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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카페]귀농귀촌 곧은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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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논두렁 밭두렁 ┓ 삽(澁, 떫음)과 계면활성제
발칸 추천 0 조회 388 12.10.25 11:01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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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10.25 11:30

    첫댓글 계면활성제의 철학적(?) 풀이...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12.10.25 13:26

    고맙습니다.

  • 12.10.25 11:34

    내용 읽어보고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귀중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평소 내가 사물이나 사실에 접근할 때 자기 본위적으로 판단하고 유리한 쪽으로 결론짓는 행동들이...
    부끄럽게 생각함.

  • 작성자 12.10.25 13:31

    모두들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습니다.
    효율, 결과지상주의.
    하지만 누구라도 단 반 발자국만이라도 사려 챙길 수만 있다면,
    당연 떠오르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이 실터럭 한 올이라도 귀히 여길 수 있다면 우리는 이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12.10.25 16:00

    좋은글새겨읽습니다감사합니다한번더생각하게됩니다

  • 작성자 12.10.25 16:27

    비누는 대표적인 계면활성제입니다.
    더러움을 닦아내는데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해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수구를 지나 종내는 지하수나 하천으로 들어갑니다.
    개천 한쪽 끝에 엉겨 붙어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저것의 정체가 바로 이런 세제류 때문입니다.
    물 속에 산소 공급을 방해하여 수질을 크게 악화시킵니다.
    저러한 것을 먹어도 좋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커피의 프림도 계면활성제의 일종입니다.
    때문에 이 역시 적당히 삼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12.10.25 17:25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2.10.25 18:30

    네, 고맙습니다.

  • 12.10.26 00:01

    생명이란 것은 막(膜)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니, 이것을 저 界面이란 말로 대체할 수도 있겠습니다.
    계면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곧 膜이란 차별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니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궁극이 될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막을 투과해 들어와도 이 외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癌, 암이란 것이 현대에 창궐하게 된 것이
    이 계면활성이라는 이런식의 인간의 조작성과 직결되어있을 것입니다.

  • 작성자 12.10.26 08:35

    원래 외물과의 사이엔 膜이 있어 안팎을 나눕니다.
    허나 외물과 소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이니,
    또한 일정분 들고 날 구멍이 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체(생명)마다 계면장력의 강약이 있을 수 있으며,
    각 개체는 저마다의 분수대로 나름 출입을 취사선택 조절합니다.
    우주 전체적으로는 이게 조화롭게 균형을 이룹니다.

    허나, 계면활성제라 불리우는 약제는 이를 강제적으로 허물어,
    인간이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킵니다.

    그런데,
    눈앞의 욕심에 눈이 멀었음이니,
    이게 정밀하게 통제되지 못하여,
    여러 문제를 야기합니다.

  • 작성자 12.10.26 08:46

    가령 해충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식물도 다치게 되고,
    나아가 토양, 지하수, 하천까지 오염시키게 되지요.

    바로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되곤 합니다.

    대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

    路逢劍客須呈劍,不是詩人莫獻詩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검을 바칠 것이며,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치지 말아야 한다 하였음인가?

    ***

    들려주신 말씀이,
    저의 마음과 계합되어
    제 뜻을 더욱 밝히 넓혀 주시니 감사합니다.

  • 12.10.27 00:01

    膜의 특질은 개방성이겠지요. 폐쇄는 곧 죽음을 의미하겠습니다.
    到處劍客, 處處詩人, 何處俯伏?

  • 작성자 12.10.27 09:59

    有求之心 終不能見

    丹霞燒木佛
    燒佛取舍利

    到到處處俯伏?
    三千燒木佛, 三千破鐵佛 覓舍利?

    차라리,
    장마철 옴폭 패인 호방다리에 고자좆 박고 용두질 3천번 하는 것이 남는 장사일 터.

    見神殺神 遇佛殺佛 逢祖殺祖

  • 12.10.26 05:41

    새로운 지식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작성자 12.10.26 08:37

    그저 다시 한번 짚어본 셈입니다.
    고맙습니다.

  • 12.10.26 09:31

    허허허~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살짝 무리한 비유가 사용되긴 했어도 지식보다는 웃음 한바가지 얻고 갑니다. 주장하시는 내용엔 깊이 동감합니다.

  • 작성자 12.10.26 12:55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백발이 길어 삼천장이라,
    근심 때문에 이리 길어졌는가?
    아지 모할세라, 거울 속의
    가을 서리를 어디에서 얻어왔는가?

    제 아무리 길다한들 머리카락이 수십 센티를 넘겠음입니까?
    허나, 白髮三千丈를 만약 白髮三十寸이라 하였다면,
    오늘 날 李白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후인들이 시인을 기려주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라,
    정작으론 白髮三千丈은 세인들의 시비 대상이 아니란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길이는 물리적 척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척도도 있을 터이니까요.

  • 작성자 12.10.26 13:02

    헌즉 기실 저 말은 문학적 수사를 넘어,
    이백의 정한(情恨) 깊이를 함께 느껴보는 장치로선,
    아주 훌륭한 설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기사, 족탈불급이라,
    저의 글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아주 서툴러 그저 뻥에 불과할 터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저지르는 오만가지 자연 파괴에 대하여는,
    저로선 저런 뻥 삼천 가지를 동원하여 나무라도 심에 차지 않고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웃어주셔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 12.10.26 11:00

    잘보고 갑니다

  • 작성자 12.10.26 12:56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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