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수필가 이규철의 세계, 비 내리는 명동 스케치
서울의 거울이라고 일컫는 명동은 내가 자주 스치는 곳이다. 내가 명동과 익숙해진 연유는 명동이 무슨 첨단 유행의 거리로서, 멋장이들이 운집하는 거리라서 호사스런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장인어른께서는 그렇게 글머리를 시작하셨다.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月刊 文學’ 1994년 9월호에, 장인어른께서 ‘비 내리는 명동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기고하신 수필이었다.
이어서 장인어른께서 명동을 자주 스치게 된 이유를 풀어내셨는데, 북한 성진이 고향이신 장인어른께서 6.25 그 전란 중에 북에 두고 온 어머님이 계절 따라 색다른 생선으로 맛깔스런 식혜를 담구어 가족들의 구미를 돋구어 주시고는 했다는 것이고, 바로 그 명동에 순대국과 가자미식혜를 잘하는 집이 있어서, 그 집을 들르려고 그러셨다는 것이다.
장인어른께서는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휴전을 앞두고 최후전의 양상으로 격전에 돌입할 무렵부터 명동거리와 친숙하셨다고 했다.
다음은 장인어른께서 당시의 명동 풍경과 지금의 명동 풍경을 비교해서 그려내신 대목이다.
그 무렵의 명동은 지금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지만 그래도 그 무렵부터 명동은 유행의 중심지였고, 멋쟁이들이 들끓는 첨단거리였다.
숱한 애환과 변화를 거듭해온 지금의 명동거리엔, 그래도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몇몇 건물들이 새로 단장되어 지금도 고즈넉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아에게 무척 친밀감을 준다.
옛 명동극장은 없어졌고, 명동사거리에 자리한 여성국극만을 공연하던 구시민회관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또한 한일과과 유네스코 회관 건물과 명동성당, 충무로 어귀의 진고개식당이며 중국대사관 등이 명동의 유서를 간직한 채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가 들락거리던 그 순대국집은 지금은 없어졌으나 그래도 나는 도심 나들이길엔 늘 명동에 들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언제인가 생겨난 함흥냉면집에 들려 순대국 대신 냉면을 먹은 다음 원두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나서 외국서적거리를 기웃거리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다.//
나도 그곳 명동의 추억이 있다.
촌놈인 나로서는 유행의 첨단인 명동의 풍경이 낯설어서, 반세기도 더 전으로 거슬러 서울에 첫 발걸음을 했던 그 처음에는, 쪽팔린다는 생각에 일부러 찾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나 그 즈음에 스물다섯 나이로 검찰공무원이 되어 첫 발령지인 대검찰청 총무과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나보다 먼저 그 부서에 와 있던 지금의 아내를 처음으로 만나게 됐고, 그 첫 만남의 순간에 그대로 뿅 가버려서, 당시 막 스무 살 나이에 접어든 그 소녀를 꼬드기느라 음악 감상실 같은 곳을 찾다보니, 음악 감상실이 유독 많이 몰려 있는 그곳 명동과 자연스레 인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추억을 떠올리면서, 장인어른의 이어진 글을 읽어나갔다.
장인어른의 놀라운 만남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색채화의 톱크라스 여류화가 A화백과의 만남을 풀어내고 있으셨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장인어른께서는 그녀와의 인연된 사연은 밝히지 않으시고, 그저 명동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그 약속부터 풀어내셨다.
그런데 그 첫 만남이 삐걱거렸다는 것으로, 밀린 원고를 정리하느라 그 약속을 깜빡 잊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전전긍긍하다가 하는 수 없이 사과의 전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의외로 차분한 응대에 감동하셨다는 것이다.
‘아이, 별 말씀 다 하시네요! 한 시간 30분을 기다리다가 오시지 않아 바쁘셔서 못 오시는 줄 알고 메모를 남기고 돌아왔습니다요!’
그 응대가 고마워서, 장인어른께서는 죄책감에 다음날 다시 만날 것을 정중하게 청하셨다 했고, 그래서 앞서 만나기로 했던 명동의 어느 찻집을 또 만남의 장소로 정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한 날은 장인어른께서 약속시간보다 훨씬 앞서서 그 찻집을 찾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셨다.
그녀는 약속시간을 정확하게 맞춰 그 찻집에 들어섰다 했고, 손을 들어 싸인을 보내서 같이 자리를 하게 됐다고 하셨다.
다음은 그 이후의 사연이다.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다가온 A화백을 대한 나는, 첫마디로 약속을 어긴 오류에 대해 진지하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명랑한 제스쳐를 곁들이며 던지는 말이, ‘별 말씀 다 하시네요! 덕택에 차분한 공간에서 책을 많이 읽었고 정취 있는 명동거리를 즐겁게 산책할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 분에 넘치는 겸손의 미덕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체득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A화백의 매너에 나는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동거리는 이렇듯 사람의 마음마저 다독거려 부드럽게 해주는 매력을 지닌 곳일까! 라고 나는 혼자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날은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가 곧 빗방울을 뿌리더니 줄기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었다고 하셨다.
장인어른께서는 그렇게 변해가는 날씨를 예견해서 미리 우산을 준비했으나, 그녀는 빈손으로 와서 장인어른께서 그 찻집 현관에서 파는 우산을 하나 사서 그녀의 손에 들려줘야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그녀와 같이 명동거리를 더 걸었다고 하셨다.
그 대목이다.
우린 비 내리는 명동거리를 다른 선남선녀들의 틈새에 끼어 거닐면서 명동의 정취 속에 영혼에 찌든 묵은 찌꺼기를 잠시나마 털어내며 간단한 식사로 시장기를 메꾸고 나서, 귀로에 어느 찻집에 들려 작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자리를 뜨면서 우산꽂이에서 우산을 찾으니 내 우산이 뿅 간 곳이 없었다.//
나는 스무 살 앳된 소녀에게 뿅 갔었는데, 장인어른께서는 애지중지 들고 간 우산이 뿅 가버리고 만 것이었다.
의미심장한 미소가 내 입가를 순간 스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