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침에 지하 주차장을 들어가서 목격된 광경은 그야말로 참담 그 자체였다.
우리 아파트는 약 2 개월 전부터 도색 작업을 실시하여 건물 내,외부 도색은 거의 마친 상태였고
지하 주차장 도색을 시작하던 중이었다.
먼저 지하 주차장 벽면부터 도장 공사를 하는데 벽면 상단은 밝은 베이지색으로 하고 하단 부분은 차량들의
배기 가스 그을음 은폐 차원에서 진한 흑갈색으로 선택하였다.
지하 주차장 제일 안쪽 벽면과 천장부터 도장을 하여 하루만에 거의 지하 주차장 반 정도 공사를 하고
일을 마쳤다.
근데 그 다음날 아침 진짜 희귀한 일이 벌어졌다.
전날 말끔히 칠해졌던 벽면 전체에서 페인트들이 벽면을 타고 주루룩 주루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단의 밝은 색과 하단의 어두운 색이 뒤섞여 지하 주차장 전 벽면이 굵은 눈물처럼 흘러 내리는 모습은
마치 괴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도장업체 사장과 현장 소장이 급하게 뛰어와서는 너무도 당혹한 모습으로 지하주차장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지나 내린 그들의 그들의 결론은 지하주차장 벽면과 바닥의 방수 불량이었다.
그로 인해 벽면에서 물이 스며 나와 도장면을 밀어내어 이런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수 십년을 이 분야에서 종사해 온 분들의 판단이기에 나는 더욱 절망하였다.
벽면이 다 마르고 칠을 다시 하려면 가을이 되어 봐야 알 수 있겠다는것이었다.(그 때가 6월 인데!)
어째 이런 일이!!
사장과 공사 인부들이 다 철수하고 페인트가 줄줄 흘러내리는 벽면을 쳐다보는 나는 난감함 그 자체였다.텅 빈 주차장에서 혼자 망연자실하며 서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에다 가을에 재공사를 한다고 해도 지금부터 몇 개월을 저 기괴한 벽면의 주차장으로 입주민들이 주차를 할 생각을 하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끔찍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수만 없는 일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벽면과 바닥을 조심스럽게 살펴 보았다.
평소에도 지하주차장 안쪽의 벽면과 천정의 도막들이 군데군데 볏겨졌던 일들이 이제사 생각이 났다.
혹시나 싶어 벽면과 바닥을 고무끌로 살살 밀어보았다.
원래의 도막들은 그다지 훼손되지 않고 그런데로 괜찮아 보였다.
방수 문제가 아니고 결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하주차장 안쪽으로는 출구가 없어 환기가 잘 안되고, 며칠 전 비가 와서 지하주차장 내부가 습도도 많이 높고 매우 후덥지근 한 상태였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지하주차장내 환풍기를 찾았다.
하도 오래된 구식 환풍기라 한 번씩 시험 가동을 할 때마다 소음이 너무 심해 입주민들의 항의가 많아
바로 멈추곤 하던 거의 유명무실한 환풍기였다.
전기과장도 바뀌어 오늘이 출근 첫 날이었다.
8 대의 환풍기를 점검한 결과 대부분의 환풍기가 전기선도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선을 구입해서 새로 결선하고 대형 선풍기 4 대를 동원하여 환풍기 8 대 대형 선풍기 4 대를 동시에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계속 돌렸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운명의 날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문제의 지하주차장으로 뛰어가니 8 대의 환풍기와 4 대의 대형 선풍기는 요란한 굉음
속에 여전히 열심히 돌고 있었다.
일단 벽면을 보니 페인트 흐름은 멈추어 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벽면을 조심스레 만져 보니 어제의 흥건하던 습기는 기적처럼 거의 다 말라 있었다.
결로 였구나!!
업체 사장도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제 올 가을이나 되어야 되겠다며 참혹한 표정으로 얘기하던 얼굴이 갑자기 희망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환풍기와 선풍기를 하루를 더 돌려 그 다음 날부터 작업을 다시 시작하였고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산뜻한 모습으로 바뀐 주차장에 입주민들이 기분좋게 주차하기 시작했다.
하루 사이에 나는 지옥과 천당을 다 경험한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공사 시작 전 현장 상황을 좀 더 면밀히 종합적으로 살피지 못했던 것에 대해 깊이 뉘우쳤으며
본인이 관리하고 있는 아파트 안에서의 모든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전문가 보다 관리 소장이 제일 잘 알고 빨리 대처해야만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 대한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그 때 첫 출근하여 나와 같이 암담한 심정으로 하루종일 뛰어다니며 8 대의 환풍기 결선 작업을 하고 결국은 환풍기와 선풍기 모두를 가동 시켜준 지금은 경산 모단지에 근무하고 있는 박과장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감사의 마음이 여전히 그대로이다.
과연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인한 편견과 착각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섣부른 확신과 어설픈 단정들에서 언제쯤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
나는 아직 자신할 수 없다.
분별없는 황당한 우김들에도 이제 굳이 따지지 않는다.
소란치 않은 잔잔함들을 찾아 몸을 굽여 끝없이 귀에 담으리라 헤슬피 또 다짐해 본다.
- 가슴이 따뜻한 우리 소장님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김득진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