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죽음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고
스스로도 수난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고 부활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밀알’은 사실 그저 곡식 낱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작은 씨앗일 뿐입니다.
그러나 땅속 깊은 어두움, 그 숨 막히는 공간에 자신을 맡기고 부서짐을 받아들이면
땅속의 양분들과 융합하여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게 됩니다.
씨앗에서는 발견되지 않던 자신의 본모습을 꽃으로, 향기로, 열매로 온전히 구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은 두렵고 불안하며 불편한 시간을 받아들임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때로 놀라운 생명력을 낳는 은총의 여정이 되기도 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생존에만 집중하며 이를 집요하게 움켜쥐고 유지한다면
자기 보호와 방어는 이루어지겠지만 그 어떤 창조의 힘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좋아하던 밴드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라는 노래에 “빛나는 열매를 보여 준다 했지”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느님의 개입을 막고 폐쇄적으로 남아 있다면
그 어떤 빛나는 열매도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죽을 만큼 힘든 도전이 다가오면 자신을 보호하려고 맹렬히 저항하기보다
그 초대에 응하는 것이 진정한 생존의 지혜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