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감사하며, 4월의 일기, 農者天下之大本
‘農者天下之大本’
예로부터 참 많이 들어온 말이다.
농사 ‘농’(農)에 놈 ‘자’(者)에 하늘 ‘천’(天)에 아래 ‘하’(下)에 갈 ‘지’(之)에 큰 ‘대’(大)에 근본 ‘본’(本) 해서,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읽고, 뜻은 곧 이렇다.
‘농업이 바로 천하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큰 근본’
비록 규모는 작지만, 나도 농사를 짓는다.
예로부터 지은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서울에서 ‘작은 행복’이라는 상호로 법무사를 개업해서 현역으로 일하고 있을 때, 내 고향땅 문경시 문경읍 교촌에 2필지 650여 평의 밭을 사들여서 생전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농사를 짓기로 작정하고 그 밭을 사들인 것은 아니다.
훗날 내가 법무사 현역을 그만 두었을 때, 아내와 함께 만년의 한가로운 삶을 즐길 생각에서, 작은 집 한 채 지을 터를 미리 잡아놓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그 밭을 사들인 것이다.
그런데, 허구한 날을 빈 밭으로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 눈총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상추도 심고, 쑥갓도 심고, 부추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고추도 심고, 땅콩도 심고, 메밀도 심는 등, 슬금슬금 작은 농사를 하다 보니, 그게 그만 큰 농사가 됐고, 비록 방거치이기는 하지만 나와 아내는 어느덧 농군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어려웠다.
콩 심은 데 콩만 나고, 팥 심은 데 팥만 나면, 농사가 무얼 그리 어렵냐고 할 것이지만, 콩 심은 데나 팥 심은 데나, 콩과 팥보다 잡초가 더 많이 나는 것이 농사 현장의 풍경이고 보니, 그 잡초를 다 솎아내야 제대로 콩과 팥을 수확할 것이어서, 농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잡초를 한 번 솎아내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 번 솎아내도 소낙비 한 번 지나가면 또 잡초가 무성해지고는 해서, 솎아내고 또 솎아내기를 반복해야 했다.
마치 전쟁하다시피 혼신을 다해야 그나마 작은 소출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곧 농사다.
“한 3년만 지어봐. 아마 덧정 없을 거야.”
내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그 처음에, 나와 유난히 친한 중학교 동기동창인 어느 친구 하나가 이차저차 요차조차 농사에 대한 조언을 하면서, 내게 그렇게 경고 한 마디도 보탰었다.
농사를 두고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한 것도, 바로 그 농사짓기의 어려움 때문이 아닌가싶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 보다 더 어려운 난관이 있었다.
처음에는 농사짓기에 그런 난관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아내와 오순도순 정겨운 어울림만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농사를 지어가면서 농사로 인한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바로 ‘다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렇다.
나는 관리기로 땅을 파서 뒤엎는 것이 우선이다 생각하는데, 아내는 상추밭에 물을 주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나는 오늘 농사는 토마토 따는 것으로 끝이다 하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가지도 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나는 비료를 안 주고 밭을 갈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퇴비를 뿌려놓고 밭을 갈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나는 이 정도 잡초를 솎아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잔챙이까지 다 솎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다.
생각이 다르면 맞추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쉽지를 않은 것이다.
힘이 들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든다.
밭을 갈아엎으려고 관리기 시동을 걸어 막 몰고 텃밭으로 향하는데, 아내가 딱 가로막고 나서는 경우다.
하는 말이 이렇다.
“그냥 갈면 어떡해요. 퇴비를 뿌리고 갈아야지요.”
퇴비를 뿌리는 일이 보태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텃밭에 퇴비가 없다는 것이다.
차를 몰고 가서 퇴비를 사와야 하고, 그러려면 뻑뻑한 줄을 힘껏 당겨서 기껏 걸어놓은 관리기의 시동도 일단은 꺼야 하는데, 그것이 가외의 일이 되어서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그 퇴비를 사오는 과정에서 차 안에서 퇴비 냄새가 배어들 수밖에 없는데, 그 냄새가 또 싫다.
그렇게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면, 주둥이가 툭 튀어 나오고 그 튀어나온 주둥이로 구시렁거리게 되는데, 이제는 아내가 내 그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다.
결국 티격태격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고 만다.
만년의 여유로운 삶을 위해 마련한 텃밭이, 자칫 부부 갈등의 텃밭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내 입장에서는, 바로 그 생각 다름이 농사짓기를 참 어렵게 했었다.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던 2024년 4월 10일 수요일의 일이다.
일찌감치 아내와 같이 읍내 문경서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귀중한 한 표의 선거권을 행사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보수 정당인 기호 2번 ‘국민의 힘’ 후보인 임이자를 선택하고,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역시 보수 정당인 기호 4번 ‘국민의 미래’를 선택하는 기표를 했다.
아내는 보나마나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남편인 내 뜻에 따라 선거를 했을 것이었다.
한 지붕 아래 한 솥밥 먹은 부부사이인 한, 뜻이 다를 순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서로 뜻이 다르면, 끊임없는 설득을 거친 설복으로, 그 다른 뜻을 맞춰야 한다.
적어도 시대의 미래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선거에서만큼은 그렇다.
뜻이 다르면서도 부부입네 하면서 한 울타리에 산다는 것은, 늘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말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아내가 만약 그렇다면, 아예 갈라서서 딴 인생을 살아야하는 것이 어쩌면 지혜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내 뜻을 따라주는 아내가 참 고맙기만 하다.
이날 투표를 끝내고, 나와 아내는 ‘햇비농원’ 우리들 텃밭으로 올라갔다.
봄맞이 농사를 해야 할 일이 있어서였다.
아내는 쇠스랑으로 텃밭의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나는 아내가 정돈한 그 텃밭을 관리기로 갈아엎는 등, 오후 반나절 땀 흘려 농사를 지었다.
나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내의 도움이 있어, 이날의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농자천하지대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