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을 가다 2일차
대청호반의 아침 매우 멋진 곳이다.
대청호의 일출이다. 넓은 호수가 아니라 직접 호수 수면위에서 떠오르는 일출은 아니다.
호수 주변의 낮은 산위로 4월2일의 일출이 떠오르고 있다.
호수의 물속에서도 일출이 보인다. 거울 같이 잔잔한 대청호수 수면에 아래로 가라앉으며 뜨는 해라니.........
금강 2일차 오늘의 일정은 우선 대청호반의 벚꽃 구경으로 시작한다.
아직 절정은 아니지만 봄을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다.
"지금은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이건 명천 이문구선생의 수필집 제목인데 제목과 내용이 별로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되지만 제목만은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다.
진짜 꽃보다 더욱 더 화려하고 꽃 같아 보이는 가짜꽃이 넘쳐 나고 있다.
진짜 꽃이지만 자연적인 꽃은 아니다.
자연적으로 자란 꽃은 아니고 인공적으로 키워낸 꽃들이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봄기운을 한껏 느끼게 한다. 팬지꽃 수선화 튤립
자연적이 아닌 인공이라도 가짜는 아닌 팬지 수선화 튤립의 화려함이라니.....
이번에는 충청북도 옥천군에 있는 수생식물원이다.
나는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수생식물원이라고 해서 지금 이시절에 수생식물원에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게
수생식물원이라는 이름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자연 정원으로 보인다. 수생식물이 있던 자리가 있기는 한데 매우 빈약하다.
대청호반의 뛰어난 경치에 나무데크로 통로를 만들어놓아 절벽사이를 누비며 대청호를 구경할 수 있었다.
동해 관동팔경의 하나인 낙산사 의상대가 생각나는 풍경이다.
여기 풍경을 보고 나니 굳이 옥천 대청호의 명소인 부소담악은 가지 않기로~ 매우 비슷한 분위기일 것으로 생각되어서다.
정원 4명인 세상에서 제일 작은 예배당
모과나무꽃과 명자마무꽃
수생식물원을 떠나 다시 옥천읍으로 향했다.
옥천은 어제 지나왔지만 도저히 그냥 치나칠 수 없는 곳이 있어 다시 들른다.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시 그리고 노래로 알려진 향수의 작가 정지용 생가이다.
沃川............
그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 자체가 하나의 이상향처럼 들린다.
기름질 옥(沃) 내 천(川)
정지용 시인읠 향수 첫연에 나오는 ---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이것는 옥 천이라는 지명을 아름답게 풀어낸 구절로 보인다.
정지용 생가는 매우 소박하다. 그야말로 三間草屋이다. 길거리는 어디나 향수라는 간판이 넘쳐난다.
과거 인쇄관련 일을 했던 나
1970년대만 해도 월북 납북 문인들 이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 출판물에 월북 납북 문인들 이름은 가운데 글자가 지워졌다.
그래서 나도 이 양반 이름이 鄭 * 溶인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향수를 말하고 향수를 노래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시와 노래이다.
나는 정지용 선생의 시중에서 고향이라는 시도 참 좋아한다.
....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힌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충북선은 내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철도
국민학교 시오리길에 오리 정도는 충북선을 지나 다녔다.
척박한(옥천이 아니라서) 땅을 뒤지며 사는가난한 농촌이라 시계가 있을리 만무한 60년대 농촌
충북선 첫차 지나가는 소리는 마을의 새벽잠을 깨우는 알람이었다.
유종호선생은 평론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시도 쓰셨구나.
옥천 출신 셀럽은 정지용 시인만 있는 게 아니다.
꼰대들의 성모마리아 육영수여사 생가도 바로 근처에 있었지만 거기는 들르지 않았다.
거기 굳이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옥천만을 목표로 왔다면 당연히 가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마도 지금 세상에 계셨다면 그런 추앙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상대 진영이면 무조건 개같이 까대는 만인대 만인의 투쟁의 시대에서는 ...........
옥천을 떠나 공주로 가는 길
금강변 허허 벌판에 갑자기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이게 뭔??
알고보니 거기는 신 행정수도라는 세종특별자치시였다. 아 하
상전벽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세종시를 지나 충청남도 공주시에 도착했다.
그 옛날 백제의 수도 중 한곳이다.
공주 미르섬에서 바라보는 공주 공산성과 금강
공산성 서문 금서루다. 서쪽이라 사신도중 서백호 그림이 있는 깃발이 펄럭인다.
공산성에서 보는 금강
공산성 북문을 담당하고 있는 홍북루와 사신도중 북현무 그림 깃발
위에 보이는 정자가 공사중이라 출입 통제중 그래고 가까이 가보겠다고 다가갔다가 길이 막혀 가지 못하고 뱀처럼 빈구멍으로 기어 나와야 했다.
곰소나루를 가보지 못하고 부여로 출발했다.
곰소나루가 별게 없지만 저녁 일몰 무렵 풍경이 좋은 곳인데 시간 관계상 생략하고 지나친다.
2일차도 저물어간다. 아직은 시간이 있어 부여에서 한곳을 둘러 보기로 한다.
부소산성
부소산성은 그 유명한 낙화암도 있고 고란사도 있는 곳이다.
백제시대의 기와 와당으로 길을 만들었다.
올라가는 길은 매우 유순하다.
산허리를 돌아 살짝 돌아내려가니 정자가 보인다. 낙화암 상단의 정자 백화정이다.
백제가 멸망할때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백마강으로 뛰어내렸다는 곳이다.
정자 앞에는 낙화암의 유래와 위에서는 잘 안보이는 낙화암의 전모를 보여주는 백마강에서 찍은 사진이 비치 되어 있다.
사진을 보아도 위에서 내려다 보아도 낙화암에서 바로 백마강으로 뛰어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마는~~
저 아래 강가에 고란사가 보인다. 저기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한다.
저녁 석야 무렵 풍경이 좋은 곳인데 내일부터 비 예보더니 구름이 많이 끼어 파이다.
고란사까지 내려간다. 제법 힘들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볼까 싶어 악착같이 내려갔다. 내 생애 마지막 방문이 되겠지.
3년이 젊어 진다고 ?? 얼근 가보자고
고란사 종소리~~~ 노랫소리나 종소리가 울려 퍼질듯도 한데
고란사에서 보는 낙화암은 이렇다. 그옛날 삼천궁녀의 넋이라도 되는양 분홍색 진달래가 점점점
생각보다 고란사 약수는 양이 많지 않아 힘겹게 허리를 구부려야 했다. 석간수가 졸졸 흘러 나오는 게 아니고 바위에서 몇방울씩 똑 똑 떨어지고 있다.
3년 젊어진다고 해서 무리해서 불편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두잔을 거푸 먀셔본다.
너무 젊어져도 곤란하..............
고란사에서 돌아오는 길은 잘 정비된 신작로를 버리고 급비탈 오솔길로 오른다. 힘은 들지만 시간은 많이 단축된다.
지름길로 올라서니 부소산성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은 사자루가 뙇~~
근데 정자 현판 사자루(泗泚樓)는 얼핏 사비루로 보인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사비성(泗沘城)이었으니 이 정자도 사비루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거의 비슷하게 생긴 사자가 또 있다.
전잘의 오류가 아닐까? 싶기는 한데 그 수많은 역사가들이 다 알아서 알아봤겠지
2일차 숙소는 부여의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한옥 펜션이다.
겉모습은 한옥이지만 실내는 현대적인 펜션이다.
침대는 없고 요와 이부자리를 깔고 자야 한다.
냉장고 전기밥솥 전자렌지 가스렌지 ............. 있을 것 다 있다.
한옥 펜션에 비가 내린다.
어릴 때 시골 삼간 초옥에서 살았고 서울올라와서는 달동네 판잣집에 살다가 말년에는 높다랗게 쌓아올린 시멘트 상자에 끼여 살고 있는 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네 ..............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