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수필가 이규철의 세계, 오만한 졸부(猝富)
장인어른께서는 월간 ‘한脈文學’ 1995년 9월호에 기고하신 ‘장마 속의 狂詩曲’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 전염병처럼 번져있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분노를 털어놓으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분노도 있으셨다.
벼락부자들에 대한 분노였다.
장인어른께서는 그 분노를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한 ‘月刊 文學’1995년 3월호에 기고하신 ‘오만한 졸부(猝富)’라는 제목의 한 편 수필에서 신랄하게 털어놓으셨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유복한 사람을 보고, 오복(五福)을 갖춘 사람이란 말이 있다. 오복이란? 첫째 장수(長壽)하고, 둘째 건강하고, 셋째 부유하고, 넷째 덕이 있고, 다섯째 평안한 생활이라고 했다.//
글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장인어른께서는 그 오복 중에 특히 재물에 초점을 맞추셨다.
그 대목이다.
속설에 의하면 재물(財物 )도 재운(財運)을 타고 나야 얻어지는 것이지, 재물에 대한 욕심을 지닌다고 해서, 재물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의 산업입국으로 섰다. 일제로부터 광복 후 오늘까지 남북 분단의 어려운 여건 하에서, 6.25동란을 겪으며 숱한 정치파동 등 걷잡을 수 없는 사회혼란과 복잡 미묘한 국제정세 등의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온 국민이 땀 흘려 경제재건의 비전을 실현한 나머지, 가난을 딛고 일어나 세계 경제권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신흥 재벌이 탄생하였고, 부유층과 서민층 또한 아직도 상대적 빈곤층도 풍요의 그늘엔 없지 않다. 모든 후발국이 산업화의 도약과정에서 그러하듯이 소득분배의 불균형과, 부(富)의 편재로 인한 빈부(貧富)의 심한 격차와 불균형을 인한 부작용 역시 개발도상국이 떠메고 건너야 할 운명적인 걸림돌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즈음에 우리 사회 안에서도 재벌과 서민층의 사이에 수많은 벼락부자 곧 졸부(猝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신축 등으로, 과거에는 별로 쓸모없었던 땅들이 어느 날 갑자기 폭등하는 부동산 붐이 일면서 약삭빠르게 축재한 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하셨다.
장인어른께서는 그 세태를 참 안타까워하셨다.
그 대목이다.
물질 즉 돈은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만큼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돈은 어디까지나 정당한 노력으로 정당하게 얻어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세태는 물질만능주의로 팽대한 가치관의 혼란으로, 돈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의식구조로 타락하여, 정의로운 인본주의가 녹슬어 가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 시대에는 신분 서열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규정짓는 사회 통념이었으나 물질만능시대로 바뀐 오늘날은 그 순서가 역으로 바뀌어 상공농사(商工農士)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 뜻있는 사람들의 개탄의 목소리다.//
그리고 서경 홍보편(弘報篇)의 교훈 한 대목을 이렇게 전해주셨다.
사람이 터득해야 할 삼덕(三德)의 교훈이 있다. 첫째 탐욕(貪慾)을 지니지 말 것이며, 둘째 언어(言語)를 조심할 것이며, 셋째 정직(正直)하라 했다. 이 삼덕의 교훈 중 그 으뜸은 당연코 탐욕을 극기(克己)해야 한다고 하는 교훈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되새겨볼 교훈이 아니던가!//
장인어른께서는 미국의 오만한 졸부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주셨다.
그 대목이다.
미국에 로버트 글레이(Robert Gllay)라는 검소하게 살고 있는 저명한 시인(時人)을 찾아온, 어떤 졸부(猝富)가 시인을 보고 ‘선생님께서는 평생 훌륲ㅇ한 시(詩)를 쓰시는데, 어째서 이렇듯 가난하게 사시니까?’라고 비아냥거렸다 한다. 시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그 졸부를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나는 가난하지 않소! 나에게는 당신의 전 재산을 털어도 될 수 없는 주옥같은 시(詩)가 많소이다.’라고 핀잔을 주었다 한다.
핀잔을 받은 졸부가, 자신이 얼마나 허황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시인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제의하자, 시인은 당신 같은 부도덕한 졸부의 도움은 거절한다는 단호한 태도로 선비로서의 고매한 품격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인어른의 가까운 주위에도 그와 같은 사례가 있었다고 하셨다.
장인어른과 6.25를 전선에서 함께 보내고 휴전 후에도 오랫동안 군문에서 젊음을 바치다 예편하여, 한동안 공직에 머무르다가 은퇴하여 지금은 기독교 신앙을 지니고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J라는 친구의 이야기였다.
어느 날 그 J가 장인어른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어느 모임에서 당한 수모를 털어놓더라고 하셨는데, 곧 이 대목이다.
이 선생! 어떤 모임에 나갔는데,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순서에 따라 내가 나의 소개를 마치자, 좌중에 한 장년의 어떤 위인이 한다는 소리가, ‘J선생! 호랑이 담배 피던 그 시절에 군과 공직에 있으면서 왜? 돈을 많이 챙기지 못했소!’라고 비아냥거리는데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고 호소해왔다.//
이 대목에서 나 또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나를 분노케 한 그 얼굴들도 떠올랐다.
지난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얼굴들인데, 하나같이 내 주위에 아주 가까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들에게서 그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천편일률적인 말이었는데, 대충 이랬다.
‘검찰청수사관을 했으니, 돈 많이 벌었겠어.’
쉽게 말해서, 뇌물 받아서 치부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분노해서 대들기라도 하면, 역시 천편일률적으로 이렇게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는 했었다.
‘농담한 걸 가지고 왜 그래?’
참 얄미운 자들이다.
특히 더 얄미운 자들이 있다.
내게 용돈 한 푼 줘본 적 없고, 밥 한 그릇 술 한 잔 제대로 사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에이, 퉤!’
내 그렇게 헛침 한 번 뱉어야 했다.
장인어른께서는 글 끝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교훈 한마디를 남겨주셨다.
곧 이 글이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의 숙명이다. 어떤 부자도 그의 묘비(墓碑)에다 ‘이 사람은 부자로 살다가 타계한 사람!’이라고 기록하지는 않는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살면서도 비단을 낳는다. 넉넉지 못한 삶의 조건에서도 인류와 역사를 위해 비단을 낳는 사람은 많다. 오만한 졸부보다 뽕잎을 먹고 비단을 낳는 누에가 훤씬 값진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