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튼 박과 “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카페 및 그 회원들에 대해서는 다른 카페의 글까지 가지고 와서 끊임없이 카페지기님 외 운영자들의 입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아있는 모든 게시한 글들과 댓글을 보고 정말 뭐가 잘못 됐는지 알아봐야 겠다는 마음으로 성경적인 근거와 기독교 역사의 기록들, 기타 관련된 서적들을 토대로 짚어봤습니다.
브라이튼 박이 말하는 ‘목사는 성경에 없다!’에 대해
우리 카페에서 많은 이슈가 됐던 사항으로 카페지기님이 손정훈 목사님의 글을 같이 올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를 찾아본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좀 길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목사가 성경에 있는가’ 로 에베소서 4장 11절의 말씀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에베소서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성경에 꼭 한 번 나와 있는 ‘목사’라는 표현입니다.
어원에 대해서는 손정훈 목사님의 글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 하시고 저는 기독교 역사 기록을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사牧師라는 칭호는 개신교가 등장한 16세기부터 사용했습니다.
성경 속에는 ‘목사’라는 직위가 언급된 적은 없었습니다. (이는 성경 원문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더 잘 알겁니다.)
헬라어 성경엔 목사라는 호칭이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헬라어(신약)성경을 보면 양을 치는 목자라는 뜻으로 ‘포이멘’이라는 단어가 18번 나오죠. 그런데 한글 성경을 보면 그 중 17번은 원문 그대로 목자로 번역을 했지만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만 목사라는 단어로 오역을 했습니다. 이건 한글 성경만이 아니라 영어 성경 중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킹 제임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Shepherd)라는 단어를 일부러 (Pastor)로 바꿔놨습니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신학자들이 함께 협력해 번역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목사’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 공동번역 성경은 원문 그대로 번역한다는 원칙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개신교측에서도 ‘목사’라는 오역을 일부러 첨가할 수 없었던 겁니다. 만약 있었다면 ‘목사’라고 반드시 번역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개신교측은 개역 성경보다 훨씬 성경 원문에 충실한 공동번역 성경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지금입니다.
엡베소서 4:11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공동번역성경)
또 한 가지, 목사의 유래에 대해서 위키백과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 5대 교구의 연합이었던 공교회(보편교회)는 11세기에 로마지역 교회가 갈라지게 되었다. 분리된 로마지역 교회가 자신을 스스로를 보편교회를 의미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라 칭하며 12세기에 로마교회의 대감독(대주교)을 교황(교종)이라 칭하며 교황 중심 교도권적 교회체제로 전환되면서 등장한 이후 400년간 유럽 민족들의 갈등, 정치 권력과의 결탁, 그로 인한 비리와 왜곡에서 벗어나 순수한 복음을 찾아야 한다는 16세기의 종교 개혁이 발생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등장한 복음주의, 개신교의 성직자를 사제와 구별해 지칭하게 되었다. (출처:위키백과)
; 이 기록 역시 목사라는 칭호는 종교개혁 이후 기존 사제와의 구별을 위해 지칭하게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기독교 역사서들을 보시면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목사牧師’라는 한자어는 고대 중국에서 백성들을 잘 이끈 뛰어난 관리에게 주어지는 칭호였습니다. 역시 "목자" 또는 "양치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 자체로 존칭이었죠. (출처:한국 위키백과사전)
세 번째로 손정훈 목사님의 ‘목사와 목자의 차이는 없다’는 부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차이는 있습니다.
목자나 목사나 같은 의미가 아니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 목자는 양치기란 의미로 사용되는데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 목자라고 했습니다.
손정훈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명시된 목사의 직무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명시된 목사의 직무>
; 장로교 헌법으로 목사는 “장로”입니다.
1.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이며 (렘 3:15, 벧전 5:2~4)
2. 목사는 그리스도를 봉사하는 종 또는 사자이며 (고후5:20, 엡 6:20)
3. 목사는 모든 교인의 모범이 되며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이며 (벧전 5:1~3)
4. 목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깨우치는 교사이며 (딛 1:9)
5. 목사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인이며 (딤후 4:%)
6.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청지기이다 (눅 12:42, 고전 4:1)
즉, 목사는 장로, 목자, 종, 교사, 전도인, 청지기의 모든 역할을 다 감당해야하는 직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우신 직분은 에베소서 4장 11절의 말씀과 같이 선지자, 복음 전도자, 목사, 교사입니다. 목사가 모든 직무를 담당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만약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명시된 목사의 직무가 성경적이라면 예수님께서 세우신 직분은 잘못 된 게 되는 겁니다. 즉 성경이 잘못 됐던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명시된 직무를 행하는 목사직이 잘못 됐던가 둘 중의 하나겠죠.
분별은 여러분이 하시길 바랍니다.
위키백과에 나온 목사직의 이해에 대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장로교와 같은 "원로제" 구조에서는 목사를 신도들 중 원로인 장로 중에서 선별된 직분으로 설교와 성례전을 수행하는 장로로 인식한다. 성결교회, 순복음계열 교회에서도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인 장로들의 한 명으로 목사를 이해한다. 침례교와 같은 "회중제" 구조의 목사는 단순히 은사로 교회에서 설교와 성례전을 거행하는 임무를 맡는, 회중교회와 같은 교회에서는 교인의 대표나 선별된 직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 신도들 중 원로인 장로 중에서 선별된 직분으로 설교와 성례전을 수행하는 장로로 인식한다고 나와 있으나 지금의 목사는 원로인 장로 중 선별된 직분이 아니라 신학교 출신의 목사고시 합격자가 기준이 된 지금의 제도가 성경과도 안 맞고 장로교 제도의 구조에서도 많이 틀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정훈 목사님이 제시한 여덟 번째 내용인 1645년의 “교회정치모범(14가지 규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모두 14가지 규정 중 두 번째 목사직분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학자이며’
; 주님의 제자들이 배움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 내용 역시 성경적이지 못한 철저한 인본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기름부음으로 알게 하신다고 하셨고, 학자와 같이 깨닫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스스로 학자와 같이 학문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후술하겠습니다.
열두 번째 ‘사도, 목사, 장로의 회를 존중하여 회의 다스림을 받고’
; 사도 직분이 지금 없다는 것과는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지만 이 당시만도 주님께서 세우신 오중사역자에 대한 흔적은 있는 듯싶습니다.
A.D. 398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는 “평신도는 성직자들 앞에서 설교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의해 그 자유함을 박탈당했다.(필립샤프 교회사 2권. 필립샤프.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6. p.138) 성직자들이 없이는 세례나 성찬 등도 금하였다. 이런 제약들이 이미 2세기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인간의 생각이 가미된 인본주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맹위를 떨친다. (출처:성경적 생활/박찬빈)
; 성경에 빌립은 집사로 기록되어 있는데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예수를 전한 것과 세례를 준 사례(행 8:35~38)를 보면 지금 목사의 직무를 초대교회에서는 집사도 행했다는 겁니다. 지금의 교회에서의 직분 및 역할들은 성경의 기록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기록이 있어 나누겠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즉위하기 직전에는 기독교사의 가장 혹독한 박해가 있었다.(A.D. 303~311) 그 박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이 박해는 이전에도 기독교에 대한 많은 박해가 있었지만, 이 박해의 공포는 지금까지의 모든 박해를 잊게 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말이다. 필립 샤프의 교회사를 인용하여 그 내용을 보기로 한다. (필립샤프 교회사 2권.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중략)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기독교가 시대 흐름을 타자 모든 이교도들이 기독교 안으로 유입되어 들어왔다. 그리고 황제는 기독교를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황제는 예배의 모형을 바꿨다. 황제 스스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를 원했다.(Eerdmans' Handbook to the History of Christianity. Dr. Tim Dowley. Lion Publishing. p.133) 가정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예배의 풍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권위 앞에 경건한 의식이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황제 앞에 경거망동을 금했다. 함부로 까불다가는 곧 죽음이었다. 그 경건의 모양이 예배에 도입된 것이다. 황제를 숭배하는 공인 이전의 이교도들의 예배 풍습, 즉 황제를 신으로 섬겼던 이교도들의 예배 풍습이 기독교에 접목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예배는 당연히 엄숙해야 했다. 향을 피우고 촛대를 놓아 분위기를 잡았다. 그리고 유대인의 뿌리를 잘라내기 시작하면서 기독교의 본질을 송두리째 바꾼다.(유대인의 뿌리를 잘라낸 구체적인 내용은 10-2-4-1. 유대인의 절기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기독교는 세상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실질은 하나님과 결별하고 그 종말을 맞게 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책들을 참고하라. 교회사 관련 서적 : 유대전쟁사 Ⅰ,Ⅱ, 듀대 고대사 ⅠⅡⅢⅣ, 아피온 반박문, 교회사 전집, 유세비유스의 교회사, 타키투스의 역사, 헤로도토스의 역사, 초대교회의 역사, 초대교회사, 단편 초대 교회사, 초대교회의 복음 전도, 기독교회사)
(중략)
혼합주의의 기원
혼합주의를 인간의 생각을 가미한 인본주의로 본다면 그 기원은 속사도 시대부터이다.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공인되기 이전의 기독교는 순수하였는가?”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리겐이 살았던 시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이때 오리겐은 이미 신플라톤주의와 스토아학파의 원리를 기독교의 원리와 결합시키려고 시도했다. (메시아닉교회, 로버트 하이들러. WLI. 2008. p81) 기독교의 진리를 해석하는 저작물들은 2세기 말에 나타난 마르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신학적 체계의 필요성에 의해서 나타난다. 이때 나타난 인물들이 이레니우스(Irenaeus, A.D. 130년경 서나머 출생),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A.D. 215년 사망), 카르타고의 터툴리안(Tertullian A.D. 150~212년경), 그리고 오리겐(Origen)이었다. 이들은 모두 교회의 스승들로 불리는 사람들로서(초대교회사.유스토 L. 곤잘레스. 은성. 2006. p.115)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의 사람들이다. A.D. 100년경 시리아 지방 어느 시골 교회의 규범서로 사용되었던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라는 제호의 <디다케>가 1873년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세상에 발표되었는데, 이 속에 주님의 가르침과 다른 인간의 생각으로 권면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보면(디다케. 분도출판사. 2010. 교회전례 7~8장. 교회규범 11장 참조)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온전한 뜻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에 의한 성경의 해석이 이미 규범으로 자기 잡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기독교 공힌 이후, 교부철학의 태두로 여기고 카톨릭, 개신교 할 것 없이 “신학의 창시자”라 칭하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콜롬비아 백과사전(The Concise Columbia Encyclopedia)은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를 연결하고, 플라톤의 이론과 신플라톤주의를 기독교 신학과 합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교회사에 대한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혼합주의의 기원이 속사도 시대부터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출처:영의 원리/박찬빈)
* 참고로, 브라이튼 박과 책 저자인 박찬빈은 동일인입니다. 그의 저서 내용을 발췌한 이유는 저명한 역사적 기록서와 신학자들의 책 내용을 들어 서술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내용들은 충분히 객관적인 사실로 접할 수 있기에 원문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한 가지 더 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의 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즉, 사도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서 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지는 인내와 이적들과 능력 행하는 것으로 판명된다고 설명한다. 즉,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오래 참는 인내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는 것과, 기적과 병 고치는 은사 외에는 어떤 사람이 사도인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을 사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고전 4:20) 사실을 바울은 사도의 표에 접목시킨다. 이 방법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 함께 동역을 한다는 표지는 능력을 행하지 않고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은사 사역자들 없이는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교회가 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귀신들린 자들을 위해서 필요했고, 병든 자들을 위해서 필요했다. 병든 자들에게 의원이 필요했다.(눅 5:31) 은사 사역자들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출처:그리스도의 영/박찬빈)
고후 12:12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개역)
고후 12:12 정녕 사도의 표적들이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력 행함으로 판명되었거니와 (한글킹)
예수님께서 세우신 오중사역자들이 지금 없는 현실에서 지금의 목사가 사도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면 바울이 말한 사도의 표가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가능했던 일이 지금 없다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이 아닐 겁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 속의 인물들, 즉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이 만나서 동행했던 그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겁니다.
사탄의 계략대로 성경 속의 인물들처럼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도록 가려져 있는 게 많다면 지금 우리의 신앙도 철저하게 점검을 해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카페지기 영심이님의 말대로 브라이튼 박님의 강의 내용을 들어보면 목사들을 향한 욕설이 난무합니다. 그리고 제 사견입니다만,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손정훈 목사님이 게시한 글 중 목사의 직무나 사명, 교회정치모범의 각 항목들을 살펴보면 그 내용대로 목회를 하는 목사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브라이튼 박의 욕설은 이런 목사들을 향한 욕설이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한 주의 종에 대한 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강의를 들어보면 성경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만 욕을 합니다. 그 외에 다른 메시지들은 모두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전하고 있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들도 어렵지 않게 분별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목사직이 성경에 없다는 말도 기독교 역사기록의 근거를 두고 한 말인 점을 볼 때 전혀 이단시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단지, 평소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서 욕설들이 귀에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주의 양을 먹이지 못한 자들을 향한 외침이니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역사 처음 200년 동안 진리와 비진리가 부딪치는 현장에서는 저속한 욕설이 난무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기독교역사. 폴존슨. p.110)’ 그건 영생의 문제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욕설로 인한 거부감으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브라이튼 박님이 전하는 메시지에는 잘못된 부분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 목사직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번역과정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역임이 틀림없습니다.
- 목사라는 직분은 성경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장로교 제도의 구조에서도 많이 틀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사도 이후의 교회는 목사가 주직임을 장로와 집사는 보조직음을 칼빈과 웨스터민스터 총회에서 확정하였다는 기록들에 의한다면 목사는 사도의 역할을 한다는 건데 사도 바울이 말한 사도의 표적이 지금의 목사들에게 나오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부분을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학교 출신의 지금의 목사들이 과연 신학교에서 예수님과 연합하는 방법을 배우는지, 그래서 성경 속의 제자들과 같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름부음으로 가르침을 받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그대로 듣고 전하는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대로 사역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목사는 사도 바울처럼 주님께 계시로 배웠던 방법으로 주님께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신학교에 가서 인간이 연구한 결과 들을 돈 주고 배운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거저 받은 자들이 아니니 거저 나누어 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다는 겁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12장 12절의 말씀처럼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 지금의 목사들에게도 나타나야 하나님과 함께함을 알 수 있다는 건데 이런 목사님들이 과연 얼마나 계시는지 이 부분은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님이시라는 성경의 기록 역시 무색하게 만드는 주장일 것입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 능력으로 역사하실 겁니다. 그 하나님과 함께하는 목회자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라 여겨집니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현 목사들을 향한 브라이튼 박님의 욕설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초대교회 200년간 진리와 비진리가 부딪치는 현장에서도 저속한 욕설이 난무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을 제안합니다. 즉, 그 때에도 욕을 했으니 지금도 욕을 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영생이 달린 문제이기에 비진리와는 타협할 수 없는 입장이 하나님의 사람, 참된 주의 종일 것입니다.
- 브라이튼 박님의 메시지는 성경을 놓고 봤을 때 성경을 벗어난 내용은 없었습니다.(그의 강의를 봐도 그랬고, 그의 책들을 꼼꼼히 봐도 틀린 곳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이 만나 동행했던 그 하나님이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하신다면, 분명 미혹되지 않게 분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우려로 인해서 진정한 메시지를 놓친다면 그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 우리 카페에서 브라이튼 박을 검색해 보니 하나님의 교회(이단)와 관련있다는 글도 봤는데, 그 쪽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그 카페에 가보시면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브라이튼 박님의 메시지는 이단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충격에 가깝다는 게 저의 입장입니다.
참고로 영심이님께서 제게 ‘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 카페의 회원이냐고 물으셨는데 그의 강의나 책들을 참고하기 위해서는 가입을 해야 하니 저 역시 그 카페의 회원이 맞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옛적 그 선한길, 창골산 봉서방 등 카페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글을 게시하는데 문제가 돼서 이 게시한 글이 삭제가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 카페는 수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서 나눔이 있는 카페이기에 잘못 전해진 부분에 대해서는 저의 신앙의 양심상 전해야 할 것 같아 게시합니다.
또한, 가입한지 얼마 안됐다는 이유를 들어 '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카페의 회원이 아니냐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 동안 손님으로 카페 게시글들을 보다가 뒤늦게 가입을 했고, 게시한 글도 있었는데 이 번 일을 계기로 오해의 여지가 있어서 삭제했음도 알려드립니다.
한 가지 더, 그 동안 우리 카페에 글을 게시한 많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브라이튼 박님의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그들의 글들을 대부분 삭제하고, 강퇴시킨 것은 그들로 자신들의 입장을 말할 수 없도록 처리를 하시고 영심이님만 그들을 악질 이단시 취급하신 것은 잘못된 거라 여겨집니다. 그들의 입은 막고 영심이님만 말함으로 수많은 회원들로 잘못 인식되게 하셨다는 건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누구나 잘못 알 수 있고, 오해할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더 이상의 소통은 물론이고 나눔은 없다고 여겨집니다.
지금의 이 혼탁한 시대에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이 바울이 말한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가에 대해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믿는 자를 실족시키기 위해 지금도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실족시킬 믿는 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바울이 권면한 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온전히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혹시나 해서 주귀신 카페에 갔더니 벌써 삭제 됐네요...
거룩한척, 맘 넓은 척 하더니 영심이 하는 짓이...ㅉㅉㅉ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 책장사하여 돈을 벌려는 브라이트 박씨에 대한 글,
더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안 보면 되지 쫓아다니면서 헛소리 해대는 님의 댓글 볼때만다 짜증나오.
배알꼴리면 안 보면 되지 쫓아다니면서 꼭 한마디씩 해대는 너님의 글,
더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근거해
얻을것은 얻고 버릴것은 과감히 버릴줄 아는 분별된 지혜가
주안에 있다하는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데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전체를 부정해 버리는 습관화된 자신을 돌아 보지요.
근데 이글 누가 쓴거임?
누가 주귀신에서 개테러당할라고 올렸심?
상당히 맘에드네..
브라이튼 박이라는 사람이나 이 글을 쓰신 분은 너무나 커다란 싸움을 시작하셨습니다.
목사라는 명칭 하나를 트집잡으면서 수억,...아니 이미 돌아가신 분들 까지 하면 수 십억의 사람들의 신앙의 근간을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예배의 인도자요, 성경의 교사요, 신앙의 지도자요, 돌봄의 천사요, 삶의 위로자였습니다.
목사라는 직위는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 다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상이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만큼 의지하고 따라가는 푯대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에 대하여 명칭 자체로 부터 그 존재의 의의조차 흔들고 있습니다.,
참 위대하시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무모
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식 나부랭이를 가지고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허무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협박이냐고 하실런지 모르나 협박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그냥 걱정이 되어 던지는 말일 뿐입니다.
신앙은 앎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머릿속엔 지식이 들어있을지 모르나 가슴 속엔 좋은 것이 들어있는 것 같지 않아서 말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과의 싸움이 안되길 바랄 뿐입니다.
@onukang 댁이 좋아하는 주귀신 영심이네한테서 스크랩된 글이네요.
근데 님이 스크랩한 글하고 이 글하고는 참 수준차이가 많이나죠?
운영진이 다룰 문제가 아니냐구요...? ㅎㅎㅎ
목사님, 참... 평신도들을 여러모로 졸로 보고있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수의보혈 님의 말씀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세우신 오중사역자는 없어도 되는 걸 세우셨다는 건데,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고 믿으신다면 절대로 인간적인 생각을 섞어서는 안 됩니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지 않고 그게 아깝다고 그걸 싸매면서 그 위에 아무리 좋은 걸 덮어도 결국엔 그 썩은 부분으로 모든 것들을 잃게 되는 겁니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지금의 목사들이 신학과 교리에 매일 수밖에 없는 건 그에 대한 지식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죄와 행실과 열매의 문제가 있는 겁니다.
잘못됐다는 걸 인식할 때, 그나마 고쳐질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 겁니다.
@예수의보혈 맞습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직분 갖고 나무라신적 없습니다.
심지어 왕직같은 것도 본래는 싫어하신다고 사무엘에게는 말씀하셨지만 백성들이 요구해서 세우신 뒤 부터는 그것을 문제삼지 않으셨고, 사울이 맘에들지 않자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죠.
왕직을 없앤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카페에 가셔서 강의를 들어보시면 이 분이 무엇을 말하는 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어설픈 성경지식과 신학적이해를 갖고 말하는이들이 많은게 한국교계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신학교가 없는게 또한 한국입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목사는 없다는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분명 목사가 해야하는 역활이며 영적으로는 목자의 계승자들인 것입니다.
사도-속사도-목사로 이어지는게 그동안 이어져오고 이해되어온 목사의 영적계보입니다.
여기에 주님도 다른 말씀을 안하시는데 오직 사람들이 물고 띁느라 사단의 궤계에 속고잇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사도-속사도-목사로 이어지는 게 목사의 영적계보라 하셨습니까? 이미 속사도 시대부터 인본주의가 섞였다는 게 기독교 역사에 나와있는데 그 계보를 따른 목사가 인본주적이라는 게 님에 의해 더 분명해 졌습니다.
영적 계보라 하셨는데, 목사가 영성이 있습니까? 성경에 나온 사도들과 능력으로 함께하시면서 일을 하신 주님을 지금의 목사가 자신들의 사역을 통해 증거합니까?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 나오는 사도의 표적이 지금의 목사들을 통해 나옵니까?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장현석 그렇게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교회와 단절하셨고 방치하셨다는 뜻이 됩니다.
그동안 구원사역도 없었겠나요?
@갈렙 특이하군요. 그렇게 생각을 하다니...
성경의 기록들이 기억이 안나시나 봅니다. 님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시는 거든가...
이스라엘 백성이 숫하게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단절하시고 방치하셨나요? 결국 다시 내게 돌아오라고 선지자를 통해 설득을 하셨습니다.
제가 만난 하나님은 절대 섞지 않으시고, 거짓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십니다. 상황에 따라 섞기도 하시고 기짓에 힘을 보태주시는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경은 사사로이 푸는 게 아니라고 말했는데 님은 그 말씀을 참 귓등으로 듣고 있나봅니다. 위의 댓글을 봐도 잘못 인식하고 있어 짚어드릴 까하다가 해도 못 알아 듣도 님의 생각만 옳다 할테니 생략합니다.
@갈렙 하나님 앞에서 잔머리 안 통합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고 심판대 앞에서도 님의 그런 변명이 통할 것 같습니까?
잘못 된 것을 인식했을 때, 바로갈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기는 겁니다.
아닌 건 아닌거고, 그걸 붙들고 이런 저런 쓸데 없는 님의 논리가 하나님 앞에서 통할 것 같습니까?
죽어봐야 알겠습니까? 기회의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하길 바랍니다.
@장현석 무슨 질문을 하거나 이의를 달면 혈기를 부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심판, 지옥 운운 입에서 저주를 품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 님도 하나이군요.
더이상 님과 대화 안하렵니다. 말걸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