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강원도 동해시 해안에서 북한 무장간첩 시신 1구와 침투용 수중추진기 발견
▲1998년7월12일 무장간첩 시체가 발견된 동해시 부근 해역에서 발견된 수중추진기. 1983년 북한이 사용하기 시작한 수중추진기는 유도탄 모양으로 3~5명이 올라 타거나 매달려 수중-수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비이다.잠수복 차림에 기관단총을 휴대한 북한 무장간첩 시신 1구와 침투용 수중추진기 1대가 12일 오전 9시20분께 강원도 동해시 어달동 해변에서 발견됐다.
국방부는 이날 “잠수복에 기관단총 등을 휴대한 변사체 1구와 침투용 추진기 1대가 발견돼 군, 안기부, 경찰 관계자들이 합동신문을 벌이고있다”며 “북한 무장갑첩이 침투 도중 높은 파도에 휩쓸려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북한 무장간첩이 침투한 것은 6월 22일 북한 잠수정이 침투한지 불과 20일만의 사건이었다.군 당국은 이날 오전 무장간첩 시신과 침투용추진기가 발견되자 해당지역에 대침투작전 때 발령하는 ‘진돗개 하나’를 내렸 으며 경찰과 함께 무장간첩의 내륙 침투 가능성에 대비해 주요 길목에 검문소를 운영하는 등 경계태세를 강화했다.이날 발견된 시신은 신장 1백68㎝ 가량으로
잠수복 차림에 몸에 쌍열산소통,수경, 빨대, 모래색 점퍼, 초콜릿 1개, 미숫가루1봉지 등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체코제 기관단총 1정과 실탄이 든 탄창 2개,
사각 수류탄 1발, 단검1개, 수중 송수신기 1개 등이 든 청색가방을 휴대하고 있었다. 군 당국은 발견 당시 시신의 입속에 응고되지 않은 피가 묻어 있었으며 산소통에서 공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상태였던 점으로 미뤄 숨진지 24-48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시신을 처음 목격하고 군 당국에 신고한 이장수씨(30)는 “시커먼 물체가 파도에 밀려와 가까이 다가가보니
잠수복을 입은 시체였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시신이 발견된 해안가에서 70여m 떨어진 바닷가.에서 침투용 추진기가 발견됐다.침투용 추진기는 길이 1백57㎝, 직경 33㎝ 크기의 원통형 배로 공작모선이나 잠수정 등이 해안가에 도착한 뒤 공작원 등을 해변에 침투시킬 때 사용하는 특수장비다.군 당국은 그러나 10일 또는
11일 밤에 공작모선이나 잠수정 또는 잠수함이 우리 해안에 접근한 흔적을전혀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잠수정 침투사건에 이어 또 다시 해안 경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2009년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중심도시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에 의한 대규모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 3000명 이상의 군중이 우루무치의 인민광장, 해방로 등 도심에 모여 시위를 벌여 진압 경찰 1000여명과 충돌, 140명이 숨졌다.
➡️2009년 일본 자민당, 도쿄도의회 선거 대참패
➡️[2005년]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해군대형수송함 독도함 진수식
👉🏿 12일 오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조선소. 한국 해군의 위상을 한 단계 높여줄 대형상륙함(LPX) 1번 함 ‘독도함’이 처음 그 위용을 드러냈다.
독도 수호의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독도함’이라고 명명된 동북아 최대의 대형상륙함은 자태부터 달랐다. 첫눈에 들어온 독도함은 엄청난 크기에서 오는 ‘웅장함’ 그 자체였다. 배의 갑판 길이는 199.4m, 폭은 31.4m나 됐다. 이 헬기 갑판에서는 6~8대의 UH-60 기동헬기가 동시에 뜨고 내릴 수 있다.
독도함은 크기만큼이나 능력도 엄청나다. 이 배는 한 번에 해병대 1개 대대 병력(720여명)과 최대 70대의 전차를 실을 수 있다. 여기에 차량은 최대 200여 대, UH-60 기동헬기와 AH-1 공격헬기 15대, 전차 등을 싣고 40노트 이상 속력으로 적 해안에 상륙할 수 있는 고속 공기부양정(LCAC) 2척도 탑재 할 수 있다.
독도함은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최대’를 자랑한다. 세계 2대 해군 강국으로 평가받는 일본이 보유한 ‘오오스미급’ 상륙함도 8900t 정도이며, 중국도 독도함에 견줄만 한 상륙함을 갖고 있지 않다.
해군 관계자는 “독도함은 항공과 해상을 통한 상륙작전이 가능하고 앞으로 이지스함과 한국형 구축함 등으로 구성될 ‘전략 기동함대’를 지휘하는 지휘함 역할도 하게 된다”면서 “대양해군이라는 한국 해군의 꿈과 목표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말했다.
해군은 향후 독도함을 해군 작전뿐 아니라 유엔평화유지활동(PKO)과 쓰나미 등 국제적인 재해재난 구호활동에도 투입한다는 생각이다.
이날 진수식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윤광웅(尹光雄) 국방장관, 남해일 해군참모총장 등 정·관계 주요 인사와 해군, 업계 관계자 4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에는 미국과 영국, 독일, 중국 등의 14명의 외국 무관들이 참석했지만 일본 무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2004년 인도네시아 첫 대통령 직접선거.
➡️[2004년] ‘형광닭’ 유전자 변형 성공, 치료용 단백질 대량생산 길 열려
👉🏿 국내 연구진이 몸에서 형광색 빛이 나는 유전자 변형 닭을 처음으로 개발, 달걀을 통해 인체에 유용한 단백질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대구가톨릭대 의대 김태완(金泰完·49) 교수는 해파리의 녹색형광유전자(GFP)를 닭에 주입, 평소에는 부리나 털이 여느 닭과 다를 바 없지만 어둠 속에서 자외선을 비추면 밝은 녹색을 띠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12일 밝혔다.
형광유전자는 유전자 변형이 제대로 됐는지를 확인하는 데 이용한다. 유전자 변형을 마친 뒤 자외선을 비춰 형광색을 띠면 GFP와 함께 주입한 다른 유전자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닭에 원하는 유전자를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의미를 갖는다”며 “앞으로 달걀에서 사람의 조혈촉진단백질이나 혈액응고단백질과 같은 고가의 치료용 단백질을 저렴하게 생산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 교수가 닭에 주목한 것은 알에서 깨어나는 데 21일밖에 걸리지 않고 6개월만 자라면 다시 알을 낳을 수 있는 데다, 달걀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간단해 분리해 내기가 쉽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치료용 유전자가 주입된 닭이 이른바 ‘생물 제약공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충남대 형질전환복제돼지 연구센터와 건국대 이훈택 교수, 축산기술연구소 장원경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됐다. 연구결과는 이 분야 전문저널인 ‘생화학, 생물물리 연구’ 7월 23일자와, ‘분자 생식과 발달’ 8월호에 발표될 예정이다.
➡️2002년 그루지야서 175만년전 두개골 발견 유라시아인 조상 다양종 가능성
➡️2001년 미국 `네이처`지 580년 전의 인류화석이 발굴됐다고 보고
➡️1983년 중국, 한국대표 입국 거부
➡️1982년 이탈리아, 제12회 월드컵축구대회서 서독 꺾고 우승
➡️1982년 한국-호주, 조세의 이중과세 및 탈세방지협약 서명
➡️1981년 프랑스, 서독정상 미국 미사일의 유럽 배치. 서구 방위력 증강 합의
➡️1980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김대중 등 9명 내란음모혐의로 구속
👉🏿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1980년 7월 12일 김대중씨 등 9명을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반공법, 외환관리법 위반 그리고 계엄포고령 위반 등 혐의로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김대중씨 등과 같은 혐의로 송치된 사람들은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고은 김상현 이신범 장기표 심재권 등이었다.
원심과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씨에 대해 대법원은 1981년 1월 23일 그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이 내려진 바로 같은 날 김대중씨는 무기로 감형됐다. 무기로 감형된 김대중씨는 1월 31일 청주교도소로 이감됐고 이듬해인 1982년 3월 3일 다시 무기형에서 징역 20년으로 감형받았다. 그는 같은 해 11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한달여 뒤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났다.
➡️1979년 차범근, 서독 축구팀 프랑크푸르트팀 입단
➡️1979년 키리바시, 영국으로부터 독립
➡️1971년 제1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개막
👉🏿 한반도의 안보에 관한 제반 문제를 중점적으로 협의하는 제1차 한미안보협의회의가 1971년 7월 12일 서울에서 개막됐다.
회의는 1968년 5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국방장관 회담이 모태였다. 제1차부터 3차 회의까지는 한미국방장관 회담이었으나 1971년 회의부터 양국 국방장관을 대표로 하는 한미안보협의회의(한미연례안보협의회)로 칭했다.
협의회는 한미간의 각종 안보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협의기구로 매년 교대로 회의를 가졌다. 그 후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창설에 따라 양국간 군사적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양국 합참의장을 대표로 하는 군사위원회가 1978년부터 별도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
➡️1961년 농어촌고리채정리법 시행령 공포
➡️1950년 한국군 통수권의 미군이양에 관한 협정(한미대전협정) 체결. 주한미군 지상군사령관 워커중장 임명
➡️1948년 제헌국회, 대한민국 헌법 의결
➡️1937년 중국 국민정부, 항일전쟁 결의. 중앙군에 동원령
➡️1935년 프랑스의 장교 드레퓌스 사망
➡️1925년 NHK 동경방송국 본방송 개시
➡️1920년 칠레 혁명 발발
➡️191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박동진 출생
➡️1913년 중국, 제2혁명 (8.5 손문등 망명) 시작
➡️1909년 기유각서 조인 (일본에 사법권도 위임)
👉🏿 기유각서 약정서
한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는 한국의 사법과 감옥에 대한 사무를 개선하고 한국의 신민(臣民) 및 한국에 있는 외국 신민 및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확실하게 할 목적과 한국 재정의 기초를 공고하게 할 목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조항을 약정한다.
제1조 한국의 사법과 감옥에 대한 사무가 완비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는 한국 정부는 사법과 감옥에 대한 사무를 일본국 정부에 위탁한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일정한 자격을 가진 일본인과 한국인을 한국에 있는 일본 재판소와 감옥의 관리로 임용한다.
제3조 한국에 있는 일본 재판소는 협약 또는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한국 신민들에 대해서는 한국의 법규를 적용한다.
제4조 한국의 지방 관청과 관리는 각기 직무에 따라서 사법과 감옥 사무에서는 한국에 있는 일본의 해당 관청의 지휘, 명령을 받고 또는 이것을 보조한다. 일본국 정부는 한국의 사법과 감옥에 관한 일체 경비를 부담한다.
이상을 각각 본국 한국 정부의 위임을 받아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각서(覺書) 각 2장을 작성하여 이것을 교환하고 뒷날의 증거로 하기 위하여 이름을 적고 조인한다.
융희 3년 7월 1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
메이지 42년 7월 12일
통감 자작(子爵)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순종실록』권3, 1909년(융희 3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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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료는 1907년(순종 1년)에 체결된 ‘정미 7조약(丁未七條約)’의 추가 조치 사항을 시행하기 위해 사법 및 감옥 사무를 일본에 위탁한다는 내용으로, 1909년(순종 3년) 7월 12일 한국의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의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사이에 맺어진 「기유각서(己酉覺書)」이다.
이 조약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일본 내각에 청의한 ‘한국 사법 및 감옥 사무 위탁에 관한 건’에 의해 추진된 것이다. 전문과 5개조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각서 체결로 대한제국 사법권은 소멸되어 한반도에 식민지적 사법 제도가 탄생하였다. 이로써 법부(法部)와 재판소 및 형무소는 전부 폐지되고, 그 사무를 통감부의 사법청(司法廳)으로 이관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치적 권력을 강탈해 갔다. 그리하여 직원은 일본인으로 임명되고 대한제국 사법권은 완전히 일본이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항일 의병을 체포, 재판하기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져 한국의 항일 투쟁을 더욱 억압받게 되었다. 사실상 국망을 목전에 둔 것이다. 「기유각서」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탄하는 전초 공작이었다고 하겠다.
➡️1906년 이민조례 공포
➡️1906년 프랑스 최고재판소, 드레퓌스에 무죄 선고
➡️1904년 러시아-독일, 통상조약 체결
https://youtu.be/XvZkrAdxn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