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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
이 글은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으로, 여정에 따른 견문과 감상을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내금강역에 도착하여 역사를 보고 느낀 감상에서 시작하여, 문선대, 장안사에서 명경대, 황천 계곡, 망군대, 마하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노정(路程)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뛰어난 묘사로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마의 태자 무덤에서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그 감상을 드러내고 있다. 서경과 서정의 조화를 살린 섬세한 표현에서 낭만적인 정감과 신선한 감각, 회고적인 감회 등을 느낄 수 있다.
※ 핵심 정리
1. 갈래 : 수필(기행문)
2. 주제 : 금강산 기행에서 느낀 무한한 산정(山情)
3. 표현
① 여정에 따라 견문, 감상 등의 기행문적 요소가 잘 갖추어졌다.
② 서경과 서정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③ 낭만적 정감, 신선한 감각, 회고적 감회 등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④ 직유, 은유, 열거, 대구, 대조 등의 다양한 표현 기교를 구사하고 있다.
⑤ 기교미와 화려체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4. 여정
내금강 역→문선교→장안사→명경대→황천 계곡→망군대→마하연→비로봉→마의 태자 묘
<서두1>-내금강 역사에 도착, 문선교를 지남
1. 내금강 역사 도착과 역사에 대한 느낌
내금강 역사(驛舍)에 도착.(여정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명료하게 표현)
어느 외국인의 산장을 그대로 떠다 놓은 듯이 멋진 양관(洋館). 외금강 역과 아울러 이 한국식 내금강 역은 산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한 정다운 호대조(好對照)의 두 건물이다. 내(內)와 외(外)를 여실히 상징한 것이 더 좋았다.
2. 맑은 마음으로 문선교에 다다름
십삼 야월(夜月)의 달빛 차갑게 넘실거리는 역 광장에 나서니, 심산(深山)의 밤이라 과시(果是) 바람은 세찬데, 별안간 계간(溪澗)을 흐르는 물소리가 정신을 빼앗을 듯 소란하여 추위는 한층 뼈에 스민다. 장안사(長安寺)로 향하여 몇 걸음 걸어가며 고개를 드니, 산과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우쭐우쭐 둘러선다. 기쓰고 찾아온 바로 저 산이 아니었던가고 금새 어루만져 보고 싶은 충동(금강산을 빨리 보고 싶은 기대감)을 느끼며, 힘껏 호흡을 들여마시니, 어느덧 간장(肝臟)도 청수(淸水)에 씻기운 듯 맑아 온다.(맑아오는 글쓴이의 마음을 명료하게 표현) 청계를 끼고 물소리를 즐기며 걸어가기 십 분쯤, 문득 발부리에 나타나는 단청(丹靑)된 다리는 이름부터 격에 어울려 함부로 건너기조차 외람된 문선교(問仙橋)!(글쓴이의 경건한 마음 자세)
* 과시(果是) : 과연
* 계간(溪澗) : 시냇물이 흐르는 골짜기
* 단청(丹靑) : (궁궐·사찰·정자 따위) 전통 양식의 건축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는 일, 또는 그 그림이나 무늬.
3. 문선교를 건너며 느끼는 감회
문선교! 어느 때 어떤 은사(隱士)가 예까지 찾아와서 선경(仙境)이 어디냐고 목동에게 차문(借問)한 고사라도 있었던가? 있을 법한 일이면서 깜짝 소문에조차 듣지 못한 것은, 역시 선경과 속계(俗界)가 스스로 유별(有別)한 탓이었던가?
* 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 목동에게 술집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 손을 들어 살구꽃이 핀 마을을 가리킨다.
은 속계의 노래로, 속계에서는 이만하면 풍류객이었다. 동양류의 선경이란 풍류객들이 사는 고장을 일컬음이니, 선경과 속계는 백지 한 겹밖에 아닐 듯이 믿어지니, <이미 세진(世塵)을 떨치고 나선 몸>이라 서슴지 않고 문선교를 건너기로 하였다.
* 차문(借問) : 남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 봄.
* 당나라 시인 두목의 시 '청명(淸明)"의 한 부분(3, 4구)을 인용함으로써 탈속적인 정취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부분 참조)
<서두2>-이른 아침에 본 산의 자태
4. 탐승 전에 바라본 산의 모습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고단한 셈 치고는)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몸에 지닌 기쁨이 하도 컸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영봉(靈峰)들을 대면하려고 새댁같이 수줍은 생각(산봉우리를 신랑으로, 자신을 신부로 생각한 참신한 표현)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峻峰)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계곡과 준봉의 대구를 통한 탄력적 표현) 용이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 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5. 귀공자다운 나무들의 기품
①<모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하늘을 향해 길고 곧게 자란 나무의 모습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글쓴이만의 독창적 시각) ②<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밋밋하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③<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야산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④<귀공자와 같이 기품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 밋밋하다 : (생김새가) 거침새 없이 꽤 길고 곧다.
* ① = ② = ④ ←대조→ ③
<본문1>-장안사에 이르는 산의 경치
6. 원근 산악의 단풍
조반 후 단장(短杖) 짚고 험난한 전정(前程)을 웃음경삼아 탐승(探勝)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 원근 산악이 열병식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 있는데, 첫눈에 비치는 만산의 색소는 홍(紅)!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 보다 하였다.
* 전정(前程) : 앞길
* 탐승(探勝) :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다니는 것.
7. 다양한 산색(山色)
만학천봉(萬壑千峰)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山色)은 붉을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紅)만도 아니었다. 청(靑)이 있고, 녹(綠)이 있고, 황(黃)이 있고, 등(橙)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 만학천봉(萬壑千峰) : 첩첩이 겹쳐진 골짜기와 수많은 봉우리.
* 등(橙) : 등색, 오렌지색.
8. 산의 용모와 풍치
복잡한 것은 빛깔만이 아니었다. 산의 용모는 더욱 다기(多岐)하다. 혹은 깎은 듯이 준초(峻?)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溫厚)하고, 혹은 막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틀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다양한 산의 모습을 탄력성 있는 문장으로 묘사) 용모, 풍취(風趣)가 형형색색인 품이 이미 범속(凡俗)이 아니다.
* 준초(峻?) : (산 따위가) 높고 깎아지른 듯함.
* 온후(溫厚) : (성질이) 부드럽고 후덕함.
9. 장안사 맞은편 산의 잣나무
산의 품평회를 연다면, 여기서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 문자 그대로 무궁무진(無窮無盡)이다. 장안사 맞은편 산에 울울창창(鬱鬱蒼蒼) 우거진 것은 모두 잣나무뿐인데, 모두 이등변삼각형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섰는 품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괴어 놓은 차례탑(茶禮塔) 같다. 부처님은 예불상(禮佛床)만으로는 미흡해서, 이렇게 자연의 진수성찬을 베풀어 놓으신 것일까? 얼른 듣기에 부처님이 무엇을 탐낸다는 것이 천만부당한 말 같지만, *<탐내는 그것이 물욕 저편의 존재인 자연이고 보면, 자연을 맘껏 탐낸다는 것이 이미 불심(佛心)이 아니고 무엇이랴.>(개성적 표현)
* 차례탑(茶禮塔) : 차례 때, 탑처럼 높이 괴어 올린 제물(祭物).
* 잣나무(원관념)-차례탑, 자연의 진수성찬(보조관념)
* 개성적 표현
불심 (佛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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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탐내지 않고 버리는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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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개성적 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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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탐내는 것→불심이라 함. |
<본문2>-망경대
10. 찻집에 이름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계류(溪流)를 끼고 돌며 몇 굽이의 협곡(峽谷)을 거슬러 올라가니, 산과 물이 어울리는 지점에 조그마한 찻집이 있다.
11. 명경대의 장관과 전설
다리도 쉴 겸, 스탬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구비된 기념 인장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지면에 나타나는 세 글자가 명경대(明鏡臺)! 부앙(俯仰)하여 천지에 참괴(慙愧)함이 없는 공명한 심경을 명경지수(明鏡止水)라고 이르나니,(윤동주의 '서시' 참고)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 머무르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지니고 온 악심(惡心)을 여기서만은 정(淨)하게 하지 아니치 못하는 곳이 바로 명경대란 말인가! 아무러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찻집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로 올라가니, 깊고 푸른 황천담(黃泉潭)을 발 밑에 굽어보며(주체 - 명경대) 반공(半空)에 외연(巍然)히 솟은 층암 절벽(層巖絶壁)이 우뚝 마주 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화장경(化粧鏡) 그대로였다. 옛날의 죄의 유무를 이 명경(明鏡)에 비추면, 그 밑에 흐르는 황천담에 죄의 영자(影子)가 반영되었다고 길잡이는 말한다.
* 부앙(俯仰): 아래를 내려다봄과 위를 쳐다봄.
* 참괴(慙愧) :부끄럽게 여김.
* 명경지수(明鏡止水) :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맑고 고요한 심경(心境)을 이르는 말.
* 외연하다(巍然―) : 높게 솟아 있다.
12. 명경대에 대한 감회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건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이 발명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臆說)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猶不足)일 거울의 요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可驚)할 일인가?
13. 명경대에서 마의 태자 고사 회고
신라조 최후의 왕자인 마의 태자(麻依太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꿇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念誦)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業罪)를 명경에 영조(映照)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雲上氣稟)에 무슨 죄가 있으랴만, 등극(登極)하실 몸에 마의(麻衣)를 감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佛法)이 말하는 전생의 연(緣)일는지 모른다.(마의 태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드러남)
* 운상기품(雲上氣稟) : 속됨을 벗어난 고상한 기품, 곧 왕족의 기품.
<본문3>-황천 계곡
14. 황천 계곡에 이르는 노정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염마(閻魔)처럼 막아 서는 웅자(雄姿)가 석가봉(釋迦峰), 뒤로 맹호(猛虎)같이 덮누르는 신용(神容)이 천진봉(天眞峰)! 전후 좌우를 살펴봐야 협착(狹窄)한 골짜기는 그저 그뿐인 듯.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
* 염마(閻魔) : 염라대왕
* 웅자(雄姿) : 우람한 모습.
* 신용(神容) : 신과 같은 거룩한 모습.
* 협착하다(狹窄―) : (자리 따위가) 몹시 좁다.
* 진퇴유곡(進退維谷) :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이 궁지에 몰려 있음’을 이르는 말. 진퇴양난.
15. 황천 계곡의 수목
몸이 감길 듯이 정겨운 황천강(黃泉江)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구불구불하고 험하게 이어지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유래담을 길잡이에게 들어 가며 쉬엄쉬엄 걸어 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심해(深海)같이 유수(幽邃)한 수목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유수하다(幽邃―) : 그윽하고 깊숙하다.
16. 황천 계곡의 수목과 단풍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17. 단풍의 아름다움
산 전체가 요원(燎原) 같은 화원(花園)이요, 벽공에 외연히 솟은 봉봉(峰峰)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 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때 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 난만(百花爛漫)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의 신화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고 있는 것일까? 진주홍(眞朱紅)을 함빡 빨아들인 해면같이, 우러러 볼수록 찬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 요원(燎原) : 불타고 있는 벌판.
* 백화난만(百花爛漫) : 온갖 꽃이 피어서 아름답게 흐드러짐.
* 신화(神火) :1.사람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불. 2.도깨비불.
18. 단풍에 동화
단풍이 이렇게까지 고운 줄은 몰랐다. 문 형은 몇 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물아 일체 物我一體, 물심 일여 物心一如, 주객 일체 主客一體)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본문4>-망군대
19. 망군대에 오름
그림 같은 연화담(蓮花潭) 수렴폭(垂簾瀑)을 완상하며, 몇십 굽이의 석계(石階)와 목잔(木棧)과 철삭(鐵索)을 답파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막아서는 무려 삼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 ── 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시야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다. 여기가 해발 오천 척의 망군대(望軍臺) ── 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
* 수렴폭(垂簾瀑) : 발을 드리운 듯한 폭포.
* 목잔(木棧) : 나무로 사닥다리처럼 놓은 길. 나무로 만든 잔도(棧道).
* 철삭(鐵索) : 여러 가닥의 철사를 꼬아 만든 줄.
* 답파(踏破) : 먼 길이나 험한 길을 걸어서 끝까지 감.
* 일망무제(一望無際) : 아득히 멀고 넓어서 끝이 없음. 일망무애(一望無涯).
20. 망군대에서 조망
이름도 정다운 백마봉(白馬峰)은 바로 지호지간(指呼之間)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비로봉(毘盧峰)은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깝다. 그 밖에도, 유상무상(有象無象)의 허다한 봉들이 전시(戰時)에 할거(割據)하는 군웅(群雄)들처럼 여기에서도 불끈 저기에서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 밑은 천인단애(千?斷崖), 무한제(無限際)로 뚝 떨어진 황천 계곡에 단풍이 선혈(鮮血)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 단장(七寶丹粧)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치마폭 같다고나 할까. 수줍어 수줍어 생글 돌아서는 낯 붉은 아가씨가 어느 구석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연상에 의한 표현)
* 연상에 의한 표현
앞구절에서 단풍을새색시 머리의 칠보단장이나 규수의 붉은 치마폭에 비유했기에 연상된 내용이다.
* 지호지간(指呼之間) : 손짓으로 부를 만한 가까운 거리. (준말)지호간.
* 천인단애(千?斷崖) : 천 길이나 될 듯한 높은 낭떠러지.
* 무한제(無限際) : 일망무제(一望無際)
* 칠보단장(七寶丹粧) : 여러 가지 패물로 몸을 꾸밈.
<본문5>-마하연
21. 마하연 여사 주인의 환대와 아가씨의 정성
저물 무렵에 마하연(摩訶衍)의 여사(旅舍)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였던가. 어서 오십사는,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도 은근하거니와,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 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은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22. 마하연사의 많은 노승
여장(旅裝)을 풀고 마하연사를 찾아갔다. 여기는 선원(禪院)이어서, 공부하는 승려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로 삽십 명은 됨 직하다. 이런 심산에 웬 승려가 그렇게도 많을까 !
* 무한청산행욕진[無限靑山行欲盡] 한없는 청산 끝나 가려 하는데,
백운심처노승다[白雲深處老僧多] 흰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
옛글 그대로다.
* 당나라 승려 영일의 시의 한 부분.
* 선원(禪院) : 좌선을 주로 하는 도량.
23. 남포등 아래서 느끼는 온고지정
노독(路毒)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등 아래에 앉으니, 온고지정(溫故之情)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
하며 불을 바라보는 문 형의 말씨가 하도 따뜻해서, 나도 장난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였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운 얼굴들이, 흐르는 물(덧없이 흘러간 세월)의 낙화(落花) 송이같이 떠돌았다.(어렴풋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 온고지정(溫故之情) : 옛것을 살피고 생각하는 마음.
24. 깊은 밤 산 속의 분위기
밤 깊어 뜰에 나가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陰風)이 몸에 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 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요, 물 소린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나 아니다. 아마, 바람 소리와 물 소리와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25. 밤에 독서하는 여관집 아가씨의 모습
달빛에 젖으며 뜰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가 등잔 아래에 외로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깊는 줄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 품이, 춘향(春香)이 태형(笞刑) 맞으며 백(百)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누명 쓴 장화(薔花)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告祝)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시베리아로 정배(定配) 가는 카투사의 뒤를 네플류도프 백작이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 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 갔다.(나그네의 객창감)
* 객창감(客窓感) : 낯선 곳에서 느끼는 쓸쓸한 감정
남포등(23문단)이나 책은 글쓴이의 객창감을 유발하는 소재이다.
<본문6>-비로봉
26. 날씨의 변환과 운무 속의 경치
다음 날 아침, 다시 산을 찾아 나섰다. 자꾸 깊은 산 속으로만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을 다시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친지와 처자를 버리고 스님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 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군소봉(群小峰)이 발 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옥하고 음산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기더니, 은제(銀梯), 금제(金梯)에 다다랐을 때, 기어이 비가 내렸다. 젖빛 같은 연무(煙霧)가 짙어서 지척을 분별할 수 없다. 우장(雨裝) 없이 떠난 몸이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올라가노라니까, 돌연 일진 광풍(一陳狂風)이 어디서 불어 왔는지, 휙 소리를 내며 운무(雲霧)를 몰아가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주홍 주단 폭같이 늘어놓은 붉은 진달래 단풍이, 몰려가는 연무 사이로 나타나 보인다. 은제와 단풍은 마치 이랑이랑으로 섞바꾸어 가며 짜 놓은 비단결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진달래는 꽃보다 단풍이 배승(倍勝)함을 이제야 깨달았다.(진달래꽃보다 단풍이 훨씬 아름다움을 이제야 깨달았다.)
* <몸은 어느 새 ~ 나는 서 있었다.>
비로봉 중턱에 당도하기까지의 세세한 과정을 생략하여 빠른 노정 변화를 드러냄으로써 경쾌함과 속도감이 느껴진다.
* 배승하다(倍勝―) : 갑절이나 더 낫다.
27. 영봉의 장관
오를수록 우세(雨勢)는 맹렬했으나, 광풍이 안개를 헤칠 때마다 농무(濃霧) 속에서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 영봉(靈峰)을 영송(迎送)하는 것도 가히 장관이었다.
28. 날씨의 변환
산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暴注)로 내리붓는다. 만이천 봉을 단박에 창해(滄海)로 변해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데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 가지고 비로봉 절정에 있는 찻집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고 섰던 동자(童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였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 같은 난로를 에워싸고 둘러앉았던 선착객(先着客)들이 자리를 사양해 준다. 인정(人情)이 다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어느덧 우박으로 변해서 창을 때리고 문을 뒤흔들고 금시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다.(인정과 날씨의 대조) 용호(龍虎)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대로(大怒)하신 것일까? 경천동지(驚天動地)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 이렇게 만상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간장(肝腸)을 죄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간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진다. 변환(變幻)도 이만하면 극치에 달한 듯싶다.
* 유만부동(類萬不同) : 정도에 넘침.
29. 비로봉 정상에서 조망
비로봉 최고점이라는 암상(巖上)에 올라 사방을 조망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운해(雲海)뿐, ── 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으리라 싶었다. 내·외·해(內外海) 삼 금강(三金剛)을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는 것이 가석(可惜)하나, 돌이켜 생각건대 해발(海拔) 육천 척에 다시 신장(身長) 오 척을 가하고 오연(傲然)히 저립(佇立)해서, 만학천봉을 발 밑에 꿇어 엎드리게 하였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마음은 천군만마(千軍萬馬)에 군림하는 쾌승(快勝) 장군보다도 교만해진다.(호연지기 浩然之氣)
* 오연하다(傲然―) : 오만스럽다. 거만한 듯하다.
* 저ː립(佇立) : 우두커니 섬.
* 호연지기(浩然之氣) :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정기. [‘맹자’의 ‘공손추 상편’에 나오는 말임.]
<본문7>-마의 태자 무덤
30. 마의 태자 묘의 분위기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 자리를 삼가, 구중 심처(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자작나무는 무슨 수중(樹中) 공주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哀話) 맺혀 있는 용마석(龍馬石). 마의 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능(陵)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 철책(鐵柵)도 상석(床石)도 없고, 풍림(楓霖)에 시달려 비문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31. 마의 태자 묘에서 느끼는 애상감
무덤가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석양이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석(化石)된 태자의 애기(愛騎) 용마의 고영(孤影)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르는 듯, 소복(素服)한 백화(白樺)는 한결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中天)에 서럽다.(문단 전체가 감정 이입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백화(白樺) : 자작나무.
32. 마의 태자에 대한 회고의 정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險山)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社稷)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지려는 고행(苦行)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 공주의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入山)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裡)가 어떠했을까? 흥망(興亡)이 재천(在天)이라, 천운(天運)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慈惠)가 천 년 후에 따습다.
* 섬섬옥수(纖纖玉手) :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
33. 인생의 무상함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悠久)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依支)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暗然)히 수수(愁愁)롭다.
* 남가일몽(南柯一夢) : 덧없는 꿈, 또는 덧없는 부귀영화.
* 영겁(永劫) : 한없이 오랜 세월. 영원한 세월. 광겁(曠劫). 만겁(萬劫). 천겁(千劫).
* 수유(須臾) : 잠시. 잠시 동안. 잠시간.
* 수수롭다(愁愁―) : 근심스럽다. 마음이 서글프고 산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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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학교에서 들어었을때는 잘몰랐는데 이해가 되네요 ㄳ
이해 되게 잘됨..ㅋㅋ 관동별곡이랑 이건 너무 이해 안된거였는데.. 감사합니다~~~ 근데 춘향전이 없네요..-,.-
정리가 잘되어있는거 같아요 ^^ 감사
보기좋게 잘 정리되있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 어떻게 이렇게 정리를 잘하시는지 ㅜㅜ 부러워요 ^^
좋은 자료 감사하게 잘 쓸께요~
진짜 딱 보기에 좋네요~ 아 시험기간에 이걸로 공부하지는 않앗지만, 그래도 이거 봣으면 몇개 더 맞앗을것같아요ㅜ
정리를 너무 잘 해주셨네요. 유용한 정보 너무 고마워요.
정리가 너무 눈에 잘 들어옵니다. 감사합니다. ^^
혼자 정리하신건가요??정말 대단하시네요^^ 많은 내용을 깔끔하게 잘 정리하셨어요! 좋은 자료 감사요~!
정리 짱이네용 감사해요
정리 잘 쓰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