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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아침상이 들어왔다. 노란 좁쌀에 고구마를 넣어 지은 밥. 달콤한 게 죽보다는 훨씬 좋았으나 오늘은 영 밥맛이 안 난다. 몇 숟갈 뜨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어, 아부지 기성회비 좀 주셔유.” 큰 죄라도 지은 양 이 말을 간신히 하고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밥만 퍼먹었다. 밥 한 사발을 다 먹도록 아무 말도 없는 엄마 아버지.
형아, 동생들은 학교 길을 떠났으나 나는 책보를 등에 메곤 마당에 서서 기성회비 달라고 조르며 서 있었다. “빨리 줘유.” 담에 줄게 어서 가라는 엄마. “안 돼유. 오늘 안 가져가면 벌 받어유.” “요놈이 담에 준다니까 속을 뒤집어놔, 왜?” 싸립문 밖까지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따라오시던 엄마는 담에 꼭 줄 테니까 얼른 가라는 말을 하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 p.9~10
키도 나보다 작고 힘도 없으면서 선생님이 봐준다고 언제나 얕잡아보는 게 화가 났는데, 오늘은 발로 차기까지 하니 울컥 화가 치밀어 “얌마, 왜 때려” 했더니, 돈도 안 내는 거지 같은 새끼가 덤빈다며 한 번 더 걷어찬다. 거지라는 말에 화가 난 나는 달려들어 밀치고 배에 올라타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때려주었다.
--- p.23
우체부가 오면 행여 영숙이 편지 또 있나 달려가보고, 고운 글로 곱게 써내려간 편지. 읽고 또 읽고…… 좋아한다는 대목엔 가슴이 떨려오고, 마음이 들떠 하늘을 날 것만 같다. (…) 하얀 눈이 사르르 녹아 흐르는 날, 서울로 식모살이 떠난다고 편지가 왔다. 하늘이 돈다. 땅이 돈다. 눈물이 나도록 슬퍼온다. 담배 두엄 지어 나르는 어깨가 더욱 무겁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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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가난한 시절, 가장 가난한 이들의 풍경
가난의 풍경은 소풍날 가장 두드러진다. 봄소풍 때 도시락을 싸들고 신나게 아랫고개를 내려가다가 이슬 내린 풀밭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검정 고무신 코빼기가 쭉 찢어졌다. 우선 급한 대로 칡넝쿨을 끊어 고무신과 발을 고정시켜 학교로 갔다. 하지만 “보물찾기 시간에도 난 아무것도 찾지 못했으며, 이쁘게 싸온 김밥이며 도시락에 너무나 기가 죽고, 나의 초라한 꽁보리밥에 짱아찌 도시락이 부끄러워 바위 뒤에 몰래 숨어서 퍼먹어야 했다.” 창피함이 극에 달한 것은 저자의 집이 어우리로 기르는 소의 주인집 달 은자의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거지야!” 이 단어가 가슴에 콕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몇 달 후 가을 소풍날 놀림당한 기억 때문에 소풍을 포기한 채 누렁이를 데려가 소풀을 뜯기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반 동무들이 그 길을 지나간다. “이런 몰골을 반 동무들에게 보일 순 없지.” 그는 “부지런히 소를 몰고 개울을 건너 보이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가 소풍이 끝나 모두 돌아갈 때까지 숨어 있었다.” 아이의 부끄러움은 그해뿐 아니라 어린 시절 내내 장면을 바꿔가며 문득문득 스며나왔다.
학교를 파하고 가끔 들르는 외가에는 언제나 반겨주는 외할머니, 외삼촌 내외가 계셔 늘 가고만 싶다. 특히 외숙모님은 보리밥을 한 사발 눌러 담아 상을 차려주신다. 그날은 뜯어진 바지도 벗겨서 꿰매주시고 머리 온 군데 난 부스럼에 고약을 붙여주시기도 했다. 그러곤 집에 가는 길에 외삼촌이 이쁜 토끼 한 마리를 들려주셨다. “매일같이 학교 갔다 오는 길엔 토끼가 좋아하는 풀을 골라서 뜯어다주고, 똥도 치워주며 이쁜이가 나날이 잘 크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어느 날 빨간 눈알로 날 반겨주던 이쁜이가 갑자기 보이질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신 엄마가 나한테 와 ‘아랫집 개가 물어 죽였어’라고 말하셨다. 저자는 그만 풀썩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안 돼유. 그놈 내 용서 못해유. 꼭 두들겨 패서 이쁜이 원수를 갚을 거유” 하며 발버둥 쳤으나 엄마의 말림에 영영 가질 못했다. 진실은 밤에, 그것도 소곤소곤거리는 말들 속에서 밝혀지는 법. “‘저 애가 그렇게 예뻐하는 걸.’ 아무리 약 할려 했어도 잘못이라는 아버지의 말. 그래도 당신이 이거라도 먹고 힘을 내야 우리가 잘 살 거 아니냐는 엄마의 말.” 사실의 전모를 알게 돼 이제 원수도 갚을 수 없지만, 저자는 기운 없어 하며 자주 누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밤새 이불을 뒤척이며 잠을 못 이뤘다.
아이가 본 어른들의 삶
“에구, 고얀 인간.” 엄마가 큰아버지를 부르는 말이었다. 동네 문전옥답은 다 소유한 데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양반입네 하고 살던 가문에서는 꼭 자기 삶 하나 간수 못해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동네 친척과 주민들 입방아에 오르는 자식이 꼭 한 명씩 있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작은할머니 소생이라 늘 천대만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보국대에까지 끌려갔다. 게다가 아버지는 큰댁 머농사를 다 지어주며 가난 속에서 기죽어 살았건만, 큰아버지는 “그 많은 재산 다 소유하시곤, 겨울이면 노름판에서 이곳저곳 다 날려보”내 “그럴 때마다 엄미와 아버지께선 한숨을 지으며 욕을 해댔”던 일을 목격한 게 아픈 기록으로 남겨졌다.
시골에서는 과부와 이웃집 유부남의 이불 속 장면이 어린아이의 눈에도 쉽게 목격되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돌아와 풀 뜯기러 소를 몰고 나갔다. “외딴집 쪽으로 소를 몰아 풀을 뜯기다보니 누렇게 탐스레 잘 익은 살구 열매가 나를 유혹한다. 소 꼴비를 소 등에 얹어놓고는 살금살금 살구나무에 올라 잘 익은 살구 알을 따서 입에 넣으니 우와 맛 좋다.” 이때다! “위 방문 사이로 과부 아줌마가 끙끙대는 소리와 함께 보인다. 최목수 아저씨랑 옷을 홀랑 벗고 열심히 방아를 찧고 있다. 잘못하면 들켜 혼구녕이 날 텐데.” 나무에서 내려가자니 들킬 것 같고, 다리는 점점 저려오고, 게다가 누렁이는 어느새 남의 집 옥수수밭에 들어가 옥수수를 모조리 뜯어 먹고 있었다. 대략난감의 상황에서 저자는 나무에서 내려오는데 그만 주머니 속 살구들이 떨어지는 소리에 최목수 아지씨가 쫓아 나와 멱살을 움켜잡았다. 목수 아저씨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하고 겁을 주며 돈 십 원을 준다. 겁에 질린 나는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하고는 십 원을 받아들고 안심을 했다. 허어, 살구 몰래 따먹고도 혼도 안 나고 거기다 돈까지 얻었으니 오늘 횡재했다.”
공장 노동자로 시작하는 첫 서울살이와 그 후의 나날들
꼬끼오, 새벽닭이 드디어 운다. 짝사랑하던 영숙이는 서울로 간 지 오래다. 서울 삼청동 고둥학교 선생님 집에 식모로 살며 독학한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저자 역시 농사일의 지긋지긋함에 몸서리치며 서울행을 결심했다. “서울은 공부도 할 수 있는 천국이구나.” 거기 가서 영숙이도 만나고, 공부도 하고, 꼭 출세하리라. 때마침 서울 사는 한동네 형이 고향에 다니러 왔다. 저자는 밤중에 몰래 형을 찾아가 나도 서울로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반드시 이곳을 떠나리라는 결심으로 누나의 숨겨논 돈을 훔치고, 형아 수학여행 갈 때 산 가방도 몰래 꺼내 옷 몇 가지 챙겨서 헛간 볏짚 속에 숨겨두었다.
“지긋지긋 힘든 지게질도, 농사일도 이젠 안녕이구나. 서울 가 공부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벌어, 꼭 출세해서 돌아오리라. 누나야, 동생들아 모두 잘들 있거라.” 하지만 첫 번째 서울행 시도는 엄마한테 목덜미를 붙잡히면서 처절하게 실패했다. “붙잡혀 집에 오니 서럽기만 하다. 서울 가 공부하고 출세하려는데 왜 못 가게 하느냐. 내가 머슴이냐. 부지깽이를 휘두르는 엄마의 손목을 잡고 대들었다. 그래 차라리 죽자! 평생을 지게질로 살 바엔 죽는 게 낫겠다. 광 구석의 양잿물을 찾아 들고 나오는데, 누나가 비명을 지르며 가로챈다.”
그 후로 도망가는 데 실패하길 몇 차례였다. 하지만 틈틈이 칡넝쿨을 끊어다 시장에 가서 열심히 판 덕분에 다시 서울 갈 차비를 몰래 마련할 수 있었다. 온몸은 풀에 스치고 베여 독이 올라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신이 났다. 그러곤 마침내 서울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저자가 처음 도착한 곳은 마포 공덕동 굴다리 밑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화려한 서울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집들과 꼬불꼬불 이어지는 골목길은 질척이는 흙길로 고향의 촌길만도 못한다.” 동향 출신의 형이 있다던 알루미늄 공장을 찾아갔건만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코를 찌를 듯한 독한 냄새가 풍기고,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음 속에 들어선 나를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다. 형은 그곳을 이미 떠난 터라 저자는 공장 바깥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밤에 공장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잠이 들었다. 첫날 공장의 밤을 시작으로 저자의 파란만장한 서울살이 일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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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리뷰 (0건)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26일 발송한대요
기다리는 기쁨까지 두배입니다
YES24에 올라와 있는 글이네요.
산골짝 님이 지울 수 있으면 중간 부분은 지웠으면 좋겠어요.
재인쇄에 들어가야 하는데...^^
ㅎ 지웠어요
Yes24 구글 검색후
켑쳐해서 갤러리 저장해도 사이트 바로 이동 구입 되던데요^^
아 그런방법도 있군요 ㅎ
이종옥작가님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습니다.
멋져유~~
엥? 그류? 동상? ㅎ
축하축하드립니다.
어서 빨리 책주문 넣어야겠어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가득하네요~
감사합니다
별것도 아닌걸 축하해주니 몸둘봐를 모르겠어요
저도 주문한 책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배송 시작됐다고 문자 왔네요.
괜히 설레입니다.
초판, 재판, 삼판 계속 인쇄되어나가기를요.^^*
아구 초판 팔려 출판사 적자만 면해도 감사하겠어요
@산골짝 출근 전 받아서
들고 출근합니다. 책도 넘 예쁩니다.^^*
다시 한번 축하 드려요
인터넷 주문도 되는군요
주문 합니다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어릴적 좋은 추억이 별로라 빗소리 정겨움에 홀로앉아
이제라도 좋은 추억 만들고 있습니다
도회지서 사셨어요?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산골짝님~!!
기다리던 책이 나왔으니
대박날 것입니다 ..
바람재에 이렇게 멋진 작가님과 힘께여서
자랑스럽습니다 ..
감사합니다^^
싱크로율 100%, 어쩜 내 어릴적 모습이랑 이리도 똑 같을 수가, 서울로 가출한 것 까지도, ㅠ ㅠ
아~ 어린시절이 같을수도 있군요
언제 만나 이야기 꽃을 피워봐야 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