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성은 무림맹의 최고회의 회의실에 갇혀 있었다. 비무 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할 일 없이 멍하니 있었다. 회의실 은 엄히 지켜지고 있어 다른 사람과 노닥거릴 수도 없었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 무림맹주와 몇 명의 장로들이 책임지 고 외부 인사들을 접대했다. 그들 외에 이 사건을 조사하고 싶은 몇 명이 남들의 눈을 신경 쓰며 조용히 회의실로 찾아 왔다. 회의실에 들어선 그들이 본 것은 최고회의실의 대형 탁자 위에 드러누워서 자고 있는 주유성이었다. 청성자의 적명자는 주유성에게 불만이 많다. '이놈이 너무 쉽게 이겨서 우리 청성의 명성에 손상이 왔 지.' 즉시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그런 방자한 자세로 있는 것이냐?" 주유성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봐야 건물이고 방이죠. 무슨 순국선열의 얼을 기리 는 곳도 아니잖아요." "이놈이!" 주유성이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쭉 켰다. "사람을 아무 말 없이 잡아다가 가둬두기에 나도 아무렇게 나 있어도 되는 곳인줄 알았죠." 적명자가 발작하려고 하는 것을 청허자가 말렸다. "그만 합시다. 그는 명가의 자손입니다. 아직 죄가 밝혀진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을 함부로 잡아뒀으니 저 정도는 우리 가 이해해야지요."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앉고 주유성도 구석때기에 앉 은 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청허자가 말을 꺼냈다. "자, 그럼 먼저 추하전의 상태에 대해서 보고해 봅시다." 주유성이 손을 들었다. 사람들은 뭔가 다른 실마리가 있나 해서 주유성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추 형이 아니거든요. 추 형은 전혀 다른 사람이 거든요." 제갈고학이 눈에 이채를 띠면서 말했다. "그가 위장 신분일 것은 우리도 예상하고 있다. 바보가 아 니라면 본래 신분을 가지고 귀장군보를 펼칠 리 없지. 그런 너는 그러면 진짜 추하전을 안다는 소리구나?" "네. 좋은 사람인데 그 가짜에게 죽었어요." 취걸개가 손뼉을 딱 쳤다. "그렇군. 이 게으름뱅이 녀석이 왜 비무대회를 참가하겠다 고 설쳤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어." 제갈고학이 의심스런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다시 질문했다. "너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 "어제, 추 형을 보러 찾아갔더니 그놈이 추 형 행세를 하고 있더라고요." "겨우 그 정도로 모든 상황을 알아챘다?" "충분하지요. 그 정도면." "네 머리가 그리 좋단 말이냐?" 제갈고학의 의심에 청허자가 끼어들었다. "그가 바로 일포십한이라고 불린다는 그 주유성이오. 학문 이 아주 높고 진법에도 대단히 뛰어나지요.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외다." 청허자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제갈고학도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 청허자가 다시 회의 분위기를 자신에게로 돌렸다. "일단 그 가짜 추하전의 상태에 대해서 들어보지요? 검시 관." 구석에 있던 무림맹의 검시관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시체를 확인해 본 결과 사인이 밝혀졌습니다. 의심 할 여지 없이 혈도의 파괴에 의한 사망입니다." 적명자가 주유성을 째려보면서 말했다. "혈도의 파괴라? 일부러 내가중수법으로 죽였어? 네 알량 한 복수를 위해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이냐? 산 채로 잡아서 배후를 알아내야 할 자를? 어리석은 놈." 검시관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닙니다. 외부 진기에 의한 타격이 아니라 내부 내공의 폭주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화입마로 확신합니다." 적명자가 머쓱해졌다. 주유성이 툴툴거렸다.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 않았어요. 자기 혼자 죽는 걸 어 쩌라고요." 취걸개가 내심 반가운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그 말은 네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렷다?" "살려야 배후를 캐지요. 그것 때문에 즉시 안 잡고 비무대 회까지 기다린 거예요." 불만이 많은 적명자가 버럭 화를 냈다. "네 이놈! 왜 기다려? 비무대회까지 기다려 봤자 결국 차이 가 없지 않느냐? 네 말은 심히 의심스럽다." 주유성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청성이 제대로 해줬으면 내가 귀찮게 나갈 필요 없었다고 요. 청성이 너무 약하니까 내가 나갔잖아요. 내가 좀 패고 나 니까 그놈이 결국 자기 밑천을 드러냈잖아요. 그 보법이 귀장 군보란 건가 보지요?" 적명자의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당장 변명할 말이 없다. 청허자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네 덕분에 귀장군보를 보게 됐단다. 큰 공을 세웠 구나. 수고했다." 군사 제갈고학이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나섰다. "사망 원인이 그렇다면 결국 범인은 귀장군보를 펼치다가 주화입마했다는 뜻입니다. 저 소협이 귀장군보를 깨뜨린 것 은 아니지요." 제갈고학이 주유성을 낮춰 말하느라 애쓰자 기분이 나빠 진 취걸개가 한마디 하려고 몸을 움찔댔다. 하지만 주유성으로서는 제갈고학의 반응이 더 이상 반가울 수 없었다. 즉시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그가 보법을 펼칠 때 뭔가 이상했어요. 안색도 정 상이 아니었고." 제갈고학이 만족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더구나 저 소협은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뇌려타곤까지 펼쳤지요. 누가 무림비무대회에서 뇌려타곤을 펼치리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예상 못한 초식이니 한 번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쉬웠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보신 바와 같이 주화입마에 빠진 녀석을 저 소협이 두들겨 팼지요. 범인 은 그 때문에 죽은 겁니다." 정말 주화입마에 의한 사망이라면 제갈고학의 말 자체에는 빈틈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마땅히 반대할 말을 찾을 수 없 었다. 하지만 현재 장로들이 모은 것은 가짜 추하전의 사망이 아 니라 다른 문제 때문이다. 청허자가 고민에 싸인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펼친 것은 어찌 됐든 귀장군보라는 말이지요. 그건 마교의 무공. 평범한 자가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딸꾹! 마교라는 말에 너무 놀란 주유성이 딸꾹질을 했다. 제갈고학이 주유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청허자 장로께서는 외인이 있는 곳에서 하지 말아 야 할 말을 하셨습니다. 네 이 녀석! 네가 여기서 들은 것은 바깥에 나가서 한마디도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 만약 이를 어 길 시 엄벌에 처할 것이야." 원래 귀장군보를 먼저 언급한 것은 제갈고학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까지 짚어내지는 못했다. 주유성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아요. 나도 그런 일에 말려드는 건 딱 질색이니까." '무지하게 귀찮은 걸 건드렸구나. 에고.' 제갈고학이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무림에 마교가 저지른 사건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 다. 하지만 우리 무림맹 본부에 직접 손을 댄 적은 없습니다. 더구나 귀장군보는 마교에서도 중요 인물들만 배울 수 있는 핵심 마공입니다. 현재의 모습만 보자면 이건 마교의 도발 행 위입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범인이 귀장군보를 펼친 직후 주화입마에 걸린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주화입마는 결국 수련이 부족한 놈들이 걸리는 거지. 아 니면 실력 이상으로 욕심을 부렸거나." "그렇습니다. 제대로 익혔다면 겨우 한 번의 펼침에 그리 될 리는 없지요." "그렇지. 한 번 쓰고 죽는 무공이라면 누가 감히 익힐까? 수련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그러니 그는 결국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지 못했다는 뜻 입니다. 아마도 오의가 빠진 구결만 가지고 수련한 것이 아닌 가 합니다. 아니면 불완전한 오의로 수련했을 수도 있습니다. 승부에 눈이 멀어 배운 것 이상으로 사용했겠지요." 그 주장에서 사람들이 딱히 부정할 만한 뭔가는 없다. "우리는 사망자가 펼친 것이 마교의 귀장군보라는 사실, 그 리고 그것이 무림맹 내에서 펼쳐졌다는 것에 너무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교에서 작정을 한 것이라면 그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그럼 군사의 생각은?" "제가 보기에 그자는 아마도 우연히 귀장군보의 비급을 습 득한 자이거나, 아니면 마교에서 떨어져 나온 계파 정도가 아 닐까 합니다. 이건 마교의 본격적인 무림 등장이라고 보기에 는 무리가 있습니다." 군사 제갈고학의 말은 현 사태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 한 것이다. 군사가 할 판단이 아니다. 그러나 마교의 침입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혹적인 이야기였다. 적명자가 먼저 그 말에 동의했다. "대충 동의하오. 우연히 습득했다기보다는 방계 쪽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마교에서 이 대회를 망치기 위해서 준비하 고 왔다면 이제 무림초출인 우리 아이들이 패배한 것도 이해 가 가지. 방계 계파라고 해도 우습게볼 수는 없지. 방계도 마 교는 마교인 데다가 자기네 나름대로는 최고를 보냈을 테니 까." 이번 일이 마교의 수작이라면 청성의 젊은 제자들이 패한 것은 크게 창피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적명자는 제갈고학의 의견에 지지를 보냈다. 아무리 사태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얼 굴은 계속 침중했다. 청허자도 심각한 얼굴로 동의했다. "그렇지요. 방계도 마교는 마교지요. 아무리 한 계파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일어선다는 것은 뭔가 계획이 있다는 뜻. 그 잔혹한 자들의 계획이라면 무엇이 되었든 무림에 끼치는 영향 은 작지 않지요.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 다." 장로들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인상을 찌푸렸다. 어쨌든, 제갈고학의 말처럼 사태를 쉽게 해석한다고 해도 대 비를 한다면 큰 상관 없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군사와 말싸 움을 하기 싫었다. 주유성은 무림의 정세에 어둡다. 그가 아는 것은 책에 나오 는 정도의 일반론이다. 아니면 제법 알려진 사람들의 이름 정 도다. 마교의 무공 자체에 대해서 가진 정보가 거의 없다. 그래도 자기와 사운 가짜 추하전이 저 혼자 기가 뒤틀려 죽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정말 주화입마에 걸려들었나 보다. 어쩐지 그 무섭다는 마 교 놈이 꽤나 만만하더라니. 그 보법은 정말 깜짝 놀랐지만.' 가진 정보가 워낙 없으니 그도 순순히 제갈고학의 설명을 믿어버렸다. 사람들이 떠든다고 뭔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도 없다. 분위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자 제갈고학이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정리하기로 하지요. 어차피 귀장 군보를 알아본 자가 더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문나는 것은 금방입니다. 그러니 그 사실 자체를 우리가 발표해야지요." "무림에 혼란이 올 텐데." "대신에 지금 이야기된 것처럼 그의 무공은 불완전한 것이 라고 발표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결만 가지고 잘못 익혀서 정작 무공을 펼치자 즉시 주화입마에 빠져 사망한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거야 그렇지." "중요한 건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겁니다. 그자가 진짜 마 교가 아니라 어느 작은 방계이거나, 아니면 우연히 구결만 입 수한 자라고 해야지요. 사실이잖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 일을 버려둘 수는 없지. 아이들을 풀어 은밀히 조사를 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의견이 정리되자 제갈고학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유성을 쳐 다보았다. "네 녀석은 명성을 날리지 못해 아까울지 모르지만 어차피 실력으로 이긴 것도 아니지 않느냐. 대신 네게 씌워진 살인 혐의는 풀어주마. 어차피 네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 니까." 무림맹의 고위층이 주유성의 실력을 대단함을 못 알아봤을 리는 없다. 그러나 주유성은 실력을 전부 내보이지 않았다. 장로들은 주유성이 스무 살 정도의 무인들 중에서는 내세울 만한 실력이라고 평가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수준이기만 마교의 절학을 상대하기는 모자라다. 주유성으로서는 바라고 바라던 말이다. "전혀 불만없습니다." "좋다. 현명한 판단이다. 자, 여러 장로님들. 제가 그런 방 향으로 정리해서 대외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발표를 의심하는 무림명숙은 범인의 시체를 검사해 볼 수 있 도록 하겠습니다. 사인이 명확하니 그들도 의심할 여지가 없 을 겁니다." 장로들은 동의했다. 그들은 이 일이 마교와 직접적인 상관 이 없기를 바라 마지않았다. 주유성이 다시 손을 들었다. "저기요." 제갈고학이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이 녀석. 혹시 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렸다고 이번 결정에 불만이 있는 건가? 불만이 없으면 이상한 일이지. 그럼 협박을 할까? 아니면 돈이라도 줘서 입막음을 할까?' 주유성을 전혀 모르는 그는 함부로 억측했다. "뭐냐?" "그 가짜가 가지고 있던 퉁소요. 그거 추 형 것이거든요. 그건 제가 좀 가졌으면 해서요." 제갈고학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깟 퉁소. 마음대로 해라." 무림맹은 비무 중 사망 사건에 대해서 발표했다. 귀장군보 가 사용됐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웅성댔다. 그러 나 모든 발표 내용을 다 듣고 나자 다들 쉽게 납득했다. 일반 무인들이 무림맹의 공식 발표를 특별히 의심할 이유는 없었 다. 그리고 그 일은 주유성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실은 청성의 무사들과 상대하면서 이미 주화입마 상태 에 빠져들고 있었다며?" "그렇지. 청성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고 하더군. 마교의 주구도 그걸 상대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마공을 운기했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거래." 청성을 띄워주는 이런 발표에는 적명자의 입김이 들어갔다. 제갈고학이야 어차피 이 일만 조용히 처리하면 그만이니 그 정도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불만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청성 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나중에 보답을 받을 생각에 기쁘게 받아들였다. 청성은 이제 일방적으로 패패한 것에 대한 명분을 얻었다. 여기는 정파가 모인 곳이다. 마교의 수작에 대항해 싸웠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자랑이 될지언정 흉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주유성이 그로 인해 입는 손해에는 관심없었다. 그리고 무공이 저평가되는 것은 주유성도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주유성을 놀림거리로 삼았다. "허풍대협 말이야, 그러니까 주화입마로 맛이 간 사람을 상대로 싸운 거잖아. 어쩐지 쉽게 이기더라고." "하하. 이 친구. 나는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그 가짜가 가만히 서 있는 허풍대협의 머리 한참 위로 칼질할 때부터 눈치 챘어." "나는 뇌려타곤 펼칠 때 알아봤지. 얼마나 실력에 자신이 없으면 주화입마한 상대의 공격을 피하려고 뇌려타곤을 펼치 나 그래." "그러니까 허풍대협이지." 주유성이 비무장에서 보여준 실력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주 유성의 실력이 제법 뛰어나다고 생각한 고수도 몇 명 있었지 만 그들은 소문에 끼어들어 체통을 잃는 짓을 하지 않았다. 무공이 워낙 약한 추월은 그 소문을 그대로 믿었다. 그녀는 주유성을 위로한답시고 말했다. "공자님, 괜찮아요. 공자님은 진법가잖아요. 전 소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요." 주유성은 명성 따위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운 좋게 귀찮은 일을 겨우 피했네. 앞으로는 좀 조심해서 움직여야겠다.' 하지만 검옥월은 다르게 생각했다. "주 공자, 화가 나지도 않나요?" 만약 그녀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참지 못한다. 그녀는 평생을 힘들게 수련했다. 그것이 남에게 무시당한다 면 폭발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주유성이 당한 일에 화가 났다. "괜찮아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주유성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 검옥월이 주유성을 조금 젖은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주 공자, 당신은 정말 신비한 사람이에요."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길 수 있다니.' 오히려 고맙다. 다음날 비무대회에서 주유성은 구경꾼으로 변했다. 그는 죄가 없다고 발표가 났다. 그렇다면 참가 자격이 박탈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귀장군보를 끌어냈으니 더 이상 참가할 이유가 없다. '그 지법도 보통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건 다들 뭔지 못 알아보네.' 주유성은 견문이 워낙 짧아 염왕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 지만 지법마저 끌어들이면 겨우 빠져나온 일에 다시 얽혀들 수 있다. 대부분의 지법은 단순히 멀리서 본 것만으로 알아보기는 어렵다. 보법은 그 특유의 발 움직임으로 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찌르기를 하는 지법은 그 내력 운용이 핵심이다. 펼쳐 지는 모양은 대동소이하다. 소림사 칠십이종 절예 중 하나인 탄지신통처럼 아예 원거리 의 적을 공격하는 거라면 그나마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염 왕지는 그 정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중간에 방향을 마음대로 바꾸는 지법은 별로 없지만 그렇 다고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공격 도중에 손가락을 비틀었다고 해서 염왕지임을 알아볼 수는 없다. 대회는 별문제없이 진행됐다. 둘째 날이 되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그 외 유력 문파의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 장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우 유명 문파의 사람들이 본선 에 진출했다. 수많은 일반 문파 사람들이나, 배첩 없이 참가 한 사람들은 그들의 승리를 위한 제물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 예외도 발생했다. 배첩 없이 별도의 시험을 거쳐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 하나 가 벌써 네 명을 물리쳤다. 다섯 번째 상대는 개방의 거지였 다. 개방은 구파일방 중 일방이다. 더구나 비무에 내보낼 정도 면 나름대로 작정하고 키우는 제자다. 거지의 무공이 구파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고 하지만 본선 진출을 못할 정도는 아니 다. 하지만 이 거지는 지금 예선에서 탈락할 처지에 놓였다. 거지는 숨을 헉헉거리고 있다. 손에는 개 잡는 데 쓰는 타 구봉을 하나 쥐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반 토막이 나 있다. 때 가 탄 눈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경악과 이대로 끝낼 수 없다 는 초조가 교차해서 나타났다. 거지가 다시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 거지가 반 토막 난 타구봉으로 단봉술을 펼쳤다. 짧은 막대 가 부챗살 모양을 그리며 상대에게 날아갔다. 상대가 타구봉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타구봉이 재빨리 변화 를 일으키며 그 팔의 요혈을 노렸다. 공격은 실패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타구봉이 상대의 손 에 잡혔다. 거지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상대가 잔혹하게 웃더니 봉을 와락 잡아당겼다. 거지가 끌 려가지 않으려고 힘을 썼다. 어느새 상대의 발이 거지의 팔을 소리없이 걷어찼다. 팔꿈치가 단숨에 거꾸로 꺾이며 거지의 비명이 뒤를 따랐다. "으아악!" 거지가 부러진 팔을 잡고 비명을 질렀다. 반 토막 난 타구 봉을 놓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싸움은 끝났다. 심사관이 거지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피더 니 선언했다. "백구십 오승! 본선 진출!"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와아! 멋지다!" "배첩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그까짓 거 우승해 버려. 명문대파가 별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경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백구십이 명문대파를 무찌르며 승승장구하는 것에 신이 났다. 그 모습을 보는 주유성이 흐리게 웃었다. '백구십은 이백팔십칠보다 번호가 엄청 높지. 너 설마 정 말 백씨는 아니겠지?' 그날의 비무대회가 끝난 후 사람들은 백구십에게 다가와 친분을 나누려고 했다. 다들 상당한 호감을 보였다. 하지만 백구십은그런 사람들에게 냉혹한 말을 던졌다. "뭘 주워 먹을 것이 있다고 길거리를 쏘다니는 개새끼들처 럼 떼거지로 달라붙는 거냐?"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백구십에게 호감을 가졌던 사람 들은 즉시 마음을 바꾸고 적의를 드러냈다. "무공 좀 한다고 하더니 성질은 아주 무림 절대고수구만." "에이. 퉤! 더러워서 원." 그러나 사람들의 불평도 오래가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서 욕을 하던 몇이 백구십에게 맞아서 나뒹굴었다. 이제 사람들 은 더 이상 백구십 근처로 가지 않았다. 백구십의 원래 계획은 바닥부터 일어서는 모습을 보인 후 중소문파 사람들에게 적당한 호의를 보이는 것이다. 그것 때 문에 일부러 배첩 없이 시험을 거치고 올라왔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 마뇌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신 원 조회는 무림맹에 채용될 때나 필요한 것이니 지금은 이렇 게 밀어붙여도 통했다. 하지만 지금 백구십은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 자체가 무서 웠다. '저놈들 중 누가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말을 많이 하면 정체가 탄로날지 모르지. 들키면 나는 죽는 다.' 백구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이 그가 마교의 혹독한 생존 경쟁을 극복하고 아직까지 살아남은 비결이다. '더구나 이백팔십칠호 그 바보가 정체를 들키고 죽었으니 까 더 조심해야지.' 벌써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다. 그렇다고 한 번의 사건 때문에 마뇌가 내린 명령을 무시하고 달아나기 도 힘들었다. 이백팔십칠호가 왜 죽었는지 잘 아는 백구십은 금제가 두 려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백구십은 밤이 될 때까지 사람들을 피해 인적이 드문 곳을 어슬렁거렸다. 다들 잠이 들 시간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쪽에서 주유성이 길을 막고 삐딱 하게 서 있었다. 백구십은 주유성을 알아보았다. '이백팔십칠호를 죽게 만든 그놈이다.' 복수하고 싶은 생각 같은 것은 없다. 어차피 생존을 놓고 싸우던 경쟁자였을 뿐이다. 계파마저 다르다. 하지만 이백팔 십칠호의 적은 자신의 적이기도 하다. 백구십이 조금 긴장하 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주유성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며 말했다. "볼일이 있으니까 왔겠지. 백구십." 백구십의 머릿속에 경계종이 살짝 울렸다. "나를 아나?" 주유성이 씩 웃었다. "마교의 똥강아지. 백구십." 백구십의 안색이 굳었다. 그의 머릿속에 경계종이 마구 울 렸다. "모함하지 마라. 나는 마교를 모른다." 입으로 부정해서 위험을 피할 수 있다면 교주 욕이라도 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 사실은 나밖에 모르거든. 이백팔십 칠과 싸운 건 나라고.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이백팔십칠까지 언급됐다. 백구십은 이제 주유성이 충분 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백구십이 의심스러운 눈 초리로 주유성을 쳐다보았다. "너 혼자 내 정체를 안다는 말을 어떻게 믿지?" 주유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새끼. 걸렸구나. 네가 마교 잔당이 아니라면 내 말의 진위 여부가 궁금할 이유가 없지.' 표정은 여전히 밝은 채로 말을 계속 이었다. "만약 무림맹에서 네 정체를 알았다면 이렇게 돌아다니도 록 놔두지도 않았겠지. 벌써 잡아서 쥐어짰을 거야. 그게 증 거야." 백구십이 주유성의 주변을 슬슬 움직이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면서 질문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구나?" 주유성이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은자 백 냥. 그 정도만 내면 내가 입을 다물어주마." 백구십은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공작금은 백 냥이 훨씬 넘게 있다.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나을까?'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돈을 쓰고 싶다. 하지만 금방 그 생 각을 털어버렸다. '살인멸구처럼 좋은 일을 놔두고 왜 그런 짓을 해? 더구나 이놈이 돈만 받아먹고 무림맹에 나를 다시 팔아먹을 위험이 너무 높다.' 주변에 감지되는 매복자는 없다. 백구십이 결정을 내렸다. "배짱이 좋구나. 나는 이백팔십칠호와 다르다. 나는 백구 십호다. 같은 실력으로 보지 마라." 주유성은 그 말에서 새로운 정보를 추출했다. '젠장.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무력이 곧 번호순이란 말이 지. 최악의 경우 그 가짜보다 강한 놈들이 이백팔십육 명은 있겠군.' "실력이 뒷받침되니까. 이백팔십칠호는 약했어. 백구십호 가 된다고 해도 내게는 마찬가지야. 나를 상대하고 싶으면 네 놈이 아니라 한 자릿수가 와야지." 그 말에 백구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놈. 네 까짓것들은 그분들에게 걸리면 일초거리도 되지 않는다." "나도 꽤 한다고." 백구십의 눈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너는 아는 것이 너무 많다." 주유성이 손가락 하나를 더 펴서 내밀었다. "내가 아는 것이 많으니 이제 이백 냥으로 하지? 아니면 다 른 녀석과 협상하면 되니까." 백구십이 본격적으로 살기를 뿌렸다. "백칠십사호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니. 네놈은 정체가 뭐 냐?" 백구십은 살기 위한 싸움에는 강하다. 하지만 이런 수작은 별로 경험이 없다. 적의 뒤통수를 치는 법을 교육받기는 했지 만 실전이 부족하다. 주유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백칠십사? 이번 비무대회에 딱 한 놈만 더 왔구나. 그놈은 누구로 위장했을까? 어차피 본선에 진출하겠지.' 주유성은 수작을 계속 걸었다. 방금 얻은 정보를 이용했다. "내가 백칠십사호까지 찾아가게 하지 마. 네 선에서 끝내 라고. 아니면 그의 거처로 찾아가서 백구십호가 거절해서 값 이 뛰었다고 할 테니까." 백칠십사호의 정확한 신분을 알아내기 위해서 밑밥으로 미 기를 더 뿌렸다. 백구십은 이제 완전히 결정했다. 그가 주유성에게 다가오 며 말했다. "그래. 나는 지금 가진 돈이 별로 없으니 같이 백칠십사호 에게 가자. 돈은 그가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 백구십은 주유성과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지 갑자기 귀장군보를 펼쳐 급격히 달려들었다. 호통과 함께 오른손으 로 일장을 날렸다. "죽은 놈은 말이 없다!" 장을 날리는 손바닥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주유성은 알아 보지 못했지만 마교의 절학 중 하나인 염마탈명장이다. 주유성이 급히 물러섰다. 마교의 귀장군보는 이미 경험했 다. 그것이 장난이 아님을 잘 안다. 주유성의 보법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 마교의 귀장군 보만큼의 명성은 없지만 타고난 무골이 펼치는 것이라 순순 히 당할 만큼은 아니다. 급히 펼친 보법 덕분에 불리한 방위를 빼앗기는 것은 피했 다. 하지만 백구십을 떨어뜨리는 데는 실패했다. 염마탈명장 이 붉은 빛을 날리며 주유성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왔다. '정면 대결은 안 좋아.' 주유성은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맞받아치기에는 염마탈명 장이 뿌려대는 기의 파동이 지나치게 부담스럽다. 주유성이 몸을 흔들어 피하며 손가락을 갈퀴처럼 펴서 빠 르게 뻗었다. 염마탈명장을 뿌리는 백구십의 손목을 노렸다. 백구십은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주유성의 반응을 보니 이 일장이 명중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장을 날 리다가 잘못하면 손목에 역습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는 즉시 손바닥을 뒤집어 장법의 방향을 바깥으로 바꿨 다. 염마탈명장은 허공으로 빗나갔지만 주유성 역시 손목을 잡는 데 실패했다. 백구십은 그 모습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왼손을 뻗었다. 손가락 하나를 세운 채였다. 마교의 절학인 염왕지다. '거의 동시에 서로 다른 장법과 지법을 펼치는데 네깟 놈 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 백구십은 이 한 수가 먹혀들어 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 다. 이런 연환 공격은 내공의 운용이 자유로운 수준에서나 쓸 수 있는 고급의 수법이다. 이백팔십칠은 꿈도 꾸지 못하던 수 준이다. 주유성은 자신이 써야 하는 무공과 그에 대한 백구십의 대 응을 순간적으로 예측했다. 백구십의 오른손을 노렸다가 빗나간 주유성의 금나수법이 즉시 방향을 바꿨다. 그 손은 새롭게 날아오는 염왕지를 노 렸다. 백구십은 기겁을 했다. '헉. 초식의 수발이 이렇게 자유롭다니. 보통 수법이 아니 다.' 백구십은 이백팔십칠호가 염왕지를 펼치다가 어떻게 당했 는지 똑똑히 봤다. 자신의 실력이 이백팔십칠호보다 훨씬 윗 줄이지만 이런 공격을 당하자 조금도 방심할 수 없다. 그는 급히 왼손으로 날리던 염왕지도 포기했다. 주유성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그 손도 바깥으로 크게 빼냈다. 양팔을 바깥으로 펼치니 순간적으로 가슴이 열렸다. 백구 십은 급히 한 다리를 들어 주유성의 접근을 견제하려고 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두 팔을 벌리고 한 다리를 세우는 금계독 립의 자세로 변했다. 하지만 이미 주유성은 견제 범위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백구십이 다리를 올리는 것보다 주유성이 보법이 더 빨랐다. 한술 더 떠서 주유성은 백구십이 들어올리던 다리를 밟았 다. 그 반동으로 몸을 가볍게 띄웠다. 들어올리던 다리가 아래로 눌리자 백구십은 순간적으로 몸 의 중심을 잃었다. 나머지 한 다리로 중심을 잡으며 벌어진 두 팔을 빠르게 안쪽으로 모았다. 염마탈명장과 염왕지가 동 시에 펼쳐졌다. 주유성이 무슨 공격을 하더라도 몸으로 버티 며 두 팔로 공격해서 끝장을 낼 생각이다. '하나라도 명중시키면 박살 낼 수 있다. 내 살을 주고 적의 뼈를 깎는다. 아니면 네놈이 도망가라. 그 즉시 반격해 주마.' 백구십은 이 공격이 공격과 방어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주유성의 몸은 계속 빠르게 떠올랐다. 무릎이 불쑥 솟아오 르며 백구십의 얼굴을 노렸다. '가소로운 놈. 무릎은 강하지만 짧다.' 백구십이 그 상태에서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의 머리가 무 릎의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양손은 주유성의 몸통을 노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주유성이 예상하던 대응이다. 그는 그 상태에서 다리를 쭉 폈다. 백구십의 눈에는 무릎이 쭉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주유성의 발이 뒤로 젖혀지던 백구십의 턱을 걷어찼다. 그 반동으로 주유성의 몸은 허공에서 뒤로 누워졌다. 백구십의 몸이 덜컥 소리를 내며 꺾였다. 치명적인 두 손은 주유성의 아래쪽 빈 공간을 스쳐 지나갔다. 급소를 제대로 맞은 백구십의 몸이 뒤로 빠르게 넘어갔다. 땅바닥에 볼품없이 자빠졌다. 바닥에 쓰러진 백구십은 그 즉시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시 도했다. '큭. 육체의 손상도 크지만 내상이 더 심각하다. 그 짧은 순간에 발로 내가중수법을 펼치다니. 이놈. 역시 보통이 아니 다.' 백구십은 일어서기 위해서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뇌는 흔들렸고 내공은 혼란에 빠졌다. 잠깐이나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유성이 백구십에게 다가와싿. "확실히 이백팔십칠호보다는 좀 덜 약하네." 약하다는 말에 백구십이 발끈했다. "나는 약하지 않다. 나는 강하다. 나는 살아남았다." 주유성이 백구십의 몸 혈도를 몇 개 찍었다. 혈도를 제압당 한 백구십은 이제 몸이 완전히 마비돼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 았다. "자, 마교의 나부랭이야. 이제 우리 천천히 이야기 좀 해보 자. 우선 백칠십사호에 대해서 말해볼까? 네 성장 배경도 상 당히 궁금하니까 그것도 천천히 말해보고." 주유성의 말에 백구십은 이제 자신이 빠져나갈 방법이 없 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무림맹의 사람이냐?" 주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백구십이 순간적으로 희망을 가졌다. "그럼 누구냐? 나를 어쩔 셈이냐? 네 말대로 은자 이백 냥 을 주겠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무림맹 사람은 아니지만 널 무림맹에 넘길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 그러니 그 전에 정보를 좀 내놓으라고. 마교의 돈은 필요없어." 주유성은 백구십에게 말을 많이 시키려고 했다. 아무 말이 나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보면 그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뽑아 낼 자신이 있었다. 백구십은 이제 절망했다. 마교의 사람인 자기가 무림맹에 침투했다가 잡히면 그 결과는 뻔하다. 그리고 그는 내뱉어서 는 안 되는 마교의 비밀들을 알고 있다. 자신들의 존재 자체 가 일급비밀이다. 백구십은 비밀을 지키는 훈련도 충분히 받았다. 고통에도 강하다. 하지만 무림맹에는 무슨 대단한 심문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정파라고 해서 섭혼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분 근착골은 아무리 정신력이 대단해도 버티기 힘든 고문이다. 백구십은 자신이 이제 죽은 목숨임을 확신했다. 당장 살아 봐야 정보를 뽑히고 죽을 거라고 믿었다. 그가 절망하자 그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금제가 발동되었다. 몸속에서 내공 이 폭주를 시작했다. 주유성은 백구십의 마혈을 짚어두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백구십의 몸속에서 발광하기 시작한 내공은 혈도 의 막힘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맞는 경로이든 아니든 상관없 이 혈도를 찢어발기며 폭주했다. 백구십이 고통에 몸을 부르 르 떨었다. 주유성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급히 백구십의 몸을 짚어 상 태를 살폈다. '이건 심각한 수준의 주화입마다. 하지만 혈도가 제압된 상태에서 왜?' 백구십의 떨림이 커졌다. 그의 칠공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백구십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살고... 싶다." 그 말이 백구십의 유언이었다. 백구십은 그것만을 남기고 절명했다. 주유성은 뒤로 후다닥 물러섰다. "죽었다. 가만 놔뒀는데도 죽었다." 주유성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자살이 아니다. 살고 싶은데 죽었다. 이게 바로 책에서만 보던 금제구나. 마교. 정말 지독하다, 지독해." 주유성이 몸소리를 쳤다. 주변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재빨리 도망쳤다. 주유성은 자신의 방에 돌아가서 자리에 눕자 새로운 문제 가 발생했음이 생각났다. "뿌리를 뽑아야 추 형에게 미안하지 않을 텐데 마지막 놈 은 도대체 어떻게 잡지? 이놈처럼 이름이 숫자로 된 놈은 더 이상 없는데." 백구십이라는 번호는 이름으로도 쓸 수 있다. 혼자서 사용 한다면 그것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말은 마지막 하나는 이름으로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
첫댓글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
즐독합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