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글레산 구릉에서 바라본 추자항 전경.
추자항 건너편 희미한 산자락이 하추자도.
그 희미한 산자락까지 이어진.,추자도 올레길.
하추자도 갯바위에서
갯것을 캐는 섬 아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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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는 행정구역 상 제주도에 속한 섬.제주도에 속한 섬이지만, 제주도 밖의 섬.
역사와 풍속은 전라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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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북서쪽 바다에 떠 있는 추자도
완도에서 뱃길로 3시간, 제주에서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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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예초리 등대 & 포구.
뭍에서 제주로 가는 바다에 떠 있어 후풍도(候風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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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이나 강진에서 사흘 뱃길이던 시절,
바람을 피해 순풍을 기다린 곳이라 하여 후풍도.
1271년 삼별초의 난이 났을 때 고려와 몽골 연합군이
폭풍우를 피해 추자도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제주도는 바다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솟구쳐 형성된 섬이고,
추자도는 한반도 남쪽 땅끝이 바다에 가라앉아 생긴 섬이다.
제주도는 현무암 검은 화산재 흙이고 추자도는 육지와 같은 흙.
추자도 집은 키가 작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제주도처럼 돌담을 층층이 쌓아 올리지는 않는다.
추자도에는 평지가 거의 없고
크고 작은 산이 섬을 덮고 있다.
제주도에 드문 소나무가 추자도에서는 흔하다.
추자도 몽돌해안은 보길도의 자갈 해안을 닮았고,
소나무 우거진 추자도의 산은 해남 달마산을 닮았다.
추자도는 제주도 바깥의 섬
한반도 최남단 땅끝 아래 땅.
땅이 뭍에서 왔으니 사람도 뭍에서 왔다.
추자도 주민은 전라도 출신이 대부분이다.
1970대만 해도 아이들을 목포로 유학을 보냈고,
추자도 음식이 맛있는 건 남도 맛이 전해져서다.
제주도 방언도 추자도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추자도 앞바다는 국내 최대의 참조기 어장.
국내에서 나는 참조기의 30%가 추자도산(産)
추자도는 42개 섬으로 이루어진.,추자 군도(群島)..
추자도 주민들은 4개 섬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다리로 연결된 상추자도와 하추자도에 많이 산다.
상추자도에는 사람이 많고 하추자도에는 땅이 넓다.
추자도 동북 바다가 남해와 서해를 잇고 있어
여름에 갈치가 나고 겨울에 삼치가 올라오지만,
추자도에서는 참조기가 아니면 잡어 취급을 한다.
추자도에 조기 파시가 열리던 1990년대 인구는 7000명
지금은 인구 약 3천, 실거주 주민은 1000명 남짓에 불과.
추자도 조기배가 제주도 한림항에서 뜨는 일이 잦아진 탓.
추자도 최고봉 돈대산(164m) 올레길은 6시간 도보거리.
추자도 올레길은 참조기 어장을 저조하여 마련한 돌파구.
2010년 6월 26일 제주올레 18-1코스로., 추자도 올레가 개장.`
추자도 올레(17.8㎞)는 제주올레 26개 코스 중 난코스.
'상도 추자항~하도 예초리 포구~ 추자항' 6산을 넘는 길.
하(추자)도 동쪽 끄트머리 언덕 위에 들어앉는 ‘황경한의 묘’.
19세기 황경한은 추자도에서 이름도 없던 어부.
2011년 천주교 제주교구에서 묘역과 비문을 조성.
황사영 백서 사건의 당사자 황사영(1775∼1801) 아들.
황사영은 한양에서 능지처참 처형되었고
부인 정난주는 2살 아들 경한을 안고 유배길.
추자도 동쪽 갯바위에 아기를 내려놓고 떠났다.
그후 정난주는 제주 대정에서 관비로 38년을 살았다.
아기는 예초리 어부 오씨가 거둬 자기 자식처럼 키웠다.
경한이 성년이 되자 오씨는 꼭꼭 숨겨뒀던 내력을 들려줬다.
그러나, 모자는 생전에 평생 재회하지 못했다.
혹시 아들이 화를 입을까 염려하였던.,모정(母情).
모정(母情)의 세월이, 인고(忍苦)의 세월을 초래한 것.
2008.12.17
'추자도~제주도' 뱃길은 45㎞.
제주에서 하루에 한 번 배가 뜬다.
제주항 9 :30 출발~ 추자항 10 :40 도착.
추자도 오후 4시15분 출발해
오후 5시30분 제주항에 도착.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하추자, 추포, 횡간도 4개 유인도, 38개 무인도.
일본까지 소문난 바다 낚시터로 낚시인에게는.,천국.
다금바리 제외한
모든 어종이 풍부.
겨울에 감성돔. 학꽁치,
봄~가을., 황돔, 흑돔, 농어.
부속섬들의 대부분은
동남쪽해안이 절벽인 반면,
서북쪽해안은 경사가 완만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도
풍속은 전라도와 유사하다.
면소재지 대서리에는 최영장군 사당,
이웃마을 영흥리에 '박처사각'이 있다.
.....추자 10경......
우두일출(牛頭日出)
직구낙조(直龜落照)
신데어유(신데漁遊)
수덕낙안(水德落雁)
석두청산(石頭菁山)
장작평사(長作平沙)
망도수향(望島守鄕)
횡간추범(橫干追帆)
추포어화(秋浦漁火)
곽게창파(곽게蒼波)
...........................
1) 우두일출(牛頭日出) - 소머리섬 초여름 일출 광경.
2) 직구낙조(直龜落照) - 상추자 서북방 최단 거북 모양
'직구도'의 저녁 노을이 아름답다.
3) 신데어유(신데漁遊) - 하추자 예초리와 신양리 사이의 신데
황금어장이 형성되어, 낚시꾼들의 천국.
4) 수덕낙안(水德落雁) - 하추자 남쪽 끝에는 사자 형상.,수덕도.
각종 물새가 사자머리 섬 꼭대기에 앉았다가
먹이를 쫓아서 바다로 쏜살같이 하강하는 광경.
5) 석두청산(石頭菁山) - 하추자도에 '청도'라는 섬이 있는데,
'사람머리 형상' 산꼭대기 암반 푸른빛.
6) 장작평사(長作平沙) - 신양포구 해변을 가리키는데,
폭 20m. 길이 300m.,자갈 해변이다.
7) 망도수향(望島守鄕) - 추자군도 섬들 가운데 가장 동쪽에 망도.
속칭 "보름섬"은 타향에 나갔던 섬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올때 먼 수평선에서 가물거리듯
망도가 시야에 들어오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추자군도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8) 횡간추범(橫干追帆) - 횡간도는 제주도의 가장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시원스레 펼쳐진 흰돛단 범선들이 떠가는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단다.
9) 추포어화(秋浦漁火) - 추포도는 제주도에 딸린 유인도 중 가장 작으면서도
멸치떼가 가장 많이 모이는 섬(추자군도 정중앙에 위치)
이 섬은, 어둠 속의 멸치잡이 불빛과 잘 어우러진다.
10) 곽게창파(곽게蒼波) - 추자도와 제주 본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관탈섬의 또다른 이름이 "곽게" 이다. 과거 유배객들이
제주도로 들어올때 이 섬 앞에 이르면 갓을 벗었다는 섬.
곽게섬 부근 푸른 물결은 세상 인연을 지워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른다. 그래서인지 더욱 더 푸르게 느껴진다.
........................추자도.,연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북서쪽에 있는 추자도.
조선시대 대개 전라도 영암군이 관할하여 오던 섬.
조선후기에 주로 죄인을 귀양 보내는 유배지로.,활용.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영암군에 속한 추자도.
현재, 행정 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상추자도, 하추자도, 2개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다양한 어장과 풍부한 어족으로 어업이 발달한 추자도.
추자도는 '제주~ 육지' 왕래 선박의 중간 거점.
옛부터 바람을 기다리는 장소로 활용되어 왔다.
현재, 행정 구역은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하지만,
주민의 생활상이나 전통 민가의 구조 등을 보면
문화적으로도 내륙인 전라도 쪽에 가깝다는 특징.
이는 역사적으로 전라도 영암군에 속하면서
제주도로 통하는 해상 교통의 요지였던 영암
지역을 중심으로 육지와 자주 왕래했기 때문.
1760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중
전라도 영암군 산천 항목에 추자도가 나오는데,
군에서 남쪽으로 약 40㎞[1백 리] 떨어진 위치.
둘레가 약 10.6㎞[27리]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기록으로는 1789년에 간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영암군
서편의 섬으로 추자도가 포함되어 있고,
1832년 간행된 『대동 지지(大東地志)』
에도 영암 소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1821년 전라도 영암군에 편제되었고
1881년에 일시적으로 제주목에 속했다가
1891년 다시 전라도 영암군에 편입되어
상추자·하추자 양 면이 설치되었다.
1896년 고종이 섬으로 이루어진 완도군
설치때 전라도 완도군으로 이관되었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제주도에 귀속되었다.
현재는 2006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으로 편제되어 있다.
....................................
추자도에는 딸린 섬들이 42개나 된다.
돈대산서 청산도가 한눈에 들어 온다.
청산도 삼치파시가 곧 추자도 삼치파시.
즉, 구로시오 해류.,삼치어장
청산도와 나로도, 추자도 남쪽.
추자도 최남단에 관탈도가 있다.
조선시대 귀양객들이 이곳에 이르러
제주도에 다왔다는 생각에 갓을 벗었다,
하여 ‘관탈’이라는 지명이 명명된.,관탈도.
관탈도에서는
불과 30분이면
제주항에 닿는다.
추자도는 끊임없이 왜구에게 시달렸다.
왜구들은 제집 드나들듯 추자군도를 왕래.
20세기 초반까지 수적(水賊)이이 설쳐대었다.
일제시대, 이곳 수산자원에 눈독을 들인 일인들.
대서리에진치고 학교와 조합을 만들면서 삼치어업.
기선급 선박이 삼치를 잡아 일본행 상고선에 실어갔다.
추자도 삼치파시는 이들 일본배들 때문에 이뤄졌다.
1000여명이 넘는 ‘뱃동서’들이 일시에 포구로 들어와
술집과 여관이 번성하며 덩달아 일본 기생도 들어왔다.
그당시 여관 등 흔적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일본인이 물러간 다음에도 삼치어업은 이어졌다.
삼치는 예전 방식대로 잡는 즉시 일본으로 수출
그 덕분에 파시도 70년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조선후기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남도경영’을 주장.
‘남도의 섬을 잘 다스려야 재물이 숲처럼 일어서리라.’
하였건만, 낙도는 오로지 낙도라는 오명만 뒤집어썼다.
오늘날, 뭍에서 1시간이면 당도할 수 있는 추자도.
조선시대 유배지로서 ‘떠나가는 섬’으로만 인식되었다.
이곳은 분명 미래의 보물섬이지만 아직도 그 미래는 멀다.
추자군도 미래의 최대 난적은 역시 물이다.
횡견도 같은 섬에서는 아예 빗물을 받아 쓴다.
‘물 쓰듯'이란 말은 이곳에서 내뱉을 수 없는 말.
추자 본도에는 담수화공장이 있어
바닷물로 만든 비싼 물을 먹고 산다.
하여, 집집마다 거대한 물탱크가 있다.
.......................상추자도..........................
1271년(고려 : 원종 12)에 마을이 처음 들어섰다.
고려 말, 최영이 '목호의 난'을 토벌하고 돌아가다가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 머물며 어로, 영농을 가르쳤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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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전라도 나주목 탐라현에 소속되었으며,
조선시대 세종 때에 나주목 해진군에 소속되었다.
1655년(효종 6) 전라도 영암군에 편입되었다가
1881년에 전라도 제주목으로 소속이 바뀌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전라남도 제주군 추자면.
1946년에 제주도가 전라남도에서 분리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 소속이 되었고,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소속.
이런 관계로 제주 속의 전라도’라고 하며,
생활풍속이나 언어가 전라도와 비슷하고,
생필품의 90% 이상을 목포 등지에서 도입.
2009년 인구 1,717명. 세대수 822세대.
취락은 섬의 동쪽 해안에 주로 분포하며,
만입부가 발달한 추자항 주변에 집중해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은 없고 밭이 0.50㎢, 임야가 0.50㎢.
주로 고구마를 재배하며 무 고추․배추․마늘․대파 등을 재배.
주요 수산물로는 조기․멸치․방어를 비롯하여 낙지․바지락․고막
하추자도와는 1971년 길이 156m, 너비 4m 추자대교 건설.
버스가 하추자도 신양리와 이 섬의 대서리 사이를 내왕한다.
주민들은 대서리 산중턱에 최영 사당을 세워 그 유덕을 기린다.
최영사당은 제주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완도․제주․목포항에서 정기여객선 & 대서초등학교.
바다낚시와 갯바위낚시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8.3㎞ 떨어져 있다.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4개 유인도
4개 유인도와 38개 무인도와 함께 추자군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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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전남 영암・완도군 등에 딸린 섬
1946년 북제주군에 편입됐으니 불과 60년 전.
재미있는 것은 1831년에 잠시 제주목에 이속.
1891년 완도군 창설후 이곳으로 되넘어간 기록.
좀 왔다갔다 했지만 추자도는 틀림없는 호남문화권.
추자도 토박이로 제주도에서 교육받고,
집안에서는 전라도 말을 쓰는 사람의 경우,
그 문화적 풍습에서 정체성은 대단히 복잡하다.
제사나 장례, 세시풍속 등은 확실히 '전라도적'.
반면, 토박이 잠녀들이 물질하는 형태는 '제주도적’.
묵리 처녀당 당제 때 걸궁이란 풍물굿은 ‘전라도적’이다.
추자도의 이런 중간자적 성격은
육지와 제주도의 징검다리였다는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지어진듯.
추자도 걸궁은 본디 한반도 최남단의 풍물굿.
풍물굿이 없었던 제주도에 ‘걸궁’이 전파된 것.
걸궁 풍물굿의 제주도 전파는 흥미로운 연구거리.
조선시대 추자도를 징검다리로 삼아 제주도로 간 뱃길.
추자를 주자(舟子)로도 불렀으며, 영암・무안・나주・진도 등
전라남도 남서해안으로 가는 뱃길에서 징검다리였던.,추자도.
이곳에서 제주도는 애월이나 조천으로 드나들었다.
추자도는 조선시대 이름난 유배지였고 유배객들 중에는
해배 후 돌아간 이도 있었고 아예 섬사람이 된 이도 많았다.
정조 때 안조환은 추자도 유배 당시
천신만고의 생활상을 이렇게 노래했다.
"출몰사생 삼주야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천리 다 지내어 추저섬이 여기로다.
도중으로 들어가니 적막하기 태심하다.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아는 이 뉘 있으리.
보이나니 바다이요 들리나니 물소리라.”
상추자도에서 추자대교를 건너자 마자.,묵리고개.
그곳 전망대 곁에는 처녀의 원혼을 달래주는.,처녀당.
하추자도 묵리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초 당제를 지낸다.
처녀당 바로 앞바다와 섬생이섬.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제주해녀들이 추자도로 물질 왔을 때
아기를 돌봐줄 처녀를 같이 데려왔는데 불의의 사고로 죽었단다.
그래서 묵리 마을에서는 그 처녀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당을 지었다.
그후,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제관을 정해 당제를 지내고 있다.
처녀당 곁 전망대 아래로는.,묵리 마을.
그곳 전망대 일몰이 아름다운.,하추자도.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이어주는 추자대교.
추자도는 상추자, 하추자로 위・아래 섬이 갈리는데
추자교로 이어져서 이제는 상하 구분이 의미가 없다.
상추자항은 대서・영흥리, 하추자항은 신양리 소속이며,
그밖에 예초・묵리 같은 아름다운 포구들이 흩어져 있다.
단단한 바위밭에 해류가 거칠게 흘러.,'바다 낚시의 천국.'
참돔이나 감성돔・우럭・농어 같은 고급 어종이
바위밭에서 물살과 싸우며 육질을 키우는 까닭에
추자도 해안 도처에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낚시꾼들.
..................하추자도..................
동경 126°17′, 북위 33°55′에 위치하며,
제주도에서 북쪽으로 45㎞지점에 있다.
추자군도에서 가장 큰 섬.(면적 : 4.18㎢)
제주특별자치도 우도에 이어 두번째 큰 섬.
최고봉은 북서쪽으로 148m 지점이며,
곳곳에 100m 내외의 구릉이 분포한다.
해안은 사빈해안이 대부분으로
동남쪽 해안에 만입이 발달해 있고
해안선 곳곳에 소규모의 돌출부가 있다.
주민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며, 고구마·콩 등이 생산된다.
멸치·삼치·조기·방어 등이 잡히며, 소라·전복 양식이 활발.
섬의 중심지는 신양리이고 해안가 일대에 취락이 밀집한다.
행정구역 상,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하지만
언어·풍속 문화적인 면은 전라도와 비슷하다.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에 속한 행정구역.,추자도.
전라감영은 호남행정을 총괄하는 행정기관.
전주시 구 전북도청사 부지가 전라감영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