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는 월요일 밤부터 한반도 남단에 비바람을 몰고왔고 우이령에도 화요일 아침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나의 예측은 기상청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므로 화요일 산행을 수요일로 바꿨다.
북한산우이역에서 북한산을 올려다봤을 때 우이암과 우이령은 짙은 연무에 파묻혀 오리무중이었다.
우이역에는 비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과연 우이령에도 비는 내리지 않고 있을까?
만약 우이령에 비가 온다면 하루 연기한 나에게 쏟아지는 원성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약속시간 10시 우이역에 모였다.
화곡시장 맛집 족발과 장암계곡에서 줏은 도토리로 묵을 쒀가지고 오겠다고 했던 박여인은 비가 올 것 같아 집에서 쉬겠다며 나타나지 않았다.
이건 무슨 도토리묵 쒀먹을 소린가.
어저께 미용사 동생이 파마를 해준다고 했는데 파마가 잘못된 것인가.
다음 주 남한산성에서 하는 양을 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여인네들로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이령으로 오르는 길은 두개의 길이 있다.
먹거리마을길을 피해 한적한 우이령소나무숲길을 택해 부드러운 흙길을 밟으며 오른다.
울창한 소나무 수림에 들어서서인지 어두침침해진다.
내마음도 어두침침해진다. 산행 중 비가 내린다면..
우이탐방지원센터 도착
인터넷예약 QR코드를 찍고 통과
하늘이 훤해졌다 어두어졌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우이령으로 오르는 길은 사색에 잠기게 할만큼 편안함을 준다.
우이령길 초입의 보도블럭은 전투경찰부대를 지나며 맨발 지압하기 좋은 흙길로 바뀐다.
탱크저지선이 있는 우이령 정상에 선다.
소귀고개! 그래서 우이령있고 그 위에 우이암이 있다.
60여 년전 집앞 언덕에 서서 어둠이 깔린 밤에 도봉산을 보면 도개비불 같은 미군 찦차 헤드라이트가 두 눈을 밝히고 우이령길을 넘나드는게 보였었다.
그 길에 60갑자를 넘어서 허연 백발로 올라서서 그때를 회상하며 감회에 젖어본다.
이제 우이탐방지원센터 관할에서 교현탐방지원센터 관할로 넘어간다.
우이령길에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이암에서 출입통제된 샛길을 통해 우이령길에 발을 디뎠다가 국공한테 걸려 사정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예나 지금이나 하지말라면 더하는 기질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변하지 않는다.
우이령에서 조금 내려서면 오봉전망대!
금줄이 쳐있었다.
탁상공론은 이곳에도 있었다.
그렇다고 오봉이 보이지 않는가. 눈가리고 아웅하듯이 오봉을 가리는게 코로나와 무슨 상관인가.
차라리 우이령길을 막아라.
옛날 옛적 구르마 굴러다니던 시절 오리의 간격을 표시하기 위해 오리나무를 5리마다 심어 표시를 했었다.
우이령길에는 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오리나무는 황폐한 민둥산을 녹화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사방산림사업 치적이다.
그때문에 숲이 우거진 산을 즐기며 등산하고 있지 않나.
오봉전망대를 지나며 힐끗 힐끗 넘겨다보는 오봉이 구름을 두르며 장관을 연출한다.
오봉전망대에 통제라인을 두른 산림청장은 현장에 와서 보라.
교현으로 가는 길에 구름이 춤을 추며 비를 뿌릴까 말까 농단을 하고 있지만 어림없는 짓꺼리 하지마라 내가 가는 길이다.
방향을 오봉 밑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으로 튼다.
유격훈련장을 가로질러 간다.
1968년 김신조 빨갱이 일당이 우이령을 넘었었지. 그래서 유격훈련장이 이곳에 만들었겠지.
유격훈련장에서 보는 오봉이 더욱 가까와지며 구름을 벗고 웅장한 자태를 보인다.
석굴암으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길에 떨어진 도토리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재미로 도토리 줍기에 여념이 없다.
장암계곡 도토리를 훑어 묵을 쒀가지고 오겠다던 박여인이 생각나며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석굴암을 지키는 사천왕이 보이지 않았다.
QR코드 찍지 않고 일주문 통과.
일주문에 걸려있는 현판의 不二門?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유마거사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 유명하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금당(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일주문을 넘어서며 번뇌에서 해탈한다. 하늘이 훤해진다.
오봉 아래 석굴암 경내에 들어선다.
사찰이 꽤 규모가 있어보인다.
경내를 돌아다니며 말끔해진 오봉도 올려다보고 북산산 영봉도 넘겨다보고.
사찰 한켠에 있는 경전이 새겨진 통을 돌리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염불을 하며 또 한번 해탈을 하고 비가 내리지 말라고 기원을 했다.
경내에서 뼈없는 닭발과 순대를 먹기에는 꺼려서 석굴암에서 조금 내려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호젓한 곳
사토가 깔린 넓직한 마당에 자리 잡았다.
염불 덕인지 산둥반도에서 몰려온다던 저기압은 씨도 보이지 않고 간간히 햇빛도 비친다.
As Good As It Gets!
순대에 문여사 싸준 뼈없는 닭발이 있으니 그까짓 족발과 도토리묵이 대수랴!
정선생이 손수 빚은 인삼주와 매실주가 더하니 금상첨화로다!
얼큰해진 기분에 우이령을 다시 넘기는 수월하겠으렸다.
일어서니 오봉이 낮게 보였다.
술취한 오만함에 오봉을 깔보지 마라! 산은 산이로다!
되돌아서서 배철수의 빗물과 이연실의 비개인 오후를 속으로 짓거리며 우이령을 가볍게 넘어간다.
우이탐방지원센터를 나오며 길을 찾는다.
이번에는 우이령소나무숲길을 피해 먹거리마을로 길을 잡았다. 너무나 당연한 길이다.
정선생이 집에 둘째 아들이 온다며 먼저 가겠다고 한다.
야박하지만 기본회비 만원을 내놓고 가라고했다.
먹거리마을 삐끼가 호객을 해서 못이기는 척 들어갔다.
계곡에 평상이 놓여있었고 계곡에 턱을 만들어 넓직한 풀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곳에 옷탕을 하는 젊은이가 부러워 두분이 계곡풀장에 머릿수를 더했다.
평상에는 해물파전과 막걸리 소주가 놓여졌다.
무릉도원이 이곳인가 하노라.
우이동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옷을 말리기 위해 호프집에 들어서야만 했다.
현시대를 신랄하게 까는 주모가 맘에 들었지만 6시가 넘어 3명이 더있으라고 해도 더 있을 수가 없어서 호프집 가파른 계단을 헛디딜까 조심하며 우이역으로 향했다.
다음 주 산행은 남한산성 수어장대를 그려봤다.
(산행일지)
산행구분 | 정기산행 | 일 자 | 2021. 8. 25(수) |
산행장소 | 우이령길 | 산행회원 | 이충기, 정일환, 류재화, 이병학 |
회비내역 | 적립금 | 342,060원 |
|
-식대 | 30,000원 |
|
+회비접수 | 40,000원 | 각 1만원 |
잔금 | 10,000원 |
|
잔고 | 352,060원 |
|
비 고 | 산행코스 : 북한산우이역-우이령소나무숲길-우이탐방지원센터- 우이령-유격장-석굴암-원점회귀 뒤풀이 :초원가든(우이동계곡) |
첫댓글 다음기회에는
회원들도 모두나와
함께 걸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길도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안아서
문제없을것 같구요.
정,류두분 선생님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회장님이 후기를 너무 생생하게
쓰셔서 다시 한번 다녀온 느낌입니다.
노고에 감사드리며 함께하신 두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령 산책길 탐방산행과 석굴암 깔딱고개
오르시느냐고 고생하시였습니다
멋진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