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김태호PD에 대해 >
Q. 오늘 의상이 멋진데 어디 다녀왔나?
A. 아뇨. 내일 모레(4/7(수)목)가 녹화가 있다. 요즘 우리가 조용조용하게 준비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 출발하기 전까지 아이템 회의를 하다 왔다.
Q. 사생활이 궁금한데, 어제는 어떻게 보냈나?
A. 8시까지 출근, 이번주 방송 편집 방향을 토론하고 맥모닝을 시켜 먹는다. 11시에 부회의, 작가회의 진행, 월초엔 국회의. 나는 가수다 PD 교체 이틀 전에 격려금이 나와서 회식이 있었다. 종편체널 등 최근 미디어의 큰 변화들이 있는데 선배가 이직을 해서 만났다. 아이템 회의를 하던 중 이슈인 독도문제 등 이러한 문제를 상반기에 풀어낼 생각. 이런 것들을 세련되게 풀어낼 방법이 정리되지 않아 고민 중이다.
Q. 출근을 8시에 한다고?
A. 아침잠이 많은 타입인데 부인과 출근 시간에라도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한다.
Q. 옷을 잘입기로 유명한데?
A. 이 옷이 5년 전에 입던 옷인데, 아내가 이 옷을 찾아내서 입고 왔다. 어릴 때도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용돈을 받으면 옷을 먼저 사고 끼니를 초콜렛으로 대신했다. 충동구매를 하는 편인데 의류사업을 해보기도 했지만 한벌도 팔지 못했다.
Q. 어린 시절은?
A. 얌전할 때는 얌전하고 나설 때는 나서는 타입이었다. 때에 따라 돌아이가 되는 타입이었다. 대학교때는 지금 성격과 달라서 1,2학년 과대표로 장기자랑도 나갔다. 군생활 이후 성격이 많이 달라져 지금도 예전 사진 보면 어색하다.
Q. 중고등학교 때 가장 관심있던 분야는?
A. 놀기 좋아하는 성격. 어머님께서 한복을 만드셔서 따라해봤지만 잘 안됐고 미술에도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공부를 열심히 했다.
Q. 고려대 신방과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시절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나?
A. 중학교 때까지는 잘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이 너무 싫어서 정석을 한번도 안펴봤다. 첫 학기 등수가 41등. 2학년이 되니 PD가 되고 싶던 꿈을 잊고 친구들이랑 놀기 바빴다. 짝사랑하던 누나가 수학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합리화를 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2학년 겨울에 성적을 비관해 자살을 했다. 쉬는 시간마다 빵을 먹으러 가자던 그 친구가 갑자기 없어졌다. 방황을 하다 수학 정석을 다시 잡게 되었고 3학년 때 성적조작을 의심받을 정도로 성적이 올라 잊고 있던 PD의 꿈을 떠올렸다. 그 친구 덕이 컸다.
Q. 왜 PD가 되고 싶었나?
A. 단순하게 혼나지 않고 티비를 많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쇼를 보면서 한국에서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운좋게 지금 PD가 됐다. 사람들이 못해주는 시상식을 무한도전에서 하고 있다.
Q. 입사과정은 어땠나?
A. 돌아이 기질이 있었다. 노란 머리에 피어싱에 케주얼정장으로 면접에 갔다. 인사부장님이 '면접 보러 온 사람 맞나? 옷이 그게 뭔가?'하시기에 '이런걸문제삼으면별로다니고싶지않네요'라고 했다. 그리고 면접을 봤는데 질문은 그 옷 어디서 샀니?. 그 신발 짝퉁이지? 등 이었다. 속으로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인신공격을하나했다. 합격통보후 알고보니 그분이 예능국장님이었고 못생긴 애들은 일을 잘하니까 보자마자 뽑아야겠다 생각했었단다. 그 전년도까지는 모범생을 뽑았고, 실험식으로 딱 내차례 때 약간 개성 강한 동기들을 뽑았다. 동기들과 선후배로 만나지 않아 다행이다.
Q. 내가 생각하던 PD와 실제는?
A. 홈페이지 가입 시 직종을 적을 때 예술인과 직장인이 있었다. 동기들은 직장인이라 했지만 난 예술인이라 적었다. 어른들 말씀을 듣고 첫 출근 때는 책상도 닦고 컵도 닦고 했지만 아무도 안하길래 이런 건 자유롭구나 했다. 일에 익숙해지고나니, 여긴 정말 일을 많이 해야하는 곳임을 알게됐다. 2001년 1월 입사 후 처음 쉰 날이 9월 15일 이었다. 주말이 없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느낌표, 논스톱 4 등 이때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는 기간이었던거 같다. 같이 일하던 선배가 일주일에 3일 나왔는데 수요일에 와서 편집을 검사했는데 태잎을 던지고 편집이 이게 뭐냐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는 이상하게도 나갈땐 '그러니까 하여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하셨다. 이때 아침밥 먹자, 핼멧 쓰자를 하며 가출 청소년을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가출청소년을 찾아내고 촬영 전까지 못도망가게 같이 있고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성장해 있었다.
Q. 2003년에 쓰러졌는데?
A. 겨울에 쓰러졌다. 느낌표에 있다가 일밤 조연출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이 잘한다잘한다하니까 신이나서 재밌게 하루에 2시간씩자면서일했다. 새벽 5시까지 편집하고 2시간자고 멋있게 아메리칸 스타일로 커피한잔하고 다시 편집했다. 어느덧 체력의 한계가 왔고 편두통에 이은 구토, 결국 성모병원에 걸어가서 죽을 것 같다하니 간호사가 '그렇게 아프신 분이 여기까지 걸어오셨어요? 더 아프시면 오세요'라 했고, 순진하게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모니터가 2개인데 4개로보이고, 고열에 시달렸다. 바로 입원을 했는데 2주 진단을 받은 와중에도 이번주 녹화 재밌다며 가겠다고 우겼다.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는 병원에서 보냈다. 방송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유학생각도 했다. 5년만 더 해보자라고 마음먹었다. 35살에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해도 늦지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어느덧 37살이 되어있다.
35살에 무한도전 정떼기 여행을 가려고했다. 보통 포상휴가가 나오면 팀원들과 여행을 갔는데, 이번엔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에어로빅 특집을 할 때 편집을 해두고 7주동안 여행을 갔었다. 지금 부인과 연애를 시작했던 시절. 고생할 바에 좀더 큰 시장에가볼까하고 영국, 네덜란드도두드려봤다. 네덜란드에서는 무한도전이 몹쓸 프로그램으로 분석이 다 되어있었다. 프로그램을 마케팅으로 보는데 포멧을 만들어 재생산하여 판매하는데, 형식이 없어 돈이 안된다라고 판단했단다. 어느날 저녁 런던 호텔에서 여성분 3명이 조금전에 무한도전을 유튜브에서 봤다며 나를 알아봤다.유재석씨 결혼 잘했냐는 등 물어보는 모습이 꽤충격이었다. 어제도 후배들을 모아놓고 했는데, 한국시장만 한국 컨텐츠가 얼마나 위대한지 모른다. 중국포털에서 주간 프로그램 검색 10위안에 무한도전, 우리결혼했어요, 1박2일이 있다. 돈은 안되지만 문화적파급이있다. 회사에서는 시청률에만 급급해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결혼했어요를 아시아권의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시청률만 보면서 피디를 교체하는 것은 잘못됐따. 젊은 층을 타겟으로 한다는 이유로 뜨거운형제들도 시청률때문에 최하인사고과를 받는 등, 너무 화가나서 많이 따졌다. 시청률 때문에 가능성 있는 PD들을 제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하고. 아무튼, 문화도 이해 되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느니 한국에서 국제적인 컨텐츠를 만들면 외국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기자들과 회의를 많이 하는데 리얼버라이어티가 4~5년이 됐는데 이 이후에는 무엇이 올까고민을 하고 어떻게 그 다음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많이 한다.
Q. 여성 관객들이 많이 왔는데, 스타PD가 나오기는 힘든데, 인기를 끌고있는 이유는?
A. 미남 노홍철씨 팬분들 아닌가요? 부인이 요즘 치아교정하라고 잔소리다. 개인적인 관심이라기 보다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그런 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 나는 TV에 얼굴을 비추는 게 부담스러운데, 연기자들이 놓치는 컨셉을 설명해주던 과정에서 유재석씨가 그래! 그거! 하는 식으로 이어져 편집할 수가 없어서 나오게 됐다.오히려 부모님은 TV안나오시면 아쉬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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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무한도전에 대해 >
Q. 7년이나 이끌어왔는데?
A. 나는 현장에서, 편집실에서의 첫 시청자다. 너무 즐겁다.
Q. 가장 좋았던, 아쉬웠던 편은?
A. 아쉬운건 '좀비특집 <28년 후>'가 아쉬웠다. 당시 제작비의 3배를 쓰고 경위서도 썼다. 물론 이 방송 덕분에 더 리얼리티가 살았다. 정치적 이유를 떠나 여름만 되면 뒤돌아 보지마식의 공포물인데, 더이상 하기 싫었다. 반복된 페턴이 싫었다. 실패하더라도 다른 공포물을 시도를 해보자라는 의미에서 했다. 헐리웃에 비하면 어설픈 분장인데, 내장을 표현하기 위해서 비엔나 소시지를 붙이기도 했다. 두달 준비하고 현장에서 막막했는데 촬영 마치고는 이렇게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에 웃음이 났다.이 방송 이후 SBS PD가 박수를 보낸다라는 얘기를 유재석씨 거쳐서 들었다. 사실 영화나 다른 미디어라면 모를까 방송에서는 그 주에 주어진 제작비, 시간에 찍어내야 하는데, 안전성이 가장 중요하다. 국장님이 '테잎을 제발 미리 넘겨라'라고 얘기를 하신다. 마감이 전날인데 우리는 방송 1시간 전에 넘긴다.
심지어, <지구온난화 특집>은 테잎을 두개로 만들어 방송했다. 길이가 나오는 장면까지를 여의도에 보내고 두번째 테잎을 나중에 완성했다. 차가 막히는 토요일, 방송 30분 전 일산에서 여의도로 가던 중, 다음 테잎을 넣야하는 시간 10분 전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택시기사가 길을 잃어 지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일단 침착하고 너의 발에 이번 주 방송이 달렸으니 길끝에 큰 길이 있으니 무조건 뛰어서 택시를 잡아'라 말했다. 결국 1분도 안남은 상황에서 주조실에서 테잎을 넣었다. 다음 주 국장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장님 왈 '방송이 아예 안나가면 대체 편성이 있고 생방송에서 바지를 내리지 않는 이상(2005년 7월 음악캠프 방송사고)방송이 중단되진 않는데 너희들이 예능사의 첫 기록을 남길 번했다'. 이 와중에 후배가 '조금이라도 더 잘 만들어보려다 그런건데 혼내시느냐'라 해서 '이번엔 우리가 잘못한거야'라며 가라앉혔다.
레슬링이 가장 감동적이었던 특집이였다. 행복했고 멤버들도 좋아했었다. 부상우려가 있기는 했지만. 원래는 3~4개월 해서 낙도나 문화적 혜택을 많이 못받는 지역에 가서 연말퍼포먼스로하려고했던건데, 연말에 MBC에서해야되는숙제가각프로별로주어진다. 그런데 3월에파업을하는바람에밀리고 밀려서 8월에방송이나가게된 것. 시간이많아지면더멋진쇼를만들어야 한다는부담감이생긴다. 5주방송으로할수밖에없었는데 실제로 한 시간에 비해선 방송이 너무나 짧았다. 제작비에 비해선 5회는 욕먹을 만한 분량이다. 실제 촬영이 아니면 연기자들이 약간 설렁설렁 하기 때문에 페이크라도 녹화중이라고 말하고 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나도 영화처럼 2~3시간으로 담아냈다면 더 좋았겠지만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5회를 하게됬었다. 거제도 합창대회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화 하모니를 보고 형돈이와 생각한게 영화에서는 여죄수가 나왔으니 우리는 방송계에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들을 모아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합창을 해보자, 거기서 나오는 파장으 그들의 몫이야라며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서도 나가기도 하고 우리가 선배인 입장에서 참여하기엔 잡음이 생길 것 같아 아쉽지만 접었다.
달력특집도 판매를하는 입장에서사기를 치는거 같은 느낌이들었다. 3년전에 재능기부차원에서 방송차원과 공익적인 차원에서 달력을 했었다.반응이 좋아서 부피를 키웠다. 한해에 40억 수익이 났는데 과연 이렇게 퀄리티 낮은 달력이 그런 가치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기꾼 갔더라. 처음엔 재밌는데 매달 넘기면서 '내가 이걸 4천원 주고 샀단 말야?'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우려됐다. 그래서 욕심을 부린 것이었다. 패션전문가분들도 부르고 했는데 재미면에서 좀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한달한달은 너무재밌는데 1,2회에 넣다보니 다 덜어내고 단편적인 내용만 넣다보니 아쉬웠다. MBC에브리원에서 12회에 냈으면 더 재밌을 것 같다.
역작은 아직 없었다. 1년마다 기억에 남는게 있다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모델도전도 기억에 남는다.뉴질랜드 편은 연기자들의 신뢰를 얻었던 기회였다.발상의 전환이었는데, 보통 관광청협찬으로 2회분 촬영하고 2일 쉬고 오는데, 난 그게 싫었다. 시청자들이 여름하면 떠오르는게얼음일거라 생각해 3박 4일로 알라스카를 가려했는데 거기도 여름이라 눈이 없었다. 뉴질랜드로 겨우 변경해서 24시간안에 찍어야 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3회분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 출발하는 거 자는거 등 모두 찍었는데 이게 리얼버라이어티의 모멘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장기아이템은 우리 노력했으니 박수쳐주세요가 아니라 예능도 조금만 더 공들이고 조금만 더 관심가져주면 매주하는거 보단 작품을 만들 수 있을텐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시즌제를 주장하기도한다. 하지만 매주 광고를 팔아서운영해야 하는게 방송사다. 그래서 계속특집을 준비해서이어가는것. 댄스스포츠가 처음이었다.그렇게 모든 멤버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가 기분이 묘했기 때문이다. 나도 쭈그려 앉아 같이 울었다. 돈가방편, 여드름 브레이크 등도 추격전이라는장르를도전해보기도했다. 하하가 나가고 5명이 꾸려나가다 새로운 장르를 도전했던 것도 좋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단편이 좋았다. 지구 온난화 특징 같은 경우는 어떻게 쉽게 지구온난화를 풀어볼까 하다가 환경부에 제안을 해서 제작비 지원을 받기도 했다. 200회 생방송 때 했던 기부가 좋다에서는 퀴즈쇼를 보면 악마의 마음을 조금만 갖고 있으면 거래를 할 수 있지않을까 싶어서 내가 이거 해줄테니까 너도 이거 걸고해 이런 식의 발상이였다. 맞힌 만큼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주에 나오는 것도 등록금 500만원 얘기가 많은데, 무일푼에서 500만원을 버는게 얼마나힘들지를녹여낸것. 내가 대부업자가 되서 만원을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안에 모든 경재활동이 있었다. 파산도 있고 CEO도 있고 직원도 고용하더라. 거창하게 타임스퀘어에 뭘 걸고 이런 것들 보다 작게 하는 것들이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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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런 다양한 포맷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건가?
A. 무한도전의 시작은 예능을 하는 우리가 주인이 되보자라는 것이다. 게스트에 따라서 정해지는스케쥴에 맞춰가는게 싫었다. 게스트들은 1년에 영화하나 잘되야 천만이 보는데 우리는 매주 더 많이 보는데 왜 우리가 안방을 내줘야 하느냐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인이 되서 만들어 보자고 했다. 세바퀴, 놀러와에서 가장 많이 드는 시간이 섭외인데, 우리는 이 섭외시간에 쓸 시간을 아이템고민을 하자는 것에서 시작했다. 매주 새로운 환경에 멤버들이 처했을 때 어떻게 해나가느냐를 보는 것이 무한도전이다.그래서 소재는정말무궁무궁진하다.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것은 연출자와 연기자들의 몫이다. 원래는 1년 정도로 생각했다.
Q. 시사적인 문제, 공익성에 접근하는 방식은? 시청자가 과대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A.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도 나중에 알고 '아그랬대?' 하는 경우도 있다. 중의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몰라도 재미있고 알고도 재밌다면 이런것이유기적으로살아있게되는것이다. 이번주 쩐의 전쟁을 봐도 공익성을 빼고 봐도 재밌을 수도있는것이다. 제작하면서 '아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겠구나'는 정도다. 철두철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뉴욕편이 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은 나중에 알았다. 기저에 깔리는 것은 느낌표, 러브하우스시절에 슬픈사연을 하나 던져주면선물을주는 이런 거래는 불편했다.안그래도 상처인데 그 상처를 들춰내고 거기에 상품을 주는 것 자체가 심적으로 괴로웠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뒤집어 보는 의미였다.
(안성현 편집장) 시사문제를 융통성있고 쉽게 나타내는 것을 녹여내야된다는것을기본적을알고있는사람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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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많은 스텝을이끌까? 초기무도에서 위에서 왜 예능프로에 카메라가 이렇게 많이 필요하냐는등의 질타를 어떻게 설득했나?
A. 연출 조연출이 5명이 더 있다. 7년동안 같이 했는데, 6년 전에 혼자할 때가더행복하지 않았나싶다. 찍고 편집하고 자막쓰고 집에가서 쓰러져 있을때, 걸어가면서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볼 때. 그 당시에는 50분이였는데 지금은 80분이 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섰다. 예능에서 5, 10분은 거의 한회에 맞먹는다. 왜냐하면 촬영을 한번 더 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 방송을 10분하면 1분이라는 광고 30억이라는 수입이 생기기에 이렇게 된 것. 이러다 보니 인원이 많아졌고어느덧 나도 이렇게 관리자가 되었다. 나도 애들의 표현을 재단하게 되는 것이아닌가 싶다. PD들이 다혈질이 많은 반면 내가 차분하게 말을 잘 해주니, 지금은 1년차 신입들이 많이 들어와서 아카데미처럼되었는데 프로그램 퀄리티에는 지장을 줄 수 있다. 요즘은 관리자로서 스트레스가 좀 심하다. 연출,조연출간의 일의 차이가있다. 난 이럴때 나도 너희들만큼 일을 할게라고 말해서 8시에 출근하는 것이다. 8시 쯤이면 밤새 편집을 하고 잠깐 잠든 후 일어나는 시간이다. 조연출들이 거의 쉬지 못하는데 돌아가면서 일을 하고 월요일에는 쉬는 것을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Input 없이 Output만 생산하다보면 분명 머리는 완전히 비어간다. 얘기를 듣고 회사에서 못해주는 것들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Q. 스텝선발기준?
A. 7년 전에 하던 팀들이 계속 같이 하고 있다. 현장에서 소리지르는 사람은 안된다. 다들정신없고 날카로워 질 수 있는데 누군가 소리를 지르면 상처를 받고 어짜피 계속 볼 사람들이니좋게 좋게 넘어가자라고 얘기를 한다. 내가 더위와 추위를 잘 못느끼는데 유재석씨가 더위에 바로미터라 신경을 쓰고, 평창 동계올림픽 편에서는 영하 20도에서 메인 작가 속눈썹에 얼음이 맺혔을때가 되서야 춥다는 것을 알고 쉬자고 했다.
Q. 멤버들이 오랜기간 한 팀으로 할 수 있는 이유와 자신만의 원칙은?
A. 사람이 만드는 프로니까 연기자들의 컨디션이 중요하다. 팀메니저역할도 많이 한다. 녹화전에 전화해서 개인적인 사항들을 연락을 해서 녹화일정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갑과을의관계가아니라어깨를나란히하려고한다. 그게 편하다.이거 해, 저거 해가 아니라 이거하면어떨까? 이렇게하는편이다. 연령대에서내가딱중간에있어 가교역할도 많이 한다. 멤버들이어떤 방송보다도 더 많은 노력을 한다. 아이템이 별로면 수시로 전화하면서 조율한다. 7명의 동료 피디들과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이들과 함께 한 것이 특혜다.나도 언젠간 물러나거나 프로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더 발전되기 위해선 PD도 교체되야한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많이 누렸다. 10을준비해가도 90으로되는날이있다. 준비가 제대로 안된 날은 그들에게 의지를 해야되는데 충분히 100이상을 해주는 날도 있다. 지구특공대특집에서 영화리틀빅히어로처럼각각의작은능력으로사람들을도와보자라고 설득을 하고 옷을 갖다줬는데 멤버들은못입겠다고했다. 쪽팔려서 못입나 했지만 멤버들은 옷이 너무 안웃기다라고 말하며 더 꽉끼어야 웃긴다라고 한다. 홍철이한테 연락이 왔는데 영웅호걸이 종영되고나서 눈물이 나면서 전화로 '우리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하길래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자'라고 했다. 만약에 끝나면 큰 슬픔으로 다가올 것. 올해에 방송에 임하는 자세가 변했는데, 명수형 준하형은 조만간 우리가 체력이 떨어지면 프로에 마이너스가 될테니 그때는 언제든지 얘기를 하라고 말했다. 자신들보다 더 사랑하는 프로이기 때문에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모두 가족이다.
Q. 무한도전의끝?
A. 언젠가 끝이 있을것. 제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회사에 많은 제안을 해서 혼나긴 하는데, 마이너리그같은것도해보고싶었다. 2000회 특집도 했지만 분명 끝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어느 채널이든 어느 방송이든 그것을 이어가고 있고 파생된 것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월드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맴버들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박명수씨 80세 기념으로 다시 지하철이랑 달리기 대결을 한다면 '그럼 내가 보행기는 허가해 줄게요'하다가 갑자기 지팡이가 부러져 넘어질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40년 동안 이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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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Twitter 질문>
Q. 박명수에게 외모대결에서 졌는데, 기분은?
A. 인생을 돌아봤다. 제 주제를 모르고 항상 '명수형 진짜 웃기게 생기지 않았냐?, 정말 저사람은 얼굴만 봐도 웃겨'헸는데 그 사람한테 진 것. 각오는 했었고 받아들였는데 부인이 실망을 했다. 자다가 눈을 딱 떠보니까 아내가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아내가 '내가 박명수보다 못생긴 사람이랑 살고 있는 거야?'하길래 '어'했다. 꼴지를 하고 김제동씨 같은 분들이 붙자고 한다. 그날 제일 큰 목적은 명수형 기살리기 였다. 나는 뒤에 있는 사람이니까 꼴지를 해도 상관없다. 1시간 내내 시니컬하게 있다가 저 이긴 이후에 표정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박명수는 말로는 신이 내린 선물이야라고 말했지만 결국 거울보고 나도 어딘가 잘생긴 곳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그런 남자였다.
Q. 코디는 어떻게 하세요?
A. 주중에는 편한게 제일 좋다. 주말만부인이랑시간을많이보내다보니, 너무 소홀해진거 같아 요즘은신경을쓰고있고부인 조언을많이받는다. 아침에 손가는데로 입는다. 생각보다 시간을 들이진 않는다.
Q. 이번주 무한도전 촬영은 어디서 하나요? 저도 야외촬영 보고 싶어요!
A. 내일 답사를 다녀와야 알겠지만, 오프닝은 여의도 MBC에서 하니 아침 9시에 와보시면 보실 수 있을 것.
Q.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텐데? 어떻게 할건지?
A. 끝이 올 수 있다. 무한도전은 내것이아니다. 나는 빠져도 된다. 연기자들만 있으면 된다. 리뉴얼 될 단계를 많이 지났다. 혈기 왕성하고 엉뚱한후배들이 1년이나 2년마다 계속바뀌면젊게연기자들이 나이를 먹어도 프로가 신선하게 유지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물러나라면 아쉽겠지만 싫지는 않을 것. 일주일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즐기고있다. 요즘은내 40대는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무한도전과 같이가는 40대 아니면 무한도전과 함께 하는 40대.
Q. 선배의 역할을 창작만이 아닌 후배들을 위한 역할도 있을텐데
A. 저도 요즘 한발씩 뒤로 물러나야한다. 언제까지 나를 따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자나 전화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릴건지 등의 의견을 많이 묻는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없어질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고 나 없을 때를 대비하라고 얘기한다. 내가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것이 멋질 것이다. 후배들을 위해서 화를 내는 것은, 요즘같이 매체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방송이 많아지는 시대에서는 1/N인데 아직도 회사에서는 11번이 강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무한도전을 보는 젊은이들이 아프리카로 많이본다는데 MBC는 그것을 새로운 창구로 활용하지 않느냐? 네이트온에 지상파를 볼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면 또다른 시청자들을 유입하는 것이지 않겠나? 이런 제안을 하지만 사원으로서 밀어부치긴 어렵다. 예능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도 있지만, PD의 권익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재방 삼방이 나가도 PD들은 그저 한 회를 찍어내는 사람에 불구하고 보상이 없다.좀더나은대우가필요하다고생각한다. 싫지만 서서히관리자의 길로 가고 있지않나 생각한다. 편집할 때가 제일 재밌고 아쉽지만 후배들 생각하면 그길로 가야할거 같다.
(안성현 편집장) 힘있고 생각있는 이런 선배들이 비석처럼 남아 방향을 제시하는게 멋질 것.
나도 그런 삶을 바란다. 방송이 끝나고 나가는 텔럽(Telop : 기획부터 연출까지 각 역할이 자막으로 나오는 것)에 나오는 모든 것을 담당하는 사람이 PD다. 하나하나 따지면 또 일이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 하나하나에 대해 대화하려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10년동안 겪어 왔고, 제가 겪은 시행착오들을 겪지 않고 한단계 더 나아갔으면 한다. 제일 많이 애들에게 꾸지람을 주는 것중에 하나는 '왜 고민없이 편집하고 자막을 쓰느냐'다.후배들이 '재작년에 했던 거그대로 한건데요?'라고 하면, '그건 2년이 지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정확한 편집과 자막을 써야 지금 이 동시에 보는 사람들이 더 공감을 하지'라고 한다. 사람들은 재방송을 보는게 아니다. 동시대 사람들과의 고민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주말에 런닝맨 보고 오자, 런닝맨의 PD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자막을 쓰는지를 얘기해보자라고 한다. 우리가 더 낫지라는 게 아니라, 우리는시청률 경쟁보다는예능방송의동종업자들과의같은고민을하는거라생각한다. 좀더 좋은 예능 PD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뒤에서 돕겠다.
Q. 충동구매한 것 중에 애착 가는것?
A. 무릎까지 오는 부츠가 하나 있는데 용기가 없어 아직 못신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files.youngsamsung.com%2Fuploads%2Fardorboard%2Fattach%2F20110410%2Fmake_1302373508851.jpg)
Q. 20대에게 던지고 싶은 화두?
A. 나도 20대는 잘 못살았다.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 쓸모없는 고민을 많이 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까지도 답을 구한 것은 하나도 없다. 고민하는 시간에 한번 부딪혀보는게 더 빠르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제일 후회되는 것은 수업끝나고 과방아니면 당구장, 호프집에 모여서 친구들과 고민만 했던 것들,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때 왜 망설였을까라는 후회를 가장 많이 한다. 부딪혀봐야죠. 부딪혀 실패하더라도 결국 20대잖아요? 20대는 어떤 것도 가능한 나이니까. 저도 20대를 능동적으로 보내지 않아서 전 이렇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름이 같은 대학교 14년 후배가 있다. 독립영화를 찍는데 도움을 청하더라. '뭐가 필요하니' '카메라가 없어요' '내 DSLR빌려줄게, 또 뭐가 없니?' '조명이 없어요' '조명은 비싸니 학교 방송국에 도움을 청해라' '제작비가 없어요' '스토리는?' '엄마와 아들이 지구에 둘만 살아남았을 때 이 두사람의 감정은 어떻게 변할까라는 거에요' '섭외는?' '아직 접촉을 안해봤어요' '제작비가 100만원 들거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싸게 찍냐?' '밥 안먹고 12시간 달리면 할 수 있어요' 그게 너무 기특해 100만원을 줬다. 그리고 2일뒤에 '엎어졌어요'라고 전화가 없다. 그래서 밥값제하고 다시 송금하라 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이뻤다. 영화 비평만 했지 직접 해본 적은 없는데, 그게 너무 예뻐서 다음에 또 도와주겠다고 했다.
10년 동안 프로그램만 만들다보니 지금 내 말이 약간 내 나이에 안맞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이런 일들을 20대 초반에 했다면 좀 더 다른 나를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나는 가장 앞좌석에 앉아있는 방청객이고 시청자다. 스텝들과 연기자들에게 갚지못할 선물을 많이 받았다. 요즘따라 만남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를 먹었다보다. 이런 공개 인터뷰자리에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분들 중에 우리가 좋은 말을 들을 수 있는 모임이나 자리를 마련해주면 저도 기꺼이 참여해서 배울 것은 충분히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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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ㄱ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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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무한도전도 끝날건데.... 그때는 진짜 내 기억에 평생 남는 예능프로로 남겠지ㅋㅋㅋㅋ
와 멋진다 진짜
예능계의 서태짘ㅋㅋㅋㅋㅋㅋㅋㅋ
ㄷㄱㅈ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 댓글을 예상햇지 으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발늦었다 ㅋㅋㅋ
ㄷㄱㅈ
ㄴㅇ
역사탐방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