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아비의 인생 훈수
‘고생 많으셨네요. 조만간에 한 번 갈게요.’
2024년 4월 24일 수요일인 바로 어제의 일로, 나와 아내 그리고 맏이와 막내네 가족 일곱이 온라인으로 두루 함께 어울리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맏이가 게시한 글이 그랬다.
직전에 내가 게시한 한 줄 글과 그 글에 첨부한 한 장의 사진에 대한 답을 한 것이다.
‘우리가 오늘 지은 농사’
글은 그랬고, 첨부한 사진은 나와 아내가 ‘햇비농원’ 우리들 텃밭에서 이날 농사지은 고추밭 멀칭 풍경을 찍은 것이었다.
댓글을 붙여준 관심이 고마웠고, 한 번 와주겠다는 약속이 고마웠다.
그러잖아도 요즈음 맏이의 신변에 무슨 걱정할 일이라고 있나 신경이 쓰이던 중이었다.
딱히 말을 해서 걱정하게 된 것이 아니다.
맏이의 카카오톡 홈페이지에 게시된 한 편 시와 한 곡 노래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내 그리 짐작한 것이다.
한 편 시는 심훈의 ‘그날이 오면’의 한 대목이었다.
곧 이랬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한 곡 노래는 ‘This Is The Moment’라는 곡이었다.
알고 봤더니,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Jekyll & Hyde)의 주제곡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장의 사진은 우리 시대의 무술영화 ‘외팔이’에서 주인공 왕우의 팔 한쪽이 잘려나간 장면이었다.
그 셋으로 맏이의 처한 상황을 연상시켜봤다.
뭔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깊은 고뇌에 빠진 것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사연을 물어볼까 하던 중에, 바로 그 한 줄의 답글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이때다 싶었다.
그것을 명분으로 해서, 인생 훈수 한 수 해야겠다는 작정을 한 것이다.
그래서 쓴 인생 훈수, 곧 이랬다.
오늘도 나와 엄마는 큰 농사를 지었다. 나는 관리기로 밭을 다시 또 갈아엎었고, 엄마는 멀칭을 씌웠다. 국민학교 동기동창으로 평소 가까이 지내는 황선용 내 친구가 친환경 필름이라고 하면서 선물해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썼다. 오이며 토마토며 가지며 해서 모종도 심었고, 내일은 오늘 멀칭한 자리에 고추 모종을 심을 작정이다. 옛말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다. 농사가 인생사 세상사의 근본이라는 의미인데, 지난날에는 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내가 정작 귀향해서 농사를 지어보니, 그 말이 딱 맞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 내 고향 친구 중에 부부가 동반으로 귀향한 친구는 ‘만촌농원’을 가꾸어 가는 국민학교에 중학교까지 동기동창인 안휘덕 내 친구 그 딱 하나다. 그만큼 사람들이 귀향을 쉽게 작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의 귀향은 바로 그 친구 덕분이다.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나를 이끌어 하루 종일 문경 곳곳을 쏘다니면서 지금의 텃밭을 구해줬기 때문이다. 그 고마움에 내 살아생전 밥술 산다 했다. 더 고마운 것은 너 엄마다. 고향이 이곳 문경인 나보다도 엄마가 먼저 원해서 귀향을 한 것이어서 그렇다. 아내가 남편의 고향땅으로 귀향한다? 주위에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가 곧 너 엄마다. 서현이 애비가 언제 날 잡아 오겠다는 말은 고맙지만, 절대로 무리하지는 마라. 나와 엄마는 너희들이 각자의 선 자리에서 역할을 잘 감당하고, 그리고 형제간 동서간 사촌간에 두루 우애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간절할 뿐이다. 세월이 흘러가보면 다 알게 되지만, 그 이전에 타산지석으로 알고 실행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인생인 것이다. 오늘은 서현이 애비가 카카오톡 홈페이지에 공개한 외팔이 왕우 사진과 심훈의 ‘사노라면’이라는 시 한 편과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에 나오는 ‘This Is The Moment’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애비가 요즈음 뭔가 힘든가 보구나 하면서 말이다. 누구에게나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갖가지 사연들이 느닷없이 불현듯이 뜬금없이 다가오게 되어 있다. 그렇게 다가온 사연들을 피하기보다 맞닥뜨려서 잘 감당해내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인 거다. 내가 게시한 나와 엄마가 멀칭하고 난 뒤에 잠깐 쉬면서 찍은 한 장의 사진에, 서현이 애비가 ‘고생 많으셨네요. 조만간에 한 번 갈게요.’라고 답을 한 것이 하도 고마워서, 내 이렇게 긴긴 인생 훈수 한 수 두는 거다. 이미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자식들한테 내 오늘 이 인생 훈수가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 나름의 생각이 따로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마음이 가야 정이 붙고 정이 붙어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인 것만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라 아니할 수 없다. 앞으로 인생사 세상사 엮어가면서, 새기고 또 새기기 바란다. 이제 나는 삼겹살 한 근에 막걸리 한 병 사서 집에 들어간다. 가서 오늘 땀 흘려 수고한 엄마한테 막걸리 한 잔 따러줄 작정이다. 내 작정만 그리 말했다. 너희들이 어찌 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번만이 아니다. 앞으로 내 살아생전에 그리할 거다. 선뜻 마음 내켜하지 않을까봐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나나 너 엄마나 전대로부터 무너져 내렸던 이 집안을 제대로 일으켜보려고 늘 노심초사 했었다. 그랬음에도 내 대에서는 이루지 못했다. 기대가능성도 거의 없다. 영문을 도통 모르는 새 식구가 자꾸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그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되겠지 되겠지 하는 바람으로, 닥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이 온 세상을 지어내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길고 긴 인생 훈수, 이쯤에서 끝맺는다.//