤로그
1. 열며
2. 논의 양상
3. 문학 활동
Ⅱ. 작품 세계
1. 형식 및 표현
가. 형식
1) 단시조와 연시조 및 사설시조
2) 율격의 특징
3) 율격의 양태
4) 종결 어미의 특이 양상
5) 의미 구조
나. 표현
1) 자연물 혹은 자연 현상
2) 일상 사물
3)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
4) 추상적 관념
2. 내용
가. 심미적 서정
나. 초월적 비가
다. 실존적 성찰
라. 생명회복 의지
마. 역사의식 구현
바. 동심의 노래
Ⅲ. 에필로그
Ⅰ. 프롤로그
1. 열며
이정환은 1978년 등단 이후 개성적인 정형미학과 실존적·심미적·구도적 탐구의 천착에 힘써왔다. 그의 시조작품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여러 편이 수록되었다. 교육과정 관련 수록 작품으로는 2002년 7차 교육과정 국어과 6학년 2학기 교과서에 작품 「친구야, 눈빛만 봐도」가 고시조 두 편과 함께 실렸는데 원작자 미상이었다가 그 다음 해부터 교과서에 이름이 표기되어 2010년까지 수록되었다. 그 무렵 이에 관한 기사가 매일신문과 소년동아일보 등에 자세히 보도된 적이 있다. 2007 개정 교육과정 5학년 2학기 교과서에「혀 밑에 도끼」와 교사용 지도서에 작품「될성부른 나무」, 「검정 비닐봉지 하나」가 실렸으며, 2009 개정 교육과정 국어과 6학년 1학기 교과서에 작품 「혀 밑에 도끼」가 다시 수록되었고, 5학년 1학기 국어과 지도서에「몽돌」이 실렸다.
이정환은 1978년 이태극과 정완영의 추천으로 계간《시조문학》지에 시조「불면가」를 발표하고,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박재삼에 의해「냇가에 앉아서」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등단 이후 10권의 시조집과 2권의 시조선집, 여러 권의 동시조집 및 다수의 시조이론서를 펴낸 바 있다.
수상한 문학상으로는 한국시조작품상, 대구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이 있다. 시조문학 발전을 위한 일로는 대구시조시인협회장과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고, 2016년 현재 전국규모의 시조단체인‘오늘의시조시인회의’의장으로서 시조문학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대구교육대학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및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겸임교수를 거쳐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과에 출강하며 활발한 문학교육을 하고 있다.
2. 논의 양상
1987년 첫 시조집『아침 반감』서문에서 박재삼은 ‘첫 시조집을 펴내는 이정환은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자신이 심사를 맡았던 것’을 말하면서 교직의 길에 있지만 시조 하나는 쟁기 날이 빛나게 부지런히 시조의 밭을 일구고 있는데, 다만 그 가락이 더 자연스러워진다면 금상첨화라고 지적하고 있다. 같은 책 작품 해설에서 박기섭은 작품 속에서 자연과 삶, 삶과 자연이 행복한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보면서『아침 반감』이 시조문단의 자양을 더하고, 바람직한 지향을 보이는 데 충분히 기여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눈부신 변신과 진전의 모습을 기대하는 주문을 했다. 첫 시조집 제목을『아침 반감』으로 한 것만 보아도 그가 어떠한 방향으로 시조 창작의 길을 걸어갈 지 예견케 하고, 강렬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분하다.
1991년 두 번째 시조집『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는 자기 안에 가득하고 눈앞을 가로막기도 하며 온통 둘러싼 기쁨이고 아픔이며, 고통으로 다가와 때로는 절망이기까지 한 대상인, 있으면서도 없는 듯한 없으면서도 늘 있는 듯한 그대에 대한 연가풍의 시조들로 채워졌고, 삶과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를 보였다.
1994년 세 번째 시조집『불의 흔적』의 작품 해설에서 김재홍은 ‘꽃·불의 상징체계’라는 제하에 ‘정신의 깊이에서 솟구쳐 오르는 혼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랑의 운명성과 그 불운한 표정성이 뜨겁고도 깊이 있게 형상화되어 있는 점을 살폈다. 또한 강렬한 혼의 울부짖음은 또 다른 상징체계인 ‘꽃’을 형성함으로써 예술적 형상성을 확보하게 된 것을 간파하였다. 즉 정신의 빛이 바로 불과 꽃으로 외면화와 내면화의 긴장감을 획득함으로써 서정적 깊이와 형상능력을 확보하게 된 점이다. 김재홍은『불의 흔적』을 두고 결국 생명의 솟구침이자 사랑의 격정이며 혼의 불길을 기록한 영혼의 비망록에 해당되는 시조집이라고 단정했다. 아울러 사랑의 오뇌와 격정, 슬픔과 인고의 안간힘이 드러나는 한편 이러한 정감들이 영원주의적이고 정신주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어 주의를 환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물·불·꽃’으로 전개되는 상징연쇄가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구조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고 사회·역사적 삶의 문제와 서로 변증법적 길항관계를 유지해 간다면 시인의 시조 세계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999년 네 번째 시조집『물소리를 꺾어 그대에게 바치다』는『불의 흔적』과 연계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뜨거운 격정을 지나 견디기 적절한 체온으로 돌아온 작품집으로 보인다. 대표작이라고 이를 만한「헌사」,「에워쌌으니」,「절정」등과 문명비판적인 시각으로 쓴「도시론」연작이 실려 있다. 또한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았다는 첼로에 관한 작품들이 다수 있는데 이는 인간의 내면을 악기의 소리통과 연결하여 언어와의 융합을 꾀한 것으로 읽힌다.
2000년에 펴낸 동시조집『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에서우광훈은 사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동시조로 표현한 점을 상기하면서 이것은 사물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또한 그 사물만이 가진 독특한 습관과 성장 과정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시인을 두고 자연의 오묘한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라고 규정하였다. 신재기는 문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존중과 연민이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정환의 동시조집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일체의식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2001년에 발간된 시조선집『금빛 잉어』는 시인의 문학적 여정에서 중간 결산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는 1978년 등단 이후로 발표된 자선 대표작들이 실려 있다. 남송우는 ‘꽃·불·소리로 나아가는 변주곡’이라는 제하에서 먼저 불과 꽃은 동일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꽃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붉은 마음으로 나타나고 있어 꽃과 불은 이정환의 시에서 서로 밀접하게 이웃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꽃을 통해 이 세계가 생성과 소멸의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꽃의 무덤이 천년의 깊이로 자리하여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성의 원천이 된다고 여기고 사랑 역시 불타오르다가 사그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소생하는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세계 인식이 순환론적 세계인식과 맞물려 있다고 보았다. 남송우는 이정환의 시에서 세계 지향의식은 결국 깊이의 세계, 가장 깊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을 두고 근원적인 생명력이 수반된 소리로 보았다. 즉 언어로 빚어내는 이러한 내밀한 소리는 모든 갈등이 융합되어버린 경지이자 천상과 지하의 소리에 가깝다고 하며, 다음 시집에서는 지상의 소리를 더 듣고 싶어 하였다.
2002년 다섯 번째 시조집『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작품 해설에서 이상범은 ‘정신의 깊이에 닿는 감성의 시’라는 제하에 새로운 의식을 일깨우고 그것들이 마침내 감성의 영역을 펼침으로써 감동과 긍정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고, 고요를 다스리며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환경 문제에 대한 직조능력과 단시조들에서 보인 압축된 영상미와 완숙미는 긍정적으로 읽혔고, 시조의 본령을 일깨우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2003년 여섯 번째 시조집『원에 관하여』는 단시조들로만 엮은 것이다. 시인의 산문 ‘벼루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시’라는 제하에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사물들이 품고 있는 존재의 의미를 천착해 보려고 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조집에 대해 이승하는 ‘시인은 토속적·민속적인 생활 습속, 농경사회의 유물들, 한국적 미의식 등을 두루 조사·연구했고, 시조로 형상화했다. 이런 작업을 할 필요성을 느끼고서 전력투구한 시인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했다고 본다.’라고 말하면서 ‘정형시에 대한 집착이 이번 시집에서 너무 강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시의 내용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복고풍인 소재에 있다. 옛것을 되살려내면서 온고이지신의 정신에 입각해서 행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의 것을 오늘에 되살려낸 것이 아니라 과거로 회귀해버렸다.’라고 보았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지적은 설득력을 가진다.
2009년 일곱 번째 시조집『분홍 물갈퀴』를 두고 이은경은 ‘주로 사물이나 자연이 들려주는 은밀한 메시지나 비의를 포착하여 나름의 표현 방식과 조형 미학으로 축조한다고 보고, 단순히 사물과 자연의 이면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과 연결함으로써 그 의미를 확대하고 심화한 것은, 단순한 서경 묘사나 일상적인 서정을 노래하는 다른 시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라고 보았다. 즉 자연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되 존재의 가치를 깊이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2011년 펴낸 단시조 연작인 여덟 번째 시조집『비가, 디르사에게』에서 장경렬은 해설 ‘시를 향한 사랑의 노래’에서 ‘시인이 때로 느끼는 환희와 때로 느끼는 안타까움, 그리고 줄곧 시인의 마음을 옅게 드리우고 있는 슬픔을 함께 나누기’를 권하면서 ‘시인은 끊임없이 시에 대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의식에 시달리는 인간, 너무나도 인간적인 허약한 인간이다. 디르사로 의인화된 시 앞에서 시인이 느끼는 감정은 당연히 고통과 번뇌가 아닐 수 없으니 그의 노래는 비가일 수밖에 없다’라고 하며 시에 이르는 길이 험난한 것을『비가, 디르사에게』를 통해 밝혔다.
정용국은 ‘이렇듯 어찌 보면 미련하기까지 한 76편의 비탄과 환희를 시조집으로 묶어낸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너무나 인간적인 몸부림이었음을 부럽게 생각한다. 『비가, 디르사에게』는 우리 시조를 쓰는 작가들의 가슴에 ‘시조에 온몸으로 바치는 헌사로 남아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라고 보았다.
2012년 아홉 번째 시조집『별안간』해설에서 유성호는 ‘실존적 성찰과 구원의 테마’라는 제하에 ‘엄정한 형식 안에서 사물과의 조응을 통해 삶의 깊이를 표현하고, 섬세한 묘사를 통해 심미적 재현을 성취하며,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이법을 사랑과 구원의 주제로 형상화해가며 더욱 아름답게 보여줄 것’이라고 하면서 ‘이 시조집은 이정환 후기 시학의 매우 중요한 결절’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정용국은『별안간』을 두고‘최고선에 바치는 열정과 가없는 자기갱신’의 결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5년 열 번째 시조집『휘영청』에 대해 박몽구는 ‘이정환은 즐겨 자연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작은 정서에 침윤되지 않고, 부단히 도전해 가는 인간의 삶이라는 중층 구조를 단단하게 구축해 내는 시인이다. 이번 시조집에서는 그의 시어들이 더욱 농축된 가운데, 더욱 풍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고, 전통적인 소재를 즐겨 취하면서도 명징한 이미지를 지니도록 시어들을 골라내고, 삶의 참다운 비의를 견인해내고 있다. 이번 시조집은 그 같은 그의 시법이 한 정점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준다.’라고 살폈다.
2015년 펴낸 단시조선집『에워쌌으니』를 두고 이지엽은 ‘이정환의 작품 세계의 키워드는 자유와 소멸 그리고 화평이다. 이 세 개의 키워드는 시인의 중심 사상을 떠받치며 서로 간섭하기도 하고 혼융되기도 한다. 자유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소망이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 이러한 강압된 세계를 벗어나려는 치열함으로 나타난다. 소멸은 자유와는 정반대의 비워짐을 속성으로 하여 늘 부딪히면서도 비워짐의 세계를 지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에 화평은 조화를 추구하여 세계와의 여유를 중시한다.’라고 말하면서‘이 단시조집은 우리 시조문학사에 남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만큼 밀도 있게 엮은 작품집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본격적인‘이정환론’으로는 2001년에 펴낸 이우걸의『젊은 시조문학 개성 읽기』다. 이 책에서 ‘사랑을 위한 헌사’라는 제목으로 이우걸은 ‘자연 친화 혹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인생 관조의 세계, 삶의 애증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내면 탐구, 성서를 바탕으로 한 묵시론적 전망의 세계, 산업사회가 가져다 준 도시화에 대한 문명 비판, 사물과 삶의 미세한 부분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과 아픔을 조명하는 작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경향의 작품들 속에서 이정환 시조시학을 비할 데 없는 개성으로 그 지표를 세우게 한 것은 최근 그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랑을 주제로 한 가작들이다.’라고 말하면서‘그의 시업의 두드러진 중간 결산으로 사랑의 시편들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자상하고 긍정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이 시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영역이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 그의 작품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행복인 동시에 우리 시조문단의 행복이다. 황진이 이후로 불리어진 많은 연가 속에서 이정환의 개성은 독특하게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문학적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크게 주목해야할 매우 중요한 의미 부여라고 생각한다.
구모룡은 ‘뜨거운 심미주의’라는 글에서 ‘이정환의 시조는 아름다움의 끝 간 데를 지향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아름다움은 시인의 주관적인 탐구 대상으로 시인이면 누구나 그의 개성에 따라 아름다움을 언어로 드러내려고 한다. 때론 위악적인 추함을 추구하는 시인도 없지 않은데, 추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때문이다. 시인에 따라 궁구되는 미적 양상은 다양할뿐더러 넓은 진폭을 보인다. 자잘한 일상과 생활로부터 미적인 것을 발견하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등치시키는 이도 있다. 여기서 애써 미적 범주를 나누려는 것은 아니지만 추와 순수미 사이 다채로운 차이의 지평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현실적인 가치나 효용의 언어들을 지워내려는 의도의 산물일 경우가 많다. 이는 무엇보다 순수한 아름다움에 이르려는 것이 시인의 궁극적인 시적 목표다.’라고 이정환의 시학을 규명하고 있다.
염창권은 ‘영속적 아름다움을 향한 추구와 헌사’라는 글에서 이정환의 시조는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다감한 성품을 갖고 있음에서 연유한다고 본다. 예컨대, 시의 제목으로 ‘~에 대하여’, ‘~에 관하여’와 같은 명명이 자주 발견되는데 이는 그의 시선이 주체의 내부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사물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성취하려는 삶의 태도와 연결된다.’라고 말하면서‘사물성의 즉자적 실현, 주체의 의지적 표상, 본질 세계에 대한 회복의 의지’의 육화가 이정환 시학의 주조를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이순희는‘현대시조의 시어와 이미지’라는 글에서 조운의『구룡폭포』와 이정환의 시조집『별안간』을 통해 현대시조 속에 표현되어 있는 시어와 이미지를 살펴보면서‘100년 가까운 세월의 간극을 두고 있는 조운 시조와 이정환 시조를 비교·고찰해봄으로써그동안의 변모 양상을 추론해 볼 수 있었다. 먼저 내용 면에서 살펴보면 조운 시조의 내용이 대체로 역동적인 것에 비해 이정환 시조는 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조운 시조가 지니는 시적 화자의 시선이 대부분 외부로 향해 있음에 비해 이정환 시조가 지니는 시적 화자의 시선은 내면에 머물러 있어 끝없이 성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운 시조의 정신적 지주는 자아이고, 이정환의 정신적 지주는 창조주인 하나님이란 점이 그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표현 면에서 이 두 시인은 자신의 주제의식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함축적 시어와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 구사는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은 시조혁신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미지 자체만을 따진다면 한시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현대시조의 이미지 구사는 함축적 의미를 부여한 일상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변별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형식면에서 조운과 이정환을 비교하면서 ‘행과 연 구분에서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의미 단위를 기준으로 하여 행과 연 구분을 하고 있으며 행 구분의 경우, 장별 배행, 구별 배행, 음보별 배행을 추구하여 격조의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어휘의 간결성과 명료성을 추구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조운 시조의 경우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음보별로 단어를 묶어놓은 점이며 말줄임표를 한 음보로 사용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라고 살폈다.
박희정은 단시조선집『에워쌌으니』서평‘치열한 적공의 시간…서정을 즐기다’라는 글에서 ‘격렬하지 않으면 비열해질 것이라는 시인의 말이 근 40년을 문학 활동을 이어온 시인의 시조사랑이다. 그동안 20여 권의 책을 상재한 점을 보더라도 그의 시조사랑은 한 마디로 격렬이었다. 시조집, 동시조집, 해설집, 평론집에 이르기까지 이정환이 보여준 시조의 지평은 융숭하고 치열하다.’고 보고 ‘삶이 시가 되고, 시가 곧 삶의 노래란 점을 그의 작품에서 쉬이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3. 문학 활동
이정환은 시조집과 문학 이론서를 19권 저술하였고, 2권의 공저 시조집이 있는시인이다. 이 글에서는 이정환의 시조선집과 이론서는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고 시조집『아침 반감』,『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불의 흔적』, 『물소리를 꺾어 그대에게 바치다』,『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원에 관하여』,『분홍 물갈퀴』,『비가, 디르사에게』,『별안간』,『휘영청』 10권의 시조집과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와 『길도 잠잔단다』동시조집 2권을 주로 살피고자 한다.
시조집을 펴낼 때마다 대부분‘시인의 말’이나 ‘시인의 산문’이 수록되었는데 발간 차례에 따라 옮겨 본다. 평론집에서도 발췌한다.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창작 방향을 엿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며 혹은 아침 안개 혹은 풀과 같고 풀의 꽃과 다름없다 하여도,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정진하리라.
-1987년, 『아침 반감』, 후기 중에서
나는 강한 손과 편 팔, 은밀한 힘, 바람처럼 세미한 음성, 산악처럼 장엄한 이의 다스림을 믿는다. 그 분이 나의 주인 됨을 믿는다. 나는 무익한 종이다. 밭 갈고 씨 뿌려 보살피고 가꾼 끝에 풍성한 결실을 거둬들여 남김없이 죄다 바쳤다 하여도 어쩔 수 없이 무익한 종이다.
허물 채 벗지 못하고 잘 씻기지 못한 나의 하잘 것 없는 숨결과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영혼, 보잘 것 없는 노래들이 그 분 앞에 다만 부끄러울 뿐이다.
-1991년,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후기」중에서
모든 사물, 그 속에는 불이 잠재한다. 온갖 물상 안에 내재하는 불이야말로 인간의 역사를 비롯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시는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불길이 내 정신을 사르고 남은 뒤의 결정이다. 역사와 닿을 길 없는 피안을 향한 정좌, 더 없이 미쁜 이 땅의 산천과 사람들, 당신께로 향한 사무침이 늘 내 안에서 불타고 있다. 이 다함없는 불길, 무슨 물 무슨 모래로 다 가라앉힐 것인가.
어렵사리 또 다른 불의 흔적을 남긴다.
-1994년, 『불의 흔적』,「시인의 말」중에서
고혹적인 것에
그 마력의 말뚝에 멀리 때로 가까이 매여 있음이여.
눈부시도록 황홀히, 즈믄 밤의 즈믄 꿈길을!
-1999년, 『물소리를 꺾어 그대에게 바치다』,「시인의 말」전문
어찌 생을 애달프다고만 하랴.
어찌 노래가 아픔이기만 하랴.
또 한 채의 집을 짓는다. 즈믄 해를 견뎌온 버팀목과도 같은. 사랑을 위한 침목, 침묵의 소리의 체현이다. 일순 뼈를 쪼갤 듯 고요를 찢으며 명치끝에 박혀 긴 신음 토하는 나무!
근 5년여를 틈틈이 뒤적이던 원융 이미지들을 한데 엮어 4, 5부에 나눠 싣는다. 우리 것의 숨결과 향기, 아득한 빛과 그림자를 좇던 중 얻은 시편들이다.
내 속에 갇혀 있던 울음들이 일시에 희게 터진 듯….
-2002년,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시인의 말」중에서
원이라고 입 속으로 가만가만 되뇌어 보노라면 여섯 살 때 떠나온 고향, 학암리가 떠오른다. 내 마음이 늘 달려가곤 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곳,
「원에 관하여」라는 이름으로 쓴 많은 시편들 중엔 여섯 살 이전 두메 마을에서 함께 호흡했던 것들이 적지 않다. 무엇을 알 나이이기야 하랴만, 뇌리에 박혀서 늘 뚜렷이 남아 있는 잔상들은 이따금 나를 찾곤 했다. 이번 시조집은 그 간절한 부름에 화답한 소산인 셈이다.
이제 또 어떤 길을 걸을지 나 자신도 몰라 사뭇 들렐 뿐이다.
-2003년, 『원에 관하여』,「시인의 말」중에서
문학을 생각하면 늘 출사표를 쓰는 심정이다. 1969년부터 비롯된 글쓰기의 업이 어언 사십년이 가까워온다. 그동안 열정 하나로 살아왔다. 믿고 의지할 자산이 나에게 따로 없었다. 때로 불같고 또 때로 광대무변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금빛 화살 같은 의지로 글 앞에 정좌했다.
딱히 희망이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마나 이것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옳겠다. 백락을 알아보는 글꾼이 되고자 하였으나, 그것은 처음부터 넘보지 못할 장벽이었다.
-2005년, 『말없는 말의 확장』,「책머리에」중에서
무수한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아직 목이 마르다.
눈을 뜨면 붓을 들고, 눈 감고 누웠어도 붓을 놓지 않는다.
미선나무 아래 삐꺽거리는 배를 대고 먼 데 하늘을 본다.
구름결이 눈부신 늦봄의 하오,
붉은 꽃잎들이 눈앞에 뚝 뚝 지고 있다.
노래가 그치는 곳에 나의 묘지는 있으리라.
-2009년, 『분홍 물갈퀴』,「시인의 말」전문
어릴 적에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야기꾼은 아버지였다. 동생과 나는 특히 겨울밤이면 무척 행복했다. 늘 내 차지였던 아버지의 등은 한없이 따뜻했고, 나직나직 귓전을 울리던 옛날이야기에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를 움직여 온 것은 어린 시절 들었던 아버지의‘옛날이야기’였다. 무한대의 상상력을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두 갈래였다. 하나는 신화와 전설, 또 하나는 자신이 몸소 겪은 일들이었다. 이야기 속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시심이 싹텄던 모양이다.
또한 여섯 살 때까지 살았던 신비의 소나무가 있는 두메산골 고향 마을 학암리에서의 추억도 시를 쓰게 만들었다. 이른 봄 나무하러 갔다 오신 아버지의 지게에 꽂혀 있던 참꽃 한 묶음은 내 차지였고, 밭 갈 때 쟁기 위에 올라타고 콩콩 뛰던 일과 볕살 좋은 가을날 뒷산에서 주워 온 목화 몇 송이로 어머니께 옷을 지어달라던 일들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2011년, 『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시인의 말」중에서
시는 꿈에 본 사닥다리다. 베델에서 돌베개 베고 잠들었다가 야곱이 바라본 사닥다리. 나의 이 살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바라볼 영원의 실체.
나의 누이, 나의 신부!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뺨은 향기로운 꽃밭, 향기로운 풀언덕. 입술은 백합화, 몰약 즙이 뚝뚝 떨어지는……. 네 윤나는 검정 머리카락에 붙들어 매인 나.
시는 술람미 여인이다. 매혹이다. 눈물꽃나비다. 묵묵부답이다. 꿈꾸는 자, 요셉이 떨어져 내린 구덩이다. 먼 이역 땅으로 팔리어 가기 직전의, 그리고 뜻하지 않은 감옥살이……. 도무지 헤어날 것 같지 않던 캄캄한 나락.
-2011년, 『비가, 디르사에게』,「후기」중에서
별안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비롯됨이다. 내면의 혁명, 혁명의 작은 발자취다.
안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힘의 근원이 되신 분 앞에, 한 영혼을 위해 모든 것 송두리째 내어주신 분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하여 꿈의 사닥다리, 주상절리를 딛고 오르는 설해목일 수밖에 없는 나를 바친다.
타는 울음을 바친다.
-2012년, 『별안간』,「시인의 말」중에서
나는 완전한 합일을 믿는다. 시와의 완전한 합일, 우주와의 완전한 합일을, 오래 전 나는 완전한 합일과 해후했다.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하늘나라에서도 이루어질 일체, 영원한 분신 그 눈물겨운 주상절리와 꿈의 사닥다리를.
내 영혼의 주인이신 그 분의 무한한 은총과 사랑을!
-2016년, 『휘영청』,「후기」중에서
지금까지 수십 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걸쳐서 펴낸 시조집의 시인의 말 혹은 후기들을 보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또 어떠한 문학관이나 인생관으로 시의 길을 걸어왔는지 넉넉히 헤아릴 수 있다. 첫 시조집『아침 반감』을 상재하기 몇 해 전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기에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심중의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은 면면히 이어져서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 『비가, 디르사에게』,『별안간』,『휘영청』등의 시조집에 흡사 신앙 고백하듯이 진정성 있는 술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는 확고부동한 태도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는 증좌다. 또한 시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포부를 개진한 글에서도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시조 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지를 여실하게 읽게 된다. 그것을 두고 그는 이른바 ‘혁명’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시와의 철저한 대면의 일단이 엿보인다. 2011년 봄에 증보판으로 펴낸 동시조집『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의 시인의 말은 그의 문학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잘 헤아릴 수 있게 한다.
아무튼 이 모든 글들을 읽는 동안 그가 그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시와 더불어 꿈꾸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명하게 밝혀진 셈이다.
2006년 시조시인 100인이 선정한 내가 좋아하는 현대시조에 이정환의 작품 「자목련 산비탈」과 「원에 관하여」와 「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가 선정되었다. 또한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 발표된 우리나라 좋은 시조 작품10편에 그의「애월 바다」가 포함되었다. 그는 1978년 등단 이후 꾸준히 그만의 독특한 시적 장치와 기표에 에워싸여 부단히 작품을 창작해온 시인이다. 그의 시조 작품의 양상들은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정환은 1954년 음력 12월 12일TV 방송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경북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 ‘신비의 소나무’가 있는 두메산골 성황골에서 본관이 여주인 아버지 이광식, 본관이 의성인 어머니 김정식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 문학에 뜻을 두게 된 까닭은 풍광이 수려한 고향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추억과 더불어 이야기꾼 아버지의 영향 덕분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그는 대구로 옮겨 와서 초 ․ 중 ․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시를 쓰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69년 가을부터였다. 격정의 사춘기를 보낼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시작활동을 한 번도 중단하지 않았다.
다음 글을 보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잘 드러난다.
내 시의 모태는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 성황골에서 시작된다. 뜰채를 내리기만 하면 한가득 올라오는 시어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 내 시의 젖줄은 네댓 살 때부터 시렁 위에 얹힌 채 꾸들꾸들 말라 가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몹쓸 사무침이 스멀스멀 밀려오면 불쑥 고향 바람 길에 몸을 싣는다. 서둘러 빈 옹기마다 고독의 물을 채우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띄워서 두 손을 모아 목을 축인다. 아! 아직도 지천으로 널려 있는 시의 금싸라기 땅, 원시의 내 고향이여.
1954년 12월 12일이었다. 학암리에서 위로 다섯 누이들을 이어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순공 이규보 선생의 27대 손이기에 격세유전을 신뢰한다면 세월을 한참 건너 우수한 DNA를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다. 빈농의 가정,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초가에서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본 것은 아들을 얻고자 했던 아버지의 지극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이른 봄날 산에 나무하러 갔다 오신 아버지가 지게 위에 꽂고 온 한 묶음 참꽃을 마당에 놀고 있던 내 품에 불쑥 안겨주셨다. 그 추억으로 말미암아 평생 문학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수염 난 까칠까칠한 얼굴을 내 얼굴에 마구 부비며 하늘 높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주셨을 때 나는 양 겨드랑이에 날개가 곧 돋아날 듯 했다. 쟁기를 타고 흥얼거리며 아버지와 함께 밭 갈던 일, 포근한 누이 등에 업혀 늘 밀고 드나들던 사립문을 나와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 다니던 기억도 생생하다. 뒤란 감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샘물을 내려다보다가 그만 가지가 부러져 옹달샘에 곤두박질쳐 죽을 뻔 했던 사건도 겪었다.
월순 유순 승자 말례 점례. 다섯 누이들의 이름이다. ‘이겨서 아들 얻자, 이제 끝내자, 점찍자.’라는 뜻을 가진 누이들의 이름에서 아들을 얻고자 하는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을 엿볼 수 있다. 어머니는 첫아들을 병으로 잃고 내리 다섯 딸을 낳았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장날이면 약주에 취해 돌아와서 마을 뒷산에 올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고 한다. 군위군 고로면에 아들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노라고. 그런 와중에 내가 태어났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그렇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잦은 병치레 때문에 어머니의 애간장을 적지 않게 태웠다.
그는 소월과 목월만 알다가 미당 서정주의 경이로운 시 세계에 눈을 뜬 다음부터 신발이 닳도록 질마재 그 신화의 길을 넘나들면서 시를 닥치는 대로 외우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무렵 박용철의「시적 변용에 관하여」라는 글이 그 무슨 비밀 정경처럼 그의 안을 파고 들어와 색깔을 확연히 구분하게 되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바이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소월과 미당, 청마, 박인환, 김현승의 시편들을 통해 활화산을 체험한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를 가르쳤던 문학평론가 오양호는 도전의 불길을 당겨준 분이었다. ‘아, 평생 시를 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면서 릴케의 말처럼 어느 날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는 종종 놀라면서 문학이 곧 영혼 구원의 지름길이라고 오랫동안 굳게 믿는 계기가 된다.
훗날 목사가 된 이흥식과 화가 임학득은 고등학교 시절 한 반에서 공부하며 시를 썼는데, 이흥식은 사유의 깊이가 엿보이는 차원 높은 시를, 임학득은 서정성 농후한 아름다운 시를 종종 보여준 반면에 그는 자신이 쓴 시들이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고 미진하다는 열패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돌파구 같은 것을 찾기 위해서 힘쓴다. 3년 동안 줄기차게 일기와 시를 썼는데, 매우 퇴폐적인 그의 시편들은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영혼의 그림자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학교 교지에 처음으로 시 3편과 산문 1편을 지면에 발표하였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학업보다는 도서관에서『한국시문학전사』와 같은 시 관련 책들을 탐독하면서 시를 썼고 학내 서클인 로고스문학회에서 활동하며 합동 시화전과 상록축제에 참여하고, 학교 신문에 다수의 시를 투고하여 실었다. 또한 교내 현상문예 공모에 응모하여 시조와 시가 동시에 입상했다. 1979년 계간《시조문학》지 주간이었던 이태극의 주례로 이종희와 결혼을 하였다.
그는 기독교 신자다. 아래 글을 보자.
서른 갓 넘었을 무렵 내게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신앙이었다. ‘아, 이번에 놓치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혼자 그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어느 날 시가, 문학이 영혼을 구원하리라는 나의 확신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영적 사건이 내게 닥쳤다. 그것은 폭풍우와 우레 같은 힘으로 내 안에 쳐들어 왔다. 감히 거부할 수도, 거부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더 이상 다른 선택은 없었다. 흡사 들끓어 오르는 마그마와도 같은 것이 무한정 분출하여 나를 뒤덮어 버렸다. 나는 마침내 사로잡힌 영혼이었다.
1987년 첫 시조집『아침 반감』에서 보이기 시작한 신앙과 관련된 시조들이 근간에 들어 보다 빈번하게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문학보다 더 앞서는 것이 신앙이라는 고백 아래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현재의 삶 못지않은 영원한 세계를 향한 구도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영혼의 문제를 노래한다. 이러한 시각은 정신주의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점이다.
이정환은 시조를 쓰는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시조 연구로 학위를 받은 학자이기도 하다. 즉 두 가지 일을 겸비하고 있으면서 자신만의 시조 이론을 펼쳐 보이고 있다. 다음 글을 보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손에 의해 다시 창작되고 널리 읽히게 된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 학교 교육현장에서 시조 교육이 소홀함에도 불구하고 시조를 쓰는 이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점도 그렇다.
우리가 어떠한 글을 쓰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시조로 우리를 둘러싼 이 광막한 세계와 다 헤아릴 길 없는 내밀한 내면이나 영혼의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읽고 해석하는 일에는 진중함이 필요하다. 또한 갖가지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개인적인 대응방식으로서 시조는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즐겨 읽고 쓴다. 시조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전통 율격에 충실한 ‘중정의 생명시학’이라고 본다. ‘중정’은 치우치지 않고 올바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정형시인 시조를 창작한다는 것은 결국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삶을 구현하고자 하는 일이다. ‘생명시학’은 글을 통해 마음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생태적인 삶, 생명시적인 삶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말로나 힘으로나 서로를 죽이는 일이 허다한 험하고도 번잡한 세상살이에서 시조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곧 시조시인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무이기도 하다.
한 편의 시조가 상처를 치유하고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야 한다. 빛을 비추어야 한다. 소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절망의 벽을 무너뜨리는 사랑의 속삭임이어야 한다. 다시금 새 기운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 시조문단의 앞날은 부단한‘다른 목소리’의 등장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 시조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절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간에 눈에 띄게 활동하고 있는 역량 있는 시조시인들의 진작과 뒤이어 도약할 후진들의 발굴과 육성이 필요할 것이다.
문화적으로 넓게 바라보면 시조라는 문학의 한 갈래가 작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장강이 장강이던가. 작은 흐름이 큰 강물을 이루듯 훈향 높은 시조로 이 시대를 견인하고, 정신의 위의를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용한 이 글은 시조에 관한 일반적인 시각에서 평소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짚고 있다. 다음 글은 그가 시조의 형식 즉 고유의 정형미학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시조는 첫머리를 ‘3’으로 시작하여 끝마디 ‘3’으로 마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좋은 시조가 요구하는 자연스러움에 가장 근접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종장 자수율 ‘3/ 5/ 4/ 3’은 반전으로서 대단히 혁신적이다. 이러한 마무리는 최상의 품격을 담보한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에는 얼마든지 가감이 필요하겠지만, 위의 예처럼 별 다른 자각 없이 느슨하게 처리하게 된다면 시조의 고유의 맛과 멋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조의 율격에 대한 기초를 다지지 않으면 아니 되리라 본다. 종장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다면 굳이 시조를 써야 할 까닭이 없다.
또 한 가지는 근간에 다시금 대두된 단장시조와 양장시조 문제다. 기본적인 전제에 충실하자면 시조는 3장의 유기체계다. 그러므로 한 장이 없거나 두 장이 없는 것은 굳이 시조라고 부를 수 없고 다만 시조 가락을 가진 1행시, 2행시로 규정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태생 때부터 3장의 틀을 가진 시조가 한 장 또는 두 장을 상실한 상태의 시를 두고 시조라고 고집하는 일은 언어도단 즉 어불성설이다. 단시조의 확산이 연시조․사설시조로 나아갔다면 축소도 일종의 확산이라고 볼 때 양장시조나 절장시조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 데서 판가름 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특히 3장의 존립을 위협하는 단장시조·양장시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확장적인 면에서 사설시조의 가치를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3장 구성을 이루지 못하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1행시 혹은 2행시로 규정하고 있는데 원론적으로 볼 때 올바른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사설시조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사설시조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효용성을 지니는가? 이 절박한 물음에 대한 답은 예술적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하게 짚어 둘 것은 사설시조 양식이 일정 부분 필요하겠지만, 현대시조의 본류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창작자의 개인적 취향이나 판단에 따라 그 정도는 달라질 수는 있다.
사설시조가‘일정 부분만의 몫’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현대시조의 미학적 활로의 확장과 변용에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와 같은 소수의 움직임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며, 소수가 일구어낸 또 다른 개성의 세계가 정형미학의 의미를 일정 부분 담보한다면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단장시조·양장시조에 대한 생각과는 달리 사설시조가 일정 부분의 몫을 가지고 있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말은 그 한계를 동시에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설시조가 과연 오늘의 자유시와 어떤 변별점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쉬이 덜어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까지 저서로는 1981년《흐름사》에서 2인 시조집「덧니」를 출간한 이래 앞의 예에서 보듯 다수의 시조집과 연구서를 펴냈다.
1973년 대구교육대학교 재학 중에 로고스문학회에서 활동하며 상록문학상을 수상하였다. 3년 후 1976년 월간《샘터》와《여성동아》등에 여러 편의 시조를 발표하였고,「새벽 산길」로 <샘터시조상>에 입상하였으며,《샘터》를 통해 문우 박기섭, 오승철, 김우영, 최영철 시인 등을 만나게 되면서 전국적인 시 동인 모임인《시림》동인에 참여하였다. 지역에서는 조근일, 박진형, 최석환, 장하빈, 김경옥, 서정윤 등과《순수연대》동인으로 다년간 활동했다.
1977년 김장수 시인의 권유로 영남시조문학회에 입회하여 1984년까지 활동했다. 1977년 류제하 시인의 소개로《시조문학》겨울호 초회 추천을 받고, 1978년「불면가」로 겨울호에 추천을 완료했다. 그 뒤 1981년「냇가에 앉아서」로《중앙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한 이후 1984부터 1994년까지 노중석, 문무학, 민병도, 박기섭과 함께《오류》동인으로 활동하며 10권의 사화집과 1권의 선집을 펴냈다. 이 동인 활동은 창작활동에 동력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른 것으로 보이고, 다른 동인들도 각각 괄목할 만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볼 때《오류》의 이름으로 10년간 치열하게 전개한 동인 활동이 밑거름이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995년에는 윤금초·이우걸 엮음의 5인 시조선집『다섯 빛깔의 언어 풍경』에 참여하였고, 1996년 이후 다년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및 연말 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심사를 맡았다. 1997부터 2002년까지《열린시조》편집위원이 되어 시조 계간평론을 다수 게재했다. 1998년 이후 현재까지《시오리》회원으로 활동 중이고, 2000년 여름 의성군 가음면을 여행한 후부터 ‘佳音’이라는 아호를 쓰기 시작했다.
2001년 계간《다층》에 시조부문 계간평론 집필 및 우수작품상 선정에 참여하였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배흘림동인>을 지도하면서 제주 정드리문학회와 2회교류를 했다. 2003년 11월에는 대구어린이회관 꾀꼬리극장에서 ‘이정환 시조에 곡을 붙인 홍세영 작곡발표회’를 했다. 2004년에는 전자메일로 수신자 1,000여 명에게「아침시조」150회를 전송하고, 그 결과물로 시조해설집『@로 여는 이정환의 아침시조 100선』을 출간하였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격월간 종합문예지《정신과표현》기획위원으로 시조평문을 연재하였고, 대구교육대학교 부설《시와 반시》문예대학 시조 강사를 다년간 역임했다. 2005년 매일신문에『시조와 함께』를 3개월간 집중 연재했고, 2006년 이후 여러 해 동안《매일신문》신춘문예 시조부문 심사를 맡았으며, 2006년 무렵 월간 시전문지《현대시학》에 시조 월평을 다수 연재했다.
2008년 이후로 대구 남산고, 대구 영신고, 대구제일여자정보고등학교, 고령도서관, 경북 영천여고, 서울 지향초등학교 등에서 시 창작 특강을 했다. 2010년 4월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 이정환 대본 홍세영 작곡 창작 환경뮤지컬「해 바람 물 나무의 노래」공연을 하여 시와 음악의 접점과 융합에도 힘을 기울였다. 2012년부터 2년간《대구문학》에 <대구·경북의 시조를 말하다>를 연재했고, 2012년 이후 청도군 이호우․이영도 시조문학상 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3년《대구문화》에 대구 소재 시조 해설을 1년간 연재했다. 2013년 10월에는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시상식에서 ‘오누이 시조세계’에 대해 특강을 하는 등 창작과 병행한 문학 활동을 했다.
등단 초기에는 주로 자연과 삶이 서로 어우러진 서정 세계를 펼쳤고, 그 이후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성서에 바탕을 둔 신앙시편들을 적잖게 썼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도 다수 있고 현대인들의 내적 고뇌를 육화하는 일에도 힘썼다. 또한 우리 고유의 사물들이 주는 원융 이미지들을 단시조로 직조하여「원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시조집 한 권 분량의 연작시조들을 썼고, 이 작품들 중 5편으로 2002년 제21회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정환 시조시학의 주조를 이루는 것은 사랑 시편이라 할 수 있다. 대구문학상 수상시조집인『불의 흔적』에 실린「헌사」,「별사」,「자목련 산비탈」과 제17회 이호우시조문학상 수상작인「애월 바다」, 또 한 권의 단시조집인『비가, 디르사에게』와 가람시조문학상 수상작인「주상절리」등은 모두 사랑의 영원성을 심도 있게 노래했기 때문이다.
2000년에는 동시조집『어쩌면 저기 저 나무에만 둥지를 틀었을까』를 펴내어「친구야, 눈빛만 봐도」와「혀 밑에 도끼」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된 것도 특기할 일이다. 2015년에 펴낸 단시조선집『에워쌌으니』는 시조의 본령에 충실한 시편들로 개성적인 양상을 읽을 수 있다. 고향인 군위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는「인각사」,「학암리 유년송」,「학암리 사계」,「겨울 아지랑이」,「회향」등 다수가 있다. 또한 고향 사랑이 남다른 것을 익히 알 수 있는 일로 영남일보와 매일신문 지면에 고향을 소개한 일이다.
한편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지역민들에게 전시회와 음악회 등으로 시조를 널리 알렸고,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현재‘오늘의시조시인회의’의장을 맡아 시조문학 저변 확대와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후학들에게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시조시인을 양성하고 있다.
Ⅱ. 작품 세계
시간의 사다리를 밟고 지향점을 찾아 한 칸씩 내면을 보여주며 올라가는 시인의 세계는 독자의 기대에 대한 보답일 수도 있다. 이정환의 작품은 출간되어 나올 때마다 문단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는다. 사랑의 고뇌와 격정이 끓어 넘칠 때가 있는가 하면, 자연과 주변의 대상물들에 대해 한없이 섬세한 마음을 열기도 하고, 때로는 전통을 끌어들여 한국적 미를 승화시키기도 하며, 인간 본연의 순수함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도 한다. 또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대에 동참하여 적극적인 비판 의식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남다른 개성적인 특징들 때문일 것이다.
먼저 이정환 시조의 형식 및 표현 및 내용 특징을 살펴볼 것이다. 형식 및 표현 특징에서는 외형적인 모습인 형식적 특징을 분류할 것이고, 표현 특징에서는 시조의 소재를 조사하여 그의 시적 표현에 대한 시각과 표현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내용 특징에서는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내용적 특징을 통찰해 볼 것이다. 이를 통해서 그가 전통 문학인 시조 갈래를 어떤 모습으로 현대적으로 해석·적용하여 계승 ․ 발전 ․ 변화시켜나가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1. 형식 및 표현
여기에서는‘형식 및 표현’에 대해 살펴본다. 시조는 정형시이므로 일정한 형식이 있다. 그것은 구속으로도 보이지만 그 틀 안에서 또 다른 자유를 누릴 수 있으므로 갇혀 있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형식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일은 어디까지나 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표현에서는 주로 어떤 대상들을 텍스트로 하여 노래하고 있는가를 살필 것이다.
가. 형식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시가‘시조’라는 명칭으로 일반화되어 통용된 것은 1920년대에 일어난 시조 부흥운동 이후의 일이다.따라서 현재 우리가 장르 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조라는 명칭은 현대에 와서 설정한 일종의 약속 의미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명칭이 되어 버렸다.
시조의 형식은 4음보가 세 번 되풀이되어 3장을 이루는, 4음보격 3장으로 구성된 정형시이다. 음보는 음의 걸음걸이로서 우리가 한 걸음을 걸을 때의 호흡에 해당하는 율격을 말한다. 시조의 한 장은 4음보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음보는 3음절 또는 4음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 4음보는 다시 2음보의 중첩으로서 볼 때, 두 개의 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따라서 음절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시라고도 할 수 있다.
시조의 3장을 초장·중장·종장으로 이루어지는데 한 장은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시조의 장과 작품의 행은 반드시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시조는 형태상 평시조, 연시조, 사설시조로 나누어진다. 시조는 초장·중장·종장 각 하나로 이루어진 기본형식을 한 수라고 하는데, 평시조는 4음보격 3장의 기본형식으로 이루어진 단형시조를 말한다. 연시조는 2수 이상의 평시조가 작품 한 편을 이룬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사설시조는 초장·중장·종장 가운데 2장 이상이 평시조의 4음보에 비해 음보수가 늘어나 길어진 장형시조를 말하는데, 중장이 현저하게 길어진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시조의 초장·중장은 종장의 종결을 향한 병렬의 구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 무언가가 이어질 것을 예상케 하는 율격적 개방성을 띠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종장은 초장과 중장의 병렬된 시상을 접속·종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히 종장에서는 작품의 율격적 질서가 첫 음보에서의 긴장과 둘째음보 이하에서의 이완이라는 긴장과 이완의 변화를 추구하여 시상 및 정서를 전환·고양하면서 주제를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이러한 종장의 완결성을 두고 시조는 종장이 핵이라고 말한다.이를 두고 이정환은 ‘창의적 의미 공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현대시조는 고전 시조의 정형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대적 상황에 맞는 다양한 시조의 형태가 여러 시조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또 짜임의 제약이 없고 자유로우며 시행에서 띄어쓰기와 배율이 자유롭다.
1) 단시조와 연시조 및 사설시조
이정환은 등단 이후 10권의 시조집과 2권의 시조선집, 2권의 동시조집을 펴냈는데 그중에서 2권의 시조선집과 동시조집을 제외한 10권의 작품에 실린 작품 수는 735편이다. 이를 단시조, 연시조, 사설시조로 구분하여 분석하여 보았다.
<표-1> 단시조와 연시조 및 사설시조 작품의 수
시조집 구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계 |
단시조 | 30 | 32 | 26 | 10 | 11 | 82 | 10 | 76 | 48 | 17 | 342 |
연시조 | 43 | 40 | 28 | 52 | 50 | 0 | 42 | 0 | 33 | 53 | 341 |
사설시조 | 3 | 6 | 22 | 8 | 0 | 0 | 10 | 0 | 1 | 2 | 52 |
계 | 76 | 78 | 76 | 70 | 61 | 82 | 62 | 76 | 82 | 72 | 735 |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는 제3집에 실린 1행시로 제외함.
그가 창작한 735편의 작품을 형식적인 면에서 분류한 결과 단시조는 342편으로 46.5%, 연시조는 341편으로 46.4%, 사설시조는 52편으로 7.1%를 차지하였다. 현대에 들어 작가들의 경향은 단시조 보다는 연시조를 창작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그의 작품은 단시조와 연시조가 차지하고 있는 작품 수가 거의 비슷하였다. 단시조 작품이 다른 작가에 비하여 많은 이유로는 제6시조집『원에 관하여』에 실린 작품 82편과, 제8시조집『비가, 디르사에게』에 실린 작품 76편이 모두 단시조 작품이어서 전체 작품 수에 영향을 주었다.
2)율격의 특징
그는 등단 40여 년에 이른 시인으로서 그동안 왕성한 활동을 한 결과 수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가 발표하는 작품들 중 상당수가 음보 내 음절수가 자유롭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음보 내 음절수가 과감하게 적거나 많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 시조의 형식을 와해시키거나 작품성이 결여되어 비판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 연구를 계기로 1978년부터 2016년까지 그의 단시조 작품 342편을 대상으로 음보 내 자수율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였다.
<표-2> 제1시조집~제10시조집의 음보 내 자수율
장 | 초장 | 중장 | 종장 | |||||||||
구 | 내구 | 외구 | 내구 | 외구 | 내구 | 외구 | ||||||
음보 자수 | 1 | 2 | 3 | 4 | 1 | 2 | 3 | 4 | 1 | 2 | 3 | 4 |
1 | 1 | 0 | 2 | 0 | 0 | 0 | 3 | 0 | 0 | 0 | 0 | 0 |
2 | 87 | 28 | 49 | 11 | 75 | 24 | 43 | 24 | 0 | 0 | 43 | 16 |
3 | 123 | 88 | 127 | 78 | 134 | 91 | (107) | 71 | 342 | 0 | 74 | (106) |
4 | 94 | 142 | 106 | 137 | 93 | 139 | 134 | 131 | 0 | 0 | 145 | 118 |
5 | 31 | 71 | 50 | 93 | 33 | 70 | 49 | 87 | 0 | 216 | 61 | 73 |
6 | 5 | 13 | 8 | 20 | 5 | 17 | 5 | 20 | 0 | 91 | 17 | 21 |
7 | 1 | 0 | 0 | 3 | 2 | 0 | 1 | 7 | 0 | 20 | 2 | 6 |
8 | 0 | 0 | 0 | 0 | 0 | 1 | 0 | 2 | 0 | 9 | 0 | 1 |
9 | 0 | 0 | 0 | 0 | 0 | 0 | 0 | 0 | 0 | 5 | 0 | 1 |
1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 |
계 | 342 | 342 | 342 | 342 | 342 | 342 | 342 | 342 | 342 | 342 | 342 | 342 |
※ 단시조 342편을 대상으로 하였고, ( )안은 두 번째 높은 빈도의 음보 내 자수율임.
그의 작품은 음보 내 음절수가 자유로워 보였으나, 342편의 작품을 분석하고 결과 다음과 같이 시조의 정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표-3> 제1시조집-제10시조집의 음보 내 자수율 최빈치
구분 | 첫째 음보 | 둘째 음보 | 셋째 음보 | 넷째 음보 |
초장 | 3 | 4 | 3 | 4 |
중장 | 3 | 4 | 4(3) | 4 |
종장 | 3 | 5 | 4 | 4(3) |
음보 내 자수율을 분석한 결과 그의 작품은 초장 3/ 4/ 3/ 4, 중장 3/ 4/ 4(3)/ 4, 종장 3/ 5/ 4/ 4(3)으로 전형적인 3·4조 음절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중장과 종장의 ( )의 수는 두 번째로 많이 나타나는 음절의 수이다.
다음 작품의 예를 보면 초장을 4/ 3/자 1구와 3/ 4자 2구를 구별 배행하고, 중장은 2/ 4/자 3구와 4/ 3자 4구를 구별 배행하였으며 종장은 3행으로 3/자 5/자 3/ 4자로 배열하였지만 전형적인 3·4조 음절로 된 작품의 예이다.
내 사랑은 늦가을
서늘한 저 산그늘
갈잎 지는 소리
가슴으로 들으며
물속에 발목을 묻은
한 쌍의 재두루미
-「내 사랑은」전문
다음 작품은 전형적인 3·4조에서 다소 벗어난 작품의 예다.
꽃상여 뒤쫓던 날
바람이 몹시 찼습니다
꽃송이들이 흔들릴 때 하늘이 더욱 파랬습니다
배밭에 혼자 비켜서서
못물빛 울음을 들었습니다
-「배밭에서」전문
위의 작품은 초장과 중장이 연달아 있다. 초장 3/ 4/ 3/ 6자와 중장 5/ 4/ 3/ 7자로 되어 있고, 종장이 3/ 6/ 6/ 5자로 3․4조 음절을 다소 벗어난 작품의 예다. 하지만 현대의 시조 작품은 음절수보다는 음보가 작품에 기여도가 더 큰 것임을 감안할 때 비판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유성호는‘현대시조는 시조 고유의 양식적 고유성을 탄탄하게 지켜가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현대적 주제와 방법을 적극적으로 확충해 가고 있다. 현대시조의 주류는 정형 양식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지켜가는 노력에 의해 구축된다고 볼 수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단시조는 가장 함축적이고 심미적인 단형 서정을 일관되게 구현함으로써 이러한 시조의 정예적 속성을 지켜온 첨예한 사례에 속한다. 그 안에는 단아하고도 조요로운 정형 미학의 한 극점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단형시조의 미학에 대해 말하면서 시조의 본령의 특장과 그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정환의 342편 단시조는 시조 자수율면에서 전형적인 속성을 지키고 있지만 음보의 음절수를 활달하게 운용하여 현대시조의 정형 율격을 미학적 측면에서 새롭게 창출하고자 노력하였다.
3) 율격의 양태
시조는 3장 6구 12음보라는 정형 율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두고 흔히 한 수라고 하고 곧 단시조라 부른다. 각 구는 구절로서 한 의미 단위를 형성한다. 전구 뒷마디가 후구 앞마디와 의미 단위로 묶이게 되면 구 고유의 구실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정론이다. 글자 한 자가 한 마디 구실을 하지 못한다. 각 구는 앞마디가 짧고 뒷마디가 긴 것이 호흡상 자연스럽다. 그리고 각 마디는 1, 2자의 가감이 가능하다. 그러나 종장 첫째 마디 3자와 둘째 마디 5이상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종장 둘째 마디는 5이상 7이하가 정격이나 9까지도 가능하다. 요체는 자연스러움에 있다.
시조의 정형 미학은 음보율과 음수율을 동시에 적용한다. 그 범위가 더 넓은 것이 음보율이다. 예를 들면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에서 전구를 음수율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음의 걸음걸이로 읽어야 한다.
종장 첫 구에 적용되는 특별한 율격이 있다. 즉 율독 단위와 의미 단위다. 예를 들면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는 율독으로,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는 의미 단위로 읽었을 때의 음수율이다. 후자로 볼 때 자수율로는 맞지 않지만 넓게 보아 즉 음보율로 보아 시조가 된다.
단시조의 전개 유형은 바둑의 수처럼 무궁무진하다. 연시조는 의미망 형성 혹은 수와 수 사이의 내적·유기적 결집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작품에 따라 길게 쓸 수도 있겠지만, 가장 바람직한 연시조의 길이는 두 수 내지 세 수다. 길면 대체로 군더더기가 붙기 마련이다. 사설시조는 자유시와의 경계가 불분명한 점이 문제로 제기되지만 엄연히 현대시조의 한 축으로 창작되고 있다.
이제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시조의 의미 구조를 살피도록 하겠다. 한 시인의 시조 세계에서 의미 구조를 고찰하는 일은 미적 성취를 조명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어떠한 어법으로 작품을 형상화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규명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점이다.
그는 정형율격에서 볼 때 매우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일 때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정환의 시조는 정형의 기율 안에서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다채롭게 구현하고 있다. 순조로운 시상 전개에 틀이 걸림돌이 되지 않고 다양한 변주와 변용으로 시적 울림을 배가시키는 여러 가지 실험을 적절하게 시도한다.
⑴
에워쌌으니 아아 그대 나를 에워쌌으니 향기로워라 온 세상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온 누리 향기로워라 나 그대 에워쌌으니
-「에워쌌으니」전문
연행갈이 없이 한 줄로 이어진 단시조「에워쌌으니」에 대해 여러 평자의 논의가 있지만 다음의 장경렬의 논조는 주목할 만하다.
위의 시 자체가 솔로몬의 아가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답고 몽환적이지 않은가. ‘내’가 ‘그대’를 에워싸고 ‘그대’가 ‘나’를 에워쌌으니, ‘나’와 ‘그대’는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 아닌가. 이 오묘한 경지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인간 이정환이 추구하고 체험하고자 하는 바일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인간 이정환이 추구하고자 하는 환희의 순간이리라. 진실로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경지’는 인간이 인간에 대해, 세계와 자연에 대해, 우주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 그리고 시인이라면 시에 대해 추구하는 그 무엇이다. 요컨대, 이정환 시인에게 이는 그가 체험하고자 하는 최고의 종교적, 시적 경지다. 최소한의 행 나누기조차 거부한 채 한 달음에 끝을 향해 물 흐르듯 유장하게 이어지는 이 시의 시어에서 우리는 신 또는 사랑하는 여인 ‘디르사’로 의인화된 시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시인의 염원이 마침내 이루어졌을 때 그가 느낄 법도 한 매혹과 황홀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달음에 끝을 향해 치닫는 「에워쌌으니」와 같은 시는 결코 릴케가 경고한 “갑작스런 노래”가 아니다. 비록 ‘갑작스런 노래’처럼 보이도록 함으로써 시인이 느낄 법한 황홀과 매혹을 강렬하게 전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더할 수 없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계산된 시인의 자기표현이다. 하지만 「에워쌌으니」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신의 숨결”로서 “노래”의 경지에 이른 시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노래는 다만 신에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고, 인간은 다만 이를 꿈꿀 수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기사방식은 현대시조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장경렬이 지적한 것처럼 시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거둔 문학적 성취는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말을 아껴야 할 단시조에서 지나치게 잦은 시어의 되풀이는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럼에도「에워쌌으니」는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적 질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장경렬이 결코 “갑작스런 노래”가 아니라 ‘더할 수 없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계산된 시인의 자기표현’이라고 본 것은 적확한 의미 해석이라고 본다.
또한 유성호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단시조의 음악성은 동일 어휘의 반복과 교차의 수사학에서 발원한다. ‘에워쌌으니’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그 주체와 대상을 나와 그대로 번갈아가면서 중첩시킨 것이 그리움의 밀도를 강화한다. 온 세상이 향기로워지는 그 그리움의 에너지 역시 반복과 교차의 음악성에 의해 감염되고 확산된다. 간결한 단시조이지만 율독의 배려가 시편의 주제와 어떻게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러면서 정형 양식이 거친 파격보다는 정격과 변격을 충실하게 결속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음악성에서 그 위의를 확보하게 되므로 섬세한 율격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자유로운 감각과 사유를 보여주는 것이 온당하다고 보고 있다. 시조 고유의 기율 안에서의 다채롭고 다양한 창의적인 변화에 대한 주문으로 보인다. 창작 방향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원칙론이다.
「에워쌌으니」는「에워쌌으니」만이 가진 표기로 말미암아 개성적인 성취가 가능했던 것이다.
⑵
녹슨
철문 한 짝
비스듬히
닫힌 빈 집
죽어 묻힐
자리를 찾아
비틀거리는
방아깨비
아궁이
그 불탄 자리 곁
홀로 드러눕는다
-「부재」전문
「부재」는 단시조의 형태를 3연으로 가르고 초장과 중장은 4행 연첩으로, 종장은 3행으로 표기하고 있다. 초·중장은 각각 체언으로 끝맺고 종장은 서술형이다. 빈 집의 방아깨비 한 마리를 통해 사람살이의 아픔을 극명하게 떠올리게 한다.
⑶
내 안에 나는 없고 꽃들로 가득했다
못물로 출렁였다 노을로 타올랐다
맨발로 달려오고 있는 그림자가 붉었다
내 목에 어느 날 별빛타래 걸렸다
자주구름 걸렸다 새가 사뭇 우짖었다
무한정 문이 열렸다 바람 들이닥쳤다
-「주상절리」전문
「주상절리」는 연작 중의 한 편이다. 이 작품은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미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두 수에 걸쳐 과거형이 아홉 차례 놓인 점이다. 둘째, 첫 수는 4개의 문장, 둘째 수는 5개의 단문으로 분절된 점이다. 이것은 시조의 특성상 존재하기 힘든 시형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장애 요소를 과감하게 탈피하여 새로운 미학적 구조를 관철시켰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가람시조문학상 선정 심사평에서 ‘「주상절리」는 가람 선생의 시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고 미학을 갖춘 것은 물론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라고 본 것은 적절한 해석이라고 여겨진다. 아래 인용을 보자.
이정환 시인의 작품은, 중진 시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느끼게 해준 가편이었다. 여러 편이 선고에 올라와 그 균질성과 지속성을 함께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수상작에 나오는 ‘주상절리’란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은 것 혹은 용암의 냉각과 응고에 따라 부피가 수축하며 생겨난 기둥 모양의 금을 말하는데, 벼랑 이미지를 통해 가파른 인간 실존을 은유하면서 시인의 정신적 고처 지향을 가감 없이 보여준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내면에 들어찬 꽃들, 못물, 노을, 별빛타래, 자주구름, 새 울음소리 등은 아득한 실존의 극한에서 만난 신성의 은유이기도 하고, 주상절리를 실존적 구원의 공간으로 만든 시적 내질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그곳에서 “내 안에 나는 없고”라는 유한자로서의 절절한 고백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조시단에 빈곤한 형이상학적 고투에 매진하고 있는 이정환 시인의 미래를 믿음과 기대로 지켜봄 직하게 하는 절편이다.
이 세계의 만유는 연기에 의해 진화적 요인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의 자리에서 존재한다. 만유는 ‘내 안에 나’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꽃들로 가득’하고 ‘못물로 출렁’이며 ‘노을로 타’오르는 ‘붉은 그림자’일 뿐이다. ‘주상절리’는 ‘무한정 문이 열’리면서 메타적 이념에 뿌리를 내려 스스로 존재하는 섭리에 의해 자연 속 자연을 형성한다. ‘주상절리’의 메타적 이념은 ‘별빛타래’이거나 ‘자주구름’이 걸린 형국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곳은 ‘새가 사뭇 우짖’는 국면을 통해 ‘무한정 문이 열’리면서 새가 날아가는 풍경이기도 하다. ‘새’는 날개를 가지면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허공에 ‘바람’이 빈틈없이 존재함으로써 진화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이 열리면서 들이닥친’바람은 ‘주상절리’를 자연적 이념과 관계성을 갖게 함으로써 둘이 아닌 세계와 호흡을 나눈다. 어떤 서정적 대상에서 다가선 화자의 회감은 ‘내 안에 나는 없’는 자리에서 소용돌이로 서정적 생명력을 복원하는 국면에서 존재한다. 삼라만상의 섭리 그 자체는 허공 속을 춤추듯 날아가는 한 마리 나비와 다름없다. 회감이야말로 시공간의 회귀와 영혼이거나 정신 작용일 뿐이다. 회감은 ‘나’를 중심으로 지나간 시공간이며 다가올 미래를 흡인하는 그 어떤 무엇의 흐름작용의 산물인 ‘주상절리’의 풍경이다.
이정환은 우주 ․ 사물 ․ 나를 하나로 인식한다. 그에게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온다. 불현듯 ‘내 안에 나’가 없는 텅 빈 공간에 ‘꽃’들로 가득하다. 나와 꽃을 동일시한다. ‘내 안에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힘의 근원이 되신 분 앞에, 한 영혼을 위해 모든 송두리째 내어주신 분 앞에 무릎 꿇는다.
시는 우주의 무의식을 언어의 몸 밖으로 드러낸다. 시는 몸이 없는 것들과 놀 때 비로소 꽃 핀다. 이정환의「주상절리·10」에서도 확인하듯, 그가 보는 시는 시시각각 휘황찬란하다. 명시는 천기누설이다.
「주상절리」라는 자연현상에서 실존 의지와 정신적 고처 지향의 상징을 육화한 것으로 보고 나아가 신성의 은유로 구원의 공간을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형이상학적 고투를 위해 매진하고 있는 점을 부연하고 있는데 적절한 해석이라고 본다.
그리고 앞서 살폈듯이 ‘주상’에서 ‘절리’를 시조의 형태상에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2수에서 보인 바 있는 9개의 다른 문장들이 그것이다. 이 점은‘주상절리’의 형용과 잘 맞아떨어짐으로써「주상절리」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오버랩 시키고 있다.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 제시’라는 말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점이다.
⑷
뒤란 우물 곁
감나무 가지 끝
남은 감 한 알이
버티고 있는 저녁
버티고 버티는 일의
그 끝을 보는 저녁
-「어떤 저녁」전문
「어떤 저녁」을 두고 홍성란은 ‘이정환 시학을 대표하는 시어 운용의 미학이「어떤 저녁」에서 까치밥 이미지의 버티는 힘으로 빛나고 있다.’라고 보고 있다. 보는 바와 같이 6행 가운데 무려 4행이나 체언으로 끝맺고 있는데 이러한 각운 처리는 이정환의 시조에서 빈번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그의 창작 양식을 짐작하게 된다. 이러한 각운 처리는 자칫 시조를 딱딱하게 만들어 가락의 시인 시조의 제 맛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는데, 눈으로 읽어 보아도, 소리 내어 읽어도 그러한 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 까닭은 유기적인 체계 즉 시적 내화 장치라고 생각한다.
⑸
아아, 꽃 핀 자리
그 속은 다만 허공
내 뼛가루가 떠올라
저리 투명한 허공
다 비운 몸이 떠도는
떠돌아 어둠에 닿는
-「산밑에 와서」첫 수
「산밑에 와서」는 초장에서 하나의 단정을 하고 거기에 대한 부연 이미지를 제시한다. 독특한 비유와 처절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의식의 발로가 자연스럽다. 특히 미완성의 문장인 종장으로 말미암아 긴 여운을 느끼게 한다.
4) 종결 어미의 특이 양상
특이한 종결 어미로 첫 번째 살필 것은「월정사 사마귀」와「결별」,「비가, 디르사에게·56」이다. 세 편은 모두 여섯 개의 장 혹은 3개의 장이 미완성 문장의 각운으로 이루어져 있다.
⑴
강아지풀 같은 옷을 입었지만 너는
몹시도 도발적인 형상을 지녔다, 너는
무쇠를 끊어먹을 듯한 톱니를 지녔다, 너는
앞다리를 접고 앉은 모습이지만 너는
파닥거리다가 불시에 날아올라 너는
눈 속을 파고들지 모른다, 배암 같은 너는
-「월정사 사마귀」전문
⑵
먼발치서 손 흔들며 먼저 가겠다던
더는 머물 까닭 이젠 없노라 하던
한사코 그렇게 떠난 한 떼의 바람이었던
강물 한 자락 끌던 구름밭 구름결이었던
거울 속 홍두깨 같은 낯선 얼굴이었던
그 봄에 내리퍼붓던 송이송이 봄눈이었던
-「결별」전문
⑶
난해하고 난해하고
난해하고 난해하고
내 앞에 빛이 서 있는 것
난해하고 난해하고
얽히고 뒤얽힌 매듭 앞에
난해하고 난해하고
-「비가, 디르사에게·56」전문
⑴은 ‘너는’이 6번 반복되면서 ‘너’라는 주체가 강조되고 있다. 즉 자아가 아닌 타자다. ‘사마귀’를 바라보면서 대상인 사마귀에게 연이어 ‘너는’이라고 거론하고 있다. ⑵는 ‘던’의 되풀이다. 이러한 종결로 어떤 시적 효과를 얻고자 한다. ⑶은 ⑴과 ⑵와는 좀 다르다. ‘난해하고’가 8번 쓰이면서 사랑의 난해함, 존재의 난해함을 되풀이를 통해 강하게 부각시킨다.
이와 같은 형식상의 실험 혹은 시도가 얼마나 시적 밀도를 높이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새로운 시적 탐색으로 읽힌다.
두 번째로 완성형 각운 활용 방식이다.「친구야, 눈빛만 봐도」와 「벽」등이 있다.
⑴
봄이면 꽃피는 소리 두 귀는 듣는단다
겨울날 눈 내리는 소리 두 귀는 듣는단다
친구야, 눈빛만 봐도
네 마음의 소리 들린단다
-「친구야, 눈빛만 봐도」전문
⑵
이룰 수 없는 만남이
이루어 놓은 고요
돌로도, 무지개로도
어쩌지 못할 고요
수천만 새 떼들 부딪쳐
피 흘리며 세운 고요
-「벽」전문
⑴은 서술형‘다’로 끝맺고 있고, ⑵는‘고요’라는 체언으로 되어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3장이 ‘다’로 끝나는 경우도 전통적인 전개 유형에서는 벗어난 작은 실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3장 모두 체언으로 끝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구조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서 살핀 바 있어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
이상 종결 어미의 양상을 살펴보았는데, 시인이 어떠한 태도로 시조의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는 지를 알아보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5) 의미 구조
가) 동의적 전개 유형
동의적 전개 유형은 각 장에서 의미의 전개 양상이 대립하거나 특별한 전환 없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형태를 가진다. 귀납 방식 전개 유형이다.
⑴ A→B→C형(A→B→C는 초장, 중장, 종장을 말함)
너는
절정이어서
절정의 표상이어서
더는 내려앉지도 솟구치지도 않고
파도를
토닥이면서
노을 속을 거닌다
-「섬」첫 수
섬이라는 바다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고정된 자연물을 노래하면서‘절정’이자 ‘절정의 표상’으로 보고 이제는‘더는 내려앉지도 솟구치지도 않고’, ‘파도를/ 토닥이면서/ 노을 속을 거’니는 역동적인 존재로 표현한다. 이러한 시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위와 같은 전개방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유형은 그의 시조 작품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⑵ A〓B〓C형
이룰 수 없는 만남이
이루어 놓은 고요
돌로도, 무지개로도
어쩌지 못할 고요
수천만 새 떼들 부딪쳐
피 흘리며 세운 고요
-「벽」전문
「벽」은 3장이 모두 동등한 비중으로 대비를 이루면서 각 장 같은 각운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아주 특이한 기사법이다. 그러나 장마다 단절될 듯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자력을 가진 듯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돌’과 ‘무지개’에서 보듯 비동일성의 시학을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주제 구현을 이루고 있다. 단절에 대한 회복 의지 나아가서는 남북 분단의 아픔과 같은 정서를 육화한 것으로 읽힌다.
⑶ (A→B)→C형
꺾이고 꺾이어서 마디마디 다 꺾이어서
꺾이고 꺾이어서 마침내 사랑을 이룬
저문 날
모든 뼈대는
물소리를 내고 있다
-「헌사」둘째 수
「헌사」는 초장과 중장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다가 종장에서 마무리 되고 있다. 이 마무리도 비유로 끝맺고 있기 때문에 독자의 눈길을 오래 붙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미하는 바를 한참 생각하게 한다.
나) 반의적 전개 유형
⑴ (A〓B)↔C형
극단을
벼리기 위해
남단에 이른 너는
직벽 아래 넘실거리는 파랑을 보고 있다
끝은 곧
비롯됨인 것
극단을 쳐낸 칼날인 것
-「마라도」전문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이다. 그러한 까닭에 끝의 이미지를 붙잡고, 그 끝이 의미하는 바를 궁구하고 있다. 초장과 중장은 대등하게, 종장은 반전을 꾀하면서 새로운 의미 공간을 창출한다.
⑵ (A←B)↔C형
비로소 내 몸은
꽃가지 휘인 빈집
동북 편 하늘
그 어디쯤에 놓인 빈 집
저물어
붙잡혀 있네
영혼이 떠난 빈집
-「산밑에 와서」둘째 수
「산밑에 와서」는 어떤 정황을 두고 중장이 초장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한다. 종장은 뜻밖으로 ‘붙잡힘’이라는 상황과 ‘영혼 부재의 집’이라는 단정으로 의외의 시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다) 종합적 전개 유형
⑴ A←(B→C)형
갇히면 함께 갇히고
풀리면 함께 풀리는
그런 침묵의 한때
그런 만남의 한때
갇히고 풀리는 사이로
들이치는
저 진눈깨비
-「함께 갇히고 풀리는」전문
「함께 갇히고 풀리는」은 종합적 전개 유형으로 특이한 형태를 보인다. 중장의 의미가 종장으로 이월되면서 다시 초장으로 받아넘기는 구조다.
⑵ (A〓B)→C형
천지에
환한 봄일 적에
나
죽으리
천년을 읊은
그 봄날
나 죽으리
그 날에
나 죽은 그날에
영영
말 잃을 그대
-「별사」둘째 수
「별사」는 초장과 중장이 모두 ‘죽으리’로 끝맺으면서 동등한 의미를 가지다가 종장에서‘침묵’ 즉 ‘영영 말 잃을 그대’를 제시한다. 이것 역시 하나의 반전이다.
⑶ (A↔B)→C형
어어, 엄마!
길이 하나도 안 보여요
그래, 길도 밤엔
어둠에 안겨 잠잔단다
해님이
내려올 때까지
곤한 잠을 잔단다
-「길도 잠잔단다」전문
「길도 잠잔단다」는 동시조로서 각별한 묘미를 보인다. 아이의 말에 엄마가 대답하는 형식의 초장과 중장의 대구 끝에‘해님이/ 내려올 때까지/ 곤한 잠을 잔단다’라는 결구를 통해 짤막한 대화를 마무리한다.
나. 표현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는 체험이다.’라고 시를 정의한 바 있다. 상상력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체험이고, 체험 중에서도 직접적인 체험이 소재의 주된 원천이 된다. 그가 즐겨 다루는 소재들은 그가 창작을 할 때마다 가장 우선적인 주안점을 두는 새로움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자연을 소재로 하거나 일반 대상물을 다룰 때도 그러하고,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추상적인 세계를 육화할 때도 같은 시각을 견지한다. 즉 새로움과의 끝없는 쟁투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이정환 시조의 소재를 몇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봄으로써 그의 작품이 보이는 표현 특징을 정리하고자 한다.
1) 자연물 혹은 자연 현상
이정환의 시조에서 자연을 소재로 하는 시조에 쓰인 시어를 추출하여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봄, 겨울날, 가을, 상강, 눈발, 입동, 늦가을, 봄풀, 사월, 설일, 5월, 인동, 봄날, 눈, 싸락눈, 봄비, 눈발, 포프라, 가죽나무, 봄 들판, 꽃, 꽃잎, 미륭나무, 꽃가지, 자목련, 코스모스, 성, 벤자민, 단풍숲, 나뭇잎, 탱자, 고목, 잎사귀, 뿌리, 억새꽃, 배롱나무, 철쭉밭, 소나무, 감나무, 황국, 장미, 달맞이, 솔숲, 버들치, 비단잉어, 금빛잉어, 눈물꽃나비, 풀벌레, 참새, 새, 하이에나, 짐승, 염소, 피라미, 암탉, 비둘기, 방아깨비, 만어, 후박나무, 호랑가시나무, 구월, 봄밤, 시월, 십일월, 십이월, 꽃씨, 알로카시아, 여름, 만추, 후박나무, 백일홍, 벚꽃, 자두, 잎사귀, 갈대, 폭염, 낙과, 결빙, 유도화, 미선나무, 살구나무, 조팝꽃, 청둥오리, 사마귀, 물소리, 비, 어둠, 그늘, 불꽃, 아지랑이, 바람, 눈, 소용돌이, 뭉게구름, 무지개, 천둥, 오로라, 극광, 개울물, 불길, 구름, 새털구름, 산불, 노도, 안개, 햇빛, 볕살, 또아리, 이슬, 밤, 회오리바람, 파도, 돌개바람, 불꽃, 햇살, 썰물, 그림자, 물무늬, 노을, 갈맷빛, 광망, 소리, 흙빛, 섬광, 연두빛, 산빛, 녹음, 빛, 금빛, 녹물, 향기, 골바람, 대낮, 실루엣, 물살, 날빛, 초록빛, 밤, 황금빛, 산, 허공, 벼랑, 못물, 비탈길, 바이칼호, 심연, 천애, 경주, 산등성, 길, 천지, 청량산, 묵정밭, 바다, 봉우리, 늪물, 뼈, 기암괴석, 중천, 애월 바다, 폭포, 유등연지, 지심도, 보츠와나. |
위의 소재를 살펴보면 시인의 눈이 미립자로부터 시작하여 거대한 우주의 범위까지 포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계절 안에서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계절의 소단위들을 세분화하고, 생물적 환경의 소재들은 잔약한 것에서부터 강인하고 우월적 힘을 상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존재감을 부여하여 따뜻하게 자기 안으로 불러들였다. 비생물적 환경의 소재들은 근원적인 어둠으로부터 극광의 빛에 이르기까지 잘 짜진 빛의 스펙트럼을 반영하였고, 바람, 구름, 이슬, 색채, 물소리 등이 자연 현상의 질서에 조응하며 다채롭게 분포되어 있다. 그가 노래하는 지명은 미세한 틈의 절개지를 스며들어와 신대륙을 점령한 개척자가 전해주는 경이로움을 갖게 하고,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광물적 소재와 한없이 자유롭고 광활한 공간, 금기의 장소, 협곡 등을 자투리 없이 젖어 들어와 출렁이게 하고야마는 불굴의 투지마저 느껴지게 한다. 또한 일상의 소재들은 익숙한 눈높이에서 눈에 익은 것들보다는 시야의 저변이나 이면에 있는 것들이 다소 등장한다.
또한 그가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을 시의 소재로 삼아 형상화한 결과물인 시조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사람살이의 다채로운 모습들이 노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그러한 시적 대상들은 단순한 정경 묘사로서의 소도구들로 끝나지 않고, 사랑이나 인생의 의미로 전이·심화된 이미지로 직조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새로운 미적 의미 체계는 언어 예술적 아름다움과 함께 인생의 존재 가치를 고양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다.
⑴
코스모스가 남아 있던 자리에
눈이
내린다
녹슨 못을 무수히 거꾸로 박아놓은 길
맨발로
그 못 디뎌 밟는 소리
산을
돌아 나간다
-「십이월」전문
⑵
놀 지는 서녘으로 무한정 펼쳐져
지친 눈동자를 쓰다듬는 황금빛
새 떼들
아랫배 가득
중천으로
밀어 올리는
-「황금빛은 새 떼들의 아랫배를 중천으로 밀어 올린다」전문
⑶
너와 나 사이에
정지신호가
보인다
이젠 피할 길 없는 9분 간격의 가을
피마자
잎사귀에 앉은
푸른 사마귀의 가을
-「47분과 56분 사이」전문
⑷
등뼈
물어뜯기고
뱃가죽
물어뜯기고
목덜미까지 물어뜯기자 걸음을 멈춘 물소
머리에
치솟은 두 뿔
하늘 들이받는다
-「보츠와나의 저녁」전문
⑸
넉장거리로 누워 한 사흘쯤 하늘을 보라
쇠말뚝 박혀 뼈아픈 언덕을 내려서면
탁 트인 망망한 바다 와락 안겨들 것이다
동백나무 숲길 따라 그늘진 둘레길이
저절로 발길 끌어 맞닥뜨릴 바위벼랑
한 순간 벽공을 치솟는 바닷새가 될 것이다
-「지심도」전문
⑴은 십이월이라는 제목으로 ‘코스모스가 남아 있던 자리’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녹슨 못을 무수히 거꾸로 박아놓은 길’을 ‘맨발로/ 그 못 디뎌밟는 소리’라는 이미지를 도출하면서 그 ‘눈’이 ‘산을/ 돌아 나’가고 있다고 형상화하고 있다. ‘십이월, 코스모스, 눈’이라는 소재들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수난과 같은 시적 정황을 조성하여 의미심장한 미학적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⑵는 “놀 지는 황금빛이 ‘새 떼들/ 아랫배’를 ‘중천으로 밀어 올리는’ 것은 구심력이다.”라고 하면서 하늘의 중앙을 향해 몰입하는 힘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단순한 정경 묘사가 아니라 시적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재해석이다.
⑶은 ‘피마자/ 잎사귀에 앉은/ 푸른 사마귀의 가을’에서 보듯 열차 시각의 짧은 간격을 통해 ‘피마자 잎사귀’라는 식물성 이미지와 ‘푸른 사마귀’라는 동물성 이미지의 묘한 결합으로 화평의 공간이 도래되고 있다. 쫓기듯 살지만 그럴수록 더욱 여유를 가지고자 하는 넉넉한 삶의 자세를 읽게 된다.
⑷는 보츠와나 땅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은 물소가 죽어가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우리 시대의 어두운 일면을 떠올리게 한다.
⑸는 남해 지심도에서‘탁 트인 망망한 바다’에 안겨들 것만 같은 정감과 ‘저절로 발길 끌어 맞닥뜨릴 바위벼랑’앞에서‘한 순간 벽공을 치솟는 바닷새’가 될 것만 같은 무한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시작 방향과 지향점이 다섯 편의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2) 일상 사물
우체국, 빈집, 울타리, 뼈, 화살, 강강술래, 떡살, 절구통, 대바구니, 기와, 박, 바이올린, 붓, 숯, 폐차, 광망, 금가루, 헝겊, 못, 맨발, 두레박, 활, 톱, 코뚜레, 쇠뿔, 어깨, 팔다리, 피, 받침대, 악기, 뼛가루, 심장, 목뼈, 모자이크, 비닐봉지, 분수, 짚단, 벽, 시멘트, 자갈, 모래, 철근, 덤프트럭, 캔, 레미콘 차, 타워크레인, 콘크리트, 폐비닐, 기계, 잔등, 뼈다귀, 가시, 연자매, 덫, 부리, 쇠북, 누더기, 지푸라기, 검불, 사립문, 금팔찌, 이마, 찌, 조약돌, 쇠망치, 겨드랑이, 터럭, 넥타이, 송진, 휴지조각, 발목, 가산산성, 봉정사, 스프링클러, 설해목, 문, 나침반, 과속방지턱, 뻘흙, 신발, 깃털, 물갈퀴, 아랫배, 플러그, 발, 모래시계, 등, 가을열차, 기차, 볼우물, 출입문, 공, 월정사, 육체. |
일상 사물들을 육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대상이 매우 다채로운 것을 알게 된다.
⑴
오랜 사유가
천천히 밀어올린
원추형 기둥 사이 저 완벽한 거리
이따금
구름 떠도는
멧부리가 연붉다
-「쇠뿔」전문
⑵
등에 업힌 아기는
먼눈을 팔고 있고
절구방아 찧는 순간
흐려지는 아낙의 눈빛
절구통
그 속은 어쩌면
비어 있는지 모른다
-「박수근 생각」전문
⑶
허공을 칼질하는
또 다른
저 날갯짓
늪이 거느린 몇 만 평 넉넉함에 안겨
침묵의
무늬를 찢는
분홍 빛깔 물갈퀴
-「청둥오리 분홍 물갈퀴」전문
⑷
수천수만의 갈증들 짓눌릴 대로 짓눌려
13톤
트레일러
허리 휘도록 실린,
벼랑 끝
디디고 선 채
잃어버린 박제의 꿈
-「압착된 캔들」전문
⑴은 ‘쇠뿔’을 ‘오랜 사유가/ 천천히 밀어올린’두 개의 거리로 본 것이 특이하다. 이를 두고‘이따금/ 구름 떠도는/ 멧부리가 연붉’은 것을 발견한 눈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⑵는 박수근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불 때 ‘절구통/ 그 속은 어쩌면/ 비어 있는지 모’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풍요를 갈구하는 정경으로 본 것이다.
⑶은‘늪이 거느린 몇 만 평 넉넉함에 안겨// 침묵의/ 무늬를 찢는/ 분홍 빛깔 물갈퀴’에서 생명의 비상을 엿보고 있다.
⑷는 광물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소비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또 다른 삶의 단면을‘수천수만의 갈증들 짓눌릴 대로 짓눌려// 13톤/ 트레일러/ 허리 휘도록 실린,// 박제의 꿈’을 형상화하고 있다. 제목 ‘압착된 캔들’에서 어떤 공권력 앞에 내리눌린 인간상이 떠오른다.
3)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소재로 하는 시조에 쓰인 시어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 당신, 여인, 장한나, 미샤 마이스키, 수인, 여헌, 대장장이, 품꾼, 그 사람, 그대, 아우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베르나르 뷔페, 아낙, 과부, 노인, 자화상, 사람, 뉘, 위씨, 영혼, 반벙어리, 시인, 대장장이, 여인, 아이들, 소년, 소녀, 개구쟁이, 조무래기, 추씨, 노스트라다무스, 앤디 워홀, 권진규, 권정생, 바울, 낙승, 사내, 디르사, 김유정, 류인, 브람스, 김춘수, 명숙경, 순장, 효수, 뫼르소, 하관, 초상. |
인류의 기원으로부터 순진무구한 어린이, 1인칭, 2인칭, 3인칭을 지칭할 수 있는 인물, 상처를 안은 여인, 소외된 인간의 계층, 지극히 평범한 사람,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 불세출의 영웅, 존재하지 않지만 영원히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불멸의 인물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이 등가의 가치로 존재하여 작품의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마침내 나인 듯한 대상, 남인 것 같지만 나이기도 한 대상 등 그가 표현하는 인물은 그래서 더욱 외면할 수 없는 시적 대상이기도 하다.
⑴
밭일을 하던 노인 밭고랑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흙이 되어버린 한낮
접시꽃
뙤약볕 속에
붉은 접시 내던진다
-「폭염」전문
⑵
깊은 밤 곡괭이로
어둠을 파헤쳐서
자신의 몸을 눕혀
그 위에 흩뿌렸나니,
그에게 대명천지는
몹쓸 캄캄함이었네
목 맨 그 힘으로
버팅기고 살아남아
공, 파멸 그 너머로
솟구쳐 올랐다면
그에게 대명천지는
붉은 꽃밭이었으리
-「권진규」전문
⑶
갈볕이 다 못 헤아릴 기결, 미결의 일
플라타너스 마른 잎새들 때 없이 떨어져서
뜻밖에 갇힌 이들의 수척한 어깨를 치는
은결들어 쓰리고 아픈 시간들이 묻힌 적소
부신 저 구름결에 마음 끝자락 잇닿아도
갈볕이 다 못 헤아릴 기결, 미결의 일
-「가을의 수인」전문
⑴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독특하다. 즉 폭염의 날에‘밭일을 하던 노인 밭고랑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흙이 되어버린 한낮’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접시꽃은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별안간 시의 화자는 ‘접시꽃/ 뙤약볕 속에/ 붉은 접시 내던진다’는 장면을 제시하고 있다. 종장의 반전, 종장의 묘미를 살리는 기법이다.
⑵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인물인 권진규는 오래 전‘공, 파멸’이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조각가다. 그가 견디지 못한 어둠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그 몹쓸 캄캄함을 이겨내었더라면
‘그에게 대명천지는/ 붉은 꽃밭이었’을 거라고 탄식한다.
⑶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기결, 미결의 일을 떠올리면서 ‘갈볕’과 연관 지어서 ‘가을의 수인’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 중에‘은결들어 쓰리고 아픈 시간들이 묻힌 적소’라는 이미지를 통해 사람살이의 버거움과 부대낌과 알 길 없는 허망을 제시한다.
특히 그는‘그대, 당신’이라는 인칭 대명사를 자주 쓰고 있고, 그와 더불어‘나’라는 주체 대명사도 이따금 작품 속에 나타난다. ‘그대, 당신’은 실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밝히기 어려운 어떤 비밀스러운 존재에 대한 지칭인 경우가 많은데 두 시어는 혼용되어 나타날 때가 많다. 초기에는 ‘그대’가 빈번하게 쓰였고 연조가 깊어지면서 ‘당신’이 더 자주 쓰이고 있는 점은 쉽게 헤아리기 어려운 점이다. 시조집『비가, 디르사에게』에서 집중적으로 쓰인‘디르사’라는 이름은 고대 이스라엘의 도시 지명이자 구약성경에 나오는 한 여인의 이름이기도 한데, 그가 노래하고자 하는 세계를 형상화하는데 적절한 시어라고 판단하여 도입한 것이라고 유추가 된다.
그리고‘아우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시어들을 도입한 점은 초기 인류의 조상들에 대한 관심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인류의 연원을 탐색하여 삶에 대한 자존의식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육화한 것으로 보인다.
4) 추상적 관념
추상적 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조에 쓰인 시어를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움, 사랑, 절망, 목숨, 내란, 형이상학, 형이하학, 적멸, 불멸, 구토, 숨결, 고독, 영혼, 모의, 불가사의, 생애, 적막, 자책, 편력, 결별, 책망, 상응, 침묵, 열납. |
그의 시에 나오는 인간성은 인간의 밑바닥에 고여 있는 근원적인 감정으로부터 비롯되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간절함의 형상을 갖추고, 나아가서는 형이상학적·초월적 경지에 이르러 신과도 소통하고자하는 비의가 내재되어 있다. 또한 절망의 나락으로부터 빠져나와 초월적 존재에 대해 겸손함으로 기쁘게 받아들여져서 불멸에 이르고자 하는 열망이 들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작품을 보자.
⑴
안의 문제를 무시로 끄집어내는 일이 부지런히 끄집어내는 일이 저 푸른 잎사귀들이다
더없이 무성할 대로 무성한
저 잎사귀들의 반란
-「내란」전문
⑵
바람에 기대어 비탈에 선 적이 있다
구름 깔고 앉아 멀리 흘러간 적이 있다
하늘빛
나비와 같이
스러져간 적이 있다
어느 뉘 눈빛 속에 숨어든 적이 있다
그 가슴 찢을 듯 가시 돋친 말끝에
어둠에
에워싸여서
옥죄인 적이 있다
더는 내딛지 못할 벼랑 끝에 섰을 때
바닥을 치며 올라오는 절망의 힘을 본다
내 안에
들끓는 마그마
용솟음칠 하늘 길을
-「편력」전문
⑴은 봄이면 가지마다 새로 돋아나는 잎들을 바라보면서 ‘안의 문제를 무시로 끄집어내는 일이 부지런히 끄집어내는 일이 저 푸른 잎사귀들’이라고 본다. 예측 불허의 발상이다. 잎사귀들이 무성해지는 것을 두고 나무속의 내적 갈등의 표출로 보고 그것을 반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존의‘내란’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⑵에 대하여 김진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개체로서 인간은 불완전하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절망하고 비탈에 선 자신을 돌아본다. 사랑과 증오, 슬픔과 고통, 외로움과 불화 속에 갈등하는 인간이여! 상처를 주고 또 상처 받으면서 아파하는 인간은 늘 불안하다. 너무나 인간적인, 고백성사와 같은 이 편력을 어이하리. 하늘빛 나비와 같이 스러지고, 어느 뉘 눈빛 속에 숨어들기도 하고, 어둠에 에워싸여서 옥죄인 적 있다’한다. 환한 웃음과 넘치는 에너지, 유머를 즐기던 시인의 얼굴 뒤에 가려진, 그 절망에 가슴이 저리다. 벼랑 끝에서‘바닥을 치며 올라’온 시인의 용기, 내면의 고통을 발설한 이 시에 무한 신뢰를 보내며. 그는 여전히 활활 타는 가을 산 같다.
이와 같이 그의 시각은 남다르다. 어느 지점에서 하나의 생각이 말의 옷을 입혀서 시로 태어나는지에 대한 세밀한 촉수와 언어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결국 시인의 자신 속에서도 부단히 또 다른 목소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움, 사랑’이라는 시어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가 즐겨 다루는 말은 아니다. 피치 못할 경우에만 드물게 쓰고 있는 것을 작품 전편을 살피면 잘 알 수 있다. ‘자책, 책망’과 같은 시어들은 자성적 정황에서 쓰이고 있다. 사설시조 「봄의 자책·2」초장에서 ‘꽃 피어 자책합니다, 참 많이도 모자랐지요’이라는 대목에서 ’자책‘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꽃 피는 일과 관련지어서 서간문 형식으로 시를 전개하면서 봄을 맞은 심경을 어떤 한 대상에게 여실하게 전하고 있다. 여기서 ‘자책’앞에 ‘꽃 피어’가 놓이면서 미학적 울림을 형성하게 된 것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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